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민우는 향수 상자와 고백 편지를 꼭 쥔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교무실로 끌려가는 복도에서 마침 가방을 메고 하교하던 소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소희는 민우가 사물함을 부수다 걸려 범죄자처럼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다. 옆에 있던 소희의 친구들이 비아냥거리며 속삭였다.
"소희야, 저 새끼 진짜 양아치 아니야? 너한테 고백한다고 전교에 광고해 놓고 뒤에서는 전교 1등 시험 자료나 훔치고 있었네. 진짜 앞뒤가 다른 무서운 애다."
소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민우를 힐끗 보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 건물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민우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고백은커녕 이제는 파렴치한 절도범이자 사기꾼으로 완전히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교무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사유서를 쓰며 민우는 창밖의 어두워지는 운동장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내일이 바로 대망의 졸업식이었다.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완벽한 파멸의 문턱에 도달해 있었다.
* 졸업식장의 일촉즉발 고백
대망의 졸업식 당일이 밝았다. 학교 운동장은 이른 아침부터 축하 꽃다발을 든 가족들과 전교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화려한 현수막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활기찬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강민우의 얼굴만큼은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어두웠다.
어제 사물함 절도 미수 오해 사건은 밤새 담임 선생님이 엄진수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민우가 진심을 다해 사과한 덕분에 가까스로 징계 위기는 넘겼다.
부서진 사물함 문짝은 민우의 용돈으로 변상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소희의 오해를 풀 시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민우야, 진짜 오늘이 마지막이다. 식 끝나면 다들 흩어져서 사진 찍고 바로 집으로 간다고."
정구가 화려한 안개꽃 다발을 민우의 품에 억지로 안겨주며 말했다. 민우는 품에 안긴 꽃다발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슨 염치로 소희한테 다가가냐? 이미 전교 1등 사물함이나 터는 파렴치한 놈으로 찍혔는데. 소희가 내 얼굴을 보려고나 하겠어?"
"이 바보야,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네가 친 사고들을 생각해 봐라. 학교를 이 정도로 들었다 놓았으면 결과가 어떻든 끝은 봐야 할 거 아니야?"
정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드론 가발 비행, 도서관 도미노, 급식실 분말 폭탄, 그리고 사물함 파손까지. 일주일 동안 겪은 온갖 수치와 고난을 생각하면 이대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졸업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민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거절을 당하더라도 내 진심은 똑바로 전하고 차이자."
잠시 후,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대강당에서 본격적인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3학년 전체 학생들이 반별로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민우는 몇 줄 앞자리에 앉은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단정하게 빗은 단발머리가 유난히 예뻐 보였다.
소희는 친구들과 귓속말을 나누며 밝게 웃고 있었지만, 민우는 긴장감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에 땀이 흥건했다.
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이어서 눈물겨운 졸업가 제창과 학사보고가 이어졌다. 이제 남은 순서는 교장 선생님의 엄숙한 회고사와 우수 학생 표창뿐이었다.
단상 위로 마침내 교장 선생님이 걸어 나왔다. 며칠 전 드론 사건으로 가발을 잃어버린 교장 선생님은 오늘은 아주 정교하고 찰떡같은 새로운 가발을 쓰고 당당하게 서 계셨다. 교장 선생님은 마이크를 앞에 두고 헛기침을 크게 했다.
"에, 흠.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그때였다. 단상 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며 바뀌었다. 원래는 졸업생들의 3년간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나와야 할 화면에, 낯선 검은색 취조실 같은 방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동요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게 뭐야? 일진회 적발 영상인가?"
화면 속에는 학생부장 강철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고개를 푹 숙인 방송부 기재부장, 즉 정구의 사촌 형이 앉아 있었다. 강철 선생님이 두꺼운 출석부로 책상을 쾅 치며 호통을 쳤다.
"똑바로 말해! 그날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머리를 저격한 드론 조종사가 누구야? 비행 기록 지운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당장 자백 안 해?"
복학생인 정구의 사촌 형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3학년 5반 박정구랑 강민우가 시켰습니다! 지, 진범은 그 둘이에요! 저는 기계만 빌려줬을 뿐입니다!"
