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세레나는 자신이 지금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부상당했다 해도 상대는 성체 설표의 두 배에 달하는 미확인 마물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사람 손목을 통째로 물어 부러뜨릴 수 있는 이빨을 드러내며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 마물의 꼬리를 잡았다. 왜. 연구자로서 확인해야 할 특징이 있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세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검은 설표의 몸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녀석이 이상할 만큼 정지해 있었다. 세레나는 꼬리를 잡은 채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러지?”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 설표의 귀가 아주 천천히 뒤로 젖혀졌다. 세레나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불쾌 행동.” 허리춤에 달아 둔 작은 기록판을 꺼내려 하자 뒤에서 요한의 기막힌 목소리가 날아왔다. “연구원님.” “네.” “지금 기록하실 때입니까?” “중요한 행동 반응이에요.” “제가 보기엔 저놈이 연구원님을 잡아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만.” 세레나는 설표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의식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손부터 놓으십시오!” “잠시만요.” 세레나는 꼬리를 조금 들어 보았다. 설표의 눈동자가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꼬리 끝에 은빛 고리무늬가 있었다. 오래된 문헌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단순히 색소가 다른 것이 아니라 털 한 올 한 올 끝부분에 은색 광택이 남아 있었다. 마력 반응일 가능성이 높았다. 세레나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이건 정말 아르젠 설표예요.” 요한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하죠.” “연구원님의 손목보다요?” 세레나는 잠깐 생각했다. “……둘 다 중요합니다.” 요한은 아예 대답을 포기했다. 그 순간. 탁. 검은 꼬리가 세레나의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어?” 설표가 꼬리를 몸 가까이 말아 넣었다. 아주 노골적인 거부였다. 세레나는 오히려 더 흥미로워졌다. “꼬리에 대한 방어성이 상당히 높은가 봐요.” 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알겠어. 안 만질게.” 세레나가 양손을 들어 보였다. 설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세레나는 아주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소리에 반응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레나는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상처만 볼게.” 설표의 귀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상처.” 세레나가 자기 옆구리를 가리킨 뒤 설표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피가 많이 나.”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허락인지, 아직 판단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레나는 최대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라시엘은 지금 당장 이 인간의 손목을 물어버리지 않은 자신의 인내심에 놀라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온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었다. 몸 안쪽을 긁어내는 듯한 마력 폭주. 왼쪽 옆구리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 그리고— 꼬리. 누군가 자신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감히. 라시엘 에른하르트의 꼬리를. 그것도 두 손으로. 평생 사람에게 몸을 함부로 내준 적이 없었다. 인간일 때는 더더욱 그랬고, 설표로 변했을 때는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웬 여자가 자기 꼬리를 들고 관찰하고 있었다. 표정은 심각했다. 눈은 빛났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내 논문.’ 라시엘은 분명히 들었다. 자신을 보고 논문이라고 했다. 그 뒤에 연구 대상이라고 정정하기는 했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여자가 가까이 있는 동안 몸속의 폭주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라면 완전 마물화 이후 한동안 정신이 흐릿해진다. 특히 최근에는 인간의 기억을 제대로 붙드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오늘은 달랐다. 눈을 뜬 순간부터 정신이 선명했다. 여자의 손이 머리와 목, 가슴을 지나갈 때마다 마력의 통증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기분 나쁘게도. 