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예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에는 공포와 불안이 가득 차 있었다.“어떡해. 이제 어떡해... 언니가 나 죽이려 들 텐데.”서지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게다가 욕구를 풀면 서나연의 몸에 좋기만 한데 말이다.내가 내 생각을 말하자 서지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수호 씨가 뭘 알아? 우리 언니가 예의를 얼마나 중요시하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 보인 적 없다고.”“그런데 방금 언니가... 그러니 분명 날 죽이거나 본인이 죽으려고 하거나 할 거야...”한창 중얼거리던 서지예는 갑자기 불안해져 다급히 서나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언니, 나 잠깜난 들어갈게.”“나가. 다 나가!”서나연은 목청이 갈라질 듯 소리쳤다.하지만 서지예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안심하는 듯 웃었다.“날 욕할 힘도 있다는 건 괜찮다는 뜻이야. 너무 다행이다.”‘좀 쪽팔린 게 뭐가 그리 심각한 문제라고?’나는 여전히 서나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 일이 있은 뒤 서나연이 치료에 협조하려고 하니 나는 처방전을 내주고 먼저 떠났다.서씨 저택에서 나온 뒤 나는 곧장 유미 사모님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삼계탕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사모님, 삼계탕 끓였어요? 냄새 너무 좋은데요?”사모님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네. 호섭 씨 몸이 이제 막 나아서 몸보신하라고 좀 끓였어요. 참, 수호 씨 것도 남겼는데 맛 좀 봐요.”나는 기분 좋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국이 삼계탕 두 그릇이라 어떤 것이 내 것인지 알 수 없었다.나는 그중 한 그릇을 대충 집어 들었다.“사모님, 삼계탕 너무 맛있어요...”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삼계탕을 들고나올 때 사모님은 내 손에 들린 삼계탕을 보더니 얼굴색이 싹 변했다.“수호 씨, 이, 이거 수호 씨 거 아니에요.”“네? 안에 두 그릇이 있길래 아무거나 집은 건데요. 그럼 이건...”“그, 그건 내 거예요
윤미화가 덤덤하게 비수를 꽂았다.[그건 수호 씨가 몰라서 그래. 유미가 어릴 때부터 각종 그릇을 수집하기를 좋아해. 특히 사기그릇. 그 집에 이상한 도자기 그릇이 엄청 많은 거 못 발견했어?]나도 그건 발견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했다.[그런 게 무드라는 거야. 남자들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지.]그런 걸 아무리 몰라도 배상해야 할 건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그럼 이런 그릇은 어디서 살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살 수 있어요?”[인터넷에 비슷한 건 있지만 모두 짝퉁이야. 정말 사려면 그 도자기 공방에 찾아가야 해. 하지만 꼭 찾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그 그릇은 유미가 어릴 때부터 사용한 데다 혼수로 가져간 거라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소장품에 속해.]윤미화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터무니없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작 그릇 하나가 소장품이라니.나는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사모님 집으로 돌아갔다.“사모님, 죄송해요. 똑같은 그릇을 찾지 못했어요.”“괜찮아요. 이건 이제 찾기 어려워요. 이건 내가 호섭 씨를 위해 준비한 삼계탕이니 이따가 가져다줘요.”사모님은 화제를 전환하며 나를 탓하지 않았다.사모님이 좋은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애장하던 그릇을 나 때문에 쓰지 못했는데 탓하지도 않다니.나는 그릇을 몰래 사진 찍어 점심 휴식 시간에 공방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비록 똑같은 걸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는 게 예의였다.나는 화인당에 삼계탕을 가져다주었다. 화인당 직원들은 사장님이 참 복 받은 사람이라며 모두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수호 형, 나 잠깐 따라와 봐요.”오민혁은 내 어깨를 감싸며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무슨 일이에요? 뭔데 이렇게 비밀스러운 거예요?”“수호 형 친구인 조현성이 요즘 형의 그 선영 후배를 쫓아다닌다던데, 두 사람 어떻게 됐어요? 선영 후배가 동의했어요?”오민혁은 여전히 주선영을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내세울 장점이
“무슨 방법인데요?”나와 모태진은 좋은 친구이니, 모태진이 내 도움을 필요하다고한 이상 당연히 도와드려야 했다.모태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갔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 방법이 좀... 말하기 낯부끄러운데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무슨 방법인데 낯부끄럽다는 거예요?”나는 궁금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모태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내는 내가 다른 여자와 붙어먹었다고 불결해서 싫어하잖아요. 그러니 아내도 한번 다른 남자 만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어 눈이 커다래졌다.“미쳤어요?”“나 미친 거 아니에요. 나 진짜 진지해요!”“태진 씨가 너무 진지해서 미쳤냐는 거예요!”나는 높은 소리로 강조했다.“부부가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아내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 만나게 하겠다고요? 대체 결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모태진도 마음에 조급해 귀를 잡아당겼다.“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이러는 거잖아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리 방법이 없어도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난 수호 씨면 동의할 줄 알았어요...”모태진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왜 동의할 줄 알았어요? 내가 평소에 바람기가 많다고 기본적인 도덕도 내다 버린 줄 알아요?”모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북인과 다름없었다.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모태진을 바라봤다.“내가 아무리 바람기가 많다지만 책임을 안 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난 결혼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태진 씨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봐요.”“미안해요. 내가 수호 씨를 오해했네요. 난 수호 씨가 향락에 빠진 사람인 줄 알았어요.”모태진은 나를 향해 사과했다.내가 향락에 빠져 있다지만 그건 다 호기심 때문에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거다. 게다가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고작해야
