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시연은 침대 위에 내던져졌고 문은 다시 잠겼다.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위가 뒤집히듯 메슥거렸고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이 나왔다.자신이 뭘 한 건지 정신이 흐릿했다.그녀는 정말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 거짓말들을 직접 입으로 얘기하며 진수혁을 모함했다.그가 정말 천일제약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크레라를 사주해 이런 일을 꾸몄다는 건 확실치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모든 죄를 그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말았다.거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강시연을 삼켜버렸다.강시연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조용히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다.자신이 더럽고 비열하다고 느껴졌다.한편, 진수혁은 강성 내 진씨 가문이 가진 모든 인맥과 자원을 동원해 미친 듯이 강시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각종 정보가 유태오에게 모였고 그는 그것을 진수혁에게 전달했다.“진 대표님, 찾았습니다. 스크레라 씨 명의로 강성 근교에 버려진 공장이 하나 있는데 최근 며칠 사이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유태오가 다급히 보고했다.“우리 쪽 사람들이 이미 공장으로 출발했습니다.”“스크레라...”진수혁의 눈에 살기 어린 빛이 번뜩였다.“모두에게 전달해. 강성 근교 공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봉쇄해.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가선 안 돼.”그는 핸들을 거칠게 꺾었다. 타이어가 바닥과 마찰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차는 강성 근교 방향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속으로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에멜 그룹에서는 황민수 또한 비서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변호사님, 저희 쪽에서 확인한 바로는 스크레라 씨가 강시연 씨를 강성 근교의 한 폐기물 공장에 감금해 두었습니다. 게다가 통신 내용 중 일부에 따르면 스크레라 씨가 강시연 씨를 강요해 진수혁 씨에게 불리한 녹음을 하게 했고 곧 공개할 계획인 듯합니다.”“오?”황민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흥미롭군.”그는
강시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스크레라의 얼굴에는 거의 일그러지듯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강시연이라는 여자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상 약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이 중 하나만 건드려도 그녀는 순순히 복종할 것이다.“좋아, 역시 영리하군.”스크레라가 강시연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뺨을 툭 쳤다. 그 동작은 아주 모욕적이었다.“일찍 그렇게 했으면 됐잖아? 이런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잖아.”그녀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손짓했다.“풀어줘.”부하는 단도를 꺼내 재빠르게 강시연의 손목과 발목에 묶인 끈을 잘랐다.오랜 시간 묶여 있던 탓에 강시연의 사지는 이미 감각을 잃어 있었고 혈액이 통하는 순간의 저릿함에 그녀는 참을 수 없이 신음 소리를 냈다. 몸도 흔들리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스크레라는 냉담하게 바라보며 도움을 주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불쌍한 척하지 마.”그녀는 가방에서 녹음기 하나와 미리 작성해 온 문서 한 부를 꺼내 강시연 앞 바닥에 던졌다.“이건 네가 발표할 성명서 원고야. 그대로 읽어. 내가 녹음할 테니 때가 되면 발표할게.”강시연은 바닥에 놓인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제목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진수혁에 대한 7년의 결혼 생활과 상업적 탄압을 고발한다는 내용이었다.내용은 극도로 왜곡되고 비방으로 가득했다. 진수혁은 아내와의 재결합을 강요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장인어른 회사까지 압박하며 심지어 외부인과 결탁해 사건을 조작하는 비열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문장마다 진수혁의 명예를 짓밟고 있었다.강시연은 그 문서를 집어 들었고 손가락은 힘을 주어 잡은 탓에 약간 창백해졌다. 그녀가 직접 자기 입으로 한때 사랑했고 지금은 상처만 받은 한 남자를 고발하게 한다는 것은 차라리 죽이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하지만 그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생사가 오락가락하고 뱃속의 무고한 아이를 생각하면서 강시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동자에는 이미 죽음과
이 갑작스러운 자비에 강시연은 멍해졌다.스크레라가 이렇게 착할 리가 없었다. 진수혁과 통화를 하게 해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속에 경계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스크레라의 확신에 찬 눈빛과 위태로운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며 결국 휴대폰을 받아서 들었다.어쩌면 진수혁이 다른 대답을 해줄지도 모른다.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건 꼭 붙잡고 싶었다.강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익숙한 그 번호를 눌렀다.몇 번의 연결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시연아? 정말 너야? 지금 어디야? 다친 데는 없어?”전화기 너머로 진수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고 그는 여전히 그녀를 찾아다니는 중인 듯했다.진수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강시연의 마음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흔들렸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그녀는 울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진수혁 씨, 나... 난 괜찮아요. 그냥 한 가지 물어보고 싶어서요.”“뭔데? 말해봐.”그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가득했다.“천일제약... 요즘 겪고 있는 그 일들... 식약처 조사... 그게...”강시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떨렸다.“그게 혹시 진수혁 씨랑... 관련이 있어요?”전화기 너머가 몇 초간 조용해졌다.그 몇 초는 강시연에게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드디어 진수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번에는 평소의 냉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치 이성적인 사업가처럼 담담했다.“천일제약? 요즘 뉴스에 나오는 그 재무 조작한 회사 말하는 거야?”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아, 기억났어. 전에 스크레라 씨가 투자 관련해서 물어봤었지. 내가 그때 비슷한 회사 하나를 추천했을 거야. 내부가 좀 불투명해서 조작 가능하다고 말했던 것 같아.”진수혁은 강민석이 천일제약의 대주주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강시연이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협박당하고 있다는
