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병소리와 함께 넘어진 정희주는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하현우에게 노발대발했다."어떻게 여자를 때려? 그러고도 남자야? 참 찌질하기도 하지, 어휴, 널 선택한 내가 한심해 미치겠어, 그때 그냥 이태호를 골랐으면 오늘날 호화로운 인생도 살고 얼마나 평탄했겠어? 돈으로 내 생활의 질을 높여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하다하다 여자까지 때려?"하현우는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내가 널 죽여 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는 중이거든, 그리고 전에 샀던 별장하고 정원에 세워 있는 저 외제차도 다 우리 집안 명의로 산 거니까 하나도 못 가져가, 그러니까 넌 몸만 챙겨서 빨리 꺼져.""너......"나갈 때 몇 천만원의 값어치가 되는 그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했던 정희주는하현우의 말을 듣자 진저리가 날 정도로 화가 났다.심사숙고 끝에 그녀는 가방에서 차키를 꺼내 땅에 던져 버렸다."어이가 없어서 원, 웬만한 남자들을 홀릴 외모를 가진 내가 뭐가 아쉽다고 그깟 차를 대수로워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아니여도 돈 많은 남자는 널리고도 널렸어."정희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바로 자리를 떠났다.그래도 혹시 하현우가 또 한 번 발로 걷어 찰게 신경 쓰였던 그녀는 발길을 옮기면서도 뒤를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가주님, 큰 일 났어요."정희주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인 중년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하창민은 뜻밖에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쓴웃음을 지었다."나도 알아, 우리가 망했다는 거, 팔 거 있으면 다 팔아 버려, 이씨네가 너무 괘씸하기도 하지, 어쩜 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나몰라라 튈 수가 있어, 분명 모든 유동자금을 미리 빼돌렸을 거야."그러나 집사는 다른 이야기를 일렀다."제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에요, 이씨네가 도망친 것 외에 구씨네 사람이 용의당 손에 참살당했대요, 하인과 경호원들만 살려 두고 구씨네 자산을 몽땅 점령해 버렸대요.""쓰읍!"하창민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헉, 사실이야? 용의당이 왜 갑자기 구씨네를 노린 거지
"응, 그래."이태호는 고개를 끄덕이곤 신씨네 집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었다.곧장 신씨네로 도착했다.그 시간 거실에서는 신승민과 신민석은 물론이고신수연, 신영식 그리고 소지민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 모두 모여 있었다."행동 좀 빨리 빨리 하지? 우리 모두가 너희들만 기다리고 있었잖아."이태호를 보자 신민석은 귀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날 밤 이태호가 파 놓은 구렁텅이에 뛰어 들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다음 날 가영에게 전화를 해서 따져 물었는데 그녀가 하는 말이 술에 너무 취해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고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 돼서 전화를 못 받은거라고 했다.이게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영신은 그냥 넘어가야만 했다.허나 이태호에게서 구천만원을 받은 그녀는 의리는 있어가지고 한 팀인 다른 여자들에게 구백만원을 주머니에 넣어 주며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양심에 찔리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다영과 소영은 구백만원이라는 돈이 떡하니 생겼으니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다만 요며칠 신영식은 돈도 없는데다 그날 밤 이태호의 함정에 빠졌는데 본전도 못 찾은 건 그렇다 쳐도 이태호와 신수민에 대한 어르신의 믿음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게 더 불만이었다.더욱이 제갈용녀와 연락이라도 닿을려고 온갖 수를 다 써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였다. 여자의 등을 뽑아 먹으려는 희망도 짓밝혀 버렸으니 더더욱 불쾌했던 것이다.이태호는 그날 밤일로 뼈에 사무치게 약이 올라 있는 신영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르신에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때문에 다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너무 죄송해요, 조금 먼 곳에서 쇼핑하고 있던터라 빨리 오질 못했어요."신씨네 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네, 저쪽에 자리가 있으니까 얼른 가서 앉게, 다들 온 지 몇분도 안 됐는데 뭐, 천천히 해도 돼."이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수민과 신은재를 데리고 자리에 착석했다.앞쪽에 배치돼 있는 자리를 보니 본인들이 신씨 집안에서의 지위가 어느정도