화면이 뚝 끊기고 강당 안은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민우와 정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끈질기게 수사를 벌인 끝에, 졸업식 당일 가장 극적인 순간에 진범을 폭로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 것이었다.
두 사람의 단단한 포옹 위로,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대성기획의 화려한 서막이 내려앉고 있었다. 찐따 사원의 완벽한 영웅 반전극이 마침내 사내 최고의 매력남 등극과 함께 최종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모든 위기와 음모를 완벽하게 분쇄한 대성기획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풍요로웠다. 정성그룹과의 공동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회사는 명실상부한 중견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그 엄청난 신화의 중심에 서 있는 김준우의 위상은 이제 사내에서 신화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출근길마다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직원들의 눈빛에는 경외심과 동경이 가득했고, 그가 지나가는 복도마다 여직원들의 나직한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우는 여전히 겸손하고 든든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자, 다들 주목!"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내 종무식 날, 박 사장은 싱글벙글 웃음이 멈추지 않는 얼굴로 단상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임명장이 들려 있었다."올 한 해, 우리 대성기획을 수많은 위기에서 구하고 회사의 가치를 수백 배로 끌어올린 주역이 있네. 이에 이사회와 정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하겠네! 총무2팀 김준우 팀장을 오늘부로 대성기획의 최연소 '기획총괄 상무이사'로 임명하네!"박 사장의 외침과 동시에 대강당 안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갈채로 가득 찼다. 사원으로 입사해 채 1년도 되지 않아 상무이사라는 별을 단 전무후무한 초고속 승진이었다.준우는 단상 위로 올라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경을
"박 사장! 그리고 거기 숨어 있는 김준우 사원! 당장 나오지 못해?"독사는 정성그룹의 투자로 대성기획이 급성장하자, 배후에 있던 불법 사채 조직과 결탁해 회사를 통째로 삼키려는 마지막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회사를 협박해 강제로 경영권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려는 무식하고도 위험한 도박이었다."이, 이봐요! 경찰에 신고했으니 당장 나가시오!"박 사장이 용기를 내어 외쳤지만, 독사는 비열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시퍼런 칼날을 꺼내 들었다."경찰? 신고해 봐. 그 전에 이 건물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어 줄 테니까! 당장 서류에 도장 안 찍으면 여기 있는 직원들 목숨은 보장 못 해!"덩치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다가오자 로비에 있던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숨기 바빴다. 채원 역시 공포에 질려 준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바로 그 순간, 준우가 채원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그녀의 앞에 당당히 걸어 나갔다. 구부정했던 어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준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와 위압감이 로비 전체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독사.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또 매가 그리웠나 보군."준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독사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과거 자신들을 단 1분 만에 초토화 시켰던 그 전설의 용병 '섀도우'의 눈빛이 준우에게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사는 이번엔 머릿수가 많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악을 썼다."이 건방진 새끼가
국 회장의 파격적인 제안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이 기절할 만한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대기업의 핵심 본부장 자리에 백지수표라니. 박 사장은 부러움과 공포가 섞인 눈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채원의 심장은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준우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과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세계의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입술을 깨물며 준우의 입술만 바라보았다.준우는 잠시 채원의 떨리는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국 회장을 향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회장님의 과분한 제안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직장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준우는 슬그머니 채원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은 손을 남몰래 꼭 쥐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준우의 단단하고 따뜻한 온기에 채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곳에는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상사이자, 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성그룹의 본부장 자리보다, 대성기획의 총무팀장 자리가 저에게는 훨씬 더 가치 있습니다."준우의 로맨틱하고도 확고한 거절에 국 회장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준우와 채원의 잡은 손을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전장을 지배하던 늑대가 아름다운 반려를 만나 완전히 길들여졌군 그래! 좋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강요하지 않겠네. 대신, 대성기획을 우리 정성그룹의 핵심 전략적 파트너사로 지정하겠네. 앞으로 대성이 진행하는 모든 신사업에 정성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을 걸세!"
