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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Author: 강남
임서아의 답을 들은 차도진은 미련 없이 수하들을 데리고 돌아섰다.

한편, 임서아는 뜰 안에 가득 쌓인 상자들을 바라보다 하인들을 불러 그것들을 모두 곳간으로 옮기라 지시했다.

요 며칠 사이 차도진이 사람을 보내 거처를 단장하게 한 덕에, 처소 곳곳에 드리워진 붉은 비단이 혼례의 기운을 풍기며 넘실대고 있었다.

그러나 임서아는 그 까닭을 묻지도 않은 채 그저 떠날 채비만을 서둘렀다.

곳간에 있던 물건 중 차도진이 보내온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김없이 집안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수발들던 몸종 둘만을 곁에 남긴 채, 나머지 하인들에게는 모두 노비 문서를 돌려주며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다.

사흘째 되던 날, 차도진이 연희를 데리고 처소를 찾아왔다.

그는 적막하리만치 쓸쓸한 뜰 안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 처소의 하인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임서아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며칠 더 머물지도 못할 듯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차도진은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깊이 따져 묻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안채로 향했다.

"내일 연희가 이곳에서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갈 것이다. 저 아이는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안채에 머물게 하거라. 너는 몸이 성하니 건너편 문간방으로 거처를 옮겨도 별 탈 없을 테지."

임서아는 잠시 멈칫했다.

"어멈이 안채에서 요양하는 중이라 거처를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때, 연희가 때맞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하, 굳이 이러실 것 없습니다... 저는 문간방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차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

“너는 정실이다. 정실이 안채가 아닌 문간방에서 가마를 타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 게다가 송씨 어멈은 그저 하인일 뿐인데, 어찌 하인이 안채를 차지하고 주인이 문간방에 머문단 말이냐?"

그는 당장이라도 사람을 불러 송씨를 옮기려 손을 휘둘렀다.

그때, 임서아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세자 저하, 저하께서 수고스럽게 직접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지금 어멈을 문간방으로 옮기겠습니다.”

그녀는 돌아서서 처소에 남아 있던 유일한 몸종과 함께 송씨를 문간방으로 옮겼다.

이윽고, 연희의 거처를 정돈해 주고 나온 차도진이 문간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쁘게 움직이는 임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과 목소리에 옅은 미안함이 묻어났다.

"오늘 일은 너에게 미안하게 됐다. 정식으로 가문에 들어오게 되면 내 반드시 넉넉히 보상해 주마."

임서아가 무심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며 막 입을 떼려던 찰나, 안채 쪽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 차도진의 낯빛이 급변하더니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그가 문가에 서서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

"연희의 혼례복이 실수로 찢어지고 말았다. 내 기억에 예전에 네 할머니께서 네게 남겨주신 혼례복이 한 벌 있었을 텐데. 너는 정실이 입는 혼례복은 필요 없지 않느냐. 곳간에서 먼지만 쌓이게 두느니 차라리 연희에게 빌려주어 급한 불을 끄는 게 낫겠다. 나중에 내가 새로 열 벌을 맞춰 주마."

임서아의 손놀림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몸을 일으키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가져오지요."

그녀는 창고로 걸음을 옮겨 그 혼례복을 꺼내 왔다.

붉은 비단 위, 금실로 새겨진 봉황 문양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살아 움직였다.

임서아는 혼례복의 감촉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전에 꼬박 석 달 동안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지어주신 옷이었다.

할머니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서아야, 훗날 이 혼례복을 입고 세자 저하에게 시집가서 어엿한 세자비가 되어야지.”

그때는 할머니의 농에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녀는 차도진에게 시집가지도 않을 것이며, 이 혼례복을 입을 일도 없을 터였다.

한편, 연희는 임서아가 가져온 혼례복을 바라보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아가씨의 혼례복을 탐하겠습니까. 제 옷은 그저 살짝 찢어진 것뿐이니 대충 꿰매 입어도 괜찮습니다."

차도진은 혼례복을 받아 들어 연희의 품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주면 그냥 받거라. 저 여자는 그저 평처일 뿐인데, 어찌 감히 이 붉은 혼례복을 입겠느냐?"

연희가 난처한 표정으로 임서아를 슬쩍 바라보더니, 나지막하게 조아렸다.

"그렇다면...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임서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도진은 저도 모르게 발을 내딛으려 했다. 하지만 품에 혼례복을 안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연희를 보자, 끝내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요란한 징 소리와 북소리가 경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차도진이 정실과 평처를 한 날 한시에 맞이한다는 소식은 이미 온 경성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구경거리를 찾아 모여든 백성들이 가마 행렬을 따라 골목을 가득 메웠다.

팔태가마는 붉은 비단과 꽃장식으로 화려하게 단장되었고, 붉은 비단길이 저잣거리 입구부터 골목 끝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처소의 좁은 쪽문 밖에 푸른 마포로 둘러싸인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서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수한 옷을 차려입은 임서아는 송씨를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마차에 태웠다.

떠나기 직전, 그녀는 마차 가림막을 살짝 올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시끌벅적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이내 시선을 거둔 그녀가 마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출발하세요."

이윽고 덜컹거리며 돌길을 굴러가는 수레바퀴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마차는 성문을 향해 서서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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