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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Autor: 흙내음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4-03 23:58:04

거품이 가라앉은 수면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잿빛으로 탈색된 폐수 아래로, 수백 년간 엉겨 붙어 있던 악성 원념들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관리자 괴물은 손에 쥔 가시채찍을 늘어뜨린 채 그 기괴한 침전 과정을 멍하니 응시했다. 튀어나온 붉은 안구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덜덜 떨렸다. 앞서 보여주었던 포악함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미지의 현상에 대한 원초적인 혼란과 공포였다.

"너…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도진은 부식된 밸브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무심하게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눈이 있으면 시스템 로그나 확인하시죠. 시말서 쓸 짓을 한 건지, 표창장 받을 짓을 한 건지."

괴물이 허겁지겁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붉은 홀로그램 창이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12%를 밑돌며 위태롭게 점멸하던 제9구역의 수율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아 78.8%라는 숫자에 도달해 있었다.

"칠… 칠십팔 퍼센트? 말도 안 돼. 염라청 직속 기술자들이 와도 30%를 못 넘기던 폐수인데."

괴물의 턱이 덜덜 떨렸다. 명계의 실적은 곧 생존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하급 관리자는 저 용광로의 연료로 던져진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떠 있는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를 점검했다.

[보유 공덕: 10,000 포인트]

[명계 상점(기초) 접근 권한이 해제됩니다.]

공덕. 이승에서 말하는 적선이나 종교적인 헌신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성과급이자 명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화폐 단위.

도진이 의식을 집중하자 망막에 반투명한 카탈로그가 나열되었다. 영혼의 내구도를 올리는 단약, 지옥불의 열기를 견디는 방염 망토 같은 잡다한 소모품들이 보였으나 도진의 시선은 단계를 뛰어넘어 '관리 및 제어' 탭으로 직행했다.

[작업반장 완장 (효력 24시간) - 5,000 포인트]

: 착용 시 해당 구역 내의 하위 영혼 100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부여.

[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 (내구도 10/10) - 3,000 포인트]

: 명계의 대기압을 이용해 무작위 기초 화합물을 합성.

망설임 없이 두 가지 아이템을 구매했다. 허공에서 검은색 완장과 성인 주먹만 한 은빛 금속 큐브가 떨어져 도진의 손에 안착했다.

그 사이 제정신을 차린 괴물이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공포를 집어삼킨 얄팍한 분노였다.

"이 새끼가 감히 관리자 앞에서 요술을 부려? 네놈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허가받지 않은 약품을 수로에 무단으로 투기한 건 명백한 반역이다! 당장 그 가죽을 벗겨서…!"

채찍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도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주변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영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카앙-!

하지만 쇳덩이가 부딪치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튕겨 나간 것은 오히려 괴물의 쇠채찍이었다. 도진의 몸을 둥글게 감싼 옅은 푸른색 방어막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반발력에 괴물이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시스템 알림: 대상 '강도진'은 제9구역 공정 혁신 공로자입니다.]

[명계 노동법 제4조에 의거, 혁신 수치 50% 이상 달성자에 대한 하급 관리자의 부당한 물리적 제재가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도진은 왼팔에 검은 완장을 천천히 차올리며 괴물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선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단 투기라. 방금 내가 부은 염소산 화합물이 없었다면, 당신은 오늘 자정 교대 시간에 할당량 미달로 저기 소각로에 처박혔을 겁니다."

"크으윽…."

"그리고 안타까운 소식 하나 알려드릴까요."

도진이 손에 든 금속 큐브를 가볍게 허공에 튕겼다 잡았다.

"방금 일어난 산화 반응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투입한 산화제는 아주 일시적인 처방일 뿐, 정확히 30분 뒤면 약효가 떨어질 테고, 가라앉았던 악성 카르마 덩어리들은 원래의 고분자 상태로 돌아가 다시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겠죠."

괴물의 흉측한 숨소리가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잿빛 수면과 도진을 미친 듯이 번갈아 보았다. 78%의 달콤한 수율을 맛본 시스템이 다시 12%로 곤두박질치는 꼴을 본다면, 염라청의 감찰관들은 그 책임을 온전히 현장 관리자인 자신에게 물을 터였다.

도진은 괴물의 심리를 머리 꼭대기에서 꿰뚫고 있었다. 이승의 악덕 하청업체 현장 소장들이 겪는 전형적인 딜레마. 위에서는 실적을 압박하고, 아래에서는 자원이 부족해 목이 매는 촌극.

