LOGIN41화. 실습
넥타이. [이거 색깔이 딱 고려청자 비취색이에요! 단 씨가 만든 그 청자랑 똑같아서 보자마자 질렀어요. 잘 어울릴 거예요!]
홍차. [이건 임페리얼 얼그레이래요. 두통에 좋대요. 향도 엄청 고급져요!]
앞치마. [공방에서 작업하실 때 입으세요! 지금 입으시는 거 너무 낡아서…… 이거 입으면 완전 장인 포스 날 것 같아요.]
핸드크림과 책 한 권. [그리고 이건 제 사심…… 단 씨 손 거칠어지면 안 되니까 핸드크림! 그리고 <최신 유머 대백과 - 김 부장도 빵 터지는 유머 100선>…… 단 씨 유머 감각이 좀…… 올드해서…… ㅎㅎ 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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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좋아해그날 밤.낮 동안 별장을 가득 채웠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제주도의 밤은 다시 본래의 고요를 되찾았다.열어 둔 창문 사이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바다에서 불어온 늦여름의 바람이 얇은 커튼을 천천히 흔들었다. 낮에는 아직 여름의 열기가 제법 남아 있었지만 해가 지고 나니 공기가 한결 선선했다.서연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어젯밤의 단. 오늘 아침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단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좋아하는 건 맞다니까…….”이제 그건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는 게 더 이상했다.이쯤 되면 우리 사이가 무엇인지는 말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입은 잘 맞춰 놓고…….”중얼거리고 나서 스스로 놀라 다시 벌떡 일어났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귀끝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누구세요?”“나다. 단.”그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뒤엉켰다.어젯밤에도 이 시간쯤 단과 함께 바닷가를 걸었다.그리고 그 끝에서…….서연의 손이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로 갔다.“…….”문을 열자 편안한 셔츠 차림의 단이 서 있었다.서연은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아, 오늘도 이 소녀의 마음을 마구 흔드시고요. 그래서 단 씨 마음은 대체 뭔데요…….’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지만 시선은 서연의 입술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자기도 신경 쓰면서.’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조금 전까지 혼자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가벼워졌다.“잠이 안 오나?”“아직은요. 단 씨도요?”“그래.”단은 잠시 복도 끝을 바라봤다가 다시 서연에게 시선을 돌렸다.“산책할까?”“가요. 저도 이대로는 못 잘 것 같아요.”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바닷가 쪽으로 걸었다.달빛이 수면 위에서 잘게 부서졌고, 밀려온 파도가 발끝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를 적신 뒤 다시 바다로 물러났다.둘은 한
157화. 그건 마음에 드네갑자기 멈춰 선 은랑의 등에 이마가 콩 부딪혔다.“아야!”서연이 이마를 문지르며 한 발 물러났다.“은랑 씨,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요. 등이 무슨 돌덩이야?”“…….”은랑은 대답하지 않았다.서연의 이마가 등에 닿았던 순간, 단단했던 등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내 등이 이 정도로 훌륭하다’느니, ‘어디 다친 데 없느냐’느니 한마디쯤 받아쳤을 은랑이 조용했다.“은랑 씨?”등 뒤에서 서연이 부르는 소리에 은랑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은랑이 괜히 목덜미를 한 번 문질렀다.그러고는 더 생각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몸을 돌려 서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자.”“네?”은랑이 씨익 웃으며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주인님, 뛰어!”“갑자기?”“출구야. 우승하러 가자고!”은랑이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은랑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고 서연이 같이 달려 나갔다.좁은 길을 빠져나와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도착!”은랑과 서연이 거의 동시에 미로 밖으로 뛰쳐나왔다.시간을 재고 있던 재호가 놀라 휴대전화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벌써 나왔어?”서연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재호에게 달려갔다.“아빠, 몇 분이에요? 우리 빠른 거죠?”“빠른 정도가 아닌데? 아직 다른 팀은 코빼기도 안 보여.”“진짜요?”재호가 시간을 보여 주자 서연의 눈이 더욱 커졌다.“은랑 씨! 우리 진짜 일등이에요!”“내가 뭐랬어. 나만 믿으랬지!”승리에 취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았다.“이겼다!”“우승!”“최강 콤비!”은랑이 서연을 끌어안은 채 크게 웃었고, 서연도 아이처럼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저녁은 우리 마음대로예요! 아무도 토 달기 없어요!”“당연하지! 오늘은 비싼 거 먹자!”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입구를 가득 채웠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의 표정은 조금 전부터 굳어 있었다.옆에 앉아 있던 재호가 슬쩍 그 얼굴을 살폈다.“단
