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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꽃잎소녀
아르덴 힐스는 주환이 해명시에 머물 때 사용하는 저택이었다.

검은색 대형 세단이 밤길을 조용히 달렸다.

넓은 차 안에는 가죽 냄새와 옅은 시더우드 향이 섞여 있었다.

가희는 뒷좌석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머리 아래에는 부드러운 쿠션이 받쳐졌고, 몸은 여전히 주환의 큰 정장 재킷에 단단히 감싸여 있었다.

주환은 바로 옆에 앉아 가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두운 실내등 아래에서도 가희의 미간은 의식을 잃은 채 단단히 찌푸려져 있었다.

큰 고통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환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마에 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치워 주려던 손가락이 차가운 피부에 닿기 직전 멈췄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주환은 손을 거뒀다. 미간이 더 깊어졌다.

자기 행동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느낌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미워... 다 미워...”

의식을 잃은 가희가 흐릿한 잠꼬대를 했다.

몸을 불안하게 움직이다 상처가 당겼는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눈꼬리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창백한 볼을 타고 흘렀다.

가희의 안색이 점점 더 하얘지는 걸 본 주환이 앞좌석 수행비서에게 말했다.

“신재현 원장한테 산부인과와 외과 장비 챙겨서 아르덴 힐스로 오라고 해.”

“네.”

차는 산 중턱에 조성된 아르덴 힐스 단지로 조용히 들어갔다.

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 잡은 저택 앞에서 멈췄다.

불이 환하게 켜진 저택은 어둠 속에 웅크린 거대한 짐승처럼 고요했다.

주환은 다시 가희를 안아 들고 안으로 향했다.

해명시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프라이빗 병원인 라비엔 메디컬센터의 원장 신재현은 이미 장비와 의료진을 데리고 저택 앞에 도착해 있었다.

친구인 주환이 산모를 직접 안고 오는 모습을 보고 재현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바로 의사로서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장비부터 빨리 세팅해! 산모랑 아기 둘 다 무사하게 지켜야지!”

주환의 표정이 황당하게 굳었다.

그러나 품 안에 있는 가희의 체온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재현의 오해를 풀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곧바로 응급 처치가 시작됐다.

...

가희는 자신이 또 한 번 생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기억 속 꿈에 빠져 있었다.

꿈에서 가희는 대학 마지막 학년으로 돌아갔다.

원우를 처음 만났던 때였다.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가던 길, 불량해 보이는 남자들에게 뒤를 밟혔다.

두려움에 얼어붙어 있던 가희 앞에 원우가 나타났다.

그가 남자들을 쫓아내고 가희를 직접 집까지 데려다줬다.

집에 돌아온 뒤에야 원우가 언니 정희의 학교 동창이며, 맨손으로 사업을 키운 젊은 사업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가희의 마음은 이미 원우에게 기울었다.

다시 본 것은 원우가 학교에 초청 강연자로 왔을 때였다.

단상 위에서 사업 경험을 막힘없이 풀어내는 모습은 성숙하고 완벽해 보였다.

가희가 상상하던 이상형과 너무도 닮았다.

가희는 한번 마음먹은 일에는 앞뒤를 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해외 연수 기회와 원우와의 결혼 중 하나를 골라야 했을 때도 망설이지 않고 결혼을 택했다.

원우가 ‘향이 나는 건 다 싫다’라고 말한 뒤에는 조향사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내려놓았다.

좋은 아내가 되겠다며 집안일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원우의 마음을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돌아온 건 3년간의 냉대와 소외뿐이었다.

꿈속의 가희는 마치 남의 인생을 보듯 과거의 자신을 바라봤다.

어리석고 순진했다.

원우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려고 한 적조차 없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절대 부원우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

다음날 새벽, 아르덴 힐스.

주환은 샤워가운 차림으로 테라스 난간에 기대 있었다.

입술 사이의 담배 끝이 희미하게 타올랐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응급 처치는 꼬박 여섯 시간 이어졌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머릿속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손끝에 아직도 그 옅고 독특한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기억할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느낌이었다.

주환의 눈이 깊어졌다.

고요한 수면 아래로 무거운 돌이 가라앉은 듯한 변화였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보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해명시 남수영 회장의 둘째 딸 남가희에 관한 자료 전부 확인해. 7개월 전 그날 하루 동선도 빠짐없이.”

...

가희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가라앉았던 의식이 무거운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듯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아랫배 깊은 곳의 잔잔한 통증이었다.

전처럼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공포스러운 통증은 아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열자 낯선 회색 천장이 보였다.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조금 떨어진 1인용 소파에 주환이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조명 때문에 옆선은 조금 흐릿했지만 여전히 시선을 붙잡을 만큼 반듯한 얼굴이었다.

“교... 교수님?”

가희의 목소리는 마르고 쉬어 있었다.

주환이 눈을 들어 가희를 봤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깼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가희는 일어나 앉으려다가 배가 당기자 엄청난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움직이지 마세요.”

주환이 얇은 금속테 안경을 가볍게 밀어 올렸다.

“아이는 일단 지켰습니다. 다만 몸에 충격이 너무 컸어요. 당분간 무조건 안정해야 합니다.”

가희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예고도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소리 내 울지 않으려고 버텼다.

아무리 의사라지만 고작 몇 번 마주친 사람인데 자신과 아이를 두 번이나 살려줬다.

고맙기도 했고, 가족보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더 살피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해요.”

목이 메었다.

손이 침대 시트를 힘껏 움켜쥐었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저나 아이는 아마...”

“진료비를 받고 환자를 살리는 게 제 일입니다.”

주환이 말을 잘랐다.

6시간을 들여 산모와 아이를 겨우 살려 놓은 뒤라 지금은 불길한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건 달라요.”

가희가 고개를 저었다.

주환은 의사일 뿐이었다. 자기와 아이를 이런 식으로까지 보호해 줄 의무는 없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가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좀 나아지면... 식사 한 번 대접해도 될까요? 별것 아닌 건 알아요. 그래도 지금 제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말을 끝낸 가희는 판결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긴장된 얼굴로 주환을 바라봤다.

거절당할까 봐 걱정됐다.

주환은 눈을 내리깐 채 답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의료기기에서 나는 작은 작동음만 이어졌다.

가희가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려던 때, 주환이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약속하신 거예요.”

주환은 더 말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가희의 얼굴에서 감사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 차갑고 또렷한 현실감이 자리 잡았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예전에는 원우에게 기대 살면서 그의 눈치를 봤다.

그 결과가 이 지경이라면 그것 또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했다.

자기 힘과 자기 자본을 가져야 했다.

가희는 힘겹게 손을 뻗어 침대 옆 핸드폰을 집었다.

SNS 앱을 열고 아주 오래 닫아 뒀던 계정 하나에 로그인했다.

Moon.

한때 세계 향수 업계를 놀라게 했고, 정점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천재 조향사 Moon.

원우의 아내가 되기 전, 가희에게 오롯이 속했던 이름과 영광이었다.

계정은 몇 년 동안 멈춰 있었지만 팔로워 수는 여전히 엄청났다.

가희는 쌓여 있는 메시지와 태그 알림을 전부 무시했다.

짧은 글 하나를 작성했다.

업계 전체를 흔들기에 충분한 문장이었다.

[Moon: 복귀합니다. 제작 의뢰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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