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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0 13:48:58

* 고백 D-5, 도서관의 도미노 여신

어제의 가발 비행 사건은 단숨에 학교의 전설이 되었다.

다행히 정구의 사촌 형이 방송부 드론의 비행 기록을 빛의 속도로 삭제한 덕분에 민우와 정구는 주동자로 색출되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계엄령 수준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가발 대신 번쩍이는 대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교내를 순찰하며 범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민우의 심장은 쫄깃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야, 박정구. 너 왜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있냐?"

민우가 등교하자마자 정구의 몰골을 보고 물었다. 정구는 시력 교정용 안경 위에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겹쳐 쓰고 있었다. 변장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 그 자체였다.

"교장샘 눈빛 못 봤냐? 눈만 마주쳐도 자백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난 당분간 이렇게 살 거다."

정구가 이빨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조력자마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민우는 홀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달력을 보니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5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작전은 교장 선생님의 수사망에 걸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은밀하며, 가장 안전한 장소를 공략하는 것뿐이었다.

'도서관이다.'

소희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곤 했다. 시끄러운 운동장이나 교실과 달리 도서관은 사서 선생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조용함이 유지되는 성역이었다. 이곳이라면 돌풍이 불 일도 없고, 교장 선생님의 가발이 날아갈 일도 없었다.

점심을 대충 입으로 쑤셔 넣은 민우는 곧장 본관 4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와 정적만이 민우를 반겼다.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소희가 앉아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소희의 모습은 어제 드론 소동 속에서도 홀로 빛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민우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이번엔 쪽지가 아니라 밤새 고민하며 꾹꾹 눌러쓴 정식 편지였다. 오글거리는 수식어는 전부 빼고, 3년 동안 좋아했다는 진심만을 담았다.

'이번엔 직접 준다. 소희가 자리를 잠시 비우거나, 책을 빌리러 갈 때 슬며시 다가가서 책상 위에 두고 오는 거야.'

작전은 심플했다. 민우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위해 소희의 대각선 뒤쪽 책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척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대형 백과사전 제7권이었다. 무게가 상당했지만 들고 있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민우는 백과사전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책장 틈새로 소희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소희는 집중하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소희가 기지개를 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 서적을 찾으려는 듯 민우가 있는 서가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헉, 이쪽으로 온다?'

민우는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백과사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소희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우는 긴장한 나머지 들고 있던 백과사전을 너무 세게 쥐었다. 손에 땀이 차서 책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소희는 민우가 서 있는 책장의 바로 뒷줄로 들어갔다.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이었다. 나무 책장의 틈새로 소희의 교복 자락이 살짝 보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책장 너머로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편지를 건네면 어떨까?

"저기, 소희야?"

민우는 용기를 내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책장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소희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민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금 더 크게 말해야 하나?'

민우는 소희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책장에 몸을 바짝 밀착했다. 그리고 소희가 책을 뽑으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맞은편에서 소희의 시선에 띄고자 책 한 권을 밀어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민우가 짚은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빽빽하게 박혀 있던 거대한 법학 대사전이었다. 민우가 힘을 주어 그 책을 미는 순간, 낡은 나무 책장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도서관의 정적을 깨뜨렸다.

민우는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책장이 소희가 있는 뒤쪽이 아니라, 민우가 있는 앞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어? 이게 왜 나한테 쓰러지지?'

민우는 당황해서 양손으로 책장을 받쳐 들었다. 하지만 수백 권의 책이 꽂힌 책장의 무게는 고등학생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민우의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여기서 손을 놓으면 자신이 책더미에 깔리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소동이 일어날 게 뻔했다.

"으으으차!"

민우는 신음 소리를 내며 온 힘을 다해 책장을 다시 뒤로 밀었다. 반동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이번에는 책장이 뒤쪽으로 콰당 소리를 내며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로 다음 책장이 있었다.

쿠쿠쿠쿵.

그것은 거대한 재앙의 시작이었다. 도서관에 일렬로 늘어서 있던 다섯 개의 대형 책장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서관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진동과 함께 수천 권의 책들이 폭포수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엄마야!"

"악! 이게 무슨 일이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다행히 소희는 책장이 넘어지기 직전, 다른 칸으로 이동해 화를 면한 상태였다. 하지만 민우는 도미노의 시발점이 된 첫 번째 책장과 함께 바닥으로 완전히 고꾸라지고 말았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도서관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어떤 놈이야? 도서관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멀리서 서든어택의 돌격대장처럼 사서 선생님이 빗자루를 들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쏟아진 세계문학전집과 위인전 전집 아래에 깔린 채 간신히 고개만 내밀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민우의 손에 쥐어져 있던 고백 편지가 책더미 사이로 날아가 하필이면 사서 선생님의 발바닥 바로 앞에 안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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