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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Penulis: 흙내음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4-11 21:27:48

붉은 관복을 입은 감찰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잿빛으로 변한 침전조 앞이었다.

백색 가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짙은 영압이 작업장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닥에 엎드린 영혼들은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르르 떨었고, 관리자 괴물은 이미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오직 도진만이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상급 감찰관의 기형적인 안력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네놈이냐.”

감찰관의 목소리는 쇳덩이를 긁는 듯 기괴했다.

“형벌의 고통으로 씻어내야 할 망자의 업보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술로 훼손한 자가.”

“사술이 아니라 산화 환원 반응입니다.”

도진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손을 빼내며 건조하게 답했다. 감찰관을 호위하던 무장 병력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들었지만, 도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고통으로 업보를 씻어낸다니, 야만적인 발상이군요. 그렇게 수천 년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결과가 시스템 붕괴율 98% 아닙니까? 저는 방치되어 있던 제9구역의 수율을 단 30분 만에 12%에서 95%로 끌어올렸습니다. 감찰관님께서 보셔야 할 건 제가 부린 마법이 아니라 저 홀로그램에 찍힌 객관적인 성과 지표입니다.”

감찰관의 고개가 미세하게 갸웃거렸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망자의 태도도 흥미로웠지만, 허공에 선명하게 떠 있는 ‘공정 효율 95%’라는 숫자는 명계의 관료인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염라청 최고위 기술 관료들조차 30%를 넘기지 못해 쩔쩔매던 최악의 구역이었다.

“입이 가벼운 망자로군. 네놈이 잠시 수치를 조작해 눈속임을 한 것이라면, 그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무간지옥의 땔감으로 쓰겠다.”

“눈속임인지 아닌지는 위로 보고서가 올라갈 때쯤이면 증명되겠죠.”

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거래를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

“천한 망자가 감찰관에게 거래를 입에 올리느냐.”

“실적은 누구에게나 고픈 법이니까요.”

도진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저에게 딱 24시간의 통제권과 설비 개조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십시오. 구역 관리자였던 저 덩치에게 이미 지휘권은 받아두었습니다. 24시간 뒤, 이 제9구역이 명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정화 수율을 기록한다면, 감찰관님은 이것을 본인의 탁월한 관리 감독과 과감한 기술 도입의 성과로 염라대왕에게 보고하시면 됩니다.”

감찰관의 가면 너머 안광이 차갑게 번뜩였다. 관료 사회의 생리를 정확히 찌르는 제안. 자신이 직접 손을 댈 필요 없이, 성공하면 자신의 막대한 공로가 되고 실패하면 건방진 망자 하나를 처형하고 끝내면 될 일이다.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좋다.”

감찰관이 손을 들어 올리자 호위병들이 무기를 거두었다.

“정확히 스물네 시간. 단 1퍼센트라도 수율이 떨어진다면, 네놈이 만들어낸 저 기괴한 불꽃 속에 네 영혼을 산 채로 밀어 넣을 것이다.”

감찰관 일행이 오만한 걸음걸이로 제9구역을 빠져나가자, 짓눌려 있던 공기가 일거에 풀렸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영혼들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도진은 지체하지 않고 시스템 상점을 열어 5만 포인트의 공덕을 쏟아부었다.

[명계 상점(기초)에서 '하급 영적 원심분리기'와 '자동화 컨베이어 벨트 라인'을 구매합니다.]

[해당 설비들이 제9구역에 배치됩니다.]

허공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강철 설비들이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녹슨 수동 밸브와 구멍 뚫린 양동이뿐이던 제9구역의 바닥에 차갑고 매끄러운 컨베이어 벨트가 깔렸고, 혐기성 소화조 옆으로는 집채만 한 원심분리기가 자리 잡았다.

“이제부터 수작업은 전면 폐지합니다.”

도진이 완장의 통제력을 끌어올리며 지시를 내렸다.

“망자들은 두 조로 나눈다. 1조는 침전조에서 건져 올린 카르마 덩어리들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리기만 해라. 2조는 원심분리기를 거쳐 불순물이 제거된 고순도 슬러지를 소화조에 투입한다. 나머지는 기계가 알아서 할 거다.”

새로운 공정은 경이로울 정도로 매끄러웠다. 컨베이어 벨트가 악성 카르마 덩어리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원심분리기가 엄청난 회전력으로 영혼의 파편과 순수 원념을 완벽하게 분리해 냈다.

