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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여섯 다음 집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6:44

봄 방학 강배는 얼음이 풀리고 뜬 첫 배였다.

강을 거슬러 스무 날. 하르트 성 돌계단은 서른두 칸이었다. 루엔은 세면서 올라갔다. 마르타가 울었고 베르타가 「말랐네」 했다. 순서도 작년과 같았다.

눈 녹는 달 첫 주였다. 성 마당 그늘엔 아직 눈이 거뭇하게 남아 있었다. 개울은 불어 소리가 커졌다.

이튿날 아침 루엔은 먼저 방앗간으로 내려갔다.

토빈이 장부를 내밀었다. 가죽 표지가 손때로 반들거렸다. 루엔은 첫 장부터 넘겼다. 여름, 가을, 겨울. 날짜마다 숫자 하나. 얼음이 언 날엔 「얼음」이라고 적고 얼음 위 물 높이를 적었다. 빠진 날이 없었다.

“이백여든하루입니다.” 토빈이 말했다. 제가 세어 둔 얼굴이었다. “하루도 안 빠졌습니다.”

“이백여든하루입니다.” 루엔도 셌다. “여름까지 여든넷 남았습니다.”

“여든넷이야 뭐.” 토빈이 웃었다. 그러다 조금 멋쩍은 얼굴로 덧붙였다. “보리 싹 틀 무렵에 딸내미 혼사가 있어서. 그때 좀 바쁘긴 할 겁니다.”

“바쁘셔도 해 뜰 때 한 번입니다.”

“압니다, 알아요.”

토빈은 계단을 내려가며 무릎을 짚었다. 이번엔 손을 흔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루엔은 노르벡 아래 우물을 보았다. 네 해 전 벤노가 한 켜 더 올린 돌담이 허리 높이로 서 있었다. 나무 뚜껑이 덮여 있었다. 도랑은 우물을 비켜 돌아 흘렀다. 눈 녹은 물이 불어 도랑이 넘칠 듯했지만, 우물 쪽으로는 한 방울도 가지 않았다.

교회 앞에서 앨드릭을 만났다. 앨드릭이 먼저 말했다.

“올봄은 아직 줄 하나도 안 그었습니다.”

해마다 봄 끝나는 날 긋기로 한 줄. 봄 죽은 사람 표였다. 앨드릭은 장부를 루엔보다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

그날 오후 강 건너에서 나룻배가 왔다.

새 마을 촌장이었다. 로센에서 온 늙은 농부. 모자를 벗어 쥔 손이 떨렸다. 방앗간 망루 아래서 루엔을 보자 곧장 다가왔다.

“도련님. 영주님께 여쭈러 가는 길인데.”

“무슨 일입니까.”

“애들이 앓습니다.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살갗이 잿빛이 돼요.”

루엔은 망루 너머 강 건너 지붕들을 보았다.

“아래 우물 돌담은 쌓으셨습니까.”

촌장의 얼굴이 굳었다.

“가을걷이 끝나고 쌓으려 했는데, 눈이 일찍 왔습니다. 돌을 못 날랐어요.”

루엔은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적을 게 이미 적혀 있었다. 아래 우물: 돌담 없음. 가을걷이 뒤 쌓기로 함. 그리고 날짜.

*

가렛은 말이 짧았다.

“몇 집이냐.”

촌장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로센에서 쓰던 옛 글자였다. 사제가 대신 적어 준 것이라고 했다. 새 마을엔 교회는 있어도 사제가 없었다. 앨드릭이 이레에 한 번 강을 건너갔다.

앓는 집: 셋째 집, 넷째 집, 아홉째, 열둘째, 열셋째, 열넷째, 열일곱째, 스무째. 여덟 집.

“닷새 사이에 여덟 집입니다.” 촌장이 말했다. “셋째 집 애가 제일 먼저 앓았고.”

“셋째 집 아이가 제일 먼저입니까.”

“그렇게 들었습니다.”

루엔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그렇게 들었음.

가렛이 일어섰다. 벽에 건 칼을 집으려는 손이었다.

“건너가겠다. 기사 둘.”

“아버지. 한나절만 주십시오.”

가렛이 멈췄다. 루엔을 보았다.

“무엇을 하려고.”

“건너가서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 건너가시면 앓는 집을 다 돌아야 합니다. 알고 건너가시면 한 곳만 막으시면 됩니다.”

“한 곳이 어딘지는 어떻게 아느냐.”

