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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6.08.2026 09:30:19

* 사물함의 비밀번호를 찾아라

급식실 소화기 대참사 이후, 민우에게 남은 것은 온몸에서 진동하는 시큼한 복숭아 냄새와 전교생의 따가운 눈총뿐이었다.

소희는 어제 사건 이후로 민우를 걸어 다니는 생물학적 유해 물질로 취급하는지,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3미터 전방에서 빛의 속도로 우회하여 도망쳤다. 민우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소화기 안전핀은 빼고 다니냐며 낄낄거렸고, 조리사 아주머니들은 급식실 근처에 민우가 나타나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달력을 보니 마침내 운명의 디데이 하루 전이었다. 내일이면 대망의 졸업식이었고, 식장은 학부모님들과 축하 꽃다발, 그리고 몰려든 인파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게 분명했다. 사실상 오늘 방과 후가 맨정신으로 소희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다.

'더 이상 요란한 작전은 무리다. 소화기도, 드론도, 방송실도 다 필요 없어. 가장 클래식하고 조용한 방법을 쓴다.'

민우가 선택한 마지막 보루는 바로 사물함이었다.

방과 후에 소희의 사물함에 정성스럽게 고른 선물과 함께, 지난 일주일 동안의 눈물겨운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는 편지를 몰래 넣어두는 작전이었다.

민우는 하굣길에 동네 화장품 가게에 들러 소희가 좋아할 만한 은은한 복숭아 향의 핸드크림과 예쁜 향수를 구입했다. 포장지 위에 리본까지 예쁘게 묶어 가방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문제는 소희의 사물함 번호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민우는 교실 뒤편에 일렬로 늘어선 회색 사물함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학교 사물함은 전부 다이얼이나 버튼식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번호를 모르면 열 수가 없었다. 그때 구세주인 척 위장한 파괴의 신 박정구가 슬그머니 다가와 민우의 어깨를 쳤다.

"야, 강민우. 마지막 기회인데 사물함 작전 쓰려고 그러냐?"

"어. 이번엔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편지만 넣고 올 거야. 그러니까 제발 방해하지 마라."

"내가 누군지 잊었냐? 나 3학년 5반의 걸어 다니는 정보통이다. 소희 사물함 번호는 이십사 번이야. 그리고 비밀번호는 내가 방송부 인맥을 동원해서 알아냈는데, 소희 생일인 영사영오니까 참고해라."

정구는 완벽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민우는 정구의 정보를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이십사 번 사물함, 비밀번호 영사영오.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약속의 숫자였다.

마침내 방과 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민우는 교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가방에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와 편지봉투를 꺼냈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교실 뒤편 사물함 앞으로 걸어가 번호판을 확인했다. 이십사 번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사물함은 연식이 오래되어 번호 스티커가 훼손되거나 지워진 것들이 많았다. 민우는 대충 위치를 계산해 두 번째 줄의 네 번째 칸으로 다가갔다. 희미하게 적힌 숫자가 대충 이십사 번처럼 보였다.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영, 사, 영, 오.

딸칵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야 정상이었지만, 사물함 자물쇠는 굳게 닫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 왜 안 열리지? 소희 생일이 틀렸나? 아니면 숫자가 뻑뻑한 건가?'

마음이 급해진 민우는 다이얼을 다시 한번 신중하게 돌렸다. 영사영오.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내일이면 졸업식인데 여기서 사물함이 안 열려 작전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다. 민우는 입술을 바짝 깨물며 사물함 문짝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우리 학교 사물함은 정밀도가 떨어져서 틈새에 얇은 자를 넣고 툭 치면 쉽게 열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민우는 필통에서 긴 플라스틱 자를 꺼내 사물함 문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지렛대 원리로 문을 과격하게 제쳤다.

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물함의 낡은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문이 활짝 열렸다. 민우는 성공했다는 기쁨에 미소를 지으며 향수 상자를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사물함 내부를 들여다본 순간 민우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사물함 안에는 소희의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핑크색 거울 대신, 두꺼운 의학 전문 서적과 오답 노트가 탑처럼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맨 위에는 전교 1등이자 지독한 범생이인 엄진수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적힌 전국 모의고사 분석집이 놓여 있었다.

'잠깐만, 엄진수? 여기가 왜 진수 사물함이지?'

민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사물함 번호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을 비비고 보니 이십사 번이 아니라 마흔두 번이었다. 숫자가 거꾸로 뒤집힌 것을 착각한 데다가, 칸수마저 완전히 잘못 계산한 것이었다.

게다가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고 억지로 문을 부수기까지 했으니 상황은 최악이었다.

"강민우? 너 지금 내 사물함에서 뭐 하냐?"

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꽂혔다. 민우는 고장 난 로봇처럼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곳에는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전교 1등 엄진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침 교실 순찰을 돌던 담임 선생님까지 함께 서 계셨다.

진수는 처참하게 부서진 사물함 문짝과 민우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자를 번갈아 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선생님! 강민우가 제 사물함을 강제로 파손하고 제 오답 노트와 시험 분석 자료를 훔치려고 했습니다! 내일 졸업식이라고 방심한 틈을 타서 제 소중한 학업 자산을 도난하려 한 게 분명합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오해야! 나는 그냥 선물을 넣으려고 한 건데!"

민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저으며 변명했지만, 손에 들린 도둑질 장비 같은 플라스틱 자와 보기 좋게 휘어진 사물함 철판이 명백한 범죄의 증거였다.

담임 선생님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 동안 드론 가발 사건, 도서관 도미노 사건, 급식실 소화기 대참사까지 일으킨 연쇄 사고뭉치가 이제는 졸업 직전에 전교 1등의 사물함까지 털고 있으니 혈압이 오르는 게 당연했다.

"강민우, 너 진짜 졸업식 전날까지 나를 실망 시킬래?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기물 파손에 절도 미수 혐의까지 아주 제대로 조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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