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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거짓을 향한 증인

Author: smkort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3 16:06:27

진한상단은 다른 때와 달리 밤늦도록 분주했다.

상단 사람들은 창고를 뒤지며 거래 물품과 목록표를 하나하나 대조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거란족 사신단이 함께 서 있었다.

"족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쿠란이 급히 한 장의 목록표를 내밀었다.

"무기뿐만이 아닙니다. 군마 삼십 필, 마구 일식, 철괴 오십 근, 화살촉 오천 개, 심지어 초석과 유황까지 거래한 기록이 있습니다."

족장은 목록을 받아 천천히 훑어보다가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

"바리칸 그자가 감히 우리 상단의 물건을 제멋대로 조선에 팔아넘겼단 말이냐.“

금성대군은 구겨진 목록표를 천천히 펼쳐 다시 훑어본 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족장을 바라보았다.

"일이 예상보다 더 복잡해졌습니다."

"수양대군이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거란족과 내통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족장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없다고?"

그는 어이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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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103. 형제만의 약속

    백현과 김종서 휘하의 젊은 군사는 말을 타고 한양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산길은 외길이었지만 생각보다 험하거나 좁지는 않았다.사람의 왕래가 아주 끊긴 곳은 아닌 듯 군데군데 말발굽 자국도 남아 있었다.백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뒤따라오는 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큰 나무 한 그루가 나올 것이오. 그곳까지 가면 됩니다.”젊은 군사는 고개를 들어 앞쪽 산길을 바라보았다.“그곳이 백윤과 만나기로 한 장소요?”“정확히는…… 아우에게 연락을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연락을 남긴다?”백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예. 예전부터 우리 형제가 급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하던 곳이지요.”군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말을 몰았다.다그닥— 다그닥—한적한 산길 위로 두 필의 말발굽 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졌다.그렇게 얼마를 더 가자 작은 언덕배기 위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냈다.뒤따르던 군사가 나무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나무요?”“예. 맞습니다.”백현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근처 나무에 단단히 묶어두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언덕 위의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잔잔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가볍게 흔들었다.백현은 한동안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이곳도 그대로구나…….’어린 시절 백윤과 함께 이곳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이내 백현은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냈다.그리고 나무 아래로 몸을 숙여 땅에 짧은 칼집 몇 개를 남겼다.슥— 슥—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다요? 쪽지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오?”백현은 단검을 다시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저 표식을 백윤이 알아본단 말이오?”“이렇게 표식을 남긴 뒤 근처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우가 그곳으로 찾아올 겁니다.”군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102. 아우를 찾는 길

    ‘자네 아우인 백윤이 수양대군과 함께 붙잡히는 과정에서 도주한 뒤 종적이 묘연하다는군.혹시 자네에게 따로 기별이 온 것은 없는가?’백현은 모화관 석실의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에 족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수양대군을 따르는 이상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막상 하나뿐인 아우가 도망자가 되어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자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백윤…….’백현은 씁쓸하게 느껴지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석실 밖에는 마침 쿠란과 사신단 수행원들이 있었다.“쿠란, 혹시 족장께서는 어디 계십니까?”“조선의 왕과 맺을 화친 문서를 살펴보고 계시는데. 무슨 일인가?”백현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아우를 찾고 싶습니다.”쿠란의 표정이 굳었다.“안 된다.”“쿠란…….”“백윤은 지금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쫓기고 있다. 그런 자를 우리가 몰래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화친은 물론이고 수양대군과 내통한다는 오해까지 받을 수 있어.”백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쿠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그래도 하나뿐인 아우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형으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그때였다.“가게 둬.”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족장?”족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 뒤에 서 있었다.그는 백현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조선 몰래 찾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설마 전하께 허락을 구하시려고요?”족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처음부터 사정을 밝히고 허락을 구한다면 괜한 의심을 살 이유도 없겠지.”쿠란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연한 이방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화친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명심하십시오.”“알고 있다.”족장은 수행원에게 시선을 돌렸다.“전하께 보낼 서신을 준비하게.”“예.”백현은 멀어지는 수행원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백윤…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101. 서로가 숨긴 패

