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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임청연
채이가 클럽을 나와서 차에 오를 때까지 태빈은 끝내 따라 나오지 않았다.

대신 채이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담담했고, 어딘가 채이를 탓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나랑 시은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오늘 네가 한 행동들, 시은이한테 사과하는 게 맞아.]

‘강시은한테 사과하라고?’

채이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조수석 위로 던졌다.

‘부태빈은 모를 거야.’

한 달 전부터 채이의 핸드폰에는 계속 사진이 도착했다.

태빈과 시은이 함께 여행을 다닌 사진, 연인처럼 붙어 찍은 웨딩 콘셉트 화보, 태빈이 시은 때문에 다른 사람과 몸싸움을 벌인 장면까지.

그때마다 태빈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출장, 일이 바쁘다, 중요한 미팅이 있다.

이제 태빈은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었다.

채이는 태빈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채이는 시동을 걸어 둘이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채이는 예전에 태빈이 연애할 때 줬던 선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둘이 함께 찍은 커플 사진, 영상 파일이 담긴 USB, 함께 적어 내려간 연인 다이어리까지.

채이는 그것들을 전부 정원으로 옮긴 뒤 철제 화로 안에 모아 넣었다.

불을 붙이자 천천히 종이가 타 들어갔다.

그때 등 뒤에서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진채이, 뭐 하는 거야!”

그러면서 채이의 팔을 거칠게 뒤로 잡아당겼다.

다가온 태빈이 불길 속에서 반쯤 타버린 사진을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

다른 물건들까지 건지려다 불길이 세지면서 태빈은 손등을 데였다.

태빈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뺐다.

참고 있던 감정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지금 왜 이래? 시은이는 너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다 뒤집어쓰고 있어. 그래도 시은이는 나한테 너 달래라고, 싸우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넌 여기서 우리 사진을 태워?”

태빈은 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철이 없어졌어?”

고개를 들어 태빈을 바라보는 채이의 눈빛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

“그래, 나 철없어.”

채이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부태빈, 우리 그만하자.”

그 말을 남기고 채이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봇물처럼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던 태빈의 마음이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채이는 태빈 때문에 집안하고 사이도 멀어졌다.

그만큼 태빈을 좋아했다.

이 정도 일로 정말 헤어지자고 할 리 없다고 태빈은 생각했다.

‘그냥 화난 거야.’

태빈은 그렇게 단정했다.

계단 앞에서 채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만해. 오늘 기념일 까먹은 건 미안해. 내일 발렌타인데이잖아. 그때 같이 챙기면 되잖아.”

채이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태빈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태빈은 채이 앞에서 식당과 영화관을 예약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태빈이 그대로 채이를 안으려고 다가왔다.

채이는 바로 몸을 피했다.

“너...”

“부태빈.”

채이가 말했다.

“네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나 알아?”

채이는 태빈을 똑바로 바라봤다.

코끝을 자극하는 달콤한 꽃 향기.

시은에게서만 나던 냄새였다.

태빈은 멈칫하며 굳어졌다.

잠시 후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깃 냄새를 맡더니 표정이 굳게 가라앉았다.

태빈은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샤워 좀 하고 올게.”

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 태빈이 집에 머무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채이는 불편해졌다.

채이는 태빈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도, 같은 침대에 눕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옆방 손님방으로 옮기기 위해서 짐을 챙기려고 했다.

그때 옆에 놓인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태빈의 핸드폰이었다.

채이는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걸 확인한 뒤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태빈과 시은의 대화창이 그대로 떠 있었다.

서로 의미를 숨긴 말들, 거리감 없는 문장들.

선을 넘나드는 표현들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 메시지에는 시은이 보낸 사진이 있었다.

살짝 노출이 있는 차림이었다.

[오빠, 이렇게 입으면 예뻐요?]

[지난번처럼 또 제 몸 상태 봐줘요. 기다릴게요.]

[...]

사진 아래에는 시은의 허리 쪽이 의도적으로 찍혀 있었다.

아랫배 가까운 위치에 문신이 보였다.

Taebin.

태빈의 영문 이름이 시은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마치 시은이 태빈의 소유물이라는 표시처럼.

채이는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곧장 쓰레기통 앞으로 가서 몸을 숙이자, 속이 뒤집힌 듯이 구토가 올라왔다.

채이는 한참 동안 멈추지 못하고 토해냈다.

소리를 듣고 나온 태빈은 급히 채이 곁으로 달려왔다.

“왜 그래?”

걱정이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채이의 귓가에서 울렸다.

“어디 아파? 병원 가자, 내가 데려갈게.”

“꺼져!”

태빈이 채이를 안아 들려는 순간, 채이는 있는 힘껏 태빈을 밀쳐냈다.

채이는 태빈을 노려봤다. 눈시울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끝이 제멋대로 떨렸다. 몸 전체가 통제되지 않는 것처럼 흔들렸다.

‘내가 이 남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분명 처음의 태빈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태빈은 채이의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리고 주변 여자들의 애매한 접근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채이가 아팠을 때는 밤새 병실 옆을 지켰고, 기숙사에 정전이 났다는 말을 듣고는 채이가 무서울까 봐 건물 아래에서 밤을 새웠다.

그때의 기억들은 채이에게 너무도 선명했지만, 지금의 태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채이는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던 태빈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진 건지...

“내 핸드폰 봤어?”

태빈의 목소리가 채이의 생각을 끊어냈다.

고개를 든 채이가 태빈과 시선을 마주쳤다.

분노로 가득 찬 태빈의 눈을 보자, 채이의 입가에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네가 진짜 아무 일도 안 했으면, 내가 핸드폰 본 게 그렇게 무서워?”

“채이야!”

태빈은 채이의 어깨를 움켜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핸드폰은 내 개인적인 거야. 그리고 시은이 그 문신을 한 건, 나를 오빠로 존경하고 좋아해서 그런 거야. 네가 더럽게 생각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쓸데없는 상상으로 시은이 재단하지 마.”

‘더럽게 생각한다고?’

채이의 팔은 몸 옆에서 멈추지 않고 떨렸다.

저렇게 뻔뻔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짓을 저지른 인간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채이를 탓하고 있었다.

‘사람은 정말 화가 극에 달하면 웃게 되는구나.’

채이는 웃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만큼 헛웃음이 나왔다.

태빈은 한동안 채이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뭔가 말하려던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 시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 살려주세요! 누, 누가 저를 따라와요.]

“시은아!”

태빈은 시은의 울먹이는 소리에 핸드폰을 꽉 쥐었다.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거기서...”

[싫어! 옷 찢지 마, 제발... 그러지 마!]

짧은 비명 이후 시은의 목소리는 끊어졌다.

동시에 태빈의 핸드폰 화면도 꺼졌다.

잠깐 멍해진 뒤, 태빈은 급하게 전화를 돌려 사람을 붙여 시은을 찾게 했다.

“진채이! 시은이 지금 어디 있어?”

비서와의 통화를 끊은 태빈은 채이를 향해 돌아섰다.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채이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것처럼.

이를 악문 태빈이 말했다.

“너 화풀이할 거면 나한테 해. 시은이는 너한테 미안할 일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할 수 있어? 사람 마음이 어디까지 썩어야 이래?”

말을 할수록 채이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갔다.

채이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이 일... 나랑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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