임화영은 슬쩍 자기 주머니를 열어 전에 내가 버렸던 본인의 팬티를 보여주었다.“무슨 뜻이에요?”나는 경고 섞인 눈빛으로 임화영을 바라봤다.그러자 임화영인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이걸 꺼내서 수호 씨가 내...”‘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내가 그걸 두려워할 줄 알고?’나도 차가운 미소를 되돌려주었다.“마음대로 해요. 가게 영업에 영향 줘도 괜찮다면.”임화영은 내가 이런 거로 저를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화가 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임화영은 진작 목표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했지만 분을 삭히지 못해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미모도 뛰어나고, 몸매도 뛰어난 자신이 주해진 같은 사람의 마음도 얻었는데 미혼인 총각의 마음 하나 흔들지 못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임화영은 다시 내 사무실로 들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은밀한 방법이 안 된다면 간단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임화영은 아예 옷을 모두 벗고 인어처럼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물건을 가지러 사무실에 온 내가 본 건 다름 아닌 매혹적인 자세로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임화영이었다. 그녀의 옷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나는 어두운 얼굴로 임화영을 바라봤다.“당신 물건 당장 주워요.”“수호 씨가 대신 주워줘요.”임화영은 고의로 나를 유혹했다.하지만 내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안 주우면 밖에 내다 버릴 거니까 잘 생각해요.”“어디서 감히!”“내가 감히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 두고 봐요.”나는 문 앞에 다가가 민우를 불러왔다.“민우야, 네 방에 있는 빗자루 가져다줘.”민우는 내 사무실에 들어와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그러고는 곧바로 방에 있던 빗자루를 가져왔다.내가 바닥에 있는 옷을 쓰레기처럼 쓸어내려고 할 때, 임화영은 흠칫 놀라 헐레벌떡 침대에서 내려왔다.“정수호, 당신 남자 맞아?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임화영은 시간을 대충 가늠해 살금살금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수호 씨, 수호 씨...”임화영은 내가 정말 의식을 잃은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나를 흔들었다.나는 약간 어디러운 건 맞았지만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쓰러지는 순간 이미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지만 임화영이 이렇게 비겁한 수단으로 나를 모함한 것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젠장. 정말 별수단을 다 쓰네.’‘그래. 그럼 나도 당해주는 척 기회를 볼 수밖에!’나는 선반 위에 놓인 카메라를 한 번 확인했다. 이윽고 녹화 중인 걸 확인하고는 계속 쓰러진 척 연기했다.임화영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어린 것이 별것도 아니면서. 결국엔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거 왜 그랬어?”임화영은 말하면서 나를 부축해 침대에 세게 밀치더니 곧이어 침대에 올라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나는 그 순간 갑자기 눈을 떠 임화영의 손목을 잡았다.“뭐 하는 거예요?”임화영은 흠칫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녀도 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머리를 굴렸다.“나, 난 수호 씨가 불편하게 누워있길래 부축해 준 거예요.”“내 차에 약을 탔죠?”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고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척 힘든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임화영 가슴에 고정한 채 침을 삼켰다.그 모습을 본 임화영은 이내 다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마구 만져대기 시작했다.“맞아. 내가 약 탔어. 어쩔래? 괴롭지? 하고 싶지?”나는 조금 전 은침으로 이미 약효를 완화시켰기에 지금 보이는 모습은 모두 연기였다. 나는 연기를 계속했다.“뻔뻔스럽긴. 여자가 어떻게 남자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주해진이 이러라고 시켰어?”임화영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주해진이 시킨 거 아니야.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벌인 짓이야. 내가 그냥 대주겠다는데, 네가 뭔데 싫어해? 그럴 자격 있어?”나는 속으로 싱긋 웃었다. ‘보아하니 계획 성공이네.’나는