“명부로 압니다. 오늘 밤에.”

가렛은 칼에서 손을 뗐다. 대답 대신 촌장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성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같이 건너가자고. 그리고 펠릭스를 불렀다. 촌장 종이의 옛 글자를 루엔 글자로 옮기라고.

펠릭스는 옛 글자를 읽을 때마다 한 번씩 멈췄다. 사제의 글씨는 흘려 쓴 데가 많았다. 「열둘째」와 「열셋째」가 거의 같은 꼴이었다. 펠릭스는 촌장에게 두 번 물어 확인하고 나서야 적었다. 루엔은 그걸 보고 있었다. 틀리기 쉬운 자리에서 멈추는 사람이었다.

*

해가 지자 루엔은 명부를 폈다.

노르벡 일흔한 채 뒤에 덧붙인 종이. 새 마을 스물아홉 채. 지난여름 문설주마다 숯으로 적은 번호였다. 촌장 말로는 겨울에 두 채가 더 지어졌다고 했다. 서른, 서른하나. 루엔은 칸 둘을 덧그렸다.

그리고 촌장 종이의 여덟 집을 명부 번호에 옮겼다. 셋째, 넷째, 아홉째…. 번호마다 작은 점을 찍었다.

점 옆엔 칸이 하나 더 있었다. 지난여름 집마다 물었던 칸. 어느 물을 긷나.

셋: 아래 우물. 넷: 아래 우물. 아홉: 아래 우물. 열둘: 아래 우물. 열셋: 아래 우물. 열넷: 윗 우물. 열일곱: 아래 우물. 스물: 아래 우물.

여덟 가운데 일곱.

루엔은 명부 전체를 다시 훑었다. 서른한 집 가운데 아래 우물을 긷는 집은 열넷. 윗 우물이 열하나. 강물이 여섯. 아래 우물 집 열넷 가운데 일곱이 앓았다. 나머지 열일곱 집 가운데 앓은 건 열넷째 집 하나였다.

하나가 걸렸다. 루엔은 그 하나에 동그라미를 쳤다. 걸리는 건 지우지 않고 동그라미를 쳤다. 나중에 까닭을 찾으면 그 옆에 적을 것이었다.

그리고 명부를 다시 위에서부터 읽었다. 번호 차례대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칸이 비어 있었다.

점이 없었다. 앓지 않는다는 표시도 없었다. 촌장 종이는 셋째, 넷째 다음 아홉째로 건너뛰었다. 다섯째, 여섯째, 여덟째도 없었다. 그 집들은 앓지 않는 집이었다.

일곱째는 달랐다. 촌장 종이엔 「일곱째」라는 말이 아예 없었다. 앓는다고도, 안 앓는다고도.

이 고장에서 일곱은 궂은 수였다. 문설주엔 「여섯 다음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여섯 다음 집이라고 불렀다. 촌장이 집을 하나씩 떠올리며 셌다면, 여섯째 다음에 여덟째를 셌을 것이다. 여섯 다음 집은 번호가 없는 집이었다. 번호가 없으면 셈에서 빠진다.

명부에서는 빠지지 않았다. 칠번이었다.

루엔은 칠번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물 칸. 아래 우물. 그리고 여백에 지난여름 적어 둔 한 줄. 아래 우물 바로 옆 집. 도랑 쪽.

빈칸이 틀린 숫자보다 낫다고 토빈에게 말했었다. 빈칸이 있으면 빈칸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루엔은 일어났다.

*

코넬이 등불을 들었다. 한스가 나룻배 노를 잡았다. 밤의 강은 소리가 컸다. 눈 녹은 물이 불어 물살이 빨랐다. 한스는 물살 오는 쪽으로 뱃머리를 틀었다. 얼마나 트는지는 한스 팔이 알았다.

새 마을은 캄캄했다. 등불이 켜진 창이 몇 개뿐이었다.

아래 우물은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판자 몇 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옆으로 빗물 도랑이 흘렀다. 눈 녹은 물로 도랑이 불어 있었다. 판자 아래쪽이 젖어 검었다. 우물 쪽으로 번진 물 자국이 등불에 반짝였다.

그 바로 옆이 여섯 다음 집이었다.

문설주에 숯 글씨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여섯 다음 집. 루엔이 적은 글씨였다.

코넬이 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 문이 조금 열렸다. 지난여름 팔짱을 끼고 섰던 그 아낙이었다. 얼굴이 퀭했다.