“다음으로 큰일 나는 건 병원에 누워 있는 자네 늙은 아버지일 수도 있어요.”얼음처럼 차가운 말은 독이 선 칼날처럼 강시연의 심장을 깊게 찔렀다.납치범 우두머리는 한마디 협박을 남기고 수하들을 데리고 창고를 떠났다. 무거운 철문은 다시 한번 쿵 하고 요란하게 닫히며 외부의 세계를 완전히 차단했고 강시연을 무한한 어둠과 공포 속으로 밀어넣었다.아버지...강시연의 몸은 제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납치된 그 순간 이미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안 된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사람이다.강씨 가문은 과거의 일로 이미 흩어졌고 아버지는 옥살이하며 오랫동안 고생했다. 간신히 억울함을 풀고 편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자기 문제로 또 다시 고초를 겪게 할 수는 없었다.스크레라는 정말 못 할 짓이 없었다.절망은 차가운 덩굴처럼 그녀의 심장을 조금씩 감아올려 숨조차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진수혁과 이혼하고 공개적으로 그를 고발하라는 스크레라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너무나도 고민스러웠다.강시연은 눈을 감았고 머릿속엔 어쩔 수 없이 스크레라가 던져준 증거들이 떠올랐다. 위조된 이체 내역과 편집된 통화 녹음까지 모든 것이 진수혁을 배후로 가리키고 있었다.마음속 한편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그가 그렇게 잔혹하고 냉정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안전이 위태롭다는 사실 앞에서 그녀는 도박을 걸 수 없었다.만약 그 증거들이 진짜라면 어떡해야 하는지도 몰랐다.만약 진수혁이 정말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가족에게까지 손을 대는 사람이라면 어떡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한번 떠오르기 시작하자 미친 듯이 번져 그녀의 남아 있는 이성과 신뢰를 집어삼켰다.그녀와 진수혁 사이에는 이미 너무 많은 오해와 상처 그리고 심하은이 있었다. 과연 그녀는 그를 믿을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강시연은 괴로움에
황민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서 발 아래 번화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변호사님.”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공손히 보고했다“방금 전해온 소식이 있습니다. 천일제약 이사장 강민석께서 오늘 돌연 입원하셨고 동시에 딸인 세원 심리상담소 원장 강시연 씨가 병원 근처에서 실종되었으며 휴대폰은 꺼져 있어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황민수는 커피 컵을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강시연이 실종됐다는 말에 그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비서가 건넨 보고서를 재빠르게 훑어보았다.“병원 근처에 나타난 가짜 의사... 데려감... 실종...”황민수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이건 평범한 납치가 아니야.”그는 이전에 공항에서 우연히 강시연을 만났던 일과 이후 그녀를 도와 가짜 회계 담당자를 잡아주었던 일을 떠올렸다.그 여자는 비록 연약해 보였지만 속에는 질긴 끈기가 있었고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를 말없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면 상대의 수단과 세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누가 한 건지 찾아냈어?”황민수가 물었고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단서는 없습니다. 다만 최근 천일제약을 겨냥한 세력은 주로 두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전제약의 김찬우인데 현재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비한 인물인 스크레라 씨입니다.”“스크레라...”황민수는 그 이름을 따라 말하며 머릿속에 생각이 번득였다.“스크레라의 동향을 조사하고 진수혁 씨의 반응도 확인해.”그는 이 사건은 진수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어쩌면 진수혁에서 사심을 품은 사람이나 사업적 경쟁자가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알겠습니다.”비서는 명령받고 떠났다.황민수는 창밖의 차량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애초부터 강시연에게 조금 흥미를 느꼈고 어쩌면 강성을 혼란스럽게 만들 하나의 용병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더
공장 안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간간이 환기창 밖에서 불어오는 미약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강시연은 차가운 철제 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뺨은 화끈거리면서 아파왔다. 목덜미의 상처도 조금 전의 몸부림 탓에 은근히 욱신거렸다. 손목과 발목은 끈에 세게 묶여 있어 살이 파고드는 듯했고 차가운 절망감이 밀물처럼 그녀를 집어삼켰다.스크레라는 떠났다. 남은 것은 진수혁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의 증거들과 냉혹한 최후통첩뿐이었다.이혼 그리고 진수혁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라는 것을 그녀는 차마 할 수 없었다.그 증거들이 아무리 완벽해 보이고 진수혁이 정말로 자신을 돌아오게 하려고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녀는 스크레라의 손에 쥐어진 흉기가 되어 그를 해칠 수 없었다.강시연과 진수혁 사이의 문제는 그녀가 직접 해결할 것이며 스크레라 같은 악독한 여자가 이득을 보게 두지 않을 것이다.더군다나 이제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강시연은 아직 조금 움직일 수 있는 팔로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감싸안았다. 이 안에는 하나의 작은 생명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와 진수혁의 아이로 그녀가 가진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지켜야 했다. 어떤 위험도 닥치게 해선 안 된다.살고자 하는 의지가 점점 공포와 절망을 이기기 시작했다.강시연은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며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창고는 매우 컸지만 너무 어두워 멀리 쌓여 있는 잡동사니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를 묶은 밧줄은 굵고 단단해서 혼자 힘으로는 풀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몸을 비틀며 의자 다리나 주변의 뾰족한 물건으로 밧줄을 끊어보려 했다. 철제 의자는 차갑고 무거워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정적 속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손목과 발목의 피부는 금세 벗겨져 피가 새어 나왔지만 강시연은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았다.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이마에는 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지며 동시에 배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