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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화

Author: 유애
주명취는 태상황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해서 초왕의 부인인 원경릉보고 병시중을 들라고 한 것이지, 원경릉은 그저 병수발이나 드는 한낱 궁인보다 못한 존재지’

어의는 태상황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급히 약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다. 태상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약을 가져오지 않는게냐! 방금 초왕비가 한 말을 못들은거냐!”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명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태상황이 어의가 준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좋아진 것을 알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명원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빨리 가져오거라!”

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온화한 눈길을 주었다. 태상황이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약이 매우 써서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태후는 급히 약과를 하나 건내주었다. 약과를 입에 넣은 태상황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 했다.

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치도 못하게 황조부가 그녀의 말을 듣다니, 설마 그녀의 음모는 이미 실현된것인가?

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는 기뻐하며 원경릉을 칭찬하자 옆에 있던 예친왕까지 원경릉에게 칭찬을 했다. 황후는 웃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웃음이 왠지 어두웠다. 보아하니 주명취의 근심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명원제는 정사를 제치고, 태황상제를 보필하러 왔다. 태상황의 병이 호전됐다고 할지라고 어제 태상황이 임종 가까이 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단번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명원제와 예친왕에게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원경릉에게 말했다. “낮에는 오는 사람이 많으니, 이 틈에 넌 들어가서 잠을 보충하거라.”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외전으로 향하는데 상선이 다가와 원경릉에게 서난각으로 가서 쉬라고 했다. 그리고 상선은 궁녀들을 시켜 그녀가 갈아입을 옷과 외상약,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원경릉은 의아했다. 상선이 그녀를 보며 “태상황의 분부십니다. 잠시 후에 희상궁을 통해 약을 보낼 것 입니다. 희상궁은 태상황님을 여려해 모셨으니, 왕비님 다른 걱정 마십시오.” 상선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그녀는 왠지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서난각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궁녀가 뜨거운 물을 가지고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회색 옷을 입은 희상궁이 들어왔다. 그녀는 대략 50세 쯤 되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는 가지런하고, 눈썹과 귀가 아래로 축 내려온 것이 위엄있어 보였다.

“희상궁님!” 원경릉이 예의를 갖춰 보였다. “넌 나가보거라.” 희상궁이 옆에 있던 궁녀에게 말했다.

궁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희상궁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원경릉에게 말했다. “쇤네. 왕비에 옷을 벗겨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가루약 몇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원경릉은 옷을 벗고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 공간엔 희상궁의 숨소리와 그녀가 천을 가위로 자르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희상궁이 자른 천으로 상처를 동여매기 시작했다. 원경릉은 참지 못하고 두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왕비님 너무 아프시면 옆에 이불을 꼭 쥐세요.” 희상궁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으음!” 원경릉은 아픔에 몸부림치며 주먹을 더 강하게 쥐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내 인생에 이렇게 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겪어본적이 없다. 그간의 서러움과 상처의 아픔이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덜컥. 문이 빠르게 열리며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원경릉은 누군가의 발소리에 깜짝 놀라 담요를 끌어올려 몸을 덮으려고 하였다. 희상궁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담담하게 말했다. “초왕입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초왕이니까 더 가려야지!’

우문호는 원경릉이 서난각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일들에 대해 묻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 왔다. 이 곳에 희상궁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희상궁이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다니.

그의 마음 속에 분노와 의문이 더 강하게 솓구쳤다.

그러다 그의 눈에 그녀의 상처들이 들어왔다. 등, 허벅지, 배 등등…… 천조각이 덮고 있는 모든 곳은 피투성이였으며 고름도 보였다. 자신의 상처는 하나도 치료하지 못했구나.

원경릉은 흐르려고 하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었다. 그런데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고통보다 견디기 힘들어 그녀는 소리없니 눈물을 흘렸다.

한방울 또 한방울,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깨물며 울음 소리를 참았지만 그녀의 어깨는 하염없이 들썩였다.

우문호의 분노는 천천히 사그러들었다. 그녀가 공주의 처소에서 한 일과, 어제 밤 측전에서 자신에게 쏘아붙힌 말들 그리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그 광기어린 행동들이 떠올랐지만, 지금의 그녀를 보니 그 때의 모습과 극진한 대조를 보였다.

희상궁은 천을 다 자르고 초왕에게 말했다. “왕야 번거로우시겠지만 뜨거운 수건 좀 이리로 가져와주시지오.” 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옆에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긴 수건을 건네주었다.

“닦으시지오.” 희상궁이 말했다. 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처에 손댈 방법도 모를뿐 더러, 원경릉의 살갗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희상궁은 한숨을 쉬며 “안타깝지 않으십니까, 왕야!”

우문호는 어릴적부터 희상궁 손에 자랐기에 그녀의 말에 반박은 커녕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로 수건으로 살살 원경릉의 상처 부위를 닦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애처롭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상처들을 밤새 어찌 참으셨습니까.” 희상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수건으로 상처를 닦는 것이 어려우시다면, 약가루를 뿌리는 일은 할 수 있으시겠지요?”우문호는 가루약을 들고 원경릉의 상처 위에 뿌렸다. 약을 뿌리고 나니 고름이 흘렀던 상처가 보송보송해졌다.

