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대전에 갇혀 있던 노자들은 태허노도의 말에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젠장. 한 사람이서 우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니. 우리가 뭐 장난감도 아니고. 어디까지 얕보는 거야.’그들은 화가 잔뜩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진법에 갇힌 이후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지만, 도무지 진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그러니 그들은 어쩌면 정말 태허노도의 심심풀이 상대가 된 걸지도 몰랐다.“그럼... 스승님,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이도현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는 태허산에서 내려온 이후로 이렇게 꾸중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선배들은 그에게 애꿎은 장난을 치거나 험한 말을 하곤 했지만, 한 번도 그를 나무라거나 때린 적이 없었다.그런데 태허노도에게 욕도 먹고 머리통까지 얻어맞으니 실로 말문이 막혔다.“빨리 꺼져. 그리고 내가 했던 말을 명심해라.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전부 처리해.”태허노도가 살기를 품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또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주를 잘 보호해야 한다. 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손주는 털끝 하나 다치면 안 돼. 그리고 너의 셋째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영영 돌아오지 마. 우리 사문에 자기 여자조차 지키지 못하는 놈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 가봐...”태허노도는 이도현에게 겁을 줬다.“헐...”이도현은 또 말문이 막혔다. ‘선배가 임신한 지 몇 주인데 벌써 손주라고 생각하는 거야? 스승이 산부인과 의사도 아니고... 아. 아니다. 의사가 맞긴 하지. 그것도 산부인과보다 의술이 더 뛰어난 의사. 기구를 쓰지 않고 맥만 짚어도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거뜬히 보아낼 수 있는 사람이지.’왜냐하면, 이도현도 스승에게서 그런 의술을 배웠기 때문이다.“예... 예... 스승님의 말이 다 맞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면 될 거 아니에요?”이도현은 꾸지람을 너무 들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빨리 꺼져.”태허노도는 손을 휙 저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옆에 있던 양주희
탁.이도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허노도는 손바닥으로 그의 뒷머리를 후려쳤다.“내 얘기가 말이 안 돼? 네가 과학을 믿어? 네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언제 말이 됐어? 네 놈의 주먹 한 방이 규제 무기보다 센 건 말이 되고? 그리고 네 몸에 용골이 융합된 건 말이 되냐? 이 멍청한 자식아, 이 세상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도 겪을 만큼 겪었으면서 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 진짜 답답해서 미치겠네.”탁.“과학.”탁.“그놈의 과학 타령.”탁. 탁. 탁.“언제까지 과학만 믿을 건데. 이 자식아.”태허노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이도현의 뒤통수를 연신 때리며 말했다.“아... 스승님... 그만... 이제 그만 하세요... 스승님, 제발 멈춰주세요. 아... 스승님, 머리 좀 그만 때리세요. 저도 체면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발 그만 하세요...”이도현은 머리를 감싸고 도망쳤다.“그러니까 누가 너더러 과학 타령하래? 썩 꺼지지 못해...”태허노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아니, 스승님. 말은 똑바로 해야죠.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저를 만나기만 하면 선배들의 운명이 바뀌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를 만났던 사람들의 운명이 전부 바뀌었다는 건가요?”이도현이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아직도 못 믿겠다는 거야? 그럼 네 놈 스스로 생각해봐. 너랑 가까이 지낸 사람들의 운명이 정말로 바뀌지 않았는지. 네 놈 부하 중에 신영성존 즉 이신영이라는 자는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천급 경지의 무사로 살았을 거야. 그런데 지금 벌써 황급계 강자로 거듭났잖아. 그리고 문지해의 경우, 황급계도 돌파하지 못하고 벌써 죽었을 사람이 아직 멀쩡히 살아 있잖아.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그래서 문지해와 신영성존은 그 대가로 각각 아들을 잃었어.”“조씨 가문의 그 아가씨도 하마터면 집안이 망할 뻔했잖아. 그런데 너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됐어? 그리고 한씨 가문의 그 계집애도 선천성 심장병