그래서 아직 물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살짝 건드릴 거야.” 여자가 또 말했다. 라시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살짝. 조금 전 자기 꼬리를 만지작거리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세레나가 옆구리 상처 주변의 털을 조심스럽게 갈랐다. 상처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날카로운 마력에 베인 흔적. 일반적인 짐승에게 생긴 상처가 아니었다. 세레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건 발톱 상처가 아닌데.” 요한이 멀찍이서 물었다. “뭘로 생긴 겁니까?” “마력 절단흔 같아요.” “마법사에게 공격당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마물의 마력 공격.” 세레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판을 꺼냈다. “측정해 봐야겠어요.” 라시엘의 시선이 수정판으로 향했다. 왕립연구소식 마력 측정기.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여자가 정말 연구원이라는 뜻이었다. 라시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왕립연구소. 황실 산하 기관. 가장 피하고 싶은 부류 중 하나였다. 정체를 들키면 곤란하다. 아니, 곤란한 정도가 아니었다. 에른하르트 가문이 삼백 년 동안 숨겨 온 비밀이 황실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라시엘은 천천히 앞발에 힘을 주었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몸이 말을 들을 정도로만 회복되면— “움직이지 마.” 세레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라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명령? 자신에게? 세레나는 그런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움직이면 상처 더 벌어져.” 낮은 으르렁거림. “화내도 안 돼.” 더 낮은 으르렁거림. “네가 무서운 건 아는데.” 라시엘은 순간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섭다고? 이 여자가? 그의 앞에서 꼬리를 잡고 가슴을 만지며 상처를 헤집은 주제에? 세레나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라시엘은 처음으로 조금 당황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거짓이 없었다. 연구 대상을 잃기 싫어서 하는 말인가 싶다가도, 눈빛을 보면 조금 달랐다. 세레나는 가방에서 소독약과 붕대를 꺼냈다. “요한, 이쪽으로 조금만 와 주시겠어요?” “싫습니다.” “붕대만 잡아 주세요.” “싫습니다.” “두 배 드릴게요.” “얼마나 가까이 가야 합니까?” 세레나는 잠깐 웃었다. “저 뒤까지요.” “그 정도면 할 만합니다.” 요한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라시엘의 눈동자가 곧바로 그에게 향했다. 크르르르. 요한이 멈췄다. “연구원님.” “네.” “저놈이 저 싫어합니다.” “아직 낯설어서 그럴 거예요.” “연구원님도 낯선 사람 아닙니까?” 세레나는 설표를 바라봤다. “그러게요.” 이상했다. 자신이 가까이 있을 때는 분명 경계하면서도 실제로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한이 다가오자 훨씬 강한 경고 반응을 보였다. “나한테는 덜 공격적인데.” 세레나가 중얼거렸다. 라시엘은 코웃음이라도 치고 싶었다. 덜 공격적인 게 아니라 참는 중이었다. 세레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소독약을 열었다. “따가울 거야.” 약이 상처에 닿는 순간 라시엘의 몸이 움찔했다. 턱 근육이 굳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세레나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렸다. “굉장히 잘 참네.” 라시엘은 눈을 감았다. 저 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면 당분간 반응을 줄이는 편이 낫겠다. “착하다.” 라시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세레나가 멈칫했다. “……또 그 말 싫어?” 으르릉. “알았어. 안 할게.” 세레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위험한 마물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겠지만, 녀석의 반응이 지나치게 명확했다. “그럼 뭐라고 부르지.” 라시엘의 귀가 움직였다. 세레나는 상처를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아르젠 설표라고 매번 부르기에는 길다. 임시 개체명은 필요했다. 고대종 표본 번호를 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살아 있는 개체에게 숫자를 붙이는 것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으니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라시엘은 눈을 떴다. 세레나가 설표의 검은 털을 바라봤다. “까망이.” 라시엘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요한조차 뒤에서 조용해졌다. “……연구원님.” “왜요?” “저 전설적인 마물한테 붙일 이름이 그겁니까?” “임시 이름인데요.” “좀 더 위엄 있는 이름은 없습니까?” 세레나는 설표를 보았다. 녀석은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얘는 까망이가 잘 어울리는데.” 라시엘은 결심했다. 