어르신이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통일된 동작으로 이토록 높은 고견이 있는 신수민에게 눈길이 닿았다.신수민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아, 할머니 그건 백씨네 아가씨와 이태호가 사이가 좋으니까 우리한테 혹여 불통이 튈까 미리 통보를 해 준거에요."어르신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 거였구나, 백씨네와 우호한 관계를 맺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이태호도 웃으며 말했다."그럼요, 그냥 일반적인 우호 관계를 넘어서서 끈끈하기까지 한 걸요, 제 전화 한 통이면 백성주님이 한 걸음에 달려 올 수도 있어요.""큰 소리 치긴!"신민석은 이태호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칭찬 좀 받았다고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니야? 백씨 아가씨가 눈이 멀어 너한테 마음이 있다고 한 들 성주님이 뭐 허락할 것 같아? 신분과 지위의 차이가 퍽이나 큰데다 감옥도 갔다 온 너까짓게 백씨 아가씨와 어울릴 것 같아? 니 처지가 어떤 지나 보면서 큰 소리 쳐."이태호는 썰렁하게 비웃고 있었다."아이고, 적어도 아가씨가 내가 좋다고 주동적으로 따라다니기라도 하지, 누구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제갈네 아가씨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데도 뒤꽁무늬로 쫓아 다니니 그게 더 쪽팔린 거 아닌가?""너,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체면이 깎인 신민석은 변명에 나섰다.이태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그런 적 없어? 오늘 아침에 아가씨가 신민석이라는 사람이 잠에서 깨났냐는 둥, 잠에 들었냐는 둥, 밥을 사주겠다는 둥, 가방을 사주겠다는 둥 하면서 자꾸 질척거려가지고 짜증나 죽겠다고 막 푸념을 늘어 놓았거든, 이 장본인이 너 아니야?""너..."신민석은 자신은 본체만체하면서 문자도 읽씹하던 아가씨가 이태호에게는 뭐든 다 털어 놓으니 너무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그만들 해, 이씨네 집안일은 이쯤하면 끝났고 다음으로는 구씨네에서 벌어진 일이네."어르신이 그들의 말다툼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무슨 이유 때문인지 용의당 사람들이 어제 하인과 투항한 경호원들을
"넌 아직 꿈나라에 있는 거야? 그들이 미쳤다고 들어온 돈을 뱉어 내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짓거려?"신민석은 어이없다는 듯이 조롱했다.용의당 사람들이 바보도 아닌데 구씨네 산업을 왜 그냥 신씨네에게 넘기겠어?그의 아버지인 신승민조차도 옆에서 비웃고 있었다."누구는 망상을 참 좋아해서 문제야,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가지고 마치 진짜로 이루어 질 것마냥 큰 소리를 떵떵 치고 있으니, 용의당이 정말로 산업을 넘기는 날엔 내가 내 뺨을 스스로 때리든 탈의한 채로 별장 한 바퀴를 뛰어다니든 뭐든 다 할 수 있겠다. 참나."이태호는 실실 웃었다."신승민, 명색의 가주인데 이런 말을 함부로 막 퍼 부으면 어떡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 해 놓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면 너무 쪽팔리잖아."신승민은 이태호의 오만한 태도에 반격했다."칫, 누가 장난이래? 신씨네 집안이 정말로 그 많은 산업을 얻게 되면 몇 천 억 자산에 도달해 바로 이류 명문 집안으로 등극하는 일인데 한 바퀴 뛰어서 축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잖아."모두들 그의 말에 폭소했다.이태호가 계속 말을 붙였다."우리 동네가 작은 동네도 아니고 그리 뚱뚱한 몸으로 가당키나 하겠어? 살집이 막 허공에서 날아 다니고 있는 장면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신승민은 열이 올랐다."용의당이 진짜로 그 많은 산업을 넘기기라도 할 것 같아? 좋아, 범용보고 이리로 오라고 해, 와서 당장 신씨 집안에 산업을 주라고 하던지, 절반만 넘겨도 너가 이기는 걸로 쳐 줄거니까, 내가 무조건 별장 한 바퀴를 탈의하고 뛰는 걸로 약속하지."머뭇거리던 신승민이 계속 말했다."근데 만약에 너가 지면 똑같이 알몸 상태로 뛸 거야?"이태호는 눈을 비스듬히 뜨며 미소를 보였다."그럼요, 그렇게까지 엄포를 놓았는데 제안을 승낙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체면이 깍이는 거잖아,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증인이니까 누가 지면 누가 알몸으로 뛰는 걸로 하지.""좋아, 그렇게 해."용의당의 범용과 태수가 절대 산업
신승민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자신의 아빠가 드디어 가주의 신분으로 횡포를 놓는 멋드러진 모습에 신민석도 우쭐해졌다.그는 가만히 있지 않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었다."이태호, 벌칙 수위 좀 높여 보는 게 어때? 우리가 지면 나하고 아버지 둘이서 알몸으로 뛰는 거고 너가 지면 와이프 데리고 알몸으로 뛰고."그의 선을 넘는 말에 이태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러곤 이내 답했다."좋아, 부자지간에 나란히 창피를 당하고 싶다고 하니 그 소원 들어주도록 하지.""이태호, 무슨 소리야? 너희들끼리 내기 할 것이지, 나는 왜 끌어들여? 난 싫어."너무 화가 났던 신수민은 식식대며 이태호를 쏘아 보았다.신수민에게 어느 정도의 해명을 해 줘야 안심할 거라 여긴 이태호는그녀를 몰래 구석으로 데려와 수근거렸다."