이도현은 스승의 갑작스러운 꾸지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이도현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비록 선배들이 이번에 공격당한 것은 그와 관련이 있지만, 선배들의 운명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 저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천벌을 아랑곳하지 않고 선배들의 운명을 바꾼 건 스승님이잖아요. 그런데 왜 저를 탓하시는 거예요?”이도현은 어안이 벙벙했다.“이 망할 놈아, 내가 널 때려 죽여도 모자랄 판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네가 뭘 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이 빌어먹을 자식. 내가 왜 너 같은 말썽꾸러기를 제자로 받아들여서 이 고생을 하는지... 처음에는 괜찮은 녀석인 것 같아서 제자로 받아들였는데 네가 태허산을 떠난 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 어쩜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쳐? 그것도 모자라 네 선배의 운명까지 전부 바꿔버리고.”“난 네 선배를 태허산으로 데려온 후 큰 대가를 치르고 운명을 싹 바꿔 놓았어. 자그마치 내 수십 년의 수명으로 말이다. 난 네 선배가 평생 건강하고 순조롭게 살기만 바랐어. 그리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수련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지. 하지만 네 놈이 하산 후 선배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면서 변수가 생겼어. 네가 연주를 만난 후로 연주의 운명에 변화가 생겼고, 연진이를 만난 후로 연진이의 운명에도 변화가 생겼어. 한두 번쯤은 우연이라고 칠 수 있지만, 매번 네 놈을 만나면 네 선배의 운명이 꼭 바뀌었어. 얼마 전에도 네 놈이 이정을 만나니까 그 뒤로 이정의 운명이 바뀌었어.”“내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바꾼 운명이... 너를 만나면서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되어버렸어. 내 모든 노력이 다 헛되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네 탓이 아니라고? 이건 분명 너와 상관이 있어. 게다가 너 때문에 난 이제 네 선배의 운명을 아예 예측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널 욕하지. 아니면 내가 누굴 욕해?”이도현이 억울한 말투로 되묻자
“남궁소이, 당신 정말 그렇게 자신 있어? 그런데 인간의 운명은 환경이나 접한 사람에 따라 바뀌는 거잖아. 너희 태허산의 팔괘가 아무리 대단해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하하하. 당신은 그냥 기다렸다가 제자들의 뒷일이나 처리해. 우리는 이미 살 만큼 살았고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당신의 여제자들과 함께 죽을 거야. 그러니 딱히 손해 볼 것도 없어. 대신 우리를 풀어주고 요구했던 것들을 순순히 내놓는다면 네 제자를 건드리지 않을게.”진법에 갇혀 있는 한 노자가 말했다.“하하하. 당신들도 운명이라는 걸 좀 아나 본데... 맞아. 사람의 운명은 때때로 바뀌는 법이야. 만나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그래서 중간 과정은 살짝 바꿔도 되지만 마지막 결말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수 있거든. 하지만 우리 태허산은 그 결말까지도 바꿀 수 있어. 그깟 천벌은 조금도 두렵지 않거든. 그러니 당신들은 쓸모없는 말 그만하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기나 해. 날 잡아서 내 제자를 협박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예전에 당신들의 조상조차 얻지 못했던 걸 어디 감히 넘봐... 참 웃기는 놈들이다.”태허노도는 진법에 갇혀 있는 노자들을 한바탕 훈계하고는 고개를 돌려 이도현 일행이 숨어 있는 방향을 쏘아보았다.“세 꼬마, 어서 나오지 못해?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거냐?”“스승님... 말이 참 거칠어요.”“맞아요. 저희가 막무가내로 나오면 스승님에게 지장이 있을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요.”“스승님, 말 가리지 않는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이도현, 양주희와 이추영은 얼굴을 비추고 스승을 향해 투덜거렸다.원래 선배들의 안전이 걱정되던 세 사람은 방금 스승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들의 스승이 선배들에게 별문제 없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꺼져. 빨리 가서 너희 선배들이나 구해. 계속 거기 서 있다가 선배들이 정말 죽는다. 이 철없는 꼬마들아.”태허노도가 이렇게 말하자 다들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다.“네? 스승님, 그