    -의금부-수양대군이 갇혀 있는 옥사에 어둠이 내려앉자, 내시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인기척을 살핀 사내가 옥 앞에 멈춰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대군마마, 접니다.”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수양대군이 천천히 눈을 떴다.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그래. 뭘 좀 들었느냐?”“예. 전하께서 중전마마를 비롯한 몇몇 사람을 은밀히 불러 대군마마에 관한 이야기를나누셨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해서?”“우선 대군마마의 처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리고…….”사내가 잠시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백윤이라는 자를 하루빨리 잡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백윤을?”“예. 대군마마께서 옥에 계시면서도 지나치게 평온하시다는 것을 김종서 대감이 수상하게여긴 듯합니다.”그 말에 수양대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김종서답군.”“그리고 전하께서도 대군마마의 처결을 마냥 미루지는 않으실 듯합니다.”“…….”이번에는 수양대군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생각보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이상한 이야기?”“중전마마께서 수양대군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수양대군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뭐라?”“마치 대군마마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알고 계시는 것처럼 들렸다고…….”“잠깐.”수양대군이 사내의 말을 끊었다.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방금 중전이 뭐라고 했다고 했느냐?”“아, 중전마마께서 대군마마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다…….”“예. 그런데 아무래도 실수로 내뱉으신 말 같았습니다.”“실수?”“예. 사람이 무심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나면 순간 아차 하지 않습니까.”사내는 잠시 당시의 모습을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100.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늘 고요하던 왕의 서재가 오늘만큼은 평소와 달랐다.단종을 비롯해 이번 수양대군의 일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흠, 조선이라는 나라는 은밀한 공간이 제법 많은가 보오.”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거란족 족장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단종은 그런 족장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입을 열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단종이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다만 왕이라는 자리는 누구도 쉬이 믿을 수 없는 자리이지요.”잠시 말을 멈춘 단종이 서재 안을 둘러보았다.“그러다 보니 선대의 왕들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한두 군데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왕이라는 자리라…….”족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와 사는 방식은 달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군.”단종은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단종의 얼굴에 번진 씁쓸한 미소를 바라보던 지우는 탁자 아래로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갑작스러운 온기에 단종이 살짝 놀란 듯 지우를 바라보았다.“전하, 너무 씁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지우가 그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며 미소 지었다.“그래도 이렇게 전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맞습니다, 전하.”금성대군 역시 곧바로 지우의 말에 힘을 보탰다.“저와 김종서 대감도 있고, 다른 방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 저잣거리 의원 역시 전하의 편이지 않습니까.”단종은 아무 말 없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씁쓸함이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사라졌다.“……그렇구려.”단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과인이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오.”그러고는 천천히 지우의 손을 마주 잡았다.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을 때만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99. 끝나지 않은 야망

    -의금부-평소보다 경계가 한층 삼엄해진 의금부.옥 안에 갇힌 죄수들마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이런, 제길. 하필이면 왜 저분이 우리 옥에 들어오셔서는 사람을 이리 불편하게만드는 게야.”“참게. 아직 판결도 나지 않았잖나. 혹시 아나? 운 좋게 풀려나실지.”“설마. 아무리 대군이라 해도 이번에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그래도 왕실의 종친이시잖나.”“종친이면 뭐 하나. 듣자 하니 전하께 칼을 겨누다시피 했다는데.”“쉿! 목소리 낮추게. 그러다 옥졸이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나.”그 말이 떨어지자 죄수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슬쩍 한쪽을 바라보았다.다른 죄수들과 떨어진 가장 안쪽 옥사.그곳에는 수양대군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리고는 백윤이 자신이 붙잡힐 때 건낸 쪽지를 바라보았다.‘대군마마 계획대로 마마께서 옥에 갖쳐 있는 동안 전 그동안 숨겨놓은 군사들을 한데 모으겠습니다.“쪽지내용을 훝터 본 수양대군은 희미하게 웃으며 쪽지를 품 안으로 넣고는 눈을 감았다.’뚜벅뚜벅‘갑자스럽게 발소리가 들리자 수양대군은 옥졸이라도 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세을 유지했다.그러나 무언가 죄수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커 눈을 떠보니 앞에 금성대군이서 있었다.“형님.”수양대군이 벽에 기대던 자세를 고치고는 천천히 입을열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마지막이라…… 벌써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금성대군의 표정이 굳어졌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신 겁니까?”“…….”“전하의 자리가 그리도 탐나셨습니까?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중전마마를 겁박하고, 제 목에 칼까지 겨누실 만큼 말입니다.”수양대군은 한동안 금성대군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무엇을 말입니까?”“왕좌란 말이다.”금성대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결국 왕좌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까?”“아니.”예상 밖의

  •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98. 한 걸음 더 가까이

    지우의 질문에 단종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자, 지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읽던 서책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럴 줄 알았습니다.”“……무엇을 말이오?”“저와 전하는 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지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며 책장을 한 장 넘겼다.사락—하지만 말과 달리 어딘가 뚱해진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자신도 모르게 곁눈질했다.‘왜 저리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이지?’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보길 바라는 것인지도 몰랐다.단종이 계속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지우가 결국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전하.”“……왜 그러시오?”“계속 그렇게 보고만 계실 겁니까?”그제야 단종이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읽던 서책을 보러 오셨다면서요.”“아…… 그렇소.”단종은 황급히 아무 서책이나 한 권 집어 들었다.그런데 책을 펼치고도 글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지우가 한 말만 계속 맴“돌았다.‘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아직……이라.’탁—지우가 읽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아무래도 저는 이만 가봐야겠네요. 전하께서는 읽던 책 마저 보고 가세요.”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단종은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덥석—지우의 손목이 아닌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지우가 놀란 눈으로 단종을 바라봤다.“전하?”단종 역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곧바로 놓지 않았다.“저기…….”단종이 조심스럽게 지우의 표정을 살폈다.“혹시 내가 아까 중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서 기분이 상한 것이오?”지우는 잠시 단종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천천히 풀어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전하.”“중전…….”단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지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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