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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라라
남자의 눈가에 혐오와 불쾌함이 뚜렷이 드러나고 검은 눈동자에 차가운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강시연은 평온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남편이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엔 애정이 한 점도 없었다.

“안 되는 거예요?”

그녀는 가볍게 시선을 올리며 말했다.

“도현이가 심하은 씨랑 있는 게 좋다는데 엄마로서 애 기분 나쁘게 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난 그날 일이 있어요.”

그날 그녀는 정말로 할 일이 있었다.

한정훈의 신분이 워낙 비밀스러워 그녀는 진료에 응했지만 모든 과정이 비밀로 유지되어야 했다.

따라서 은행 카드와 전화번호도 모두 해지하고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평소와 달리 화를 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진수혁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예전 같았으면 강시연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거다. 그녀는 진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에 특히 신경 썼고 심하은이 그녀 대신 공연을 보러 가는 걸 허락할 리도 없었다.

‘또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조롱의 빛이 스치며 차갑게 말했다.

“그래, 강시연. 후회하지 마. 내일 공연은 나와 하은이가 도현이랑 함께 갈 거야.”

그는 강시연이 또 무슨 소동을 피우는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진수혁은 홱 고개를 돌려 서재로 들어가서 문을 세게 닫았다.

진도현은 심하은의 이름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어른 행세를 하며 강시연을 불쾌하게 쳐다보았다.

“엄마, 엄마가 이모랑 가는 걸 허락한 거니까 아빠랑 싸우면 안 돼요.”

말을 마친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작은 책가방을 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눈매가 진수혁과 제법 많이 닮았다.

두 개의 문이 단단히 닫히고 텅 빈 거실에는 강시연 혼자 남았다.

무뎌진 가슴에는 슬픔이나 비통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채 오히려 해방감만 가득했다.

차라리 잘 됐다. 이러면 그녀가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강시연은 유치원 공연에 참석하지 않고 다음 날 강씨 가문의 저택을 방문해 진수혁과 관련된 물건들을 모두 가져왔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진수혁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때 강씨 가문은 아직 몰락하기 전이라 그녀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였지만 일방적으로 진수혁을 남몰래 짝사랑하며 그의 이러저러한 물건들을 몰래 수집했다.

셔츠의 단추, 그가 사용한 만년필, 그가 받은 만점 시험지...

그리고 그녀가 기록한 일기장도 있었다.

나중에 그녀는 진수혁과 결혼한 후 강씨 가문의 저택에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고 이 물건들은 모두 저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건은 그대로지만 사람은 변했다.

강시연은 17세부터 시작된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사랑의 흔적을 되짚어보았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서투른 사람이라 대부분 어리석고 무모하게 행동하며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다시 그녀가 한 모든 일을 되돌아보면 그저 웃음거리처럼 보일 뿐이다.

강시연은 이 모든 것과 어제 정리한 물건들을 전부 다락방에 보관했다.

강성을 떠나면 그녀는 아마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저택에 보관된 과거의 고통과 상처가 그녀를 정신 차리게 했다.

강시연은 오후가 되어서야 저택을 떠났다.

중간에 서아름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해지할 내용에 관해 확인했다.

우연히도 서아름의 집이 아들 진도현의 유치원 근처에 있어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유치원의 공연이 막 끝난 상태였다.

많은 기자가 유치원 문을 막아섰고 사람들의 시선이 진수혁에게 집중되었다.

“진 대표님, 심하은 씨가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아내인가요? 과거 심하은 씨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로 떠나면서 이별했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사실은 비밀리에 결혼한 건가요?”

진도현이 다니는 명문 유치원은 공연을 위해 특별히 기자들을 초대했고 진수혁이 심하은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과거 강시연과 진수혁은 비밀 결혼으로 남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

진수혁은 진도현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지만 강성 사람들은 진씨 가문의 사모님이 누구인지 거의 몰랐다.

오늘은 진수혁이 처음으로 여자와 함께 아들의 공연을 보러 온 것이고 심하은과 진수혁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기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시연의 시선이 진수혁에게 머물렀다.

진수혁은 줄곧 그녀가 진씨 가문에 시집가려고 일부러 혼전임신을 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신분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오늘 기자들의 추측에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지며 다소 미간을 찌푸리는 듯했다.

진수혁이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옆에 있던 심하은이 갑자기 입술을 깨물며 수줍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수혁이 가정사예요. 오늘 저희는 도현이 공연을 보러 온 거니까 다들 아이들 공연에 집중해 주세요.”

베테랑 기자들은 하나같이 그 말뜻을 전부 알아차렸다.

말투만 봐도 심하은은 본인을 안주인으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던 진수혁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시연에게 향하며 다소 멈칫했다.

늘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다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오늘 연두색 드레스에 정교한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간단히 진주 머리핀 하나만 착용했다.

붉은 입술과 검은 머리카락이 강렬하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싱긋 웃는 표정만으로도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그는 문득 과거 강시연이 강성에서 유명한 미인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다만, 진씨 가문에 시집간 후로는 이런 옷차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진수혁의 비서가 서둘러 도착해 기자들을 돌려보내자 사람들이 물러가고 심하은도 강시연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빛나며 진수혁과 함께 진도현의 손을 잡고 강시연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진짜 한 가족이고 오히려 강시연이 외부인 같았다.

강시연은 평온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 심하은이 귀 옆의 잔머리를 뒤로 넘기며 우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했다.

“강시연 씨, 미안해요. 방금 기자들이 계속 물어보는데 괜한 말 나오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둘러댔어요. 괜찮죠?”

진수혁은 강시연을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하은이도 시끄러운 일 생기지 않게 하려고 그런 거야. 네가 오늘 떠넘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진도현도 얼굴을 찌푸리며 주저하다가 말했다.

“엄마, 이모도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한 거예요.”

오늘 엄마는 평소와 달리 아름답고 눈부시게 변했지만 여전히 이모가 제일 좋은 사람이라 절대 엄마가 이모를 괴롭히게 두지 않을 거다.

심하은은 그 말을 듣고 눈동자가 반짝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는 강시연이 참지 못하고 뭔가를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곧이어 강시연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은데 기자들이 오해하면 심하은 씨나 도현이한테 안 좋을 것 같네요.”

그녀는 이미 진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가짜는 어디까지나 가짜다.

언론에서 깊이 파고들면 이내 심하은의 행적과 진도현의 출생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심하은은 당황했고 옆에 있던 진수혁도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속에 이상한 느낌과 당황스러움이 더해졌다.

어젯밤 일부러 홧김에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언론이 그와 심하은의 관계를 오해해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강시연이 왜 이러는 걸까.

“얘기는 그만하고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오늘 수고했어요. 심하은 씨.”

강시연은 시선을 거두며 차분히 말을 마쳤다. 그녀는 다시 한번 심하은이 의도적으로 한 가족처럼 연출한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수혁은 그녀와 커플 옷을 입었고 아들은 어린이용 옷을 입은 채 무척 의지하듯 고개를 들어 심하은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강시연은 시선을 내렸다.

심하은이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는 수밖에.

그녀가 떠나면 자연히 진씨 가문의 사모님 자리는 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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