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화가 우문호에게 얘기했다. “아내 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에너지가 있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물질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걸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물질을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불 같은 걸 말이죠. 우리는 불을 볼 수 있지만 많은 물질이 불꽃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공기 같은 것도 안에 연소가 가능한 기체 즉 산소나 수소 같은 게 있거든요. 공기 중에서 그 기체들을 뽑아내기만 하면 불을 붙일 수 있어요. 계란이는 그런 불씨를 구별해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어요. 불씨에 재빨리 불을 붙여 기체를 연소시킬 수 있죠. 그래서 불씨를 제거한 거예요. 그럼 계란이는 기체를 제어하게 되도 쉽게 불을 붙여 커다란 화재를 일으킬 리는 없게 되죠. 계란이가 자라서 마음이 성숙해지면 이 능력은 다시 돌려줄 겁니다.”우문호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당황한 채 물었다. “무슨 뜻이지? 계란....이가 공기 중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그게 뭐가 이상한데요? 우주에 에너지 물질이 이렇게 많은데 바람, 전기, 우뢰 등등등을 제어하는 사람도 있다고요.”“계란이는 왜 할 수 있지? 나는 제어 못 하는데?” 우문호가 묻자 기화가 우문호에게 말했다. “옆에 잔을 들어보세요.”우문호는 옆에 잔을 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들어올렸다.기화가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설명했다. “보세요, 태자 전하는 컵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잖습니까? 전하의 대뇌가 구별해 낼 수 있는 에너지예요. 전하께서 어떤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건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가능하죠. 예를 들어 무공을 수련하면 담을 뛰어 넘고 솜이나 낙엽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죠. 전하의 모든 행위는 전부 전하의 대뇌가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대뇌의 발육 정도에 달려 있는 거죠.”우문호는 기화를 한참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자네 말을
기화는 태자 부부에게 아이를 안으라고 했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제 이 아이가 세살이 될 때부터 매년 한 달씩 와서 성년이 될때까지 제가 배운 걸 전부 가르쳐 주도록 하죠.”우문호가 딸을 안고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계란이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낼 수 있는 건가?”기화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을 텐데요, 불꽃숭이는 쉽게 연소하는 물질을 완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의식에 의존해 불을 낼 수 없습니다. 만약 불꽃숭이 손에 부싯돌을 쥐고 있거나 초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원하면 초왕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지요.”기화는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태자비 마마 어딘가에서 곧 다시 뵙겠습니다.”기화는 말을 마치고는 바로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어딘가는 뭐가 어딘가야? 3년 후에 오는 거잖아? 3년 후에 여기서 보자면 되는 거 아냐? 웬 신비주의 컨셉이야!”하지만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주진이 한 말에 따르면 어쩌면 그날이 멀지 않았다. 원경릉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호가 열릴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어쩌면 이건 뇌 줄기세포 괴사의 조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원경릉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가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원경릉은 양여혜를 찾아가 시공간의 왜곡을 계속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시공간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면 경호가 제대로 작동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약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먼저 가서 원경릉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양여혜는 원경릉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위험계수는 경호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경호가 아니라 전체 공간으로 공간과 공간의 연결에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전에 원경릉 일행이 갔을 때 다른 공간에 끌려들어갈 위험이 있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양여혜 자력으로 억지로 끌고 올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도 시공간이 왜곡된 상황에서 사람을
원경릉이 진찰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먼저 맥을 짚어보고는 원경릉을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셨다.원경릉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청진기를 들고 갔다.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진단뿐으로 증상에 따른 치료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할머니와 얘기 끝에 분명 주재상 스스로 내공을 운용하다가 혈관을 터트려 뇌경부에 압력이 다시 높아진 것 같았다. 터진 혈관을 통해 나온 피가 덩어리져 신경을 압박해 다시 실명한 것으로 일련의 증상이 더한 것으로 볼 때 핏덩어리가 압박하는 곳이 이미 상당히 전진해 신경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매우 커졌고, 바로 뇌 줄기세포의 괴사를 일으킬 것이다.어르신들의 퇴임 후 삶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참으로 이런 큰 문제에 부딪히자 그야말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그런데 주재상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물러난 뒤로 희야랑 같이 있으면서 매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지,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잠들 필요도 없지, 일출 보고 일몰 보고 꽃이 피는 걸 보고 꽃이 지는 걸 보고. 