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화 싸인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강윤아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강윤아는 두 사람처럼 비열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박미란은 차갑게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 눈에는 경멸의 눈빛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강범석을 바라보았다.

“여보, 당신이 좋은 마음을 품고 제안한 것인데 제가 보기에 윤아는 당신 성의를 받을 생각이 없어보이네요. 조금 전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다 들었어요. 윤아가 자발적으로 이 모든 것을 포기한 거 맞죠?”

박미란은 말하면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서류는 내가 이미 작성했어. 오늘 마침 여기서 만났으니 바로 사인하는 게 어때?”

‘조금 전 아빠는 분명 나를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우연히 만난 거라고?’

강윤아는 속으로 냉소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수아가 옆에서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가 이렇게 원한이 깊은 줄은 몰랐네? 아빠가 주는 물건이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그러면••••••, 언니가 가지지 않는 이상, 모두 내것이 되겠네?”

강수아는 의기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

원래 그녀는 강윤아에게 자진해서 재산을 포기하게 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할 줄 알았는데 그녀가 의외로 쉽게 포기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자 강윤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그제야 이들의 음모를 알아차렸다. 박미란은 분명 아주 일찍이 이 서류를 준비했을 것이다. 강범석이 그녀에게 자기 물건을 남겨주겠다고 했어도 두 모녀는 결국 어떻게 해서든 그녀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했을 것이다.

강윤아는 두 사람이 자기 앞에서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때, 강윤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강수아와 박미란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강윤아,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 마. 네가 조금 전 그렇게 말했으니 어서 이 서류에 네 이름을 사인해.”

박미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강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강윤아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한시라도 빨리 강윤아의 사인을 받고 일찍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강범석은 그런 박미란을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도 그녀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자신이 좋은 마음으로 강윤아에게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강윤아는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냉랭하게 필요 없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반응을 모두 지켜보던 강윤아는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박미란이 건네준 서류를 힐끗 쳐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강윤이가 바로 서류를 받는 모습에 박미란은 순간 얼굴빛이 환해졌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있기도 잠시, 이내 그녀의 얼굴은 다시 굳어버렸다.

“찌익-”

강윤아는 박미란이 건넨 서류를 보란듯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강수아는 강윤아가 박미란이 정성껏 만든 문서를 찢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강윤아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를 쳐다보더니,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이건 내가 가져야 할 내 몫이라고 말했잖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신들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요. 미안한데 전 상속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너••••••.”

강수아는 화가 나서 한 손으로 강윤아에게 손가락질하며 분노했다.

“선 넘지 마.”

“선을 넘는다고? 네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내가 선을 넘는다고 그래?”

강윤아는 강수아의 말이 우습기만 했다.

“우리 엄마가 저 지경이 된 것도 다 너희 둘 모녀 때문이겠지. 이렇게 하자. 앞으로 두 사람은 우리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기분을 봐서 이 서류에 싸인할게. 어때?”

“강윤아. 너 참 뻔뻔한 아이구나?”

박미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일찍이 서만옥을 강씨 가문에서 쫓아내고 싶었다. 몇 년 전 그녀는 강씨 가문에 성공적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었다. 때문에 박미란은 서만옥이 일찍 죽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어떻게 서만옥을 돌본단 말인가?

강윤아의 말에 강범석도 화가 나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강윤아,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준다 할때는 싫다 해놓고, 이제 와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강윤아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강범석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찌감치 강범석이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아무런 기대가 없는데 더 이상 무슨 실망이 필요하겠는가?

“제가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강윤아는 고개를 숙여 땅의 파편을 바라보았다.

“전 그저 저 사람들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 몹쓸 자식.”

그때, 강범석은 갑자기 손을 뻗어 강윤아를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손목의 통증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 손 놓으세요.”

“강윤아. 너는 지금 점점 더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아까는 너와 따지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꼈는데 지금 꼭 너에게 말해야겠어. 나는 네 아버지니까 너는 나를 마땅히 존중해야 해.”

강범석의 말에 강윤아는 피식 웃었다.

“당신이 제 아빠라고요? 아빠라는 사람이 외부인과 힘을 합쳐 자기 딸을 이렇게 대하나요? 웃기지 마세요.”

그러자 강범석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피가 거꾸로 솟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윤아, 5년 전에 네가 그런 짓을 해서 우리 강씨 가문을 망신시켰으니 내 체면이 어떻게 되었겠어?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할 자격이 없어. 그래서 이 서류에 싸인할 거야, 말거야? 태도 확실히 해.”

“제가 싸인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강윤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강범석은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강윤아가 조금전에 만났던 그 의사와 동료 몇 명이 황급히 다가왔다.

“뭐 하는 짓이에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강범석은 재빨리 강윤아의 손을 놓고 경고했다.

“이 일은 어쨌든 조만간 해결해야 할 일이니 스스로 잘 생각해봐.”

강윤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멍든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비꼬듯 웃었다.

“가자, 우린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강범석이 강수아와 박미란에게 말했다.

강수아는 차 뒷좌석 문을 열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윤아를 바라보았다.

“우리 언니, 내가 이미 조사해 보았는데 지난번 그 남자는 무려 권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었어. 그 분은 언니 같은 사람이 감히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 연극은 그런대로 괜찮았어. 아쉽게도•••••• 허점이 많았지만 말이야.”

강수아가 말했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