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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사기 아님 확인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6:37

헤일로크 교수가 칠판 앞에서 영창처럼 끊어 말했다.

“원진은. 해 뜨는 쪽에서. 긋기 시작하네.”

앞줄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올가을 들어온 신입생이었다.

“왜 해 뜨는 쪽입니까?”

교수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두툼한 손으로 턱을 쓸었다.

“원래. 그렇네.”

루엔은 수첩을 폈다. 앞쪽, 원래 그렇다 쪽. 마지막 줄 아래에 조용히 적었다. 원진은 해 뜨는 쪽에서 긋는다. — 헤일로크 교수. 열세 살 늦겨울. 그리고 줄 앞에 번호를 붙였다.

서른일곱.

교수는 느렸지만 눈은 느리지 않았다. 칠판에서 돌아서다 루엔의 펜을 보았다. 교탁을 내려와 계단식 의자 사이를 걸어 올라왔다. 한 걸음에 한 마디씩.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무엇을. 적었나.”

“서른일곱 번째입니다.”

“무엇의.”

루엔은 수첩을 돌려 내밀었다. 교수가 받아 들었다.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느리게.

“되는 고을마다. 다르다. 핌. 네 살. 가을.”

뒷줄에서 누가 킥킥거렸다.

“동전은. 깎인 채로. 한 닢. 아버지. 다섯 살.”

“간은 손이. 안다. 베르타. 다섯 살.” 교수가 멈췄다. 그 줄엔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옆에 작은 글씨. 고침: 베르타. “고쳤군.”

“베르타가 고쳤습니다. 저울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다음 줄로 넘어갔다. 빌리는 사람이 약하다. 겔트. 한 줄 한 줄. 누가 말했는지, 몇 살 어느 계절인지. 강의실 학생들은 처음엔 웃었고, 열 줄쯤부터는 웃지 않았다. 스무 줄쯤부터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줄마다 고쳤는지 아닌지가 적혀 있었다. 고친 줄이 생각보다 많았다.

서른째 줄쯤에서 종이 울렸다. 종지기 게릭의 종이었다. 강의가 끝났다는 종.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수가 서른여섯째 줄까지 읽고 서른일곱째에서 멈췄다. 제 이름이 있는 줄이었다. 교수는 한참 그 줄을 보다가 수첩을 돌려주었다.

“서른일곱 번째. 옆은. 비워 두게.”

“예.”

“까닭을. 찾아보지.” 교수가 계단을 내려갔다. 한 마디씩. “사십 년 동안. 해 뜨는 쪽에서. 그었네. 까닭은. 안 물었어.”

*

청색탑 검사관이 온 건 그 이레 뒤였다.

교장실 옆 작은 방에서 교장 마그누스 할베르크가 루엔을 불렀다. 방 안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쉰이 조금 넘어 보였다. 잿빛 머리를 짧게 잘랐다. 푸른 겉옷이 구김 하나 없었다. 손이 깨끗했다. 잉크 자국도 굳은살도 없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많았는데 웃어서 생긴 주름 같지는 않았다.

“청색탑 검사관 이졸드다.”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끊겼다. “빛이 나지 않는 마법이 사기인지 가려 달라는 청이 탑에 여러 번 들어왔다. 가리러 왔다.”

“누가 청했습니까.”

“말할 까닭이 없다.”

교장이 옆에서 말했다. “시험은 강당에서. 내가 보겠다. 헤일로크와 뵈르너도 부르겠다.”

“시험은 제가 짭니다.” 이졸드가 말했다. “학생에게 미리 알리지 않습니다.”

교장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말이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

강당엔 넷과 루엔뿐이었다. 창밖에 테오 머리가 한 번 보였다가 사라졌다.

이졸드가 가죽 자루에서 천을 꺼냈다. 검은 천이었다.

“눈을 가린다.”

루엔은 눈을 감았다. 천이 두 겹으로 감겼다. 매듭이 뒤통수에서 단단히 조였다. 빛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천에서 소금기 밴 냄새가 났다. 바닷가 창고에 오래 있던 천이었다. 청색탑은 바다의 탑이었다.