“영주님 댁 도련님들이오. 밤중에 무슨.”

“아이가 앓습니까.” 루엔이 물었다.

아낙의 얼굴이 굳었다. 문이 닫히려 했다. 코넬이 문틀에 손을 댔다. 밀지는 않았다. 대기만 했다.

“아무도 탓하러 온 게 아닙니다.” 루엔이 말했다. “물을 탓하러 왔습니다.”

아낙이 루엔을 보았다. 그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아이 아버지였다.

“들어오시게 해.”

*

방 안쪽 짚자리에 아이가 누워 있었다. 다섯 살쯤. 계집아이였다. 살갗이 잿빛이었다. 입술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옆에 누운 더 어린 사내아이는 멀쩡하게 자고 있었다.

“언제부터입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마흔쯤. 팔뚝이 굵었다.

“이레째요.”

셋째 집 아이보다 이틀 먼저였다.

“왜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다. 아낙이 대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일곱째 집 애가 먼저 앓았다고 하면, 다들 일곱 탓을 할 거 아니오. 궂은 수 집에서 병이 났다고. 우리 양반이 교회 종을 치는데, 종도 못 치게 할 거고. 그래서 그냥 여섯 다음 집이라고, 아무도 안 물어봐서.”

루엔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일곱 탓이 아닙니다.” 루엔이 말했다. “우물 탓입니다. 이 집이 우물에서 가장 가까워서 가장 먼저 앓은 겁니다. 셋째 집도, 넷째 집도 우물 물을 길었습니다.”

아낙의 눈에서 무언가가 풀렸다.

루엔은 품에서 숟가락을 꺼냈다. 세 칸짜리 쇠 숟가락. 끓여 식힌 물을 달라고 했다. 없었다. 코넬이 부엌 솥에 불을 지폈다.

물이 식을 때까지 루엔은 명부 칠번 칸에 적었다. 앓음. 이레째. 처음.

코넬이 김이 오르는 솥을 밖에 내놓고 돌아왔다. 등불을 아이 머리맡에 내려놓지 않고 계속 들고 있었다. 불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형은 칼끝 백 번을 한 마디 안에 찌르던 팔이었다.

물이 식었다. 루엔은 쇠 되가 아니라 부엌 사발로 물을 쟀다. 사발 둘이 쇠 되 반 되쯤이었다. 쯤이 걸렸지만 지금은 끝자리보다 먼저였다. 숟가락 꿀 칸으로 여섯, 소금 칸으로 하나. 깎아서.

아낙이 아이를 안아 일으켰다. 루엔이 사발을 아이 입에 댔다. 아이는 한 모금을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 아낙이 울면서 다시 댔다. 두 모금. 세 모금.

“조금씩, 자주 먹이십시오. 해 뜨면 사발 둘을 다 먹이셔야 합니다. 토해도 다시.”

“그걸로 낫소?”

“낫게 하는 물이 아닙니다. 버티게 하는 물입니다. 버티면 몸이 낫습니다.”

아버지가 사발을 받아 들었다. 굵은 팔로 아이를 받치고 한 모금씩 떠 넣었다. 서툴렀다. 멈추지 않았다.

루엔은 명부의 동그라미 친 열넷째 집 칸을 다시 보았다. 아직 까닭을 몰랐다. 내일 물어볼 것이었다.

창밖이 잿빛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도랑물이 판자 아래로 스며드는 소리가 들렸다.

하룻밤이었다. 서른한 칸 명부로 한 우물까지.

*

해가 뜨자 루엔은 열넷째 집 문을 두드렸다. 동그라미 친 칸이었다. 윗 우물 집인데 앓았다.

앓는 사람은 그 집 며느리였다. 시어머니가 문간에서 말했다.

“우리 집은 윗 우물만 긷소. 그런데 저 애가 친정이 열셋째 집이라. 아침마다 친정에 가서 제 어미 일을 거들고 물 한 사발씩 얻어 마시고 오지.”

열셋째 집. 아래 우물.

루엔은 명부의 동그라미 옆에 적었다. 친정 물. 동그라미는 지우지 않았다. 까닭이 붙은 동그라미는 지울 게 아니었다. 다음에 읽는 사람이 같은 데서 걸리지 않게 남겨 두는 것이었다.

여덟에 일곱이 아니었다. 아홉에 아홉이었다. 칠번까지 넣으면.

강 건너 성 쪽에서 말 탄 사람들이 나룻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맨 앞은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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