여보야, 우리가 이길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용의당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그 산업은 골치 덩어리들이야, 전에 범용이 우리에게 넘기고 싶다고 누누이 얘기 했었고 말이야, 무조건 성사될 거니까 나만 믿어."이태호가 신신당부하자 신수민도 긴가민가해졌다."사실이야?""설마 내가 자기한테 거짓말할 까봐? 백프로의 보장이 없으면 내 와이프의 알몸까지 걸고 내기하겠어."이태호는 즉시 장담하고 있었다."칫, 알고는 있네."이태호를 믿기로 한 신수민은 눈으로 흘기고 나니 화가 수그러졌다.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남편이랑 상의 끝났어? 동의할 자신 있어? 하하하"두 사람이 돌아오자 신민석은 으쓱거리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신수민은 그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기분이 언짢아졌다."동의 못 할게 뭐가 있어? 부자 둘 다 뚱뚱해가지고선 알몸으로 눈에 띄는 게 생각만해도 명장면일거야, 내가 꼭 이 하이라이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 줄게.""동의했다 이거지? 어디 한 번 지켜보지."신민석은 자신의 자극법이 먹혀 신수민이 동의했다고 생각하며 큰 소리로 고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언니, 왜 그래? 정말 같이 내기하려고?"순간
그러자 신수민은 이태호를 힐끔 쳐다보곤 확신에 찬 어조로 신수연에게 말했다."난 태호가 이길거라 믿어, 걱정 안 해도 돼.""정말 제정신이야? 둘이 미친 것 같아."노름판에 기꺼이 합류하는 언니가 이해가 안 되는 신수연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이태호는 신수민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에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지금 당장 범용한테 전화할 거니까 하루도 안 돼서 이번 게임은 끝날 거야."이태호는 담담하게 웃으며 범용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범용은 이번 일로 열 받은 성주부가 혹여 일류 명문 집안들과 연합하여 용의당에 우르르 들이 닥칠 까 안절부절 못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어쨌든 처음으로 명문 집안과 직접적으로 싸움이 일어났으니 다른 일류 명문들도 당연히 불안할 것이니 걱정 안 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머리 아파 하던 그때 이태호의 전화를 받자마자 범용은 용의당의 십여명 부하들을 데리고 신씨 집으로 향했다.로비에 도착하니 어르신이 범용과 태수에게 자리를 내여 주었다."태호 형,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신거에요?"도착한 범용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태호에게 말을 건넸다.신민석과 신승민은 이태호가 무슨 낯으로 얘기를 꺼낼지만을 기다리며 깔보고 있었다.예상외로 이태호는 미소를 짓고는 즉시 원하는 바를 털어 놓았다."두 분이 구씨네 산업을 전부 도맡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자산들로는 성주부를 훨씬 제쳤을 건데 성주부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닐까 두분들도 많이 골치 아프지 않으신가요?""맞아요, 그것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어요."태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상대방의 반응을 떠보는 듯 질문을 건넸다."태호씨한테 뭐 좋은 수라도 있으신 거에요? 우리가 구씨네 산업을 다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지금 용의당에 있는 고수들로는 성주부를 상대할 만한 실력이 못 되기도 하니까 추후에 성주부쪽에서 손이라도 쓸 까 두려운 거고요."이태호는 웃으며 답했다."네, 제가 생각해 놓은 괜찮은 제안을 하나 내놓을까 해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던 신민석과 신승민은 넋이 나가 버렸다.설마 범용과 태수가 어제 하룻밤사이에 머리가 홱 돌아 버린 건가?생각에 잠겨 있던 범용은 해명에 나섰다."태호씨가 하는 말씀에 일리가 있어서 저희도 동의하는 거예요, 이 물건들을 우리가 갖고 있으면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길 수 있으니까 신씨네로 넘기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저와 이태호씨가 형동생으로 친하게 지내 왔고 우리 어머니 병치료도 성심껏 해 주셔서 믿음이 가고요, 저란 사람이 워낙 물질적인 거에 별로 관심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 결정을 지어 버리죠, 다들 괜찮죠?"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어르신을 보자 범용은 자신의 핑계가 여전히 먹히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곧바로 말을 덧붙였다."그냥 주겠다는 건 아니고 조건이 하나 있어요."그가 조건을 제시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어르신은즉시 되물었다."무슨 조건인데요, 얼마든지 얘기하세요."범용이 미소를 지었다."다름이 아니고 앞으로 진행할 이 사업들이 매년 얻은 이윤이 적혀 있는 재무표를 우리한테 꼬박꼬박 받쳐야 해요, 그 중 백분의 삼십프로를 우리에게 나눠줘야 하고요, 물론 이 협상이 밖으로 새나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경영은 당신들이 하고 우린 삽십프로의 돈을 챙기는 거니 괜찮은 협상 아닌가요?""