"협상합시다."

도진이 먼저 미끼를 던졌다.

"당신은 구역 관리자로서의 알량한 자존심을 접고, 나한테 이 제9구역의 현장 통제권을 넘깁니다. 대신 나는 당신의 목숨줄인 저 수율 그래프를 교대 시간 전까지 80% 위로 단단히 고정해 주죠."

"미친 소리! 망자 새끼한테 현장 통제권을 넘기라고? 감찰관들이 알면 내 모가지가 먼저 날아간다!"

"할당량 못 채워서 용광로에 타 죽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선택하시죠. 산화제 약효 떨어지기까지 정확히 2분 남았습니다."

수면 아래서 가라앉았던 진흙 덩어리들이 미세한 기포를 발생시키며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홀로그램 그래프 숫자가 78%에서 77%로 떨어지는 순간, 괴물의 알량한 인내심도 한계를 맞이했다.

"젠장! 좋아! 네놈 맘대로 해봐! 대신 80% 못 맞추면 시스템 보호막이 꺼지는 즉시 널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괴물이 허공에 삿대질하며 고함을 지르자, 시스템 창이 즉각 반응했다.

[제9구역 하급 관리자가 대상 '강도진'에게 현장 지휘권을 임시 위임했습니다.]

[작업반장 완장의 통제력이 극대화됩니다.]

도진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말려 올라갔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는 주저 없이 수로 가장자리의 배관 위로 올라섰다.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던 수십 명의 영혼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완장의 힘이 발동하며 그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제9구역 전체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전원 주목. 지금부터 구멍 뚫린 양동이는 전부 갖다 버립니다. 의미 없는 육체노동은 방금부로 끝났습니다."

영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생전의 기억이 마모되어 짐승처럼 덩어리만 건져내던 그들의 흐릿한 안광에 미세한 이성의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도진은 손에 든 화학 촉매 생성기를 수로 바닥에 고정했다. 공학자의 뇌세포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엉망진창인 배관도를 뜯어고치고 새로운 공정 라인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3조는 저기 쌓인 부식된 철근을 가져와서 침전조 중간에 격벽을 세웁니다. 5조는 바닥에 가라앉은 카르마 덩어리들을 저 소각로가 아니라, 반대편에 비어있는 예비 탱크로 전부 이송시키세요."

"하, 하지만 그 예비 탱크는 수백 년째 막혀있는 폐기장인데…."

누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도진이 서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폐기장이 아니라 혐기성 소화조로 쓸 겁니다. 산소가 완벽히 차단된 곳에서 돌연변이 미생물들을 배양해, 저 지독한 악성 카르마 덩어리들을 뜯어먹게 만들 테니까."

도진의 망막 위로 제9구역 전체의 입체 구조도가 푸른빛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화학 약품을 때려 부어 일시적으로 수치를 조작하는 건 삼류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완벽한 물질의 순환. 버려지는 잔여물 없이 오염 물질 자체가 에너지가 되어 스스로를 정화하는 거대한 자가 발전 생태계. 그것이 도진이 구상하는 명계 재건축의 진정한 밑그림이었다.

"시간 없습니다. 움직이세요."

지옥의 하수처리장이, 완벽주의 공학자의 지휘 아래 처음으로 논리적인 굉음을 내며 가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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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4

