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은채의 날카로운 지적에 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거나 멀리 이동했다면 유치원 앞 cctv나 도로 단속 카메라에 걸렸을 위험이 커. 범인은 분명 이 아파트 단지 근처, 혹은 우리가 잘 아는 등잔 밑에 아이들을 숨겨두고 우리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거야!"
두 사람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좁혀지는 느낌이었다. 범인은 먼 곳에 있는 괴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며 조소하고 있는 바로 곁의 악마였다.
진우는 서둘러 자조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출력된 종이를 탁자 위에 얹어두는 순간, 정확히 밤 11시 50분에 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타이밍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범인이 이 집안 내부를 보고 있거나, 최소한 아파트 복도에서 동태를
하지만 그 시각, 머나먼 서울의 한 지하철 안. 야근에 찌들어 사표를 품에 안고 한강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대기업 김 대리가 무심코 스타그램을 넘기다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될 줄은, 순자네 가족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동구의 엉뚱한 크레파스 낙서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방구석 피카소의 탄생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절망을 마주한다. 마흔두 살의 대기업 대리 김광식에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부장의 지독한 가스라이팅과 동기들의 초고속 승진 사이에서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퇴근하는 지하철 안,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의미 없이 넘기고 있었다.그때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파란색 크레파스로 마구 칠해진, 날개 달린 괴상한 돼지 그림이었다.초등학생 낙서보다도 조잡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김광식은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돼지의 눈은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주둥이는 기묘하게 위를 향해 비틀려 있었다. 마치 세상이 아무리 자신을 짓밟아도 기어코 웃어 보이겠다는 오기처럼 보였다.그림 밑에 달린 짧은 글이 그의 가슴을 툭 쳤다. 전 재산이 마이너스인 집구석에서 혼자 세상 편하게 날아다닌다는 말.'이 돼지, 꼭 나 같네.'김광식의 입 꼬리가 허탈하게 올라갔다. 치열하게 버텨왔지만 결국 마이너스 인생이 되어버린 자신과, 몸에 맞지도 않는 파리 날개를 달고 뚱뚱한 몸을 허공에 띄운 돼지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게시글을 자신의 개인 계정으로 공유했다.
* 마이너스 통장과 날아라 돼지철수 아니, 김동구는 올해 열다섯 살이었다. 몸집은 황소만 한 중학생이었지만, 정신 연령은 여전히 뽀로로에 열광하는 대여섯 살에 멈춰 있었다. 동구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밥 먹고, 웃고, 크레파스로 온 집안 벽을 도배하는 것. 그것이 동구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하지만 그 소통의 대가는 가혹했다. 어머니 순자는 오늘도 시뻘건 압류 딱지가 붙은 똥색 냉장고 앞에서 영수증 더미를 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이번 달 가스비에 전기세에, 월세는 세 달째 밀렸는데 사채 이자는 또 어떻게 내야 하나?"순자의 입에서 걸쭉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남편이 주식 대박을 꿈꾸다 남기고 간 것은 산더미 같은 빚과 듬직하게 아픈 아들 동구뿐이었다.식당 불판 닦기, 빌딩 새벽 청소,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쓰리잡을 뛰어가며 버텼지만, 인생이라는 이름의 밑 빠진 독은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때 거실 구석에서 맹렬하게 벽을 긁어대던 동구가 침을 흘리며 해맑게 웃었다. 동구의 이빨은 온통 파란색 크레파스 가루로 물들어 있었다."엄마! 맛있다! 블루베리 맛!"순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동구야! 너 또 크레파스 씹어 먹었냐? 내가 그걸 먹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순자가 소리를 지르며 동구의 입을 벌려 크레파스 조각을 빼냈다. 동구는 그저 엄마가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순자는 벽에 그려진 정체불명의 낙서를 보
계절이 두 번 바뀌어 푸르른 녹음이 짙어지는 이듬해 초여름.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거실 탁자 위에는 여전히 하얀 서류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6개월 전의 그 삭막했던 이혼 서류가 아니었다. 봉투 겉면에는 은채의 흘림체 글씨로 '가족 통장 및 서준·서아 성장 앨범'이라고 예쁘게 적혀 있었다.부엌에서는 싱그러운 도마 소리와 함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피어올랐다. 앞치마를 두른 진우가 서툰 솜씨로 애호박을 썰며 땀을 훔쳤고, 그 옆에서 은채가 웃으며 양념을 맞추고 있었다."진우 씨, 호박을 그렇게 크게 썰면 애들이 안 먹지. 서준이가 편식 대장인 거 몰라?""아, 맞다. 다시 잘게 썰게. 아직 요리는 초보라 서투네."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사건 이후 진우는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해 야근과 주말 출장이 없는 부서로 자원 이동했다.진급은 조금 늦어질지 몰라도,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아내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지금의 삶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엄마! 아빠! 이것 봐!"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서준이와 서아가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서준이의 손에는 어린이집에서 직접 그린 가족 그림이 들려 있었다. 커다란 도화지 한가운데, 엄마와 아빠가 쌍둥이의 손을 아주 커다랗고 단단하게 맞잡고 있는 그림이었다.진우는 도마질을 멈추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아이들의 통통한 볼에 번갈아 입을 맞추었다.