그런 제안이라면 저희도 흔쾌히 받아 들이겠습니다."어르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제안을 동의했다. 어마어마한 값어치의 산업들을 넘겨 주고 삽십프로의 이윤만 받아 가겠다는데 그럼 칠십프로는 그저 얻어 먹는 것과도 다름없는 횡재였다.설령 칠십프로를 받아가겠다고 해도 이득을 보는 협상인 것이다."하하하, 만족스러운 거래였네요."침착하고 지혜로운 본인이 마음에 들었던 범용은 싱글벙글 웃으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이 모든 게 어차피 이태호의 자산이고 신씨네로 넘긴다 해도 이태호에게 주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으니 범용은 더 잘 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만약 용의당이 이걸 다 가지고 있으면 성주부가 손을 쓰지
신민석도 격분했다."대박, 우리도 이젠 일류 명문 집안과 거의 맞먹는 건가? 최소한 이류 명문 사이에선 최고로 강한 실력을 지니게 되는 거잖아."엄청난 이득을 챙겼다고 여기니 신승민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켁켁, 두 사람 방금 내기했던 거 잊었어요? 알몸으로 뛰셔야죠."이태호는 기침을 두어번 하며 귀띔을 해 주었다."그건, 그건 농담이였잖아, 진짜로 믿은 거야?"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일이 성사되었으니 입장이 난처해진 신승민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알몸으로 뛰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신씨 가주라는 사람이 약속도 안 지킨다고 불신을 얻으면 쓰나?"이태호는 정색했다."여기 있는 증인들 앞에서 헛소리라도 했다 이건가?"어르신이 곧 입을 열었다."태호야, 다 벗으면 신씨 집안에 먹칠하는 거니까 적어도 반바지정도는 입게 하는 게 어때?"이태호가 답했다."그러면 가주님의 위신도 없어지는 일이잖아요, 그냥 천쪼가리 하나로 중요부위만 가리게 하는 걸로 하죠.""그래, 그렇게 해."어르신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시간이 조금 흐른 뒤 신민석과 신승민은 천 쪼가리를 걸친 채 대문 입구에 나와 서 있었다."아빠, 너무 쪽팔리단 말이에요."그냥 아버지와 이태호의 도박에 굳이 신수민의 놀림거리를 만들려고 자기마저 내기에 말려 들었으니괜히 시답지않은 욕심에 너무 큰 손해를 본 신민석은 아버지를 보며 울먹였다.반면 신승민은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축하의 의미라고 생각해, 조 단위에 달하는 산업을 물려 받았는데 점차 강해질 신씨 집안을 응원하는 셈치고 눈 딱 감고 질주해."말을 마친 신승민은 급속도로 달려갔다."뛰는 속도가 빠르면 보는 눈도 적을거야.""맙소사, 신씨네 가주님하고 도련님 아니야? 지금 뭐 하는 거지? 퍼포먼슨가?"지나가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황당한 현장을 보고 입을 쩍 벌린 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아빠, 사람들 보잖아, 창피해 죽겠어."신민석은 몸둘바를 몰랐다."뭐가 창피해, 너만 당당하면
이태호에 대해 많이 알수록 연장생은 이태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천부적 자질은 말할 것도 없고 선연까지 얻었으니 중도에 죽지 않는 한 앞으로 꼭 수백 년 전의 산수(散修)처럼 신선으로 될 것이다.이태호는 그 산수처럼 불과 백 년 만에 비승해서 신선으로 되어 창란 세계에 아름다운 전설을 남길 것이다.그리고 연장생을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이태호가 연단사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비록 아직 7급 연단사에 불과하지만 이태호가 단도에서 뛰어난 천부적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최고의 연단사는 한 종문을 만년 이상 번영시킬 수 있다.예전에 태일종의 제8대 종주는 그냥 태일성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진전 제자였으나, 8급 연단사의 실력으로 태일종으로 하여금 천남에서 자리를 잡게 하였다.8급 연단사가 이런 힘이 있는데 9급 연단사로 성장해서 성황급 수사가 사용할 수 있는 단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어느 대세력에 있든 모두 귀빈으로 모실 것이다.게다가 이태호는 검도에도 조예가 깊었다.연장생은 제7봉의 봉주 맹동석을 통해 이태호가 각성한 검도의 의지는 경금 검기를 훨씬 능가해서 검도 대종사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남다른 천부적 재능을 하나라도 가질 수 있는 자는 백만 명 중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였다.태일성지에서 이런 자는 진전 제자로 될 수 있고 성왕 경지의 장로를 스승으로 택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 단도, 검도에서 특별한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다면 성지의 8대 장로도 서슴없이 서로 친전제자로 삼겠다고 다툴 것이다.이태호처럼 여러 가지 천부적 자질을 가진 천교는 성지 종문에 들어가면 폐관 수련 중인 태상 장로도 깜짝 놀랄 것이다.“대장로님, 저는 며칠 더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이태호는 가슴을 펴고 차분하게 말했다.“저는 5급 성자 경지로 돌파한 후에 중주로 갈 생각입니다.”진선 정혈을 얻은 후 이태호는 대도를 조금 깨달았고 5급 성자 경지의 장벽을 느낄 수 있었으며 수시로 돌파할 것 같았다.이
