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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택한 너에게, 나는 네 라이벌을 택했다
동생을 택한 너에게, 나는 네 라이벌을 택했다
Author: 임청연

제1화

Author: 임청연
“배준모 씨, 보름 뒤에 화경시로 돌아가서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바의 작은 발코니에서.

진채이는 어두운 색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이내 차갑고 거리감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채이 씨, 제 기억이 맞다면 두 달 전에 당신은 그 이른바 남자친구 때문에 우리 약혼을 거절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채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두 달 전, 채이는 7년 동안 사랑해 온 연인 부태빈을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께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집에 그 이야기를 전하자마자 들려온 건, 진씨 가문과 배씨 가문이 혼인을 준비 중이고 배준모가 채이의 명목상 약혼자라는 사실이었다.

채이는 태빈 때문에 집안과 크게 다투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 진해강은 병원에 실려 갔다.

그럼에도 채이는 내기처럼 말했었다. 자신은 태빈과 반드시 평생 행복할 테니까, 부모님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그러나 불과 두 달.

채이가 태빈에게 품었던 마음은 태빈이 ‘여동생’ 강시은을 감싸고 또 감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닳아 없어졌다.

특히 오늘은...

오늘은 원래 두 사람의 기념일이었다.

그런데 태빈은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바에서 시은과 묘한 술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채이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저는 부태빈 씨랑 헤어질 겁니다.”

[제 도움이 필요합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정했고, 묘하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섞여 있었다.

“아닙니다.”

채이는 조용히 말했다.

“부태빈 씨와 얽힌 일은 제가 정리할게요. 당신이 신경 쓸 일 없게 할게요.”

“그 사람 회사에 제가 쏟은 자금도 적지 않아서요. 제 몫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보름 뒤에 공항에서 뵙죠.]

그 말과 함께 통화는 끊어졌다.

전화를 집어넣고 한동안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던 채이는, 소파에서 일어나 바 2층의 한 룸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연달아 터지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사람들 한가운데에는 태빈과 시은이 있었다.

채이가 문 손잡이를 밀고 여는 순간, 안에서는 웃음 섞인 외침이 흘러나왔다.

“물었어, 물었어! 태빈 형 혀까지 쓰네. 이 판은 진짜 태빈 형 따라올 사람이 없다!”

“술 한 잔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

“뭘 몰라서 그래.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우리 시은 아가씨지. 시은 아가씨가 여기서 지면, 아래층에 가서 아무나 붙잡고 춤춰야 한다고. 태빈 형이 그걸 보고만 있겠어?”

“근데 태빈 형 여자친구 있지 않아?”

“...”

채이가 문을 완전히 열 때까지도, 중앙에 모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문 가까이에 있던 몇 명만이 서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채이는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서서 태빈이 시은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태빈의 손은 자연스럽게 시은의 허리에 머물러 있었고, 그 동작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여기 침대만 있었어도...’

그때, 누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채, 채이 씨?”

태빈은 그제야 눈을 돌려 채이를 보았다.

채이의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를 마주하자 태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품에 안고 있던 시은을 놓은 태빈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채이 앞으로 다가왔다. 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왜 여기 왔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상대방 태도에 채이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채이는 태빈의 어깨 너머로 시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설마 잊은 거야?”

오늘은 태빈과 채이의 연애 기념일이었다.

태빈은 그제야 채이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깨달았다.

미간에 짙은 난감함이 스치며 태빈은 거의 반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시은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랑 여기서 같이 있어 준 거야. 아까도 다들 분위기 띄운다고 게임하자고 해서 나도 그냥...”

“알아.”

채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게임이잖아. 신경 안 써.”

태빈의 말은 그 뒤로 더 이어지지 못한 채 목에 걸렸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채이를 데리고 먼저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태빈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채이 언니, 정말 죄송해요. 오늘 제가 실연을 당해서요. 그래서 오빠한테 같이 있어 달라고 한 거예요. 제발 오빠 탓하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시은이 술잔을 든 채 채이 앞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오신 김에 언니도 같이 있다 가세요. 이 술도 오빠가 일부러 바텐더 불러서 만들어 달라고 한 거예요. 한 번 드셔 보세요.”

시은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목선에서 채이는 몇 개의 붉은 자국을 보았다.

그 위로는 번진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들 앞에서까지 나를 자극하겠다는 거야?’

‘강시은... 네가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거지.’

채이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더 깊어졌다.

“그래?”

채이의 되묻는 말에 시은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채이가 말을 이었다.

“그럼, 남의 남자친구 침이랑 비교하면 뭐가 더 낫겠어? 시은 동생.”

채이는 ‘동생’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실어 발음했다.

그 말에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시은과 태빈의 관계를 떠올렸다.

혈연관계가 아닌 남매.

둘은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었지만 남매였다.

시은은 분명 태빈의 가족이었고, 그런데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시은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언니,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시은의 눈가가 금세 붉어지면서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아까는 오빠가 그냥 저를 도와준 거예요. 저도 제 처지 잘 알아요. 오빠랑 그럴 리도 없고요.”

시은은 고개를 돌려 태빈을 바라보다가 큰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말을 멈췄다.

“그만할게요.”

잠시 후, 시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억울함을 삼킨 듯한 태도였다.

“제 아빠가 오빠를 구하다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저도 오빠 집에 들어올 일도 없었을 거고, 오빠도 저를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 없었을 거예요.”

“결국 다 제가 선을 몰라서 그래요. 제 팔자가 그런 거죠. 채이 언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오빠랑 최대한 거리를 둘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를 부르지 않을게요.”

시은의 말끝이 심하게 떨렸다.

룸 안에 있던 사람들도 그제야 왜 시은과 태빈이 남매가 되었는지를 다시 떠올렸다.

예전에 시은의 아버지가 납치됐던 태빈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은인의 딸이라면, 태빈이 더 챙기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 일도 어디까지나 게임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채이가 지나치게 예민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서, 채이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 인생도 참...”

비웃음 섞인 말이 흘러나오려는 순간.

“그만해!”

태빈이 채이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매서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냥 시은이랑 게임 좀 한 거야. 이 정도로 따질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연애 기념일? 그게 그렇게 대단해? 그동안 너랑 보낸 시간이 부족했어?”

“언제부터 이렇게 막무가내가 됐어?”

채이의 손가락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막무가내?’

‘내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친여동생도 아닌 여자한테 이 지경이라니...’

‘내가 한마디도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녀는 심장이 거칠게 움켜쥐어진 듯 숨이 막혔다.

태빈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더 이상 기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내가 뭘 더 바라겠어?’

채이는 억지로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태빈의 분노 어린 눈빛 앞에서 형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말이 맞아.”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난 더 방해 안 할게.”

말을 마친 채이는 그대로 등을 돌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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