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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고약한 냄새들이 존재한다. 부패한 음식물의 들큰한 악취, 여름날 하수구에서 거품과 함께 올라오는 찌린내, 혹은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가 아스팔트 위에서 썩어가는 메스꺼운 냄새 같은 것들. 하지만 강도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냄새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무색무취에 가까웠으나, 그의 예민한 후각에는 그 어떤 고리타분한 악취보다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바로 진실이 은폐된 무지의 냄새였다.
국립대 이공계의 수재, 학부생 시절부터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리던 천재, 수많은 대기업의 연구소 러브콜을 마다하고 그가 선택한 곳은 환경 폐기물 처리 전문 기업 ‘미래환경솔루션’이었다. 최연소 수석 연구원. 그것이 현재 도진의 어깨에 달려있는 무거운 타이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사명감에 불타는 청년 환경운동가쯤으로 여기며 칭송했지만, 그것은 지독한 오해였다. 도진은 그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수지가 맞아떨어지는 화학 방정식을 사랑했을 뿐이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거부반응의 현장이었다. 벤젠 고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질소 산화물이 엉겨 붙어 있고, 맑은 산소가 필요한 곳에 황화수소가 가득 차 있는, 이 미친듯한 무질서와 불균형. 도진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오염된 분자 구조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흐트러진 수치를 정돈하는 것에 거의 변태적인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숭고한 정의감이라기보다는 편집증적인 정돈 습관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 정돈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 수석, 이봐, 좀 유연하게 생각하라고. PPM 단위 몇 개 좀 넘는다고 당장 지구가 멸망하나? 우리 회사가 망하면 당장 이 지역 실업 인원이 몇 명인지, 그 가족들의 생계가 어떻게 될지 생각은 안 해?”
윤 상무의 목소리는 기름졌다. 그의 잘 가꾼 수트 위로 흘러넘치는 뱃살처럼, 그리고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난분해성 폐수의 페놀 수치처럼.
도진은 눈앞의 트리플 모니터에서 쉴 새 없이 스크롤 되는 데이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유연성은 고무줄에나 필요한 덕목입니다, 상무님. 화학식은 유연하지 않습니다. 정직하죠. 공정에 투입된 오염 물질 총량이 이만큼인데, 측정된 결과값에 나트륨 수치만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다는 건, 중간 정화 공정을 통째로 생략하고 바닷물을 섞어서 방류했다는 증거밖에 안 됩니다. 이건 희석이 아니라 기만입니다.”
“이 친구가 정말! 그건 비상 상황에서 처리 용량이 초과해서 어쩔 수 없이…!”
“비상 상황이 3년 내내 지속되면 그건 관행이고, 의도적인 범죄입니다. 그리고 그 관행의 결과가 지금 제 눈앞에 있네요.”
도진이 마우스 휠을 굴려 화면을 전환했다. S지역 산업단지 배후 습지의 실시간 수질 분석 데이터가 붉은색 경고등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유기물이 좀 많은 수준이 아니었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과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이미 측정 불가 수준이었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난분해성 중금속인 카드뮴, 그리고 미량으로도 신경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시안화합물이 기준치의 수백 배를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윤 상무가 도진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두꺼운 손가락 사이로 불쾌한 체온과 함께 값비싼 코냑 냄새가 섞여 나왔다.
“자네, 다음 달 이사회에서 최연소 이사 타이틀 달고 싶지 않아? 이번 건만 조용히 덮고 넘어가면, 자네가 진행하는 미생물 배양 프로젝트에 백지수표로 예산 꽂아줄게. 어때.”
거래. 은폐의 대가로 주어지는 달콤하고도 썩은 먹이.
도진은 윤 상무의 손을 어깨에서 거칠게 털어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사직서가 아닌, 지난 몇 달간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모아둔 이중 장부와 실제 방류수 수질 분석 결과가 담긴 USB 메모리를 꺼냈다.
“제 장래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상무님.”
도진의 차가운 시선이 윤 상무의 가슴팍에 달린 회사 뱃지에 머물렀다.
“그 뱃지에서 나는 냄새, 정말 고약하네요. 씻어도 절대 안 지워질 겁니다.”
도진은 굳어진 윤 상무를 지나쳐 연구실을 나왔다. 등 뒤로 윤 상무가 거칠게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와 욕설이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오염 물질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회사를 나온 도진은 곧장 방송국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몇 차례 접촉이 있었고, 자료의 확실성만 담보되면 언제든 뉴스 특보로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 수석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쪽 그룹, 보통내기들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배후에 정재계 인맥이 다 연결되어 있어요."