다음 날 아침. 금싸라기 같은 황금빛 햇살이 구름을 뚫고 인간 세상에 쏟아졌다.오색찬란한 아침노을은 신선한 공기를 지니고 새로운 날이 다가왔음을 예고하였다.요광섬에서 이태호는 상쾌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고 방에서 나왔다.어제 요광섬으로 돌아온 후 그는 한 달 넘게 안 본 아내들과 오랜만에 아름답고 황홀한 밤을 보냈다.그가 정원의 우물가로 가서 물을 받고 세수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허리에 찬 전음 옥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신식으로 살펴보니 종주 선우정혁이 종문 대전에 오라는 소식을 보내온 것이었다.이를 본 이태호는 신식으로 아직 방 안에서 깊이 잠들고 있는 신수민 등 네 여인들을 훑어본 후 고개를 흔들면서 곧장 하늘로 솟아오르고 대전을 향해 날아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대전의 문 앞에 도착했다.대전 안으로 들어가니 선우정혁과 연장생은 상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다정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선우정혁은 아마 대장로 연장생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으로 추측했다.중주 태일성지의 대장로인 연장생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천남 지역까지 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예전에 태일종에서 중주로 간 천교들도 있었으나 이태호처럼 성지의 중시를 받은 자가 없었다.이태호가 예측하건대 선우정혁은 자신이 연장생을 따라 중주의 태일성지로 가길 원한 것 같았다.의자에 앉아서 연장생과 담소를 나누던 선우정혁도 대전으로 들어오는 이태호를 보고 먼저 말을 건넸다.“태호야, 왔구나. 어서 연 장로님께 인사드려.”이태호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서 연장생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대장로님을 뵙습니다.”연장생은 손을 가볍게 흔들자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절을 하려는 이태호를 일으켰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됐어. 남도 없는데 큰절할 필요가 없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야. 성지에서 자네가 타고난 천부적 자질을 가졌고 또 선연을 얻은 것을 알고 널 안전하게 성지로 데
맹동석이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도 전에 기타 봉주들도 잇달아 대전 입구에 도착했다윤하영, 진남구 등 8명의 봉주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갈 때 맹동석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그들은 가장 먼저 상석에 앉은 연장생을 주목했다.몇몇 봉주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자 연장생의 옆에 앉은 선우정혁은 그들이 연장생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는 웃으면서 소개하였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자네들을 부른 거네.”맹동석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성지에서 오셨다고요?”태일종의 성지라면 중주의 태일성지였다.봉주인 그들이 꿈에서도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다.선우정혁은 맹동석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은 우리 태일종에서 며칠 머물다가 곧 이태호를 호송해서 중주 성지로 가실 거야. 수행과 관련된 궁금증이 있다면 대장로께 여쭤봐도 되네.”맹동석 등이 연장생의 신분을 듣고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선우정혁이 이어서 한 말을 들었다.이번에 맹동석뿐만 아니라 기타 여덟 명의 봉주도 모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이태호를 중주성지로 호송하기 위해 왔다고?이태호는 천부적 재능이 출중해서 종문 겨루기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중주성지의 대장로까지 직접 나서서 호도자로 되어 이태호를 호송할 필요가 있을까?예전에 태일종의 겨루기 대회에서 1위를 한 자는 모두 자신이 영패를 가지고 중주로 갔다.다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맹동석은 바로 성공 전장을 떠올렸다.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태호가...”상석에 앉아 있는 연장생은 반응이 빠른 맹동석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9급 성자급 수사가 이렇게 빨리 사실의 본질을 알아봤다는 것에 다소 놀라워했다.하지만 그도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태호가 선연을 얻은 사실은 이미 온 창란 세계의 대세력에 알려졌고 머지않아 곧 천남으로 전해질 것이다.그리고 성공 전장에 같이 갔다 온 고준서 등 목격자도 있지 않은가.더구나 태일종은