나는 피식 웃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선반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임화영은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아까 녹화했어? 이건 너무 비겁하잖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당신이 먼저 비겁하게 나한테 약을 타고 내 몸 노렸잖아. 난 똑같이 돌려준 것뿐이야. 왜? 당신만 비겁한 방법 사용할 수 있고 난 안 돼?”임화영은 내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핸드폰 이리 내!”임화영은 명령투로 말했다.그 말투에 내 표정은 바로 싸늘해졌다.“무슨 꿈을 꾸는 거야? 이건 내가 당신을 주무를 수 있는 증거인데, 내가 왜 당신한테 주겠어?”그 순간 임화영의 머릿속에 주해진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주해진은 전에 분명 내가 상대하기 어려우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임화영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내가 아직 사회 새내기라 자기가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되었다.“계속 나한테 시비 걸지만 않고 가게에서 쓸데없이 자꾸만 돌아다니지 않는다면, 이 핸드폰 안에 있는 증거는 다른 사람한테 공개하지 않을게.”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패를 깠다.그 말을 들은 임화영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비겁해!”“하. 마음대로 지껄여 봐!”임화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손에 증거도 있겠다, 이참에 나랑 자는 거 어때?”“당신 미쳤어?”“나 안 미쳤어. 사실 수호 씨 얼굴은 잘생겼잖아. 내 스타일이야. 나도 한 번 즐겨보지, 뭐.”임화영은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나한테 몸을 밀착해 왔다.나는 그런 임화영을 힘껏 밀쳐냈다.“그쪽 눈에 내가 잘생겨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 그쪽은 별로거든. 당신은 내 스타일 아니야.”“공짜로 성용 좀 푼다고 생각하면 되잖아.”“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 내가 그동안 굶어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사람도 아니고.”임화영은 내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분노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
아래층에 도착해 보니 웬 중년 남자 한 명인 몸을 웅크린 채 끊임없이 ‘아이고’를 외쳐며 곡소리를 냈다.그 남자 옆에 호피 무늬 치마를 입은 섹시한 여성이 서 있었는데, 머리는 산발인 데다 화장도 다 번지고 옷도 흐트러져있었다.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그 짓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남자가 감싼 곳을 보면 너무 선명했다.나는 남자의 그곳을 흘긋거리며 말했다.“그곳을 다친 거야?”“응.”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 가야지 정형외과에는 왜 왔대?”현성은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저 남자의 마누라가 병원 고위층이라서 발각될까 봐 병원에는 가지 못 한대.”나는 속으로 남자를 자업자득이라며 혀를 찼다.아내가 병원 고위층이라면 분명 수입도 많고 권력도 많고 인맥도 많을 거다. 그런 아내를 잘 떠받들지는 못할 망정 밖에서 바람이나 피워대니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나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환자분 상태에 대해서는 대충 알았어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간단한 처치만 해드릴 수 있지 수술은 큰 병원에서 받으셔야 해요.”“내가 큰 병원 안 가려고 여기 온 거잖아. 만약 이거 못 고치면 내가 여기를 싹 다 뒤엎을 거야.”남자는 아파 죽을 것처럼 신음을 흘리면서도 나를 협박해댔다.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렇다면 죄송하네요. 환자분 증상은 여기서 못 고쳐요. 그냥 가세요.”그때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앞으로 다가와 위세를 부렸다.“안 돼. 치료하고 싶어도 해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해!”“왜요? 치료하지 않는 게 불법이라도 된다는 거예요?”“난 그딴 거 상관 안 해. 무조건 고쳐.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연씨 가문 사람이야. 이 사람한테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수 있어?”‘연씨 가문 사람?’‘설마 연승호와 무슨 관계라도 있나?’나는 몸을 다시 쪼그렸다.“당신 연승호와 무슨 사이인데?”“승호는 내 조가야. 내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연재혁 변호사거든. 당신이 나 제대
현성은 걱정스러운 듯 나를 봤다.“이대로 보내줘도 괜찮아? 저 사람들 미움 사는 거 아니야?”“저 사람들을 이곳에 남겨도 치료하지 못하면 똑같이 미움 사. 그런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나는 덤덤하게 물었다.그 말을 들은 현성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그래! 그런데 나 진짜 새로운 세계에 눈떴어. 예전에 뉴스에서만 그 짓을 하다가 그곳이 부러지는 걸 봤는데, 오늘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대체 어떤 자세로 하면 그곳이 부러져?”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알고 싶어? 그러면 네 선영 후배랑 알아 나가면 되잖아.”선영을 언급하자 현성은 바로 흥분한 듯 말했다.“아, 네가 한번 얘기해 봐. 선영 후배 마음은 대체 뭘까?”“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여자 친구지 내 여자 친구야? 그리고 그동안 진도 좀 빼지 않았어? 왜? 또 무슨 일 있는 거야?”“아무 일 없어. 그냥...”현성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나는 힘껏 현성을 걷어찼다.“말할래, 안 할래? 안 하면 말아. 난 그냥 조언하는 입장인데, 내가 왜 너를 재촉해야 해?”현성은 말하면서 엉덩이를 문질렀다.“우리 둘이 계속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못해. 왜 그럴까?”“이유가 뭔데?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현성의 말은 너무 두루뭉술했다. 내 말에 현성은 자기와 주현영의 일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주현영이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현성이 중요한 타이밍에 자꾸만 물러난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서 현성은 아직도 배짱이 모자란 거였다.나는 현성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다음에 둘이 만날 때 술을 마셔. 술을 마시면 용기가 생기고 뭐든 할 수 있어.”“그게 될까?”“왜 안 돼?”“내가 오늘 점심에 선영이를 불러낼 거니까 우리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현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현성을 돕기로 한 이상 끝까지 돕기로 결심했기에 흔쾌히 대답했다.“그래. 내가 같이 가 줄게. 민우한테 가게 맡기고 넌 자유를 즐겨.”그날 점심, 현성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