"지하 3층에 유독가스랑 폭발 위험이 있어요! 당장 대피 방송 하시고 119에 신고해 주세요! 제발요!"경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단지 내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이 주민들을 깨우는 사이, 은채는 아이들을 경비실 안전한 곳에 앉혀두고 다시 지하 주차장 출입구를 바라보았다.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진우는 아직 나오지 못했다."진우 씨…… 제발……."은채는 가슴을 쥐어짜며 기도했다. 과거에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지만, 이제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 이 지옥 같은 밤을 버텨내고 마주할 아침에는 반드시 네 가족이 함께여야 했다.타이머의 숫자가 가리키던 그 순간."쿨럭! 쿨럭!"지하 주차장 차량 출입구의 가파른 경사로 위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처절하게 들쳐맨 채 기어 나오다시피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였다.그가 지상 인도 위로 발을 디디며 배민우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지하 3층에서 콰아아앙-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둔탁한 진동이 대지를 울렸다.탑차가 폭발한 것이다. 주차장 입구로 검은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진우는 간발의 차로 지옥의 아가리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진우 씨!"은채가
지옥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게 맞잡았다. 서로를 향해 겨누었던 날카로운 비수는 부서지고, 그 자리에는 진심 어린 용서와 더 깊어진 사랑이 피어났다. 부부의 해묵은 갈등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엄마…… 아빠……."서준이와 서아가 아장아장 걸어와 두 사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네 가족은 주차장 차가운 바닥에서 서로를 웅크려 감싸 안으며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탑차 내부에서 웅성거리는 기괴한 기계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배민우가 쓰러지기 직전, 벽면에 설치된 또 다른 자동 타이머 장치를 가동한 것이었다. 주차장 벽면에 부착된 소형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골든타임, 아이들을 향한 질주지하 주차장의 콘크리트 벽면을 타고 번지는 붉은 경고등과 요란한 기계음은 네 가족의 심장을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었다. 탑차 대시보드 부근에서 깜빡이는 디지털 숫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3분. 배민우가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끝내 작동시킨 마지막 폭주 장치였다. 탑차 내부에 설치된 가스 밸브가 완전히 개방되는 시간이자, 차량 자체의 연료탱크를 과열시켜 폭발을 유도하는 최악의 타이머였다. 이미 탑차 문틈으로는 서서히 하얀 연기와 함께 유독가스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진우 씨, 저거……!"은채가 쌍둥이를 품에 안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진우는 타들어 가는 목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은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남편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진우가 탑차 내부로 완전히 걸어 들어가는 순간, 은채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두꺼운 차량용 소화기를 발견했다.'우리가 살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야.'은채는 온 힘을 쥐어짜 소화기를 들어 올렸다. 배민우가 진우를 밀어 넣고 탑차 문을 닫으려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사투 속에서 피어난 진심 어린 용서"이 미친 괴물 새끼야!"은채의 비명과 함께 묵직한 소화기가 허공을 가르고 배민우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주차장의 정적을 깨뜨렸다. 불시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배민우가 비틀거리며 리모컨을 놓쳤고, 바닥에 쓰러졌다."은채야!"탑차 안으로 막 발을 디디려던 진우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배민우가 바닥을 기며 다시 리모컨을 잡으려 하자, 진우는 주저 없이 온몸을 던져 그의 전신을 누르고 압박했다."빨리 애들 빼내! 은채야, 지금이야!"진우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은채가 탑차 안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쌍둥이가 보였다."엄마! 엄마아!""서준아, 서아야!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빨리 나와, 어서!"은채가 서아를 먼저 품에 안아 바닥으로 내렸고, 뒤이어 서준이의 손을 잡아채 밖으로 끌어당겼다. 아이들을 탑차 밖으로 완전히 빼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