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민우는 서진의 어깨를 더 꼭 쥐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이제 대한그룹 본부장 강민우가 아니라, 한서진 남편 강민우로 살 거니까. 가문이고 지분이고 나발이고, 네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안 해. 내 영역을 침범당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영역의 전부가 되게 할 거야.”
“와…… 강 본부장님, 무인도 오더니 대사가 아주 치명적으로 변하셨네? 멘트 학원 다녔어?”
서진이 얼굴을 붉히며 민우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민우는 아야 소리를 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이게 다 야생에서 길러진 생존 본능이야. 마누라한테 점수 따야 살아남으니까.”
두 사람은 노을빛을 받으며 서로를 바
민우는 서진의 어깨를 더 꼭 쥐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 마. 이제 대한그룹 본부장 강민우가 아니라, 한서진 남편 강민우로 살 거니까. 가문이고 지분이고 나발이고, 네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안 해. 내 영역을 침범당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영역의 전부가 되게 할 거야.”“와…… 강 본부장님, 무인도 오더니 대사가 아주 치명적으로 변하셨네? 멘트 학원 다녔어?”서진이 얼굴을 붉히며 민우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민우는 아야 소리를 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이게 다 야생에서 길러진 생존 본능이야. 마누라한테 점수 따야 살아남으니까.”두 사람은 노을빛을 받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장난기 어린 웃음 뒤로, 서로를 향한 진한 묵직한 애정이 눈동자를 통해 교차했다. 민우의 얼굴이 천천히 서진에게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방해할 지네도, 들이닥칠 폭우도 없었다.오렌지빛으로 물든 무인도의 해변, 야자수 아래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마침내 부드럽게 맞닿았다.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진짜 첫 키스였다. 바닷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고, 파도 소리가 축하 폭죽처럼 해안가를 울렸다.입술이 떨어지자 서진은 민우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민우는 그런 서진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두 시간이 마치 2분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마침내 해변 근처까지 접근한 구조선에서 커다란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뿌우우우웅
백사장 위에 완성된 거대한 ‘SOS’ 문자로, 수평선 너머의 선박은 점차 이쪽을 향해 방향을 틀고 있었다. 섬 근처 해역을 수색하던 해경 구조선이거나, 대한그룹에서 급파한 사설 구조대임이 틀림없었다.“민우 씨, 진짜 배야……! 우리 살았어!”서진이 민우의 멀쩡한 왼팔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지긋지긋한 벌레와 야생 동물의 위협, 짠내 나는 바닷물과 풀때기 가득한 식단으로부터 드디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의 따뜻한 샤워실과 푹신한 침대, 그리고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하지만 민우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선박이 점점 커질수록, 그의 가슴 한구석을 채우는 아쉬움 역시 덩달아 커져갔기 때문이다.“그러게.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대한민국 구조대 일 잘해.”민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서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진 역시 민우의 반응을 살피다 이내 행동을 멈추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구조된다는 것은 문명세계로의 복귀를 의미했다. 그것은 곧 가문의 압박, 쏟아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회사 경영권 분쟁, 그리고 그들을 숨 막히게 했던 정략결혼의 굴레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이 외딴 무인도에서 겨우 찾아낸 둘만의 순수한 핑크빛 기류가, 현실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다시 깨져버릴까 봐 두 사람은 내심 두려웠다.“구조선이 해안가까지 접안 하려면 앞으로 두세 시간은 더 걸리겠어. 산호초가 많아서 돌아서 와야 하거든.”&nbs
"음, 맛있다. 한 디자이너, 손재주만 좋은 줄 알았더니 야생 요리사 자격증도 따야겠어.""서울에서는 내가 해주는 밥 한 번 먹어본 적 없으면서, 말은 잘해요."서진의 뼈 있는 농담에 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러게. 우리 3년 동안 집에서 같이 밥 먹은 게 손에 꼽히네. 그것도 다 양가 부모님 모시고 격식 차리는 자리뿐이었고.""맞아. 매일 차려진 최고급 출장 뷔페나 일식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지. 언제나 가문 이야기, 주식 이야기뿐이었으니까."서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조개 껍데기를 매만졌다. 민우는 그런 서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서진아.""응?""나 사실…… 너랑 이혼하기 싫었어."