회복하면 가장 먼저 이 여자를 북부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연구소도 폐쇄하게 만들— ‘폐쇄.’ 문득 아까의 말을 떠올렸다. 이 여자는 자신의 연구실이 폐쇄될 예정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황실이 보낸 감시자는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라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세레나는 그 변화를 놓쳤다. “좋아, 까망이. 이제 붕대 감을게.” 크르릉. “싫어도 해야 돼.” 크르르릉. “네.” 요한이 중얼거렸다. “이름 싫다는 뜻 같습니다.”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럴 일은 없다. 라시엘은 확신했다. ⸻ 치료를 끝낸 뒤 문제가 생겼다. 아르젠 설표—세레나가 멋대로 까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개체—를 어디에 둘 것이냐였다. 요한의 대답은 단순했다. “여기 두고 갑시다.” “안 돼요.” “왜요?” “이 상태로 두면 죽을 수 있어요.” “치료했잖습니까.” “응급 처치만 했어요. 출혈은 잡았지만 열이 높고, 상처에 남은 마력 반응도 이상해요.” “그럼 대공성에 알립시다.” 세레나가 잠깐 망설였다.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았다. 이 지역은 에른하르트 대공령이다. 위험하거나 희귀한 마물이 발견되면 영주에게 보고할 의무도 있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설표를 바라봤다. 대공성에 넘겼을 때 이 개체가 안전할까? 희귀 마물은 언제나 연구 가치와 사냥 가치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아르젠 설표라면 더 심했다. 멸종종의 살아 있는 개체.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학계뿐 아니라 귀족들과 황실까지 움직일 것이다. 누군가는 연구하겠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소유하겠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죽을 탐낼 수도 있었다. 세레나의 얼굴이 굳었다. “우선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요한이 그녀를 바라봤다. “어디로요?” “임시 연구소.” 세레나는 북부 조사 기간 동안 빌린 별채를 떠올렸다. 대공령 외곽에 있는 오래된 사냥꾼 숙소를 연구소에서 임시 현장기지로 쓰고 있었다. 사람도 거의 오지 않는다. “저놈을 숙소로 데려간다고요?” “네.” “연구원님.” 요한이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아까 머리를 다치셨습니까?” “안 다쳤어요.” “그럼 왜 저런 결론이 나옵니까?” “치료를 계속해야 하니까요.” “밤에 연구원님 잡아먹으면요?” 세레나는 설표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이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안 그럴 것 같은데.” 라시엘은 눈을 떴다. 무슨 근거냐. 세레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물었잖아요.” 그건 내가 참은 거다. “사람을 공격하려는 의도도 강하지 않고.” 그것도 내가 참은 거고. “무엇보다 제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아요.” 라시엘의 시선이 멈췄다. 세레나는 몸을 조금 숙였다. “그렇지?” 둘의 눈이 마주쳤다. 라시엘은 일부러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세레나가 미간을 좁혔다. “아까는 알아들은 것 같았는데.” 라시엘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정체를 들킬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몸이 회복되면 밤이 끝나기 전에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다음 조용히 사라지면 된다. 이 여자는 살아 있는 아르젠 설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증거는— 라시엘의 시선이 세레나의 가방으로 향했다. 털. 혈액. 마력 측정 자료. ……생각보다 많았다. 없애야 한다. 전부. 라시엘은 속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일단 따라간다. 회복한다. 증거를 회수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때 세레나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라시엘의 생각이 끊겼다. “널 해칠 사람한테 안 넘길게.”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검은 털을 누르지도 않고, 귀 뒤를 아주 천천히 긁었다. 순간. 라시엘의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일어났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근육이 아주 조금 풀렸다. 마력의 통증도 옅어졌다.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라시엘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세레나는 그걸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봐요.” 그녀가 요한에게 소곤거렸다. “눈 감았어요.” “졸린 거 아닙니까?” “아니요. 귀 뒤쪽 촉각 자극에 경계가 완화되는 것 같아요.” 손가락이 한 번 더 움직였다. 라시엘은 몸을 굳혔다. 세레나의 눈이 빛났다. “이건 기록해야겠다.” 라시엘이 눈을 떴다. 세레나는 이미 기록판에 적고 있었다. 「관찰 01. 귀 뒤쪽을 긁어 주면 경계심이 현저히 낮아짐. 친화 행동 가능성 있음.」 