고순도로 정제된 먹이가 투입되자, 소화조 내부의 변이 점균류들은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막대한 양의 바이오가스를 뿜어냈다. 소각로의 푸른 불꽃은 이제 용광로처럼 거대하게 타오르며 제9구역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수율 그래프는 97%를 가리키며 굳건하게 고정되었다.

‘완벽하다.’

도진은 가동되는 설비들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머릿속으로 계산했던 모든 방정식이 오차 하나 없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이승에서 숱한 윗선들의 압박과 자본의 논리에 막혀 좌절해야만 했던 완벽한 환경 공학적 생태계가, 역설적이게도 이 지옥의 밑바닥에서 실현된 것이다.

오만함이 그의 이성을 조용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기나 저기나 다를 건 없어. 영혼이든 업보든, 질량을 가진 물질인 이상 화학과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시스템 창에 수치가 뜬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지. 공정의 설계도만 정확하다면 변수 따위는 존재할 수 없어.’

그는 자신이 이 명계의 이치를 완벽하게 꿰뚫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을 통제된 실험실과 규격화된 산업 폐기물만을 다루어 온 공학자의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작업이 시작되고 열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끼기기기긱—!

순조로운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원심분리기에서 돌연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불길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가, 감독관님! 기계가 갑자기 이상합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지켜보던 영혼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갔다. 원심분리기의 외벽이 붉게 달아오르며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온도가 너무 높다. 냉각수 밸브 열어!”

“이미 최대치로 열려 있습니다! 분리가 안 됩니다. 덩어리가… 덩어리가 깨지지 않습니다!”

도진은 원심분리기의 투시창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평소 처리하던 진흙 같은 질감의 카르마가 아니라, 마치 흑요석처럼 단단하게 뭉친 조약돌 크기의 새까만 결정체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엄청난 원심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계의 회전력을 역으로 흡수하며 기괴한 공명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경고! 미식별 고밀도 변이 카르마 유입.]

[물리적 분리 불가. 내부 압력 임계치 돌파 직전.]

“당장 라인 세워!”

도진이 소리치며 긴급 정지 버튼을 내리쳤지만, 원심분리기는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고 있었다. 기계를 식혀주던 푸른 불꽃마저 순식간에 역겨운 보랏빛으로 변색되더니 푸스스 꺼져버렸다.

퍼엉—!!

결국 원심분리기의 두꺼운 합금 뚜껑이 폭발음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 강력한 충격파에 도진의 몸이 붕 떠올라 수 미터 밖의 배관에 처박혔다.

“컥…!”

이승에서 트럭에 치일 때 느꼈던 것과 흡사한, 내장이 파열되는 듯한 끔찍한 고통. 도진은 바닥에 나뒹굴며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EX급 특성조차 방어하지 못한 직접적인 타격이었다.

파괴된 기계의 잔해 속에서 짙은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까의 그 새까만 결정체가 불길한 진동을 머금은 채 떠 있었다.

도진은 떨리는 손으로 피를 닦아내며 망막에 시스템을 띄웠다.

‘분석. 당장 저 성분을 분석해.’

[분석 중….]

[오류 발생. 기존 화학식으로 치환 불가.]

[해당 물질은 분자 간의 결합이 아닌 개념적 응집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분 구성: 후회 40%, 끝없는 원망 60%. 물질적 질량 제로(0).]

“뭐라고…?”

도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물질적 질량이 제로라니. 질량이 없는 것을 기계의 원심력으로 분리하려 했으니 기계가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은 당연했다.

지금껏 그가 처리했던 수면 위쪽의 찌꺼기들은, 인간의 얄팍한 악의와 일상적인 죄악들이 뭉친 비교적 가벼운 ‘화학적 카르마’였다. 산화제로 결합을 끊고, 미생물로 분해할 수 있는 규격화된 쓰레기들.

하지만 명계의 강 깊은 곳, 수백 수천 년 동안 가라앉아 압축된 저 결정체는 달랐다. 저것은 분자 기호로 정의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다. 한 인간의 영혼이 억겁의 세월 동안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만들어낸 순수한 저주, 즉 ‘감정의 결정체’였다.

우우웅—.

까만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파동이 제9구역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파동에 닿은 변이 점균류들이 새카맣게 타죽으며 녹아내렸고, 잘 돌아가던 컨베이어 벨트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수율 그래프가 97%에서 30%, 15%… 그리고 순식간에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아아아악!”