    붉은 관복을 입은 감찰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잿빛으로 변한 침전조 앞이었다.백색 가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짙은 영압이 작업장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닥에 엎드린 영혼들은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르르 떨었고, 관리자 괴물은 이미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오직 도진만이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상급 감찰관의 기형적인 안력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네놈이냐.”감찰관의 목소리는 쇳덩이를 긁는 듯 기괴했다.“형벌의 고통으로 씻어내야 할 망자의 업보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술로 훼손한 자가.”“사술이 아니라 산화 환원 반응입니다.”도진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손을 빼내며 건조하게 답했다. 감찰관을 호위하던 무장 병력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들었지만, 도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고통으로 업보를 씻어낸다니, 야만적인 발상이군요. 그렇게 수천 년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결과가 시스템 붕괴율 98% 아닙니까? 저는 방치되어 있던 제9구역의 수율을 단 30분 만에 12%에서 95%로 끌어올렸습니다. 감찰관님께서 보셔야 할 건 제가 부린 마법이 아니라 저 홀로그램에 찍힌 객관적인 성과 지표입니다.”감찰관의 고개가 미세하게 갸웃거렸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망자의 태도도 흥미로웠지만, 허공에 선명하게 떠 있는 ‘공정 효율 95%’라는 숫자는 명계의 관료인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염라청 최고위 기술 관료들조차 30%를 넘기지 못해 쩔쩔매던 최악의 구역이었다.“입이 가벼운 망자로군. 네놈이 잠시 수치를 조작해 눈속임을 한 것이라면, 그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무간지옥의 땔감으로 쓰겠다.”“눈속임인지 아닌지는 위로 보고서가 올라갈 때쯤이면 증명되겠죠.”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거래를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천한 망자가 감찰관에게 거래를 입에 올리느냐.”“실적은 누구에게나 고픈 법이니까요.”도진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저에게 딱 24시간의 통제권과 설비 개조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십시오. 구역 관리자였던 저 덩치에게 이미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3

    영혼들의 비명 대신 둔탁한 쇳소리가 제9구역을 채우기 시작했다.“서둘러! 격벽 내려오기 전까지 바닥에 깔린 슬러지를 전부 예비 탱크로 밀어 넣어!”도진의 목소리가 완장의 마력을 타고 작업장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영혼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승의 기억이 마모된 채 짐승처럼 노동하던 그들이었지만, 도진이 통제권을 쥔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들을 옭아매던 채찍질을 금지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살을 파고들던 원념 폐수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하지만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보글… 부글부글….산화제의 약효가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가라앉았던 침전조 바닥에서 미세한 기포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시커먼 진흙 덩어리들이 다시 흉측한 본래의 부피를 팽창시키며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였다.“시간 다 됐어! 수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고!”수로 위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괴물 관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수치가 78%에서 75%로, 다시 72%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입 다물고 메인 밸브 개방 준비나 하십시오.”도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예비 탱크의 입구를 주시했다. 수십 명의 영혼들이 거대한 넉가래를 이용해 바닥에 쌓인 끈적한 카르마 덩어리들을 탱크 안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고농축된 오염 물질이 내뿜는 독기 때문에 영혼들의 투명한 피부가 치지직거리며 타들어 갔다.도진은 손에 쥔 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의 버튼을 눌렀다.[내구도 1/10 소모. 명계의 암모니아 가스를 포집하여 약염기성 중화제로 합성합니다.]은빛 큐브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가스가 작업하는 영혼들의 몸을 감쌌다. 타들어 가던 영체들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작업 속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마지막 덩어리 들어갔습니다!”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도진이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3조, 격벽 차단! 관리자, 메인 밸브 전면 개방”쿠웅-! 콰아아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2

    거품이 가라앉은 수면은 놀랍도록 고요했다.잿빛으로 탈색된 폐수 아래로, 수백 년간 엉겨 붙어 있던 악성 원념들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관리자 괴물은 손에 쥔 가시채찍을 늘어뜨린 채 그 기괴한 침전 과정을 멍하니 응시했다. 튀어나온 붉은 안구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덜덜 떨렸다. 앞서 보여주었던 포악함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미지의 현상에 대한 원초적인 혼란과 공포였다."너…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도진은 부식된 밸브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무심하게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눈이 있으면 시스템 로그나 확인하시죠. 시말서 쓸 짓을 한 건지, 표창장 받을 짓을 한 건지."괴물이 허겁지겁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붉은 홀로그램 창이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12%를 밑돌며 위태롭게 점멸하던 제9구역의 수율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아 78.8%라는 숫자에 도달해 있었다."칠… 칠십팔 퍼센트? 말도 안 돼. 염라청 직속 기술자들이 와도 30%를 못 넘기던 폐수인데."괴물의 턱이 덜덜 떨렸다. 명계의 실적은 곧 생존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하급 관리자는 저 용광로의 연료로 던져진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떠 있는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를 점검했다.[보유 공덕: 10,000 포인트][명계 상점(기초) 접근 권한이 해제됩니다.]공덕. 이승에서 말하는 적선이나 종교적인 헌신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성과급이자 명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화폐 단위.도진이 의식을 집중하자 망막에 반투명한 카탈로그가 나열되었다. 영혼의 내구도를 올리는 단약, 지옥불의 열기를 견디는 방염 망토 같은 잡다한 소모품들이 보였으나 도진의 시선은 단계를 뛰어넘어 '관리 및 제어' 탭으로 직행했다.[작업반장 완장 (효력 24시간) - 5,000 포인트]: 착용 시 해당 구역 내의 하위 영혼 100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부여.[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 (내구도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1