라시엘은 자신이 아까 세운 계획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증거를 회수한 뒤. 저 기록판도 없애기로. ⸻ 임시 연구소까지 돌아오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부상당한 거대한 설표를 직접 걷게 할 수 없어 요한이 마을에서 썰매와 말을 구해 왔다. 라시엘은 처음에는 썰매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정확히는 북부 대공인 자신이 짐승처럼 썰매에 실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러나 세레나가 상처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걸으면 다시 터져.” 라시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 돼.” 으르릉. “으르렁거려도 안 돼.” 라시엘의 눈이 서늘해졌다. “요한, 옮겨 주세요.” “제가요?” “혼자 못 들어요.” “저도 못 듭니다.” 결국 요한과 마을 사람 둘을 더 불러야 했다. 남자 셋이 긴장한 얼굴로 다가오자 라시엘이 이빨을 드러냈다. 모두가 동시에 물러났다. “……연구원님이 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이걸 어떻게 들어요?” 라시엘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렇게 곤란한 줄 알면 그냥 걸어가게 두— “그럼 유도해야겠네요.” 세레나가 먼저 썰매 위에 올라갔다. 라시엘의 표정이 굳었다. “까망이.”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이리 와.” 라시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레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여기.” 그리고 손바닥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머리 올리고 누우면 안 흔들릴 거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요한이 세레나를 바라봤다. 설표도 세레나를 바라봤다. 라시엘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를. 어디에? 세레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올라와.” 당연히 안 간다. 절대로. 북부 대공 라시엘 에른하르트가 이름도 모르는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 채 썰매를 타고 이동한다? 그럴 리가— 십 분 뒤. 썰매가 눈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라시엘은 눈을 감은 채 세레나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있었다. 죽고 싶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썰매의 진동이 생각보다 심했고, 세레나의 몸 가까이에 있을수록 마력도 빠르게 안정됐다. 그뿐이다.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 위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춥지?”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귀가 담요 아래로 살짝 눌렸다. “귀는 빼 줘야겠다.” 세레나가 담요 사이에서 귀를 꺼내 주었다. 손끝이 귀 끝을 스쳤다. 라시엘의 몸이 순간 굳었다. 세레나는 바로 기록판을 들었다. “귀 접촉에도 민감—” 탁. 라시엘의 꼬리가 기록판을 쳤다. 툭. 판이 눈 위로 떨어졌다. 세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요한이 앞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요.” 세레나가 설표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설마.” 라시엘은 못 들은 척했다. 세레나가 눈 위에서 기록판을 주워 다시 품에 넣었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람 말 알아듣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라시엘의 귀가 움직이지 않았다. ⸻ 별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세레나는 가장 먼저 벽난로부터 피웠다. 오래된 사냥 별채였지만 연구 장비를 들여놓으면서 내부는 제법 쓸 만해졌다. 침실 하나, 작은 거실, 간이 연구실. 문제는 설표를 어디에 눕힐지였다. “여기.” 세레나는 벽난로 옆에 두툼한 담요를 여러 장 깔았다. 라시엘은 그것을 내려다봤다. “네 자리야.” 라시엘은 다시 세레나를 봤다. “따뜻하지?” 세레나는 만족스럽게 손바닥으로 담요를 두드렸다. 북부 대공의 자리라고 하기에는 처참했다. 그래도 오늘 밤만 참는다. 라시엘은 천천히 그곳에 누웠다. 세레나는 바로 옆에 앉아 마력 측정기를 꺼냈다. “이제 제대로 봐야겠다.” 라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측정기의 수정판이 그의 가슴 가까이 다가왔다. 은빛 빛줄기가 검은 털 위를 훑었다. 수치가 떠올랐다. 세레나는 처음에는 평범하게 받아 적었다. 체온. 맥박. 잔존 마력. 그러다가. 손이 멈췄다. 수정판 위에 나타난 파형이 이상했다. “……뭐야.” 한 번 더 측정했다. 같았다. 세레나의 표정이 달라졌다. 라시엘은 그녀의 눈빛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뭔가 들켰다. 세레나가 수정판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마력핵 위치가…….” 그녀의 손이 천천히 그의 가슴으로 향했다. 라시엘은 숨을 멈췄다. 세레나는 검은 털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쿵. 심장 박동. 그 주변을 둘러싸듯 움직이는 마력.