발소리가 났다. 이졸드의 발소리였다. 강당 저쪽으로 멀어졌다가 멈췄다. 돌바닥에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 다시 돌아오는 발소리.

“마나석 과녁판 하나를 세웠다. 청색탑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졸드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났다. “문에서 서쪽 벽을 따라 열두 걸음. 거기서 방 안쪽으로 일곱 걸음. 바닥에서 무릎 높이. 걸음은 내 걸음이다.”

“검사관님 걸음을 한 번 걸어 주시겠습니까. 발소리로 재겠습니다.”

잠깐 조용했다. 그러고는 발소리가 났다. 열 걸음. 루엔은 소리 사이를 셌다. 이 강당에 처음 들어온 날 아치 열한 개 사이를 걸음으로 재 두었다. 그 걸음과 맞대면 검사관의 한 걸음은 루엔의 한 걸음 하고 삼분의 일쯤이었다.

루엔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을 가린 채. 문에서 서쪽 벽까지, 벽에서 안쪽으로. 머릿속에 칸을 그었다. 성 마당에 칸을 그었던 것처럼. 서쪽으로 열여섯 걸음, 안쪽으로 아홉 걸음 하고 조금. 무릎 높이.

매직 미사일.

발소리 쪽에서 헤일로크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결이 오른다.” 이졸드가 말했다. “열한 금.”

“하나 더.” 이졸드가 말했다. 발소리. 판을 옮기는 소리. 이번엔 멀리. 그리고 한 번 더, 조금 다른 자리에서 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둘째 판이었다.

“동쪽 창 아래. 창틀에서 곧게 네 걸음. 가슴 높이.”

루엔은 셈했다. 그리고 쏘았다.

“결이 오른다.” 잠깐 뒤. “다른 판은 안 오른다.”

“판을 하나 더 두셨습니까.”

“두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쏘는지 보려고.” 이졸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르게 끊겼다. “소리가 난 쪽은 빈 판이었다.”

“소리가 난 자리는 말씀하신 자리보다 두 걸음쯤 북쪽이었습니다.”

“알고 있었나.”

“들렸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자리를 쏘았습니다. 저는 소리가 아니라 말씀을 셈했습니다.”

발소리 쪽에서 뵈르너가 낮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전쟁터에서 저렇게 쏘는 놈이 있었으면, 하는 소리 같았다.

*

천을 풀자 강당이 눈부셨다.

두 번째 시험은 손바닥이었다.

“라이트를 켜라. 네 식으로.”

루엔은 손바닥 위에 원을 떠올렸다. 빛은 나지 않았다. 대신 벽난로 재 한 줌이 손바닥 위로 떠올라 호두만 한 구슬로 뭉쳤다. 여섯 살 때부터 쓰던 라이트였다.

이졸드가 손바닥을 루엔의 손 한 뼘 위에 댔다. 오래. 그리고 루엔 손목 둘레, 소매 속까지 손바닥을 가까이 가져갔다.

“따뜻하지 않다.”

“흘리는 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말은 나중에. 이번엔 탑의 식으로.”

루엔은 탑의 열한 마디를 읊었다. 원은 일부러 세 배로 닫았다. 손바닥 위에 호두만 한 빛이 켜졌다. 깜빡였다. 윙 소리가 났다.

이졸드의 손바닥이 빛 위에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따뜻하다.”

그러고는 뵈르너를 돌아보았다. “교관도 켜 보시오.”

뵈르너가 쉰 목소리로 영창을 했다. 이졸드가 그 빛 위에도 손을 댔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이 열을 느끼는지부터 확인한 거다.” 이졸드가 말했다. 루엔을 보지 않고 교장을 보며. “느끼는 손으로 재야 느끼지 않은 게 뜻이 있다.”

루엔은 그 말을 머릿속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

세 번째는 과녁판이었다.