남두식과 이태호가 담소를 나누던 중, 대장로가 다가와서 이태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잠시 후, 대장로는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운 표정으로 물었다.“태호야, 이번에 성공 전장에서 내공이 또 오른 것 같구나.”그의 기억에 이태호가 떠날 때 지금처럼 이렇게 큰 압박감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그러나 한 달 만에 이태호는 환골탈태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이태호는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운이 좋아서 거기서 돌파했어요.”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운이 좋아서?’이태호가 떠날 때 방금 3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 그러나 방금 그의 말에 따르면 성공 전장에서 4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는 뜻이었다.성자 경지에 이르면 내공을 높이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그러나 대장로 등은 이미 이태호의 괴물과 같은 천부적 자질에 익숙해졌다.이태호의 경지가 또 높아졌다는 사실을 들은 후 대장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자네와 은재는 모두 괴물이야. 네가 천청종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돌파했는데 지금 은재도 너와 똑같아.”대장로의 부러워하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에 이태호는 어이가 없어서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남두식은 대장로의 말을 끊고 웃으면서 말했다.“됐소. 오늘 태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축하 잔치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소?”사실 이태호가 없는 동안 남두식은 걱정돼서 오랫동안 안절부절못했다.그는 성공 전장이 너무 위험해서 예로부터 성지의 성자들도 적지 않게 죽었다고 들었다.딸인 남유하와 신수민 등 여인들이 마음에 병이 생길 정도로 매일 이태호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도 아팠다.이제 이태호가 무사히 돌아왔고 딸도 매일 슬퍼하지 않아도 되니 그는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은 이태호를 위해 축하 잔치를 준비하자는 말을 듣고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고 서둘러 식재료를 준비하러 갔다....이와 동시에. 제7봉의 대전 내에서 제7봉의 봉주 맹동석은 한창 종문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한 달 전에 종주 선
두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이태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는 하늘에 나타난 남유하와 백정연을 바라보았다.오늘 남유하는 흰 비단옷을 입었고 긴 머리카락을 드리웠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부는 옥처럼 희고 마치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처럼 맑고 투명하며 콧대는 높고 입술은 유달리 부드러워 보였다. 참으로 그림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옆에 있는 백정연은 주홍색 긴 치마를 입었고 온몸에서 활기와 생동감으로 넘쳤다.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매끄럽고 반짝였으며 검은 폭포처럼 허리까지 내려왔고 바람에 휘날리면서 부용꽃처럼 고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두 여인은 빠르게 이태호의 곁에 달려왔고 기쁨에 겨운 눈물을 가득 흘렸다.이태호는 손으로 두 여인의 붉은 눈시울을 닦아주면서 다정하게 웃어주었다.“왜 울어? 내가 돌아왔잖아.”그는 여인들을 데리고 정원에 온 후, 그녀들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변화가 가장 큰 것은 신수민과 남유하였다.그가 떠날 때 신수민은 불과 5급 존황 경지였는데 지금은 7급 존황 경지로 돌파했고 백지연과 백정연 자매도 4급 존황 경지에서 6급 경지로 돌파했다.이런 실력은 중주 성지에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태일종에서 상위권에 속하였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내가 없는 동안에 모두 열심히 수련했군.”눈물을 훔친 남유하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참, 은재는?”이태호는 이제야 딸 신은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은재는 며칠 전에 폐관 수련하기 시작했어.”딸 얘기를 하자 신수민의 얼굴에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은재의 천부적 자질은 당신보다 좋아요. 이번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려고요.”신은재가 한 달 만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태호도 다소 놀랐다.그는 너무 빨리 돌파하면 기반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말해주려던 찰나,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 태호야, 돌아왔구나.”“돌