    모든 감각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가장 먼저 되살아난 것은 후각이었다.숨이 막힐 듯한 악취. 폐기물 처리장에서 맡았던 페놀이나 시안화합물의 냄새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부패한 유기물이 내뿜는 유독 가스에, 인간의 절망과 공포가 물리적인 실체를 얻어 엉겨 붙은 듯한 기괴한 비린내였다.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려 했으나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육체라는 질량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만이 축축한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트럭에 치인 순간 뇌가 만들어낸 마지막 주파수인가. 아니면 사후 세계인가...혼란이 길어지기 전, 아득한 심연 너머에서 쇳소리가 섞인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고막 없는 뇌리를 직접 타격했다.[동기화 완료율 100%. 대상의 영적 파동을 명계 시스템 기본 주파수로 변환합니다.]이명과 함께 암흑이 찢겨 나갔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도진은 호흡을 멈췄다. 그곳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의 형태가 아니었다.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지하 공동. 천장에는 녹색 액체가 흐르는 투명한 관들이 핏줄처럼 엉켜 있었고, 바닥에는 이승의 한강 폭보다 넓은 거대한 수로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것은 집채만 한 부식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음이었다.수로를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니었다. 점성이 강한 칠흑빛 진흙에 가까웠다. 끈적거리는 검은 액체 속에서 이목구비가 녹아내린 인간의 형상들이 끊임없이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고통에 찬 비명과 저주가 터져 나왔다.이곳은 적어도 수천 년은 정비를 하지 않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지독하게 노후화된 거대 폐수 처리장이었다.도진이 넋을 잃고 수로를 내려다볼 때, 망막 위로 반투명한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사용자 정보]성명: 강도진 (사망)직급: 명계 정화 공정 제9구역 말단 처리공특성: 초월적 환경 분석가 (EX)현재 영혼 오염도: 0.01 PPM미래환경솔루션의 최연소 수석 연구원이 죽어서 온 곳이 저승 하수처리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프롤로그

    세상에는 고약한 냄새들이 존재한다. 부패한 음식물의 들큰한 악취, 여름날 하수구에서 거품과 함께 올라오는 찌린내, 혹은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가 아스팔트 위에서 썩어가는 메스꺼운 냄새 같은 것들. 하지만 강도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냄새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무색무취에 가까웠으나, 그의 예민한 후각에는 그 어떤 고리타분한 악취보다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바로 진실이 은폐된 무지의 냄새였다.국립대 이공계의 수재, 학부생 시절부터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리던 천재, 수많은 대기업의 연구소 러브콜을 마다하고 그가 선택한 곳은 환경 폐기물 처리 전문 기업 ‘미래환경솔루션’이었다. 최연소 수석 연구원. 그것이 현재 도진의 어깨에 달려있는 무거운 타이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사명감에 불타는 청년 환경운동가쯤으로 여기며 칭송했지만, 그것은 지독한 오해였다. 도진은 그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수지가 맞아떨어지는 화학 방정식을 사랑했을 뿐이다.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거부반응의 현장이었다. 벤젠 고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질소 산화물이 엉겨 붙어 있고, 맑은 산소가 필요한 곳에 황화수소가 가득 차 있는, 이 미친듯한 무질서와 불균형. 도진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오염된 분자 구조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흐트러진 수치를 정돈하는 것에 거의 변태적인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숭고한 정의감이라기보다는 편집증적인 정돈 습관에 가까운 행위였다.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 정돈을 허락하지 않았다.“강 수석, 이봐, 좀 유연하게 생각하라고. PPM 단위 몇 개 좀 넘는다고 당장 지구가 멸망하나? 우리 회사가 망하면 당장 이 지역 실업 인원이 몇 명인지, 그 가족들의 생계가 어떻게 될지 생각은 안 해?”윤 상무의 목소리는 기름졌다. 그의 잘 가꾼 수트 위로 흘러넘치는 뱃살처럼, 그리고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난분해성 폐수의 페놀 수치처럼.도진은 눈앞의 트리플 모니터에서 쉴 새 없이 스크롤 되는 데이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유연성은 고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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