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주 희미하게. 마물의 마력 아래에 다른 구조가 있었다. 세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상해.” 라시엘의 몸이 긴장했다. “마물의 마력핵이 아니야.” 그녀는 조금 더 깊이 마력을 읽었다. 그리고 순간 숨이 멎었다. 심장과 연결된 마력 회로. 사지로 뻗어 나가는 흐름. 너무 규칙적이었다. 마물보다 훨씬 복잡하고. 너무 익숙했다. 세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이건…….” 라시엘의 회색 눈이 그녀를 응시했다. 세레나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인간의 마력 회로랑 비슷하잖아.”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굳었다. 라시엘의 동공이 좁아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창밖 너머, 깊은 설원에서 낮고 긴 종소리가 울렸다. 댕— 댕— 댕— 에른하르트 대공가에서만 사용하는 비상종이었다. 북부의 주인이 사라졌을 때 울리는 종. 라시엘은 눈을 감았다. 벌써 찾기 시작했군. 세레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종이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둘이 아니었다. 수십 기. 누군가 설원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세레나가 방금 주워 온 바로 그 검은 설표였다.그때.북부 대공성에서 긴급 통신이 들어왔다.세린이었다.『세레나 님!』세레나가 바로 수정구를 열었다.“무슨 일입니까?”세린의 얼굴이 창백했다.『말씀하신 대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쪽 별관 아래에서 갑자기 반응이 시작됐어요.』“어떤 반응이죠?”『문이 생겼어요.』세레나의 손이 멈췄다.“누가 열었습니까?”『아무도요.』세린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돌렸다.동쪽 별관의 오래된 복도.그 끝.원래는 평범한 돌벽이어야 할 자리에.검은 문이 나타나 있었다.문 위에는 은빛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WHO WILL OPEN THE DOOR?」그리고.그 아래.새로운 문장.「THE KEY HOLDER HAS REFUSED」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마티아스의 6년 전 거부가.아직도 남아 있었다.그런데 문은 열리고 있었다.“세린, 모두 물러나세요.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네!』그 순간.문 아래에서 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SECONDARY ACCESS HOLDER DETECTED」세레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누구입니까?”세린이 화면을 확대했다.은빛 글자가 천천히 바뀌었다.「OBSERVER AUXILIARY ACCESS」「CURRENT CANDIDATE : SERENA BRIEL」세레나의 얼굴이 굳었다.자신의 이름.그러나.그녀는 지금 NODE XII에 있었다.대공성의 문 앞에 있지도 않았다.접근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그런데 시스템은 그녀를 보조 접근 후보로 지정하고 있었다.라시엘이 낮게 물었다.“네가 열쇠라는 건가?”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그녀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봤다.“정확히는 저를 열쇠로 사용하려는 겁니다.”그때.검은 문 위에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CANDIDATE CONSENT : NOT REQUIRED」세레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또.같은 방식이었다.권한이 있다는 이유로.그 사람의 선택을 건너뛰고.문을 열려고 한다.세레나는 즉시 렌에게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어요.”「뭔데?」“세라가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셨죠?”「응.」“혹시 세라가 당신에게 남긴 다른 말이 있습니까?”아래에서 한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그러다.「하나 있어.」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슨 말입니까?”「문을 열기 전에 대답을 들으라고 했어.」“누구의 대답이요?”「안에 있는 사람.」세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이해합니다.”「아니.」아래의 목소리가 조금 선명해졌다.「문 안에 있는 사람 말고.」세레나의 손이 멈췄다.“그럼.”「문을 열려는 사람.」잠시 침묵.「그 사람한테도 물으라고 했어.」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엇을요?”「정말 열고 싶은지.」세레나는 잠시 생각했다.문 안의 사람이 나가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하다.그러나 문을 여는 사람에게도 선택이 필요하다.그 행위가 위험하다면.문을 여는 사람 역시 자기 의사와 책임을 알아야 한다.“세라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압니까?”「응.」“무엇입니까?”「옛날에는 문을 여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대.」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야 했고, 문을 열고 나면 그 안에서 나온 걸 책임져야 했대.」BRIEL.KALT.HOLDER.OBSERVER.역할.권한.의무.그 모든 것과 연결되는 말이었다.세레나는 천천히 물었다.“그러니까 문을 여는 사람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응.」그 존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열쇠가 있다고 해서 열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세레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기록했다.다음 날 아침, 세레나는 마티아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심박 안정.체온 35.8도.KALT 유지선 반응은 전날보다 낮았다.다만 기억 연속성은 여전히 불안정했다.“오늘은 실제 분리 실험을 하지 않습니다.”마티아스가 고개를 들었다.“왜?”“어제 경계 고정 회로를 조사할 때 당신의 접근키가 자동으로 반응했어요. 먼
