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40화. 감 잡았어요
"일시불이요.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결제가 완료되는 순간, 지지직 영수증 출력되는 기계음.
그 소리가 팡파르처럼 들리고, 가슴속에서 묘한 쾌감이 솟구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자애감이 차올랐다.
"어……?"
서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다시 펌프질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가장 확실한 심리 치료. 역시, 모든 심리 치료는 금융 치료가 직빵이었다.
"느껴져? 그게 바로 기야."
루나가 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돈이란 건 말이야,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 도구야. 사람을 지키는 갑옷이고, 기를 살려주는 부적이지.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야 세상도 나를 귀하
40화. 감 잡았어요"일시불이요. 영수증은 버려주세요.""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결제가 완료되는 순간, 지지직 영수증 출력되는 기계음.그 소리가 팡파르처럼 들리고, 가슴속에서 묘한 쾌감이 솟구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자애감이 차올랐다."어……?"서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다시 펌프질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이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가장 확실한 심리 치료. 역시, 모든 심리 치료는 금융 치료가 직빵이었다."느껴져? 그게 바로 기야."루나가 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돈이란 건 말이야,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 도구야. 사람을 지키는 갑옷이고, 기를 살려주는 부적이지.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야 세상도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법이야. 귀신도 마찬가지고. 네가 쫄면 잡아먹히고, 네가 왕처럼 굴면 알아서 무릎을 꿇어.”루나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물론 돈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야. 지식이나 지위, 명성으로도 기세를 세울 수 있고,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지. 하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건 역시 돈이야.”루나가 씩 웃었다.“우리는 지금 한시가 급하잖니. 그러니까 일단 가장 쉬운 방법부터 써보자.”서연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돈이 자존감을 만든다. 자존감이 기세를 만들고, 기세가 신력을 키운다.듣고 보니……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옷을 갈아입고 카드를 긁었을 뿐인데,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었다.무장이었고 훈련이었다. 서연은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씨익
39화. 충성! 따르겠습니다 서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돈으로 아우라를 산다? 쇼핑이 수련이다?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신개념 수련법이었다. 108배나 냉수마찰보다 백 배, 천 배 마음에 들었다. "저기…… 스승님. 근데 혹시 제 돈으로……?" "걱정 마. 수업료랑 교재비는 당연히 도둑놈이 내야지." 루나가 주머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 재질. 일전에 보았던 단의 블랙카드였다. "왕재수 도둑놈 돈으로 오늘 백화점 기둥뿌리 하나 뽑으러 간다. 천년 동안 모은 재화가 창고에 썩어나는데, 좀 써줘야 경제가 돌지 않겠니?" "헉…… 하, 하지만 지난번 이사 올 때도 옷에 신발에 비싼 거 잔뜩 사주셨는데, 여기서 더 받으면 저 진짜 평생 노예 확정 아닌가요? 뼈가 삭도록 일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 마. 뼈는 안 삭아. 멘탈이 좀 털릴 뿐이지. 우린 지금 '세상 구하는 투자'를 하는 거야. 준비됐나, 제자?" 루나가 선글라스를 다시 끼며 비장하게 물었다. "추…… 충성! 따르겠습니다!" 서연은 깨달았다. '붉은 여우'는 자신과 코드가 아주, 매우, 격하게 잘 맞는다는 것을. 그녀는 비장하게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산을 타는 것보다 더 험난하고 짜릿한 '쇼핑의 산'을 정복하러 갈 시간이었다. S백화점 명품관. 대한민국 상위 1%가 모인다는 이곳은 공기부터 달랐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그니처 향수 냄새,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경쾌한 하이힐 소리, 그리고 손님보다 더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의 프로페셔널한 미소까지. 모든 것이 '돈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깨 펴. 쭈뼛거리지 마. 넌 여기서 제일 돈 많은 고객이야. 아니, 네가 이 백화점 주인이라고 생각해. 쫄지 마." 루나의 지령에
38화. 루나의 수련법 북악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평소 단이 다도를 즐기던 평화로운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루나의 '임시 강의실'로 변해 있었다. 서연은 비장한 각오로 머리에 띠까지 하고 나타났다. "준비됐습니다, 스승님! 오늘은 어떤 수련인가요? 명상? 108배? 시키시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는 루나의 차림새는 서연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풀 메이크업에 몸매가 드러나는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준비한 그녀는 당장 화보를 찍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명상은 무슨. 지루한 건 딱 질색이야. 땀 흘리는 것도 싫고. 촌스럽게 그 띠는 또 뭐니? 앉아 봐." 루나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서연을 쳐다봤다. 서연이 쭈뼛거리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네가 정화를 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루나의 표정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신성한 신선의 기운이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의 어둠에 더럽혀졌어. 어둠은 어둠을 불러오고, 오염된 힘이 세상의 어둠을 계속 키워 나간다면 머지않아 큰 재앙이 될 거야." 루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서연을 바라보았다. "각성이 너무 늦어졌어…… 이제는 세상을 재앙으로부터 지키겠다는 각오까지 가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네 운명이니까." 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운명…… 이라고 하니까 좀 무겁네요. 전 그냥 평범한 소시민인걸요." 루나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신선의 힘을 가진 소시민 봤냐? 명색이 각성자면서 귀신앞에서 덜덜 떨고 말이야. 네가 그러면 귀신이 널 얕본다고." "그건…… 무서우니까요! 귀신이잖아요! 얼굴 없는 귀신인데 안 무서우면 그게 이상한 거죠!