파동에 노출된 영혼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화학 약품으로 억눌러 놓았던 고통이 수십 배로 증폭되어 그들의 영체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도진은 으스러진 갈비뼈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아.’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공학적 지식이 완전히 부정당했다. 원자자가 들어맞지 않고, 질량 보존의 법칙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이 다루던 것이 단순한 폐수가 아니라, 이성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하고 끔찍한 사후 세계의 본질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 났다.

지옥을 실험실쯤으로 여겼던 오만함의 대가였다.

“감… 감독관님! 저걸 어쩌지 못하면 우리 다 죽습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영혼 하나가 도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감찰관과의 약속 시간까지 남은 것은 고작 11시간. 폭주하는 저주의 결정체를 통제하지 못하면 제9구역은 시스템 붕괴로 영원히 폐쇄되고, 자신은 약속대로 산 채로 소각로에 처박힐 것이다.

도진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검은 결정체를 올려다보았다.

과학이 통하지 않는 영적인 불순물. 그렇다면 이것을 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이 명계의 이치에 맞는 새로운 공식을 밑바닥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만 했다.

처음으로 도진의 서늘했던 두 눈에, 생존을 향한 짐승 같은 절박함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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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6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철판이 한계치까지 휘어지며 짐승의 비명 같은 쇳소리를 토해냈다.차폐막의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증기는 이미 기체의 형태를 벗어나 날카로운 액압 커터처럼 허공을 갈랐다. 증기가 스쳐 지나간 천장의 배관이 두부 썰리듯 절단되며 끈적한 폐수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도진은 타들어 가는 손바닥의 고통을 무시한 채 메인 통제 밸브에 매달려 있었다.어떻게든 내부 압력을 빼내야 했다. 하지만 밸브를 1도만 더 열어도 농축된 저주 가스가 작업장을 덮쳐 수십 명의 영혼들을 소멸시킬 것이고, 반대로 1도를 닫으면 차폐막이 통째로 폭발해 제9구역의 모든 설비가 흔적도 없이 날아갈 판이었다.“가, 감독관님! 철판이 녹아내립니다! 대피해야…!”관리자 괴물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 했다. 영혼들은 이미 독기에 노출되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도진의 시야 망막에 붉은색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내부 압력 임계점 돌파.][화학적 평형 붕괴율 99%… 100%.]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막을 수 없다. 물리법칙이 허용하는 통제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전원, 바닥에 엎드려!”도진이 피투성이가 된 목구멍을 쥐어짜 내며 소리침과 동시에, 부풀어 올랐던 강철 차폐막이 결국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콰아아아앙—!시각을 마비시키는 섬광이나 거대한 화염 따위는 없었다. 대신, 수천 톤의 납덩어리로 짓누르는 듯한 묵직하고도 기괴한 파동이 제9구역 전체를 휩쓸었다.억겁의 세월 동안 압축되어 있던 누군가의 끔찍한 절망과 후회가 물리적인 폭풍이 되어 작업장을 덮쳤다.원심분리기의 파편들이 포탄처럼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고, 갓 설치했던 자동화 컨베이어 벨트는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허공으로 치솟았다.“큭…!”도진은 폭풍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다. 날아온 강철 파편 하나가 그의 어깨를 관통했고, 압도적인 저주의 파동이 그의 영체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수 미터 밖의 혐기성 소화조 외벽에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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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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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들의 비명 대신 둔탁한 쇳소리가 제9구역을 채우기 시작했다.“서둘러! 격벽 내려오기 전까지 바닥에 깔린 슬러지를 전부 예비 탱크로 밀어 넣어!”도진의 목소리가 완장의 마력을 타고 작업장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영혼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승의 기억이 마모된 채 짐승처럼 노동하던 그들이었지만, 도진이 통제권을 쥔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들을 옭아매던 채찍질을 금지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살을 파고들던 원념 폐수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하지만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보글… 부글부글….산화제의 약효가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가라앉았던 침전조 바닥에서 미세한 기포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시커먼 진흙 덩어리들이 다시 흉측한 본래의 부피를 팽창시키며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였다.“시간 다 됐어! 수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고!”수로 위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괴물 관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수치가 78%에서 75%로, 다시 72%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입 다물고 메인 밸브 개방 준비나 하십시오.”도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예비 탱크의 입구를 주시했다. 수십 명의 영혼들이 거대한 넉가래를 이용해 바닥에 쌓인 끈적한 카르마 덩어리들을 탱크 안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고농축된 오염 물질이 내뿜는 독기 때문에 영혼들의 투명한 피부가 치지직거리며 타들어 갔다.도진은 손에 쥔 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의 버튼을 눌렀다.[내구도 1/10 소모. 명계의 암모니아 가스를 포집하여 약염기성 중화제로 합성합니다.]은빛 큐브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가스가 작업하는 영혼들의 몸을 감쌌다. 타들어 가던 영체들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작업 속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마지막 덩어리 들어갔습니다!”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도진이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3조, 격벽 차단! 관리자, 메인 밸브 전면 개방”쿠웅-! 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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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이 가라앉은 수면은 놀랍도록 고요했다.잿빛으로 탈색된 폐수 아래로, 수백 년간 엉겨 붙어 있던 악성 원념들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관리자 괴물은 손에 쥔 가시채찍을 늘어뜨린 채 그 기괴한 침전 과정을 멍하니 응시했다. 튀어나온 붉은 안구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덜덜 떨렸다. 앞서 보여주었던 포악함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미지의 현상에 대한 원초적인 혼란과 공포였다."너…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도진은 부식된 밸브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무심하게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눈이 있으면 시스템 로그나 확인하시죠. 시말서 쓸 짓을 한 건지, 표창장 받을 짓을 한 건지."괴물이 허겁지겁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붉은 홀로그램 창이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12%를 밑돌며 위태롭게 점멸하던 제9구역의 수율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아 78.8%라는 숫자에 도달해 있었다."칠… 칠십팔 퍼센트? 말도 안 돼. 염라청 직속 기술자들이 와도 30%를 못 넘기던 폐수인데."괴물의 턱이 덜덜 떨렸다. 명계의 실적은 곧 생존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하급 관리자는 저 용광로의 연료로 던져진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떠 있는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를 점검했다.[보유 공덕: 10,000 포인트][명계 상점(기초) 접근 권한이 해제됩니다.]공덕. 이승에서 말하는 적선이나 종교적인 헌신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성과급이자 명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화폐 단위.도진이 의식을 집중하자 망막에 반투명한 카탈로그가 나열되었다. 영혼의 내구도를 올리는 단약, 지옥불의 열기를 견디는 방염 망토 같은 잡다한 소모품들이 보였으나 도진의 시선은 단계를 뛰어넘어 '관리 및 제어' 탭으로 직행했다.[작업반장 완장 (효력 24시간) - 5,000 포인트]: 착용 시 해당 구역 내의 하위 영혼 100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부여.[기초 화학 촉매 생성기 (내구도