갑작스러운 민우의 돌직구 고백에 서진이 들고 있던 조개 껍데기를 떨어뜨렸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민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처음엔 정략결혼이라 억울했고, 네가 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을 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기다려졌어. 네가 거실에 새로 들여놓은 소파를 볼 때마다, 네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게 은근히 재밌었거든.근데 내가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어. 먼저 다가가면 네가 날 밀쳐낼까 봐 겁이 났던 거야."서진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늘 당당하고 오만해 보였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서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민우는 타오르는 모닥불 빛을 받으며 속마음을 고백했다."네 주변에 멋진 남자들이 너무 많았잖아. 난 비즈니스밖에 모르는 딱딱한 인간인데, 넌 예술을 하니까 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까칠하게 군 거야. 미안해…… 널 지켜주고 싶었는데, 늘 아프게만 해서."열에 들뜬 민우의 진심 어린 고백에 서진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오만방자한 줄만 알았던 남자의 가슴속에 그런 유치하고도 애틋한 열등감과 사랑이 숨겨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진은 민우의 손을 더 꼭 맞잡으며 그의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주었다."바보 같아, 진짜. 난 당신이 항상 내 가구 디자인 무시하는 줄 알고 서운했던 건데…… 우리 진짜 바보 부부였네."서진은 민우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조용히 흐느꼈다. 무인도의 밤은 깊어갔고, 구사일생으로 치명적인 위기를 넘긴 두 사람의 마음은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야생의 포식자 앞에서 목숨을 걸고 확인한 밤이었다.야생 동물의 습격을 받아 사투를 벌인 뒤 찾아온 무인도의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동굴 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연기 사이로, 밤새 민우를 간호하느라 지쳐 잠든 서진의 핼쑥한 얼굴이 보였다."음……."민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지만, 어젯밤의 지독했던 열은 고맙게도 내려가 있었다. 팔뚝을 보니 서진이 제 드레스를 찢어
"웃어? 남편이 물에 빠졌는데 그게 웃음이 나와?""남편은 무슨, 동맹 파트너라며. 그리고 당신 꼴을 봐. 안 웃게 생겼나."서진이 다가와 미역 줄거리를 걷어내 주며 킥킥댔다. 민우는 젖은 옷을 짜내며 툴툴거렸다."서울 돌아가기만 해봐. 대한그룹 지분 다 털어서 횟집 하나 통째로 인수할 거니까. 평생 회만 먹고 살 줄 알아.""그 전에 여기서 굶어 죽게 생겼어. 들어가서 옷이나 말려."두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서로를 챙기며 동굴로 돌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무인도에는 다시 서늘한 어둠이 찾아왔다. 어제처럼 서진이 정교하게 보수해 둔 모닥불 덕분에, 오늘 밤은 제법 따뜻한 온기가 동굴 안을 채웠다.민우는 낮에 사냥에 실패한 게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밤이 깊어지자 동굴 밖을 서성거리며 마른 장작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오겠다며 정글 초입으로 향했다."너무 멀리 가지 마. 위험해."서진이 동굴 안에서 소리쳤다."걱정 마. 이 근처야."민우는 달빛에 의지해 발밑의 나뭇가지들을 주워 담았다. 낮의 허당 짓을 만회하고 싶다는 남자로서의 오기가 발동한 탓이었다. 한참 나무를 모으고 있을 때였다.바스락.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민우는 이전의 멧돼지가 떠올라 몸을 굳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노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민우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서진이 자신에게 다가오려 했던 손길을, 자존심이라는 방패로 매번 쳐내기만 했던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다."미안하다."낮고 진중한 민우의 사과에 서진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민우는 서진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내가 너무 속이 좁았어. 널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만 줬네.""민우 씨……."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빗소리는 어느새 잦아들고, 동굴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민우의 얼굴이 서진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따뜻한 숨결이 뺨에 닿았다.서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마침내 두 입술이 닿기 직전이었다.스스스스스.동굴 천장에서 무언가 차갑고 축축한 촉감이 민우의 콧등 위로 툭 떨어졌다."어? 이게 뭐지?"민우가 눈을 뜨며 콧등을 만졌다. 손가락에 닿은 것은 다리가 수십 개 달린 커다란 지네였다."으, 으아아악. 괴물이다."민우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깨부수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서진을 팽개치고 동굴 바닥을 구르며 난리를 피웠다. 지네는 민우의 난동에 놀라 서진의 드레스 자락 쪽으로 기어갔다."꺄악. 저리 치워."서진 역시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