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직 달력에는 6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우는 차가운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작전을 짜야겠다고 다짐했다.
* 고백 D-6, 하늘에서 초콜릿이 내려온다면
어제의 대실패로 인해 강민우의 멘탈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흡연 단속반으로 오해받은 사건은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지만, 소희의 손에 닿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초코 소라빵의 비극은 밤새도록 민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러나 포기할 시간은 없었다. 달력의 숫자는 무정하게도 D-6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시간, 매점 뒤편 벤치에 앉아 민우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정구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야, 박정구. 아날로그 방식은 안 되겠다. 소희한테 가기도 전에 중간에 가로채기 당할 확률이 너무 높아."
정구는 매점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며 한심하다는 듯 민우를 보았다.
"그러니까 왜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쓰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디지털로 가야지, 디지털로."
"디지털? 캐톡으로 고백하라고? 그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잖아."
"누가 캐톡 하래? 마침 오늘 5교시가 전교생 체육대회 연습이잖아? 운동장에 전교생 다 모인다고."
민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내가 어제 방송부 애들이 드론 띄워서 촬영 연습하는 거 봤거든? 거기에 선물을 매달아서 소희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배달하는 거야. 어때, 지리지?"
정구의 제안은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드론을 이용한 고백이라니? 마치 유행하는 웹드라마의 남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드론이 소희에게 다가가 달콤한 사탕 상자를 전달하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거 괜찮은데? 근데 방송부 드론을 우리가 어떻게 빌려?"
"걱정 마라. 방송부 기재부장이 내 사촌 형이다. 점심시간에 잠깐 빌려오기로 합의 봤어."
정구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민우는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전명 “하늘에서 초콜릿이 내려온다면”
민우는 급하게 매점에서 고급 초콜릿 세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리본 끈으로 드론 하단에 단단히 고정했다. 정구는 리모컨을 조종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형이 초등학교 때부터 알씨카로 다져진 손기술이다. 정밀 타격 보여줄 테니까 너는 소희 옆에서 타이밍만 잡아."
"오케이, 믿는다."
5교시 체육 시간이 시작되었다. 운동장에는 3학년 전체 반이 모여 졸업 전 마지막 피구 대회를 준비하느라 북적였다. 소희는 반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 스탠드 근처에 앉아 있었다.
민우는 심호흡을 하며 정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교사 뒤편에서 작은 드론 한 대가 윙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드론 아래에는 앙증맞은 초콜릿 상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운동장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거 뭐야? 드론이네?"
"와, 방송부에서 졸업 영상 찍나 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민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였다. 이제 드론이 소희의 머리 위로 부드럽게 하강하여 초콜릿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정구의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드론은 완벽한 궤도를 그리며 소희가 있는 스탠드로 향했다. 이제 거리는 단 5미터였다.
'좋아, 지금이야! 정구야, 내려!'
민우는 속으로 외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겨울철 강력한 칼바람이 운동장을 휩쓸었다. 돌풍이었다. 예상치 못한 강풍에 드론이 중심을 잃고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이거 왜 이래?"
멀리서 리모컨을 붙잡고 있는 정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보였다. 드론은 정구의 제어 범위를 벗어나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갈지자로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야! 박정구! 조종 똑바로 안 해?"
민우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미쳐버린 드론은 소희가 아니라, 마침 운동장 조회를 위해 단상으로 걸어 나오던 교장 선생님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웅 하는 모터 소리가 광포하게 울렸다. 교장 선생님은 하늘에서 다가오는 괴물체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어? 저게 무엇이냐?"
교장 선생님이 피할 겨를도 없이, 드론에 매달려 있던 초콜릿 상자가 교장 선생님의 반짝이는 대머리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깡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초콜릿 상자가 터지며 알알이 박힌 초콜릿들이 단상 위로 우수수 쏟아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중심을 잃은 드론은 교장 선생님의 상징과도 같은 가발을 프로펠러에 감아쥔 채 그대로 하늘 높이 수직 상승해 버렸다.
순식간에 운동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교장 선생님의 완벽하게 매끈한 두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드론에는 교장 선생님의 가발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내 머리! 내 머리 잡아라!"
교장 선생님은 양손으로 대머리를 감싸 쥐며 단상 아래로 주저앉았다. 체육 선생님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드론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지만, 인간의 달리기 속도가 하늘을 나는 드론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정구는 이미 리모컨을 내팽개치고 교문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전교생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민우는 저 멀리 스탠드에 앉아 있는 소희를 살짝 훔쳐보았다. 소희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날아가는 가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드론에 매달린 가발이 선명하게 비쳤다.
'망했다. 고백은커녕 퇴학당하는 거 아닐까?'
민우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멀리서 학년 부장 선생님이 드론의 출처를 찾기 위해 방송부 쪽으로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민우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군중 속으로 완전히 숨어들었다.