  • 명계의 수석 환경공학자   001

    모든 감각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가장 먼저 되살아난 것은 후각이었다.숨이 막힐 듯한 악취. 폐기물 처리장에서 맡았던 페놀이나 시안화합물의 냄새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부패한 유기물이 내뿜는 유독 가스에, 인간의 절망과 공포가 물리적인 실체를 얻어 엉겨 붙은 듯한 기괴한 비린내였다.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려 했으나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육체라는 질량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만이 축축한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트럭에 치인 순간 뇌가 만들어낸 마지막 주파수인가. 아니면 사후 세계인가...혼란이 길어지기 전, 아득한 심연 너머에서 쇳소리가 섞인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고막 없는 뇌리를 직접 타격했다.[동기화 완료율 100%. 대상의 영적 파동을 명계 시스템 기본 주파수로 변환합니다.]이명과 함께 암흑이 찢겨 나갔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도진은 호흡을 멈췄다. 그곳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의 형태가 아니었다.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지하 공동. 천장에는 녹색 액체가 흐르는 투명한 관들이 핏줄처럼 엉켜 있었고, 바닥에는 이승의 한강 폭보다 넓은 거대한 수로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것은 집채만 한 부식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음이었다.수로를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니었다. 점성이 강한 칠흑빛 진흙에 가까웠다. 끈적거리는 검은 액체 속에서 이목구비가 녹아내린 인간의 형상들이 끊임없이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고통에 찬 비명과 저주가 터져 나왔다.이곳은 적어도 수천 년은 정비를 하지 않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지독하게 노후화된 거대 폐수 처리장이었다.도진이 넋을 잃고 수로를 내려다볼 때, 망막 위로 반투명한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사용자 정보]성명: 강도진 (사망)직급: 명계 정화 공정 제9구역 말단 처리공특성: 초월적 환경 분석가 (EX)현재 영혼 오염도: 0.01 PPM미래환경솔루션의 최연소 수석 연구원이 죽어서 온 곳이 저승 하수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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