원경릉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은 한번 시작하니 쉽게 멎지 않았고 이내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기침을 했다. 그녀는 아픔에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담요를 끌어안아 가슴을 가렸다.

원경릉이 허리를 들썩이며 기침을 하자 입에서 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붉은 선혈이 베개에 뿌려진 모양이 마치 한송이의 작약 같았다.

희상궁의 굳은 얼굴이 우문호를 보았다. “너……” 희상궁은 쏟아질 것 같은 말들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세상 어느 왕비가 이런 고생을 하냔 말이에요! 무슨 죽을 죄라도 지은 것 입니까?”희상궁이 원경릉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저 곧 죽겠죠? 그쵸?”

원경릉은 자금탕이 떠올랐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피를 토하는 이유는 자금탕 때문인 것 같았다. 기상궁과 녹주가 자금탕을 먹여줄때, 그 자금탕 안에 미세한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우문호의 소매를 잡고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하나만 부탁하는데, 나를 내쫓아줘. 내가 죽어도 초왕비로 죽지 않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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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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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수
제목만 다르고 내용이 똑같은 글이라니...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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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상황과의 독대내전 사람은 전부 나가고 태상황이 상선을 마뜩찮게 쳐다본다. 어째 나무토막처럼 움직이지도 않나 그래? 즐기는 것도 없나?상선은 원망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흘끔 쳐다봤다. 초왕비가 입궁한 이래 상선은 태상황 곁에 설자리가 없고 원경릉과 초왕이 푸다오를 살려내는 걸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니, 아니다, 푸념은 그만두자.상선이 문 밖을 지키는 궁인들을 내쫓자 내전은 일순간 조용해졌다.태상화은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푸바오 배에 있는 건 무엇이냐?”“….수…..수컷지네….인가봐요!” 원경릉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전 다른 사람들은 푸다오의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푸다오의 전신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오직 진정을 푸다오를 사랑하는 주인만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이실직고 하지 못하겠느냐? 다섯째를 데려다 문초를 해야 사실을 말할테냐?” 태상황이 엄하게 꾸짖는다.초왕을 문초하는 게 원경릉이랑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문초가 아니라 아예 곤장을 그냥, 삼십대 때려주면 딱 통쾌할 텐데 말이다.하지만 태상황이 준엄한 눈빛 앞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푸다오는 비장이 파열되어, 배를 열어 꿰매야 했습니다, 여기 보시는 것처럼 지네 같은 자국은 봉합한 자리입니다.”태상황은 입을 다물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건지 묻고 싶지만 존엄한 체면상 물어보지도, 이런 치료 방식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자금단은 누가 먹었느냐?” 태상황이 물었다.원경릉은 “제가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너한테 제법 하는구나.”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걸핏하면 매질을 하고, 따귀를 갈겨 대는 게 제법 하는 거라고?“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이냐?” 태상황이 다시 물었다.이번엔 원경릉도 감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 넘어졌습니다.”“바른대로 입을 열지 않으면 매를 들 수 밖에, 아직 매가 모자란 모양이구나.” 태상황이 코웃음을 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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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의 대결원경릉은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잘 봐라,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눈은 예리하게, 그러면 온갖 잡귀가 서서히 드러날 게다. 야심은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보면 알게 될 게야. 과인이 이제서야 너에게 그들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주는구나.”원경릉은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줄 알면서 왜 손을 안 쓰세요?”“왜냐면 귀신은 한 번 없앨 때 완전히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원래 사람이던 존재도 서서히 귀신으로 변하지, 야심이 인간의 본심을 집어 삼키는 거지. 하지만 과인이 이미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몸이라 힘이 없구나, 그들은 전부 우문 집안의 사람이야, 과인의 후손이지. 하나를 죽일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기지.”태상황은 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이 말이 뭔가 슬퍼졌다. 그는 조정의 태상황이란 최고 존엄의 위치면서도 자기 사람을 해치는 자조차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다섯째는 총명한 녀석인데, 눈이 멀었어!” 태상황은 운을 감고 또 중얼거렸다.원경릉은 태상황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주무세요.”태상황은 갑자기 눈을 떠 원경릉의 손목을 쥐고, “과인은 네 의술로 그 녀석이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길 원하네.”원경릉은 태상황의 애타는 눈빛을 보며, “마음의 눈이 멀은 걸요, 화타가 살아와도 못 고쳐요.”태상황은 다시 눈을 감는 게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하다.잠시 후,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상황이 잠이 들었다.푸바오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멍멍 짖는다.원경릉은 쪼그리고 앉아 푸바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줘, 누가 널 다치게 했어?”푸바오는 멍멍멍 3번 짖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다, 원경릉은 알아 들었다.“잘 했어, 걱정하지마, 괜찮아, 그 여자는 너 못 괴롭혀.” 푸바오를 달랜다.푸바오는 원경릉의 손을 핥는데 극도로 의지하는 눈빛이다.얼마 있다가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밖에서 시립하고 있다.“할바마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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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3394화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 명의 왕비   제3393화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 명의 왕비   제3392화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 명의 왕비   제3391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 명의 왕비   제3390화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 명의 왕비   제3389화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 명의 왕비   제3388화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 명의 왕비   제3387화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 명의 왕비   제3386화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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