루시가 옆에서 말했다.『그런데 240년 전 도면에 이상한 표시가 있어요.』작은 원형 문양이었다.원 안에 짧은 선 두 개.세레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본 표본 기록을 떠올렸다.검은 유리 같은 마력석.은빛 선.그리고 외부 마력을 받으면 같은 파형을 약화 없이 전달하던 구조.“렌, 7번 표본장의 검은 유리 표본과 비교해 주세요.”『응.』두 문양이 겹쳐졌다.형태 유사도 92.1%.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중계 장치 계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시엘이 물었다.“그럼 그 방 아래에서 수도 연구소까지 신호를 보냈다는 건가?”“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연결 경로가 확인되지 않았어요.”세레나는 세린에게 말했다.“지금은 공간을 열지 말고, 별관의 마력관 사용 기록만 확인해 주세요. 특히 제가 북부에 온 뒤부터요.”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기록이 나타났다.세레나가 북부에 도착한 날.동쪽 별관 마력관 사용량이 평소보다 3.8% 증가했다.그날 밤.검은 설표를 침대에 눕힌 직후.사용량이 다시 증가했다.그리고 라시엘이 인간으로 돌아온 새벽.별관 아래에서 아주 짧은 신호가 발생했다.「BOUNDARY RESPONSE DETECTED」세레나의 손이 멈췄다.“당시 저는 별관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라시엘이 그녀를 바라봤다.“나도 몰랐다.”“그렇다면 그때 신호가 발생한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렌이 과거 기록을 더 확대했다.신호 발생 시각.라시엘의 인간형 복귀 시각과 거의 일치했다.그러나 정확히 같은 시각은 아니었다.경계 반응이 먼저 발생했고.그로부터 11초 뒤.라시엘의 형태가 안정됐다.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11초.”라시엘이 물었다.“그게 중요한가?”“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전하가 돌아온 결과로 신호가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순서가 반대예요.”그녀는 곧바로 다른 가능성을 적었다.별관 아래의 경계 기록이 라시엘의 변화를 도왔을 수도 있다.라시엘이 변하기 직
북부 대공성 동쪽 별관의 지하에는 공식 도면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정확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록된 공간이었다.세레나는 NODE XII에서 전달받은 좌표를 세 번 확인한 뒤 북부 대공성의 건축 도면을 불러왔다. 동쪽 별관은 약 240년 전 증축됐고, 그 아래 지반은 자연 암반으로 표시돼 있었다. 지하실도, 배수로도, 비밀 통로도 없었다. 그러나 607년 전 관찰자 세라의 마지막 경계 흔적은 분명히 그 암반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더 이상한 점은 그 신호가 현재도 활성 상태라는 사실이었다.“렌, ACTIVE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부터 확인해 주세요.”『경계 기록이 지금도 응답하고 있다는 뜻이야.』“현재 살아 있는 사람이 응답하는 겁니까?”『그건 몰라.』“독립 자기 인식은요?”『아직 확인 못 했어.』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기록 장치가 자동으로 응답해도 시스템에는 ACTIVE라고 표시될 수 있었다. 누군가 그 기록을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과거의 신호가 다른 회로를 통해 반복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 세라가 살아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라시엘은 화면에 나타난 별관 도면을 한동안 바라봤다.“그 방이라면 기억한다.”세레나가 그를 돌아봤다.“제가 까망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사용했던 방이죠?”“그래.”“전하가 사람으로 돌아온 뒤 제 침대에 누워 계셔서 제가 굉장히 놀랐던 곳이기도 하고요.”라시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놀랐던 정도였나?”“제 연구 인생에서 가장 큰 혼란 중 하나였습니다.”“그런데 날 쫓아내지는 않았지.”“환자였으니까요.”“그 뒤에도.”세레나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그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죠.”“어떻게?”“환자가 자꾸 연구원의 허리를 잡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으니까요.”옆에서 장비를 정리하던 카른이 손에 든 금속 고리를 떨어뜨렸다.챙그랑.세레나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카른 경, 괜찮습니까?”“예. 아주 괜찮습니다.”“안색이 좋지 않은데요.”“연