PD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짙게 섞여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완벽한 증거입니다."
도진은 담담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공익 제보자가 되어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저 잘못된 방정식, 0으로 떨어져야 할 결과값이 지저분하게 남아있는 그 상태가 거슬려서, 그것을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그날 밤, 도진은 홀로 자취방에서 마지막 자료를 정리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S지역의 습지도 이 비에 젖고 있을 터였다. 정화되지 못한 시안화합물과 카드뮴이 빗물을 타고 습지의 흙으로, 더 깊은 지하수로, 그리고 결국엔 이 지역 사람들이 마시는 먹는물로 스며드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소름이 돋았다. 도덕적인 분노가 아니라 완벽해야 할 생태계의 물질 순환 시스템이 무참히 깨지는 것에 대한, 공학자로서의 근원적인 공포였다.
*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니 새벽 3시였다. 도진은 외투를 걸치고 최종 자료가 담긴 USB를 챙겼다. PD와의 약속 장소는 아침 7시, 서울의 한 호텔 로비였다. 지금 출발해야 새벽 배송 트럭들을 뚫고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변해 있었다. 도진은 자신의 낡은 세단을 몰고 산간도로를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와이퍼가 비명을 지르며 쉴 새 없이 빗물을 쳐냈지만, 전방 시야는 10미터 앞도 불분명했다.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과 물보라.
하지만 도진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이 지긋지긋한 악취의 근원이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미래환경솔루션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윤 상무와 경영진들은 포승줄에 묶일 것이다. 그리고 S지역의 습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자연의 정화 능력을 회복해 제 규격을 찾아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완벽한 침전과 여과의 과정이었다. 더러운 것들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격리되고, 오직 맑은 물만 남는.
어느새 차는 S지역 산단을 벗어나 험준한 산간도로의 급커브 구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구간만 지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였다. 폭우로 인해 노면 수막현상이 심해져 속도를 줄였지만, 구불구불한 도로는 유독 어둡고 위험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거대한 하이빔 불빛이 룸미러를 가득 채우며 폭발하듯 쏟아졌다. 빗길임에도 미친 듯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육중한 물체. 도진은 눈을 찌푸리며 차선을 비켜주려 핸들을 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도진이 핸들을 꺾기도 전에, 뒤따르던 대형 덤프트럭은 마치 도진의 차를 조준한 것처럼 오히려 더 속도를 높이며 그의 차 측면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꽝!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도진의 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비틀거렸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일어난 끔찍한 회전. 도진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핸들을 꽉 잡았지만, 차는 이미 통제 불능의 질량체가 되어 아스팔트 위를 뒹굴었다.
덤프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아, 회전하며 멈춰 선 도진의 차 운전석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귀를 찢는 듯한 충격음.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도진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에어백이 터졌지만, 수십 톤 덤프트럭의 무게는 도진의 작은 세단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뜨렸다.
가드레일이 뚫리고, 차는 암흑뿐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수없이 반복되는 둔탁하고 강력한 충격. 도진의 신체 기관들이 비명을 질렀다.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파열되어 피가 터져 나오는 감각이 머나먼 곳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독한 침묵.
차가 낭떠러지 아래, 비에 불어난 짙은 흙탕물 속에 처박히고 나서야 모든 지옥 같은 소리가 멈췄다.
차 안으로 차가운 빗물과 함께 낭떠러지의 오물과 흙탕물이 무섭게 밀려들어 왔다. 도진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찌그러진 차체가 그의 몸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고,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폐에서 선혈이 섞여 나와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아….'
도진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 주머니를 더듬으려 했다. USB. 그것만은, 그것만은 세상에 나가야 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의지는 이미 끊어진 신경망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깨진 창밖으로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검은 흙탕물이 보였다. 그 속에는 페놀도, 시안화합물도, 카드뮴도, 그리고 도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체액도 모두 섞여 있을 터였다.
‘결국 나도 이 무질서하고 불순한 혼합물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는 건가.’
완벽한 방정식을 꿈꿨던 천재 공학자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규격 없는 죽음의 한복판에 처박혔다.
차오르는 물이 그의 코와 입을 막았다. 지독한 흙내와 비린내,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무지의 냄새가 마지막으로 그의 후각을 끔찍하게 자극했다.