고백까지 남은 시간 6일. 민우의 고등학교 생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사서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편지봉투를 주워 올렸다. 봉투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한소희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강민우! 너 지금 도서관에서 고백 작전 하느라 책장을 다 부순 거냐?"사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도서관에 메아리쳤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대피해 있던 소희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쏠렸다.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민우와 사서 선생님의 손에 들린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교차했다.민우는 차라리 이대로 책들과 함께 화석이 되어 영원히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백은커녕 도서관 기물 파손죄로 반성문을 쓰게 생겼다.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재난 영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보건실의 시크릿 하트도서관 대참사의 대가는 참혹했다. 사서 선생님의 자비 없는 심판에 따라 민우는 졸업식 직전까지 매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쓰러진 책장들을 정비하고 수천 권의 책을 원래대로 분류하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손가락 끝은 책장에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야, 강민우. 넌 진짜 레전드다. 고백하려다 도서관을 통째로 무너뜨린 놈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역사상 네가 처음일 거다."정구는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낄낄거리며 민우의 등짝을 두드렸다. 민우는 이미 영혼이 유체 이탈한 표정으로 사서 선생님이 준 반성문 양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유서 칸에는 도서관 비품 훼손 및 심각한 면학 분위기 저해라고 엄숙하게 적혀 있었다.'그래도 소희가 내 편지를 봤을까? 사서 선생님이 소희 이름을 도서관이 떠나가라 대차게 부르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다 났는데.'민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소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미친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아니면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려야 할 위험인물로 찍힌 걸까. 불안감에 휩싸여 손톱을 깨물고 있을
* 고백 D-5, 도서관의 도미노 여신어제의 가발 비행 사건은 단숨에 학교의 전설이 되었다.다행히 정구의 사촌 형이 방송부 드론의 비행 기록을 빛의 속도로 삭제한 덕분에 민우와 정구는 주동자로 색출되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하지만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계엄령 수준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가발 대신 번쩍이는 대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교내를 순찰하며 범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민우의 심장은 쫄깃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야, 박정구. 너 왜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있냐?"민우가 등교하자마자 정구의 몰골을 보고 물었다. 정구는 시력 교정용 안경 위에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겹쳐 쓰고 있었다. 변장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 그 자체였다."교장샘 눈빛 못 봤냐? 눈만 마주쳐도 자백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난 당분간 이렇게 살 거다."정구가 이빨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조력자마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민우는 홀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달력을 보니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5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작전은 교장 선생님의 수사망에 걸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은밀하며, 가장 안전한 장소를 공략하는 것뿐이었다.'도서관이다.'소희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곤 했다. 시끄러운 운동장이나 교실과 달리 도서관은 사서 선생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조용함이 유지되는 성역이었다. 이곳이라면 돌풍이 불 일도 없고, 교장 선생님의 가발이 날아갈 일도 없었다.점심을 대충 입으로 쑤셔 넣은 민우는 곧장 본관 4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와 정적만이 민우를 반겼다.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소희가 앉아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소희의 모습은 어제 드론 소동 속에서도 홀로 빛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민우는 주머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직 달력에는 6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우는 차가운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작전을 짜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백 D-6, 하늘에서 초콜릿이 내려온다면어제의 대실패로 인해 강민우의 멘탈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흡연 단속반으로 오해받은 사건은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지만, 소희의 손에 닿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초코 소라빵의 비극은 밤새도록 민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그러나 포기할 시간은 없었다. 달력의 숫자는 무정하게도 D-6을 가리키고 있었다.점심시간, 매점 뒤편 벤치에 앉아 민우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정구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야, 박정구. 아날로그 방식은 안 되겠다. 소희한테 가기도 전에 중간에 가로채기 당할 확률이 너무 높아."정구는 매점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며 한심하다는 듯 민우를 보았다."그러니까 왜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쓰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디지털로 가야지, 디지털로.""디지털? 캐톡으로 고백하라고? 그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잖아.""누가 캐톡 하래? 마침 오늘 5교시가 전교생 체육대회 연습이잖아? 운동장에 전교생 다 모인다고."민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그래서?""내가 어제 방송부 애들이 드론 띄워서 촬영 연습하는 거 봤거든? 거기에 선물을 매달아서 소희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배달하는 거야. 어때, 지리지?"정구의 제안은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드론을 이용한 고백이라니? 마치 유행하는 웹드라마의 남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드론이 소희에게 다가가 달콤한 사탕 상자를 전달하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그거 괜찮은데? 근데 방송부 드론을 우리가 어떻게 빌려?""걱정 마라. 방송부 기재부장이 내 사촌 형이다. 점심시간에 잠깐 빌려오기로 합의 봤어."정구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민우는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렇게 시작
* 고백 D-7, 작전명 초코 소라빵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졸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긋지긋한 야간 자율학습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3년 동안 남몰래 키워온 짝사랑의 강제 종료를 의미하기도 했다."일주일 남았다고? 진짜로?"강민우는 책상에 이마를 쾅 부딪쳤다. 칠판 옆에 걸린 달력의 숫자는 잔인하게도 졸업식까지 딱 7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소심한 영혼,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이대로 졸업하면 끝이다. 소희는 서울로 대학 가고, 나는 여기 남는데 영영 남남이 되는 건가?'창가 자리에서 햇살을 받으며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단발머리가 마치 이온 음료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야, 강민우. 너 얼굴 왜 그렇게 빨갛냐? 어디 아프냐?"눈치라곤 밥 말아 먹은 절친 박정구가 민우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아니, 안 아파.""그럼 왜 그래? 혹시 소희 보냐?""쉿! 조용히 해!"민우는 정구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소희가 들었을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행히 소희는 자기 친구들과 급식 메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민우는 정구를 구석으로 끌고 가 낮게 속삭였다."야, 정구야. 나 일주일 안에 고백할 거다."정구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방귀를 뀌었다."네가? 3년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네가 일주일 만에 고백을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진짜야. 이번엔 진짜라고. 졸업하면 다신 못 보잖아? 억울해서라도 말은 해봐야지."민우의 눈빛에 전례 없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정구는 민우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 놀란 듯 턱을 괴었다."그래, 사나이 삼세번인데 고백 한번 못 해보고 졸업하면 평생 이불킥이지. 근데 방법은 있냐?""방법? 당연히 있지."사실 아무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민우는 일단 큰소리부터 쳤다. 머릿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