요광섬의 고풍스러운 정원에서 긴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황금빛 구름이 수놓은 흰색 장화를 신은 신수민은 지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옆에는 하얀 수선화 무늬의 치마를 입은 백지연이 앉아 있는데 주전자를 들고 영기가 넘친 따뜻한 차 두 잔을 따랐다.그녀는 한 잔을 신수민의 앞에 두고 나서 손바닥으로 턱을 괴면서 말을 건넸다.“언니, 태호 오빠가 떠난 지 한 달 넘었는데 언니의 넋까지 나간 것 같아요.”백지연의 농담에 신수민은 눈을 흘기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태호가 걱정돼서 그래. 한 달이나 지났는데 태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그녀는 성공 전장이 지극히 위험하고 창란 세계의 모든 천교가 모였으며 7급 성자 경지의 성자와 신자들도 수두룩하다는 소문을 들었다.이태호는 떠나기 전에 3급 성자 경지에 불과했기에 신수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백지연도 신수민의 말을 듣고 눈에 그리움과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마음속에 올라오는 초조함을 억누른 후 가슴을 두드리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태호 오빠는 강하니까 분명히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광섬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돌아왔다!”두 여인은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몸이 움찔했다.그녀들은 곧바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활짝 웃으면서 요광섬의 입구를 쳐보았다.신수민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중얼거렸다.“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한편으로 백지연은 입을 가리고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태호 오빠, 진짜 맞죠?”이태호는 요광섬의 진법을 해제한 후 바로 신수민과 백지연의 앞에 도착했다. 두 여인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이제 한 달 지났는데 남편도 몰라보는 건가?”이태호의 목소리가 다시 두 여인의 귓가에 울리자 그녀들은 드디어 이태호가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옆에 있던 연장생은 이를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공포스러운 성황의 힘으로 하늘을 뒤덮은 핏빛 먹구름을 순식간에 깨끗하게 몰아냈다.그러고 나서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태호를 유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내공을 완성한 4급 성자 경지라... 내공이 좀 부족하군. 그런데 전성민이 네가 성공 전장에서 4급 경지의 내공으로 용족의 천교 오현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연장생의 질문에 이태호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로님.”“하하, 좋아!”연장생의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고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나서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는 선우정혁에게 말했다.“먼저 자네 태일종으로 돌아가자.”선우정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연장생이 등장하고 육무겸과 풍석천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잠깐의 시간만 흘렀다.선우정혁의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두 성왕이 그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성황급 대능력자인 연장생의 요구에 그는 당연히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그가 태일성지에서 수련할 때 연장생은 이미 창란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황급 수사였다.지금 그가 태일종의 종주로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니 연장생의 실력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바로 가시죠.”선우정혁은 말하고 나서 바로 허공을 찢고 연장생을 데리고 태일종을 향해 날아갔다.이들이 떠난 후 수십 리 밖의 공간에서 나온 맹호식과 송현아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장생 등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청허파의 문주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의 숨결이 빠르게 사라진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천남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오.”옆에 있는 묘음문 문주 송현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면서 말했다.“육무겸과 풍석천를 단번에 죽였다니. 이게 바로 성황급 강자의 무서운 실력인가요?”연장생의 닭을 잡듯이 두 성왕을 죽인 모습을 보자 송현아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아