억울함? 분노? 복수심? 그런 감정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저, 이 완결되지 못한 식이 너무나 거슬렸다. 0으로 깔끔하게 떨어져야 할 결과값이, 이토록 지저분한 잔여물을 남기고 끝나다니. 이 반응은 잘못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다시 계산해야…
그것이, 인간 강도진이 이승에서 느낀 마지막 감정이었다.
*
시야가 암전되었다. 심장의 펌프질이 멎고 뇌파가 정지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완벽한 엔트로피 증가의 상태. 절대적인 죽음.
그러나 모든 화학 반응이 멈춘 그 칠흑 같은 심연의 밑바닥에서, 이승의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기괴한 진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웅… 우웅…
거대한 합금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무거운 공명. 그리고 뇌수의 한가운데를 직접 타격하는 듯한 건조한 파장의 목소리.
[명계 시스템 붕괴율 98.2%. 정화 공정 마비.]
[대체 관리자 프로토콜 가동. 긴급 적합 개체 탐색 완료.]
[개체명: 강도진. 생체 징후 소멸 확인.]
[지적 능력: SSS급 초과. 카르마 화학적 분해 적성: 측정 불가.]
[초월적 환경 분석가 특성 개방.]
[시스템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짙은 정적. 쇳소리조차 증발해버린 폐허 속에서 끊어진 배관의 잔여물만이 쉿쉿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도진은 피가 눌어붙은 손으로 찢어진 어깨를 거칠게 지혈했다. 시야가 붉게 명멸하는 와중에도 그의 눈동자는 허공에 떠 있는 검은 결정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감찰관이 던져두고 간 열두 시간의 유예는 이미 잔혹하게 줄어드는 중이었다.실패의 진흙탕 속에서 도진의 머릿속은 오히려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화학적 융해는 한계에 부딪혔고 물리적 압력은 역효과만 불렀다. 도진은 비틀거리며 결정체 앞으로 다가갔다. 보랏빛 파동이 영체를 사정없이 긁어댔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수천 년 치의 원념이 뭉쳐 질량조차 상실한 상태. 덩어리라기보다 지독하게 꼬여버린 악성 정보의 군집에 가까웠다. 이승의 공학적 잣대를 들이대자면 거대한 공정 라인을 통째로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오류 코드였다.그동안의 접근은 에러가 난 하드웨어를 망치로 두들기거나 독한 산성 용액에 담그려 한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파괴가 아니라 덮어쓰기였다. 무질서가 극에 달한 저 덩어리에 가장 정교하고 폭력적인 질서를 강제로 주입해 구조 자체를 붕괴시켜야 했다."관리자, 대가리 들어."도진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지만, 그 안에 담긴 권위는 짐승의 목줄을 틀어쥐듯 날카로웠다. 구석에 처박혀 덜덜 떨고 있던 괴물 관리자가 퀭한 눈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감, 감독관님. 이제 다 끝난 거 아닙니까. 설비는 박살 났고, 저 덩어리는 더 커졌는데 도대체 뭘 어쩌자고….""끝난 건 당신 모가지뿐이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 모가지, 오늘 안으로 다시 붙여줄 테니까 당장 일어나."도진은 바닥에 흩어진 잔해 중 비교적 온전한 영적 전도체 합금 조각들을 발로 긁어모았다."여기에 엎드려 있는 망자들 전부 집합시켜. 양동이나 철판 따위는 필요 없다. 전원 저 결정체를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앉히도록 해."괴물은 영문을 몰라 주춤거렸으나 도진의 서늘한 살기에 짓눌려 서둘러 영혼들을 걷어차며 깨웠다. 비명과 고통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철판이 한계치까지 휘어지며 짐승의 비명 같은 쇳소리를 토해냈다.차폐막의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증기는 이미 기체의 형태를 벗어나 날카로운 액압 커터처럼 허공을 갈랐다. 증기가 스쳐 지나간 천장의 배관이 두부 썰리듯 절단되며 끈적한 폐수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도진은 타들어 가는 손바닥의 고통을 무시한 채 메인 통제 밸브에 매달려 있었다.어떻게든 내부 압력을 빼내야 했다. 하지만 밸브를 1도만 더 열어도 농축된 저주 가스가 작업장을 덮쳐 수십 명의 영혼들을 소멸시킬 것이고, 반대로 1도를 닫으면 차폐막이 통째로 폭발해 제9구역의 모든 설비가 흔적도 없이 날아갈 판이었다.“가, 감독관님! 철판이 녹아내립니다! 대피해야…!”관리자 괴물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 했다. 영혼들은 이미 독기에 노출되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도진의 시야 망막에 붉은색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내부 압력 임계점 돌파.][화학적 평형 붕괴율 99%… 100%.]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막을 수 없다.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통제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전원, 바닥에 엎드려!”도진이 피투성이가 된 목구멍을 쥐어짜 내며 소리침과 동시에, 부풀어 올랐던 강철 차폐막이 결국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콰아아아앙—!시각을 마비시키는 섬광이나 거대한 화염 따위는 없었다. 대신, 수천 톤의 납덩어리로 짓누르는 듯한 묵직하고도 기괴한 파동이 제9구역 전체를 휩쓸었다.억겁의 세월 동안 압축되어 있던 누군가의 끔찍한 절망과 후회가 물리적인 폭풍이 되어 작업장을 덮쳤다.원심분리기의 파편들이 포탄처럼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고, 갓 설치했던 자동화 컨베이어 벨트는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허공으로 치솟았다.“큭…!”도진은 폭풍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다. 날아온 강철 파편 하나가 그의 어깨를 관통했고, 압도적인 저주의 파동이 그의 영체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수 미터 밖의 혐기성 소화조 외벽에