신입 사원에서 단숨에 팀장으로 수직 상승하는 것은 중소기업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미 사내에서는 준우가 베일에 싸인 은둔 고수이자 엄청난 천재라는 소문이 사실로 굳어졌기 때문이다.준우의 직급이 올라감에 따라 부서의 직제도 개편되어, 원래 총무부장이던 인물이 상무로 승진하고 한채원 팀장과 김준우 팀장이 각각 총무 1팀과 2팀을 이끄는 공동 팀장 체제가 되었다.졸지에 부하 직원이 동등한 위치의 팀장으로 올라선 것이었지만, 채원의 얼굴에는 그저 뿌듯함과 화사한 미소만이 가득했다."김 팀장님, 아니 준우 씨? 이제 나랑 동등한 위치네요? 앞으로 더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겠어요."자리로 돌아온 채원이 준우의 책상 옆에 다가와 장난스럽게 윙크를 건넸다. 슈트가 터질 듯한 완벽한 핏을 자랑하는 준우는 이제 안경마저 벗어 던진 상태였다.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콧날이 훤히 드러난 그의 외모는 매일 아침 총무부 앞을 여직원들의 런웨이로 만들고 있었다."팀장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 부려지겠습니다? 제 상사는 영원히 한 팀장님뿐이니까요."준우가 매혹적인 중저음으로 낮게 속삭이자, 채원의 뺨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사내 연애의 짜릿함이 두 사람의 공기를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바로 그때, 부서의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한 팀장, 김 팀장. 지금 당장 사장실로 올라오게.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네."박 사장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잔뜩 긴장해 있었고, 심지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우와 채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사장실로 향했다.
로그 기록에 남은 IP는 마 부장의 컴퓨터였고, 그가 주말 새벽에 채원의 PC에 원격 제어로 접속해 기획서를 빼낸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게다가 마 부장의 개인 이메일을 해킹하자, 대진유통의 상무로부터 5억 원이라는 거액의 배임 수재 약속이 담긴 계약서 파일까지 전송되어 있었다.증거는 완벽했다. 하지만 준우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아야 다시는 채원의 곁을 얼씬거리지 못할 터였다.오후 2시, 대성기획의 대회의실에서는 박 사장의 주재로 긴급 징계 위원회가 열렸다. 채원과 준우는 피고인 좌석에 앉아 있었고, 마 부장은 승리를 확신한 듯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김준우 사원, 자네가 한 팀장의 권한을 도용해 기획서를 유출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네. 할 말이 있는가?"박 사장의 무거운 질문에 준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부정하던 허리가 곧게 펴지며, 대회의실 안의 모든 공기를 압도하는 강렬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마 부장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사장님, 질문의 대상이 틀렸습니다. 기획서를 유출한 진짜 범인은 이 자리에 있습니다."준우는 노트북을 대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연결했다. 스크린 위로 마 부장의 원격 접속 로그 기록과 대진유통과 주고받은 이메일, 그리고 5억 원의 리베이트 계좌 내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이, 이게 뭐야! 이거 다 조작이야! 저 자식이 날 모함하려고 해킹한 거라고요!"마 부장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준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말
상황이 정리되자, 준우는 다시 평소의 부드러운 사원으로 돌아와 채원을 바라보았다. 채원은 준우의 완벽한 위기 대처 능력과 카리스마에 다시 한번 넋을 잃은 상태였다."준우 씨... 정말 대단하네요.""팀장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준우는 채원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워크숍의 밤은 깊어 갔고,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로맨스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간 두 사람 앞에는, 회사의 운명을 뒤흔들 거대한 음모가 기다리고 있었다.워크숍에서 돌아온 대성기획의 월요일 아침은 평소와 다른 기묘한 기류로 가득했다. 총무부의 공기는 유독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사내 연애의 달콤한 감정을 채 나누기도 전에, 회사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폭풍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한 팀장, 잠깐 사장실로 올라오게."오전 임원 회의가 끝나자마자 박 사장의 날카로운 호출이 떨어졌다. 채원은 불길한 예감을 감추며 사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 사장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 옆에는 영업부의 마 부장이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한 팀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번에 기획한 신제품 마케팅 전략 기획서가 경쟁사인 대진유통으로 고스란히 유출되었네. 대진에서 오늘 아침 우리와 똑같은 내용으로 특허 출원과 보도자료를 배포했어!"박 사장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서류 뭉치를 내던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종이들을 보며 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기획서는 총무부에서 최종 검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