긴 시간 느긋하고 편하게 식사하고 차를 마셨으니 난 더이상 여한이 없다.”주재상의 말에 원경릉은 하마터면 정신이 무너져내릴 뻔 했다.태상황은 잿빛으로 타들어간 얼굴로 주재상을 위로하려 헀으나 자신에게 도울 힘이 아무것도 없는 지라 무슨 말을 해도 전부 허망할 뿐이었다.희상궁은 주재상 곁에 앉아 계속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맺혔지만 죽을 힘을 다해 흘리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원경릉과 할머니가 각자 약을 처방해 한방과 양방을 혼합해 잠시라도 병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지 살폈다.하지만 수술말고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시간을 언제까지나 끌 수 없어서 만약 병세가 심각할 경우,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지도 모른다.원경릉은 초왕부에 돌아와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우문호는 괴로워하는 그녀 곁에 가만히 있을 뿐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원경릉은 산후조리중에 크게 마음을 상한 나머지 원기를 많이 잃게
“알겠어!” 우문호는 아마 만두에게 외할머니네 가서 주재상의 병세를 어떻게 치료할지 물어보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킬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우문호는 먼저 만두에게 갔다가 할머니를 부르러 갔다.만두와 경단이가 주머니에 약과를 넣어와 원경릉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 건넸다. “엄마, 나 먹을 거 있는데 엄마 줄까?” 원경릉은 피곤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안 먹어도 돼. 만두랑 경단이가 먹어. 엄마 머리 좀 봐.”만두가 손뼉을 치고 원경릉의 얼굴을 들고 이리저리 보더니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조금밖에 안 남았어... 거의 없어져 가니까.”경단이도 얼른 보더니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약과를 떨어뜨렸다. “어떡해? 거의 다 사라졌어.”“왜 이렇게 빠르지?” 만두가 중얼거리며 원경릉의 얼굴을 받쳐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쩐지 행동이 너무 느렸던 게 연결이 끊어지며 생기는 문제였을 것이다. “엄마, 어떡해? 경호는 아직 갈 수 없는데.” 경단이는 무서워서 맨발로 침대에 기어올라와 원경릉 곁에 엎드려 입술만 삐죽거렸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자신의 엄마가 슬퍼할게 분명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원경릉은 심호흡을 하고 애써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당황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원경릉은 자신을 애써 진정시켰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만두에게 말했다. “넌 어서 밥 먹고 나서 자러 가렴. 주진에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물어봐.”만두가 정신없이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지금 가요, 지금 갈래요! 나 배 안 고파요!”만두가 이 말을 하며 얼른 밖으로 달려갔다가 문 앞에서 다시 돌아와 원경릉의 목을 끌어 안고 볼에 뽀뽀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울먹거렸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아무일도 없을 거예요. 기다리세요.”“우리 만두 착하지!” 원경릉은 만두가 이렇게 당황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재상과 공부한 뒤로 줄곧 침착했던 만두
원경릉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으려는 듯, “한기가 도나봐요. 할머님, 얼른 감기약 지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맥 좀 먼저 짚어보고!” 할머니는 한동안 원경릉의 맥을 짚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우문호가 옆에서 보면서 할머니의 안색이 평소와 다르자 얼른 경단이를 내보내고 물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할머니가 손을 바꿔 계속 맥을 짚으며 되는 대로 우문호의 말에 답했다. “며칠은 걸려야 나아지겠는 걸.”“그럼 계속 약을 먹어야 겠네요.” 우문호가 가슴 아파했다.할머니가 약간 어색한 목소리로, “넌 가서 손난로 가져오라고 해. 이불 속 좀 따듯하게 해주게. 두 손이 어찌나 찬지.. 원.”“네!” 우문호가 재빨리 뛰쳐 나갔다.할머니는 원경릉의 두 손을 이불 속에 넣고 원경릉의 경동맥을 만지더니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왜요?” 원경릉도 자신의 맥이 이상하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으나 만두쪽에서 아직 소식이 없어서 일단 모르는 척 해야 했다.“심장박동도, 맥도 아주 엉망이야. 게다가 조금 멈추기까지 해. 너도 의사니 왜 그런지 알지? 네 대뇌의 약품이랑 관련이 있는 거니?” 할머니가 물었다.원경릉은 움찔움찔 움츠러들었다. 이쪽 방면으론 할머니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몰라요, 만두에게 자러 가서 주진에게 상황을 물어보라고 했어요.”“돌아갈 수 있니?” 할머니도 조금 당황하셨다.“경호로는 아직 못 가요. “ 원경릉이 한숨을 내 쉬었다.“그럼 다른 방법은 있고?” 할머니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물었다.원경릉도 할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걱정 마세요. 주진한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할머니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지만 이 일에 할머니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우문호한테는 일단 모른척 해주세요. 만두가 주진에게 물어본 뒤에 어떤 상황인지 알면 그때 말하기로 해요.” 원경릉이 속삭이자 할머니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위를 내
해동 과정이 이미 시작되어 원경릉의 신체가 탔을 경우 현대의 원경릉이든 북당의 원경릉이든 전부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자 불안한 생각에 휩싸여 주진은 자신의 뺨을 몇 번이고 세게 때려댔다.“주진씨, 주진씨!” 정신없는 가운데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와 그를 애타게 외쳤다.주진이 얼른 일어나 보니 원경주가 흰 가운을 입은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주진은 또다시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원경주는 주진을 일으켜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동생은 구하셨나요?”주진이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아뇨. 아직 안에 있어요.”원경주가 경악하며 주진을 버려두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로 소방대원들에게 막히자 원경주는 미친사람처럼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 내 동생이 안에 있어… 내 동생이 안에 있다고. 