두 성왕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공간을 찢고 도망쳤다.허공에 서 있는 연장생은 그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육무겸을 노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네놈이 자결하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두마.”성지의 제자에 손을 대는 것은 죽을 죄였다. 특히 이태호는 선연을 얻은 후 태일성지 장로들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신분도 높아졌으며 차세대 성자로 키울 작정이었다.그러나 당당한 성지의 제자가 하마터면 육무겸의 손에 죽을 뻔했으니 연장생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육무겸은 그의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고 하였다.이에 연장생은 조롱 섞인 야유를 날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성왕급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장난감에 불과했다.연장생이 미간을 찌푸리자, 몸에서 내뿜은 성스러운 빛은 순식간에 주변 만 리에 이른 구역을 뒤덮었다.이 구역 내의 공간은 바로 봉쇄되었고 공간의 장벽도 더욱 견고해졌다.원래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던 육무겸은 공간이 봉쇄된 것을 보자 얼굴에 당황하기 그지없는 기색을 드러냈다.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육무겸은 비로소 얼음 구멍에 빠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연 장로님, 소인이 이성을 잃고 미련에 사로잡혀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연장생은 피식 웃으면서 조롱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도도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는 허공 통로의 입구에 있는 이태호의 앞에 다가가서 말했다.“젊은이, 이 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그는 한손으로 공간이 봉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육무겸을 붙잡고 손끝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으면서 육무겸의 육신을 꿰뚫고 그의 내공을 모두 폐해버렸다.그러고 나서 보이지 않은 공간의 힘으로 초주검이 된 육무겸을 이태호의 앞에 내던졌다.내공이 모두 폐하고 중상을 입은 육무겸은 사색이 되어 죽어가는 개처럼 바닥에 엎드렸다.그는 발악하면
선우정혁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연 장로님, 드디어 오셨군요.”선우정혁은 예전에 태일성지의 제자로서 당연히 태일성지의 장로인 연장생을 알고 있었다.그는 이태호가 종문으로 돌아간 후 중주 성지에서 장로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방금 이태호를 맞이할 때 의식적으로 육무겸과 풍석천을 경계하지 않아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비록 그는 천남의 최강자로서 7급 성왕 경지의 내공을 가졌으나 단시간 내에 두 성왕급 수사의 협공을 격파할 수 없었다.특히 두 사람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고 육무겸이 자신을 견제하고 동안 풍석천이 이태호를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사용하였다.선우정혁이 무척 당황했고 이태호가 죽임을 당할 찰나에 연장생이 도착했다.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을 보자 그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마음이 놓였다.연장생은 선우정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이태호가 성왕급 수사와의 대결에서 몇 초식을 버티는 모습을 보자,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곧이어, 그는 시선을 이태호의 앞에 있는 풍석천에게 돌렸고 손을 들고 허공을 향해 오므리자 순식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병아리를 잡듯이 풍석천을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성왕 주제에 겁도 없이 감히 우리 성지의 제자를 해치다니. 네놈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겠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손가락을 뻗어 풍석천을 향해 까닥였다.다음 순간, 천남 지역의 수만 리나 되는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짙은 먹장구름이 밀려왔으며 천둥 번개가 질주했다.연장생의 손가락에서 눈부신 빛줄기를 뿜어냈고 벌레를 밟아 죽인 것처럼 풍석천의 육신을 바로 피안개로 만들어버렸다.강력한 성왕의 신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자기처럼 부서졌고 자고자대했던 풍석천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허공 통로의 입구에 선 이태호는 풍석천이 갑자기 죽자 그를 엄습해 온 성왕의 위압도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느꼈다.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후 허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