156화. 미로사진 구경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한 장을 보면 그날 있었던 일이 떠올랐고, 누군가 한마디를 꺼내면 다른 사람이 말을 보태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누군가에게는 며칠 전의 기록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의 기록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도 모르던 마음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찍혀 버린 시간이기도 했다.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사진들은 다시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오후가 되어서야 김 실장이 준비한 다음 일정이 시작됐다.“미로?”입구 앞에 선 은랑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초록빛 벽을 바라봤다.사람 키를 훌쩍 넘긴 나무울타리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고,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봐도 몇 번의 갈림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제주 특유의 늦여름 햇빛이 초록빛 잎사귀 위로 쏟아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빽빽한 나뭇잎이 한꺼번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서단은 벌써부터 신이 난 얼굴이었다.“이거 재밌겠는데요? 그냥 들어갔다가 먼저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정확히는 두 사람씩 한 팀입니다. 각 팀의 시간을 측정해서 가장 빨리 출구에 도착한 팀이 승리합니다.”김 실장이 안내지를 접어 넣으며 설명하자 은랑의 눈빛이 금세 진지해졌다.“잠깐. 승부라고? 상품은?”“우승한 팀에게 오늘 저녁 메뉴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은랑이 자세를 바로 했다.“무조건 이긴다.”팀은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결정했다.첫 번째는 서단과 루나였다.종이를 펼쳐 본 서단이 환호하자 루나는 선글라스를 다시 코끝에 걸치며 한숨부터 쉬었다.“좋아하지 마. 난 뛰는 거 싫어해.”“누나, 이건 뛰는 게임이 아니라 머리 쓰는 게임이에요. 제 두뇌와 누나의 감각이 합쳐지면 무조건 우승입니다.”“뭐 내가 감각이 뛰어나긴 하지.”두 번째는 정숙과 김 실장이었다.정숙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웃었고, 김 실장은 벌써부터 미로의 전체 구조라도 분석하는 사람처럼 안내판
155화. 시선“아빠!”서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는 순간 루나가 또 다른 사진을 집어 들었다.“그런데 연아. 너 독사진도 정말 많다.”테이블 위에 사진이 하나둘 늘어났다.바람에 머리카락을 넘기는 서연,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눈을 찡그린 서연, 비자림의 나무를 올려다보는 서연.자신도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서연이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김 실장을 바라봤다.“실장님, 저를 이렇게 많이 찍으셨어요?”“제가 찍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네?”김 실장은 사진 몇 장을 살펴보다 그중 하나를 골라 단 앞에 내려놓았다.“카메라는 여러 대 가지고 갔었습니다. 대표님께서도 가지고 계셨고요.”그 말에 식탁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단에게 돌아갔지만, 정작 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진을 내려다봤다.“난 예술가다. 아름다운 것을 담는 건 그릇뿐 아니라 사진도 마찬가지지.”“전혀 설득이 안 됩니다. 설마 그 아름다운 게 우리 누나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웃음이 다시 터졌다. 단은 그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연을 한 번 바라보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글쎄…… 사진에 담겼다면?”“형, 그만해요. 형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네요.”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지만, 그 소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은랑은 말없이 사진들만 바라봤다.은랑의 시선이 사진 속 단에게 오래 머물렀다. 서연이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는 순간에도 단의 시선은 어김없이 서연을 향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지난밤 달빛 아래에서 보았던 두 사람이 떠올랐고, 은랑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그때 서단이 다시 사진을 뒤적이다 한 장을 뽑아 들었다.“어? 이것도 좀 신기한데?”사진이 테이블 가운데 놓였다.이번에는 은랑이었다.서연이 정숙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은랑이 그런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얼굴이었다.은랑의 표정이 굳