당장 이거 놔!”그러자 소방대원 얼굴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뭐요?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요?”그러고는 서둘러 무전기를 들고 화재 현장에 있는 다른 소방원들에게 외쳤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화재 현장에 아직 사람이 있다. 어서 찾......”원경주는 소방대원이 얘기하는 사이에 그의 손을 뿌리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위험해요! 들어가면 안 됩니다.....!” 뒤에서 보안요원과 소방대원이 막으러 달려갔지만 원경주는 이미 안으로 뛰어든 뒤였다.모든 연구실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었고, 바닥에 불 탄 잔해들과 불을 끈 시커먼 물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쪽 편은 아직 불이 타고 있어 소방대원이 높은 사다리에 올라 아직까지도 물을 뿌리고 있었다.원경주는 다른데 주의를 기울일 틈 없이 안으로 돌진했는데 소방대원이 와서 원경주를 잡자 원경주가 뿌리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당신들은 어서 날 따라와요!”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고, 원경주가 이렇게 다급한 것을 보고는 소방대원 세 사람을 같이 보냈다.냉동실이 있는 12층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눈
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원경주의 집으로 돌아갔다.원교수와 원경릉의 엄마는 이미 집에 있었는데 아직 연구실의 화재 사건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단지 소식을 접하는 시간 차만 있을 뿐이었다.그래서 원경주는 숨기지 않고 바로 그들에게 말했다.원경릉의 엄마는 듣고난 뒤 너무 놀라 손발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으며 그 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굳어 있었다. 원경주가 겨우 진정시켰지만 정신을 잃은 채 울뿐이였다. 전에 원경릉에게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우울증에 걸렸었다. 딸이 북당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는데 지금 또 다시 이런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원경릉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해? 계란이가 막 태어났는데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위와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버려두고 가는 건데?”원교수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은 아내 뿐 아니라 원교수 본인도 충격을 이길 수 없었다.원경주는 눈물을 삼키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원경릉 엄마의 상태가 좀 안정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불이 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소방대원이 조사할 겁니다. 하지만 동생 일에 대해선 우리가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주진씨가 한 가지를 떠올렸어요. 우리 같이 한번 상의해 보죠. 가능할지도 모르니깐요.”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즉시 주진을 바라봤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로 가슴이 벌렁거리며 그래도 주진이 믿을만한 방안을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주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지금 뇌 줄기세포는 완전히 괴사된 것은 아닌 상태로 제가 일종의 약을 주사해 놓았습니다. 지금 원경릉의 몸은 사용할 수 없고 다시 냉동실로 돌려보낸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경릉의 대뇌를 위해 적합한 신체를 찾아주는 것으로 적당한 그릇이라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요. 적당한 온도에서 뇌세포가 재생되고 자가치유하게
만두가 북당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이 곳에서 큰외삼촌이 묻는 말을 듣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만두가 울자 원경릉 엄마는 가슴이 멎으며 몸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만두를 보는 원경릉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만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인데 이렇게 심하게 우는 건 분명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원경주가 슬픔을 참고 일단 만두를 다독이며 의자에 앉히고는 조심히 물어봤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렇지?”만두가 흐르는 눈물을 닦자 코끝이 빨개져서 특히나 불쌍해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보더니 결국 외삼촌을 보고 힘들게 말했다. “엄마 빛이 거의 꺼지려고 해요.”다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만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원경주가 만두를 안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진에게 물었다. “주진씨가 얘기한 방법말인데요, 두번째는 우리가 시험해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고, 어떤 환경 하에서 뇌 줄기세포가 다시 생겨나거나 회복되는지 심지어 완전한 대뇌로 자라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첫번째 방법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방법이 일단 수술의 난이도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시공간의 왜곡이 나타났는데 원경릉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죠? 주진씨가 전에 닥터 양여혜에게 물었던 적이 있고 닥터 양여혜도 동생을 돕는 셈 치겠다고 했다지만 동생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보장할 수 없다고요. 동생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원경주의 이 말은 주진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두가 근심에 빠져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원경릉 엄마는 소리를 참아가며 눈물을 삼켰는데, 손을 뻗어 만두를 안는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딸이 이 아이들을 두고 가면 아이들은 앞으로 엄마 없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지를.. 그리고 한참 뒤, 주진이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을 뒤지더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