매캐한 금속의 잔해 위로 짙은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규칙적으로 돌아가던 제9구역의 기계음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박살이 난 원심분리기의 틈새로, 새까만 결정체가 뿜어내는 기괴한 파동만이 작업장의 무거운 공기를 일그러뜨렸다.도진은 찌그러진 배관에 척추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입가를 닦아낸 손등에 검붉은 핏자국이 엉겨 붙었다. 영체에 가해진 타격은 이승에서 겪는 육체적 통증과는 결이 달랐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넘어, 자아의 가장 밑바닥을 강제로 긁어내는 듯한 지독한 오한이 전신을 파고들었다.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수치는 냉혹했다.[제9구역 전체 공정 가동 중지.][현재 정화 수율: 4.2%][감찰관 방문까지 남은 시간: 11시간 45분.]도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 부근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찔러왔지만, 턱관절에 뻐근하게 힘을 주며 버텼다. 지금 이 순간 절망이나 고통에 매몰되는 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낭비였다.그의 시선이 잔해 한가운데서 불길하게 고동치는 결정체에 닿았다.질량이 없는 순수한 원념의 응집체. 애초에 물리적인 무게와 부피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적인 응어리를 기계의 원심력으로 강제 분리하려 했다. 회전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설비의 내구도를 갉아먹다 폭발로 이어진 것은 열역학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었다.도진은 머릿속에 엉켜 있던 공정도를 완전히 폐기하고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수식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물리적 타격이 불가능하다면, 접근 방식을 화학적 융해와 용출로 바꾼다.’저 결정체가 수천 년 동안 압축된 초고농도의 용질이라면, 상대적으로 농도가 옅은 용매를 지속적으로 흘려보내 표면의 결합부터 갉아내야 한다.“전원, 일어납니다.”도진의 건조한 음성이 제9구역에 울려 퍼졌다. 완장의 통제력이 보랏빛 파동에 노출되어 짐승처럼 헐떡이던 영혼들의 이성을 강제로 붙들었다.“비명 지를 시간 없습니다. 지금 저 물질을 억누르지 못하면 감찰관이 오기 전에 작업장 전체가 오염 가스에 녹아내릴 겁니다.”바닥을 구르던 영혼
붉은 관복을 입은 감찰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잿빛으로 변한 침전조 앞이었다.백색 가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짙은 영압이 작업장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닥에 엎드린 영혼들은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르르 떨었고, 관리자 괴물은 이미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오직 도진만이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상급 감찰관의 기형적인 안력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네놈이냐.”감찰관의 목소리는 쇳덩이를 긁는 듯 기괴했다.“형벌의 고통으로 씻어내야 할 망자의 업보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술로 훼손한 자가.”“사술이 아니라 산화 환원 반응입니다.”도진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손을 빼내며 건조하게 답했다. 감찰관을 호위하던 무장 병력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들었지만, 도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고통으로 업보를 씻어낸다니, 야만적인 발상이군요. 그렇게 수천 년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결과가 시스템 붕괴율 98% 아닙니까? 저는 방치되어 있던 제9구역의 수율을 단 30분 만에 12%에서 95%로 끌어올렸습니다. 감찰관님께서 보셔야 할 건 제가 부린 마법이 아니라 저 홀로그램에 찍힌 객관적인 성과 지표입니다.”감찰관의 고개가 미세하게 갸웃거렸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망자의 태도도 흥미로웠지만, 허공에 선명하게 떠 있는 ‘공정 효율 95%’라는 숫자는 명계의 관료인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염라청 최고위 기술 관료들조차 30%를 넘기지 못해 쩔쩔매던 최악의 구역이었다.“입이 가벼운 망자로군. 네놈이 잠시 수치를 조작해 눈속임을 한 것이라면, 그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무간지옥의 땔감으로 쓰겠다.”“눈속임인지 아닌지는 위로 보고서가 올라갈 때쯤이면 증명되겠죠.”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거래를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천한 망자가 감찰관에게 거래를 입에 올리느냐.”“실적은 누구에게나 고픈 법이니까요.”도진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저에게 딱 24시간의 통제권과 설비 개조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십시오. 구역 관리자였던 저 덩치에게 이미
