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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임청연
“채이야, 네가 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정도는 있어야지.”

태빈은 채이를 바라봤다. 눈에는 실망이 짙게 깔려 있었고,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시은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 그전 일들은 전부 묻어줄게.”

“내가 말했지.”

채이는 태빈을 똑바로 마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강시은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채이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강시은이 납치된 일, 나랑은 아무 관계도 없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빈의 손이 채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남자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숨이 막혔다.

공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채이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는 의식이 멀어지는 와중에 귀에 날카로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태빈은 손을 놓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은을 찾았다는 말이었다.

태빈은 채이를 다시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급하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고,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얀 피부 위에 번진 자국은 섬뜩해 보였다.

아래층에서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채이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트러진 채이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부태빈이랑 함께한 게 7년이야.’

7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조차 태빈이 채이를 믿게 만들지 못했다.

채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

세수를 하고, 약을 꺼내 목에 바른 뒤 침대에 몸을 눕혔다.

몸이 한계에 다다른 탓인지, 채이는 곧 깊이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채이는 비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상무님, 부 대표님 쪽에서 이사회 소집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상무님은 따로 연락 받으신 게 없으신가요?]

지금 태빈이 대표로 있는 회사는 채이와 태빈이 함께 만든 회사였다.

주요 프로젝트 상당수는 채이가 직접 나서서 경쟁사와 싸워 따낸 것이었다.

이사회가 열리면, 채이에게도 반드시 공지가 가야 했다.

하지만 채이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채이는 비서에게 답장을 보냈다.

태빈 쪽 동향을 계속 확인해 달라는 말과 함께 자신도 곧 회사로 가겠다고 남겼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채이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서 도망치려 했지만, 누군가가 수건으로 채이의 입과 코를 막았다.

자극적인 냄새가 퍼지면서, 채이의 의식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채이는 커다란 마대자루 안에 갇혀 있었다. 입에는 수건이 물려 있었고, 손과 발은 거칠게 묶여 있었다.

채이는 몇 번 몸을 움직여 봤지만, 밧줄은 풀리지 않았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다른 방법을 찾으려던 찰나, 밖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전에 시은이 괴롭히던 사람 맞아?”

그 말에 채이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태빈의 목소리였다.

채이는 자루 안에서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태빈에게 자신이 안에 있다는 걸 알리려 애썼다.

하지만 곧 거친 발길질이 날아왔다.

“조용히 안 해?”

태빈은 바닥에 놓인 자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혐오가 담겨 있었다.

“내 사람한테 손을 댄 주제에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네. 제대로 한번 겪어봐야 정신 차리지.”

“오빠... 이건 좀 심한 것 같아요.”

시은은 태빈의 팔을 끼고 몸을 바짝 붙였다.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오빠가 금방 찾아 주셨잖아요. 전 정말 괜찮아요.”

태빈은 시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마음이 누그러진 태빈이 손으로 강시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돼. 그래야 다음에 또 이런 짓을 못 해.”

태빈은 강시은을 보며 말했다.

“시은아, 오빠는 절대 누구도 우리 시은을 건드리게 안 놔둬.”

채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동안 몸부림치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 직후, 채이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마대자루 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사이로, 채이는 태빈이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쾅!

야구방망이가 그대로 채이의 몸을 내리쳤다.

채이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입안에서 피 맛이 번지면서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하지만 태빈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또 한 번.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 타격이 이어졌고, 정확히 아흔아홉 번째가 끝났을 때에야 태빈은 손을 멈췄다.

태빈은 방망이를 바닥에 던지고 시은 쪽으로 걸어갔다.

태빈이 등을 돌린 뒤에야, 채이는 공중에서 떨어지듯 바닥으로 내려왔다. 입을 막고 있던 하얀 수건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붉은 색이 번져 있었다.

“오빠... 저 무서워요.”

시은은 거의 달려오듯 태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빈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시선은 뒤쪽으로 향했다.

마대자루에서 끌려 나온 채이를 내려다보는 눈에는 노골적인 도발과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남자 건드리면 이렇게 되는 거야.’

채이는 목 안에서 피가 섞인 숨을 토해냈다.

시선은 끝까지 태빈에게 고정된 채였다.

“부... 태빈...”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태빈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목소리는... 채이와 닮아 있었다.

태빈이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시은이 갑자기 태빈의 품 안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시은아!”

태빈은 곧바로 시은에게 모든 신경을 쏟았다.

아무리 불러도 시은이 반응하지 않자, 태빈은 시은을 그대로 안아 들었다.

태빈은 빠른 걸음으로 주차된 차 쪽으로 향했고, 그대로 차를 몰고 떠났다.

채이는 바닥에 누운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슴 깊숙한 곳이 무너져 내렸다.

채이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렸고, 채이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밴 안으로 던져졌다.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동시에 갈비뼈 쪽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채이는 몇 차례나 시야가 끊기듯 어두워졌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채이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다음 장소로 누가 데려갈지를 상의하고 있었다.

“시은 아가씨가 말했잖아. 남자 몇 명 불러서 제대로 상대해 주라고. 근데 저 상태로 끝까지 버틸 수 있겠어?”

“살든 말든 상관없지. 우린 사진만 제대로 찍으면 돼.”

“근데 솔직히 말해서 몸매는 진짜 괜찮다.”

“...”

차 밖에서는 역겨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채이는 ‘시은 아가씨’라는 말과 그 사람들의 목적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졌다.

‘강시은이 나를 완전히 망가뜨리려는 거야.’

채이는 정신을 붙잡고 스스로를 살릴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반대편 차문 쪽으로 기어갔다.

손이 문 손잡이에 닿는 순간, 머리채가 뒤에서 잡혔다.

거칠게 끌려가며 두피가 뜯겨 나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이 미친 년이 도망칠 생각을 해?”

채이는 이를 악물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닫자, 가슴속에는 절망만 가득했다.

그때 손이 뒤쪽에서 차가운 물체에 닿았다.

얇고 단단한 감촉, 금속 조각 같았다.

‘지금이야.’

채이는 마음을 굳혔다.

마대 안으로 다시 밧줄을 들고 다가오는 순간, 채이는 그 철판 조각을 움켜쥐고 재빠르게 사람의 목 쪽에 들이댔다.

“뭐, 뭐 하는 거야?”

철판이 조금 더 파고들면서, 남자의 목에서 피가 맺혔다.

“나 보내 줘.”

채이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눈에는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남자가 대답하려던 찰나, 차 밖에서 큰 소리가 터졌다.

이어지는 둔탁한 충돌음과 짧은 몸싸움 소리.

곧이어 차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차 밖에 서 있었다.

그 사람들 앞에는 무테 안경을 쓴 차분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채이는 경계와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그 남자 쪽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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