“도현 후배, 왜 그래?”양주희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스승님도 사람들에게 포위당한 것 같아요.”이도현이 엄숙하게 대답했다.“그럼 빨리 가서 스승님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빨리 가자...”양주희와 이추영이 급하게 소리치며 이도현을 재촉했다.이도현은 아무 말 없이 곧장 태허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그리고 고작 한순간에 태허산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7~8명의 백발 노자가 진법 안에 갇혀 죽을힘을 다해 반격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강력한 공격이 진법에 닿는 순간 솜털처럼 흩어져 버렸다.“하하하. 이 늙은 놈들아, 힘을 그만 낭비해. 이 태극대전은 우리 태허산의 시조가 전해 내려온 진법이야. 수천 년 동안 아무도 깨지 못한 이 진법을 너희 따위가 깰 수 있을 것 같아? 꿈 깨... 너희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 진법에 실질적인 공격을 가하지 못할 거다. 너희들의 공격은 진법에 닿기 전에 무산될 거든. 그러니 애쓰지 말고 죽기를 기다리기나 해. 어디서 그깟 실력으로 나를 잡으려 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내가 책을 보는 데 방해됐잖아.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세 사람은 허공에서 날라리처럼 주절거리는 태허노로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자기네 스승이 언제쯤 저 양아치 같은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도사라는 양반이 입만 열면 비속어나 말하니 세 사람은 그의 제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남궁 영감, 좋은 말로 할 때 우리를 당장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들이 아주 처참하게 죽을 거야.”“맞아. 당신의 큰 제자가 이미 우리 손아귀에 있어. 네가 이렇게 나오면 우리 사람들이 너의 제자를 죽일지도 몰라.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어?”“남궁 놈아, 그거 알아? 이번에 출동한 사람은 전부 회도경지 이상의 강자야. 그게 무슨 뜻이겠어?”“좋은 말로 할 때 우리를 순순히 풀어주고 너의 제자더러 용골과 곤륜옥을 내놓으라고 해. 그리고 음양탑과 음양검도 전부 내놓으면 우리가 선심을 써서 태허산을 살려둘 수도
이도현은 무표정으로 그 말을 한 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고무계에서 세속 세계로 통하는 결계를 향해 질주했다.양주희와 이추영은 이도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디찬 기운에 소름이 쫙 끼쳤다.그녀들은 이도현이 지금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왜냐하면, 이도현은 화가 날수록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그 사람들은 이도현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도현은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살기를 끌어모았기에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는 적을 만났을 때 모든 분노와 살기를 한꺼번에 터뜨릴 계획이었다. 그때가 되면 누구도 그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이도현은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그는 선배들을 해진 자들을 모두 죽이고 그자들의 가족, 사문 그리고 나라까지 모두 멸망시키고 싶었다.만약 그의 선배 중 한 명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면 그는 그 사람들을 나락으로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가족과 나라까지 연루할 작정이었다.만약 그의 여덟째 선배와 열 번째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도현은 그 사람들의 집안을 멸망시킬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처참히 살해할 것이다.이도현은 언제나 보살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의 소중한 물건을 건드린다면 그는 상대를 송두리째 뽑아버리곤 했다. 절대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다.왜냐하면, 전부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니까.그들은 이도현의 보물을 얻고 곤륜옥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지만 그를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선배나 가족으로 그를 협박한 것이었다.그들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도현의 가족을 건드렸다. 그러니 이도현도 그들의 가족을 죽여 같은 방식으로 갚아줄 뿐이었다.이도현은 인상을 쓴 채 공중에서 순간이동 하듯 움직였다.그의 품에 안겨 있는 양주희와 이추영은 얼굴이 칼에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주변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두 사람은 이도현의 실력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이건 그녀들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