37화. 아침 풍경 고요하고 고즈넉해야 할 저택의 아침 식사 시간은, 오늘도 소란으로 시작되었다. "야! 똥개! 그 소시지 다시 내려놔라." "웃기시네! 먼저 찍은 놈이 임자지!" 고풍스러운 식탁 위에서 전대미문의 젓가락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아니 두 짐승 사이에서 튀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 때문에 식탁 위의 샹들리가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이게 어디서 감히 선배한테 이빨을 드러내? " 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붉은 안광을 흘렸다. "선배는 무슨! 여우 주제에 나님은 고귀한 은빛 늑대의 후예라고 몇 번을 말해!" 루나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은랑이 가져갔던 소시지가 루나의 접시로 날아갔다. 은랑이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꼬우면 너도 백 년 일찍 태어나서 도술 배우든가. 무식하게 힘만 쓰는 짐승은 밥 먹을 자격도 없어. 우아함이 결여되어 있잖아, 우아함이." "신선님이 나도 재능이 많다고 했다고!" "네, 네~ 이미 이천 년은 늦으셨고요." "이 씨!" "......으으으." 단이 신음하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침부터 편두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근 백 년 동안 고요했던, 아니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했던 그의 집이, 북새통이 되어있었다. "김실장, 연은 아직 안내려온건가?." "네, 주인님." "가능한 빨리 내려와 달라고 부탁해주게." 단에게는 지금 진통제가 필요했다. "저 여기 이있어요. 금방 갈께요." 세수만 간단히 하고 내려오는 모습이었지만, 단의 눈에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봄꽃처럼 청초하고 상큼해 보였다. 서연은 자연스럽게 단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의 손을 꼬
36화. 후유증"그래서! 네가 저 도둑놈을 치유할 수 있는 거란다. 그리고 오염된 파편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이지.""오염된 파편이요?"루나가 연의 손등을 애틋하게 쓸어내렸다."신선님의 흩어진 힘들은 요즘 말로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에너지란다. 안타깝게도 투명한 존재일수록 쉽게 오염되는 법이지. 순수한 에너지가 오랜 세월 동안 지상의 더러운 것들과 섞이기 시작했단다."루나의 음성이 깊은 심연처럼 낮게 가라앉았다."억울하게 죽어간 인간들의 원한,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추악한 욕망, 시기와 질투…… 인간이 뱉어내는 온갖 어두운 오물들이 그 고결했던 조각들을 오염시켜 버렸어.""그럼 시계나 그림에 붙어있던 것들이 그 오염된 파편인가요?""그래, 우리 아가씨가 신선의 힘을 각성해서 그런지 아주 똑똑한데?""그런 것들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되는 건가요?""안 되지, 그건 우리 신선님에 대한 모욕이야. 그리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저 도둑놈이 미치기 전에 세상이 먼저 미쳐 돌아가겠지. 그러니 정화가 필요해……."거기까지 말한 루나가 후, 숨을 내쉬며 뒤로 스르륵 물러났다. 거실을 짓누르던 신비가 그녀의 윙크 한 번에 다시 유쾌한 공기로 반전되었다.
35화. 신선의 유지엉거주춤 서 있던 서단이 루나의 나른한 손짓에 홀린 듯 주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러고는 얼음까지 동동 띄운 냉수를 정성스럽게 대령했다."아! 고마워요. 실은 저기 있는 김 실장한테 시킨 거였는데, 아무튼 고마워요, 젊은 친구. 근데 이 귀여운 친구는 누구실까?""저, 저는 서단이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서연이 제 친누나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누님!"서단이 쟁반을 들고 반듯한 자세로 루나에게 정중하게 답했다.빠직.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단을 보는 서연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팍 튀었다.'아오! 서단! 어디에 내놔도 창피한 내 동생 놈아. 미인 앞이라고 목소리 톤 쫙 깔고 행동거지 달라지는 거 봐라. 진짜 내가 너무 부끄럽다.'"어머, 참 싹싹하고 잘생긴 청년이네. 그래, 서단이 너도 여기 와서 앉으려무나."루나가 이내 얼굴에 머물던 가벼운 장난기를 거두어냈다.오롯이 서연을 향한 그녀의 눈동자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비현실적인 일이겠지만, 아가씨가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야.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이라고 해두자꾸나.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천 년 전, 네 조상이 위대한 존재와 했던 약속이니까.""이미……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각오도 했고요. 그러니까 숨기지 말고 그냥 전부 말씀해 주세요.""그래 고맙다, 참 씩씩하고 예쁜 아이로구나."루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가가 아련한 물기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천 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차마 바래지 못한 그리움과 슬픔이 그녀의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