이졸드가 제 과녁판 두 장을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뒷면에 무언가를 새겨 두었는지 판을 뒤집어 한 번 보았다. 루엔이 한 장에 매직 미사일을 쏘았다. 이졸드가 옆면 금을 읽었다.

“열여섯.”

그러고는 두 장을 천 아래로 넣고 섞었다. 천을 걷고 헤일로크에게 말했다.

“교수께서 읽어 주시오. 어느 판을 맞혔는지 모르고.”

헤일로크가 허리를 굽혔다. 두툼한 손가락으로 흰 결의 끝을 짚었다.

“열여섯. 이쪽은. 결이 없네.”

이졸드가 판을 뒤집어 새긴 표시를 보았다. 그리고 수첩에 적었다.

“같다.”

“판을 바꿔치기하는 사기라면,” 교장이 말했다. “검사관 판이니 바꿀 판이 없겠군.”

“그걸 보려고 제 판을 가져왔습니다.” 이졸드가 수첩을 덮었다.

*

이졸드는 탁자에 종이 한 장을 펴고 보고서를 썼다. 글씨가 작고 반듯했다. 맨 위에 제목이 이미 적혀 있었다. 사기 확인.

이졸드는 펜을 들고 그 제목을 잠깐 보았다. 그리고 두 낱말 사이에 작게 한 낱말을 끼워 넣었다.

사기 아님 확인.

헤일로크가 소리 없이 웃었다. 뵈르너는 반쯤 없는 귀를 긁었다.

“검사관님.” 루엔이 말했다.

“뭐냐.”

“오늘 시험법을 적어 가도 되겠습니까. 눈 가리기, 빈 판, 손바닥, 판 두 장.”

이졸드가 루엔을 보았다. 처음으로 똑바로.

“왜.”

“제가 제 마법을 의심할 때 쓰려고 합니다. 저는 제 손으로 재니까, 제 손이 틀렸을 때를 못 봅니다.”

이졸드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보고서 옆에 따로 적어 둔 종이를 탁자 위로 밀었다.

“베껴라. 여기서. 들고 나가지 말고.”

루엔이 베끼는 동안 이졸드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다 베끼자 종이를 거둬 자루에 넣었다. 문으로 가다가 멈췄다.

“네 추천서를 보았다. 교장실에서.”

“예.”

“오스윈 마로가 네 스승이냐.”

“예. 여섯 살부터입니다.”

이졸드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멈췄다. 표정이 바뀐 게 아니었다. 바뀌던 것이 멈춘 얼굴이었다. 루엔은 그 얼굴을 셈할 수 없었다.

이졸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에 발소리가 고르게 멀어졌다. 그 걸음은 루엔의 한 걸음 하고 삼분의 일이었다.

루엔은 수첩 맨 뒷장을 폈다. 적을 줄이 없었다. 모르는 게 무엇인지부터 몰랐다.

*

그날 밤 테오가 창틀에 걸터앉아 물었다.

“창밖에서 다 봤어. 눈 가리고 쏘는 거. 그래서 사기래, 아니래?”

“사기 아님 확인입니다.”

“그게 뭐야. 그냥 사기 아님이지.”

“아님이라고만 적으면 안 해 본 것도 아님입니다. 확인은 해 보고 아니라는 겁니다.”

테오가 한참 루엔을 보았다.

“그 검사관, 무서웠어.”

“무섭지 않았습니다. 정확했습니다.”

“그게 무섭다는 거야.”

루엔은 수첩 앞쪽, 사람 이름 장을 폈다. 새 줄을 만들었다. 이졸드. 청색탑 검사관. 쉰 넘음. 시험을 먼저 제 손으로 재 봄. 빈 판을 둠. 한 걸음은 내 걸음 하고 삼분의 일.

그리고 한 줄 더. 오스윈 마로라는 이름에서 멈춤.

그 줄을 적고 루엔은 한참 펜을 들고 있었다. 오스윈의 영창책 둘째 장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여백의 떨리는 글씨가 촛불에 흔들렸다. 틀렸을지도 모름 — 루엔이 확인할 것.

이 편지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루엔은 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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