54화. 사진다음 날 아침.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 위로 두툼한 사진 봉투 하나가 올라왔다.가장 먼저 발견한 서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게 뭐예요?”“사진입니다.”김 실장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봉투를 열었다.“그건 보면 알아요. 아니, 어제 찍은 사진을 벌써 인화해 오신 거예요?”“아침에 잠시 다녀왔습니다.”“대체 몇 시에 일어나신 거예요?”“평소와 같습니다.”평소가 몇 시냐고 다시 물으려던 서단은 봉투에서 쏟아져 나온 사진을 보고 질문을 잊어버렸다.“우와! 이건 전문가 수준인데요?”“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전시회도 열어 주셨지요.”“전시회요?”단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김 실장이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눈만큼은 나도 인정하지.”비자림을 걷던 모습부터 별장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던 모습, 바닷가에서 정신없이 물싸움을 하던 순간까지 제주에 도착한 뒤의 시간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서단의 감탄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어머, 이것 좀 봐요. 정말 작품 같아요.”정숙이 가장 먼저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비자림에서 재호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모습이었다. 바로 옆에는 언제든 붙잡을 수 있도록 한 손을 내민 은랑이 따라가고 있었다.사진 속 재호는 웃고 있었다.정숙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여보, 이 사진 정말 잘 나왔어요.”“어디 보자.”재호가 사진을 받아 들었다.한동안 말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가가 조금 부드러워졌다.“내가 다시 이런 데를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게 될 줄은 몰랐네.”그 한마디에 잠시 거실이 조용해졌다.정숙이 남편의 팔을 가볍게 토닥였다.“앞으로 더 많이 다니면 되죠.”“그래야지.”재호가 웃으며 사진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서단이 다른 사진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루나도 옆에서 한 장씩 집어 들었다.“이건 구도가 좋네. 어머님, 이 사진 가져가세요. 빛이 정말 예쁘게 들어왔어요.”“어머, 그러네.”“이건 내가 스타일링을
153화. 기댄 문어느 순간부터 단이 아프면 마음이 쓰였고, 그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지 한 번 더 살피게 됐다.무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고, 이제는 손 하나 잡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그리고 오늘 밤에는 자신도 그와 입을 맞추고 싶었다.천장을 바라보던 서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나 진짜 단 씨 많이 좋아하네.”문제는 그 천 년 묵은 도공이었다.단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게 맞았다.이 정도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그런데…….“왜 좋아한다는 말은 안 하지?”서연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설마…….”서연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분위기에 휩쓸린 건가? 아니면 입 맞추고 싶다고 한 걸 고백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방 안에서 서연은 한동안 허공만 바라봤다.“아, 몰라. 모르겠어.”좋아하느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늘 밤 일까지 있었는데 내일부터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도 없었다.무엇보다 몇 시간만 지나면 또 얼굴을 봐야 했다.그 생각에 다시 귀끝이 뜨거워졌다.하지만 잠시 후, 서연의 머릿속에 자신이 먼저 입을 맞췄을 때 드물게 당황했던 단의 얼굴이 떠올랐다.서연의 입가가 다시 슬그머니 올라갔다.오늘 밤 자신이 한 선택은,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할 이유가 없었다.천 년 묵은 도공도, 이십 대 후반의 감정사도 사랑에는 너무도 서툴렀다.비슷한 시각.은랑이 별채의 방문에 장난기 없는 얼굴로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낮부터 바닷물 속을 뛰어다닌 탓인지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목이 말라 눈을 떴다.물을 찾으러 거실로 나왔다가 무심코 창밖을 바라봤고, 달빛이 내려앉은 바닷가에 나란히 걷고 있는 단과 연을 발견했다.‘저 도둑놈, 또 주인님 손잡고 있네.’평소 같았으면 당장 창문이라도 열고 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