「누가 나를 여기 넣었는지부터 알려 줘.」NODE XII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문장은 짧았지만, 세레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낸 기록은 대부분 누군가를 살리거나 되돌리겠다는 명목으로 작성돼 있었다. FIRST HEART를 복원한다는 명령도, 아르젠-1에서 사람을 꺼내겠다는 시도도, 오래된 역할을 후임자에게 넘기려던 규칙도 모두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언제나 가장 나중에 확인됐다.이번에는 순서를 바꿔야 했다.세레나는 측정기를 내려놓고 닫힌 문을 향해 자세를 바로 했다.“질문을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저희가 가진 기록만으로는 누가 당신을 이곳에 넣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모른다고?」“네. 당시 사용된 권한은 확인했지만 실제로 명령을 내린 사람과 당신을 옮긴 사람이 같은지도 모릅니다.”「그럼 왜 왔어?」세레나는 잠깐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온 이유는 최종 거부권을 확인하고, 루시안의 상태를 살피고, 마티아스가 NODE XII를 떠나지 못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COMPANION HEART XII의 마지막 반응을 추적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 아래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은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처음부터 당신을 찾으러 온 건 아닙니다. 이곳의 오래된 권한과 경계 기록을 조사하러 왔다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그럼 나를 꺼내러 온 것도 아니네.」“네.”「……이상하군.」“무엇이요?”「여기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꺼내겠다고 했는데.」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이전에 누군가 찾아왔습니까?”「여러 번.」“직접 만났습니까?”「아니.」“대화는요?”「나를 꺼내면 모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어.」세레나는 즉시 렌을 바라봤다. 렌은 이미 NODE XII의 오래된 출입 기록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고개를 젓자 탐색 범위를 바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을 여는 방법이 아니라, 누가 이 존재를 어떤 목적
세레나는 화면에 떠오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처음에는 번역 오류를 의심했고, 두 번째에는 앞뒤 문장이 빠졌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조금 전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세라는 아르젠-1로 돌아가고 싶었다.그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사실이었다.그러나 세라가 돌아가기 위해 AMENDMENT 04를 잠갔다는 것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렌, 마지막 문장은 그대로 두고 승인 범위를 보여 주세요.”『승인 범위?』“세라가 무엇을 원했는지와 실제로 어떤 명령에 동의했는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방금 나온 건 승인 사유에 첨부된 문장이지, 실행 명령 전체가 아니잖아요.”렌의 빛이 잠시 흔들렸다.『맞아.』세레나는 관찰일지를 펼쳤다. 조금 전까지 자신도 세라가 스스로 만든 안전장치를 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록이 실제로 증명하는 건 그보다 좁았다. 세라의 이름으로 된 관찰자 인증이 있었고, 그 인증을 이용해 AMENDMENT 04가 잠겼으며, 세라가 아르젠-1로 돌아가고 싶다는 문장을 남겼다는 것뿐이었다.“당사자가 원한 것과 시스템이 실행한 일이 같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라시엘이 옆에서 물었다.“그럼 세라가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건가?”“그럴 수도 있고, 일부에만 동의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말 잠그는 데 동의했을 가능성도 남아 있어요. 지금은 어느 쪽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NODE XII 아래에서 전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세라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세레나는 닫힌 문을 바라봤다.“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그 사람이 얼마나 화냈는지 봤으니까. 아르젠-1에서 나왔을 때도, 자기 동의 없이 꺼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때도, 다시는 누구에게도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내가 옆에 있었어.”“그렇군요.”“그러니까 세라가 그 규칙을 없앴을 리 없어.”세레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차분히 대답했다.“그 기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라가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