영혼들의 비명 대신 둔탁한 쇳소리가 제9구역을 채우기 시작했다.“서둘러! 격벽 내려오기 전까지 바닥에 깔린 슬러지를 전부 예비 탱크로 밀어 넣어!”도진의 목소리가 완장의 마력을 타고 작업장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영혼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승의 기억이 마모된 채 짐승처럼 노동하던 그들이었지만, 도진이 통제권을 쥔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들을 옭아매던 채찍질을 금지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살을 파고들던 원념 폐수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하지만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보글… 부글부글….산화제의 약효가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가라앉았던 침전조 바닥에서 미세한 기포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시커먼 진흙 덩어리들이 다시 흉측한 본래의 부피를 팽창시키며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였다.“시간 다 됐어! 수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고!”수로 위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괴물 관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수치가 78%에서 75%로, 다시 72%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입 다물고 메인 밸브 개방 준비나 하십시오.”도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예비 탱크의 입구를 주시했다. 수십 명의 영혼들이 거대한 넉가래를 이용해 바닥에 쌓인 끈적한 카르마 덩어리들을 탱크 안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고농축된 오염 물질이 내뿜는 독기 때문에 영혼들의 투명한 피부가 치지직거리며 타들어 갔다.도진은 손에 쥔 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의 버튼을 눌렀다.[내구도 1/10 소모. 명계의 암모니아 가스를 포집하여 약염기성 중화제로 합성합니다.]은빛 큐브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가스가 작업하는 영혼들의 몸을 감쌌다. 타들어 가던 영체들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작업 속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마지막 덩어리 들어갔습니다!”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도진이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3조, 격벽 차단! 관리자, 메인 밸브 전면 개방”쿠웅-! 콰아아
거품이 가라앉은 수면은 놀랍도록 고요했다.잿빛으로 탈색된 폐수 아래로, 수백 년간 엉겨 붙어 있던 악성 원념들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관리자 괴물은 손에 쥔 가시채찍을 늘어뜨린 채 그 기괴한 침전 과정을 멍하니 응시했다. 튀어나온 붉은 안구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덜덜 떨렸다. 앞서 보여주었던 포악함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미지의 현상에 대한 원초적인 혼란과 공포였다."너…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도진은 부식된 밸브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무심하게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눈이 있으면 시스템 로그나 확인하시죠. 시말서 쓸 짓을 한 건지, 표창장 받을 짓을 한 건지."괴물이 허겁지겁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붉은 홀로그램 창이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12%를 밑돌며 위태롭게 점멸하던 제9구역의 수율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아 78.8%라는 숫자에 도달해 있었다."칠… 칠십팔 퍼센트? 말도 안 돼. 염라청 직속 기술자들이 와도 30%를 못 넘기던 폐수인데."괴물의 턱이 덜덜 떨렸다. 명계의 실적은 곧 생존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하급 관리자는 저 용광로의 연료로 던져진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떠 있는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를 점검했다.[보유 공덕: 10,000 포인트][명계 상점(기초) 접근 권한이 해제됩니다.]공덕. 이승에서 말하는 적선이나 종교적인 헌신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성과급이자 명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화폐 단위.도진이 의식을 집중하자 망막에 반투명한 카탈로그가 나열되었다. 영혼의 내구도를 올리는 단약, 지옥불의 열기를 견디는 방염 망토 같은 잡다한 소모품들이 보였으나 도진의 시선은 단계를 뛰어넘어 '관리 및 제어' 탭으로 직행했다.[작업반장 완장 (효력 24시간) - 5,000 포인트]: 착용 시 해당 구역 내의 하위 영혼 100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부여.[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 (내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