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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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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윤미주

1화. 다시, 같은 집

Penulis: 윤미주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6-28 19:05:05

끝난 관계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식어서 끝난 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뜨거웠고,

너무 오래 서로를 태웠다.

가까워질수록 더 아팠고,

좋아할수록 더 지쳤다.

그래서 끝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기로.

다시는 흔들리지 않기로.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 새 집 로비에서 다시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몸이 먼저 그 목소리를 알아봤다.

그래서 더 싫었다.

강태준.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줄 알았던 남자.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오늘이 그냥 평범한 이삿날이라고 생각했다.

“한서윤 씨 맞으시죠?”

부동산 중개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입주하시는 오피스텔, 집주인 측 대리인이 곧 도착할 겁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 집은 회사와 가까웠고, 조건도 괜찮았다.

급하게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매물은 흔치 않았다.

다만 이상한 건 하나 있었다.

너무 쉽게 구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앞 자동문이 열렸다.

낮은 구두 소리.

검은 코트 자락.

익숙한 향.

나는 고개를 돌리다 그대로 멈췄다.

강태준이 로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셔츠 위에 어두운 코트.

무심한 표정.

그리고 여전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눈.

그 눈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괜히 손에 든 서류를 더 세게 쥐었다.

태준도 나를 알아봤다.

그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저 남자도 놀랐다.

놀랐는데,

금방 숨겼다.

예전에도 그랬다.

놀라도 티 내지 않았고,

상처받아도 조용했고,

붙잡고 싶은 게 있어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사람을 미치게 했다.

“강 실장님, 오셨어요.”

중개인의 말에 나는 태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강 실장님.

그 호칭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내가 알던 강태준은,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사람 같았다.

아니.

그렇게 부르는 게 맞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태준은 중개인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봤다.

“한서윤.”

3년 만이었다.

내 이름이 그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는 건.

나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여기서 뭐 해?”

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중개인을 봤다.

“입주자 확인하러 왔습니다.”

“아,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중개인이 우리 사이를 번갈아 봤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맞지 않았다.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헤어진 사이.

다시 보면 안 되는 사이.

그중 어디에도 우리를 딱 넣을 수 없었다.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알던 사이입니다.”

예전에.

알던 사이.

그 말이 가볍게 떨어졌다.

나는 웃고 싶었다.

우리가 그렇게 간단한 말로 정리될 수 있다면,

나는 지난 3년을 조금 덜 피곤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럼 올라가시죠.”

중개인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주하실 호실 확인하시고, 서류만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좁은 공간 안에 중개인과 나,

그리고 강태준이 같이 섰다.

나는 일부러 정면만 봤다.

그런데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검은 셔츠에서 나는 희미한 우디 향.

오래전에 너무 익숙했던 냄새.

익숙해서 더 기분 나쁜 거리.

태준이 낮게 말했다.

“이사, 갑자기 했나 보네.”

나는 앞만 본 채 대답했다.

“네가 알 일 아니야.”

“그런가.”

짧은 대답.

저런 식이다.

한 걸음 들어오고,

아닌 척 물러난다.

상대가 그 한 걸음을 계속 신경 쓰게 만든다.

나는 손끝으로 서류 모서리를 눌렀다.

종이가 조금 구겨졌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나는 먼저 걸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새로 닦은 바닥 냄새와 낯선 벽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 새 집.

아니, 이제 내 새 집이 되어야 하는 곳.

중개인이 문 앞에서 키패드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집 안이 드러났다.

큰 창.

차갑게 정리된 거실.

아직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공간.

밖으로는 도시 불빛이 낮게 깔려 있었다.

분명 괜찮은 집이었다.

혼자 새로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은 곳.

그런데 이상하게,

문을 넘는 순간부터 새 집 같지 않았다.

누가 먼저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구조는 보셨죠? 옵션은 그대로고요.”

중개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태준은 말없이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도 저랬다.

낯선 공간에 가면 그는 늘 창부터 봤다.

해가 어디서 들어오는지,

밤에는 어디가 가장 어두워지는지,

바깥 소음은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살폈다.

나는 그게 좋았던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걸 기억하는 내가 싫었다.

“계약서 마지막 확인만 부탁드릴게요.”

나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계약 조건.

관리비.

입주일.

옵션 확인.

차례로 넘기던 손이 마지막 장에서 멈췄다.

소유자 대리인.

강태준.

한동안 글자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집 네 거야?”

태준은 창가에서 돌아섰다.

“내가 관리하는 집이야.”

“그게 그거잖아.”

“정확히는 달라.”

“장난해?”

중개인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너 일부러 그런 거야?”

태준은 나를 봤다.

“뭘.”

“내가 여기 들어오는 거 알고 있었냐고.”

그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대답보다 더 정확했다.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알고 있었네.”

“어제 알았어.”

“그럼 말했어야지.”

“말하면 안 들어왔을 거잖아.”

“당연하지.”

“그래서 안 했어.”

너무 태연했다.

너무 강태준답게.

나는 순간 대답할 말을 잃은 게 아니었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덜 화가 날지 고르는 중이었다.

결국 아무 말도 덜 화나지 않을 것 같았다.

“너 여전하네.”

“너도.”

“뭐가.”

“도망가는 거.”

목 안쪽에 그 말이 걸렸다.

나는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말 조심해.”

“틀린 말은 아니잖아.”

태준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무심한 척하면서,

사람 속은 끝까지 들여다보는 눈.

저 눈이 싫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것처럼 구는 눈.

아직도 내가 어디서 무너질지 아는 사람처럼.

“계약 파기하고 싶으면 해.”

그가 낮게 말했다.

“위약금은 내가 처리하지.”

그 말이 더 기분 나빴다.

마치 내가 도망칠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 같아서.

그리고 도망쳐도 된다고 말하는 척하면서,

내가 도망치지 못할 것도 아는 사람 같아서.

나는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이 집을 포기할 수 있을까.

예전 집은 오늘 비워야 했다.

짐은 이미 도착하고 있었다.

회사 근처에 이만한 조건의 집을 다시 구하기도 어려웠다.

태준은 그걸 알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는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그게 제일 싫었다.

내가 선택한 집이라고 믿었던 곳에,

그가 이미 서 있었다는 게.

나는 천천히 펜을 들었다.

“안 나가.”

태준의 눈매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여기서 살 거야.”

“…….”

“그러니까 네가 신경 꺼.”

나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한서윤.

글씨가 평소보다 조금 날카로웠다.

중개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개인이 돌아간 뒤,

집 안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공간이 이상하게 좁아졌다.

아직 가구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집인데,

그 사람 하나 때문에 방 안이 꽉 찬 것 같았다.

예전엔 같은 공간 안의 침묵이 편했다.

각자 다른 일을 해도,

서로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침묵은 자꾸 피부 가까이에 와 닿았다.

“비밀번호 바꿔.”

태준이 먼저 말했다.

나는 바로 그를 봤다.

“말 안 해도 바꿀 거야.”

“창문 잠금장치도 확인하고.”

“그것도 할 거야.”

“욕실 환풍기는—”

“강태준.”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관리인 역할 하지 마.”

그가 나를 바라봤다.

“필요한 말만 하는 건데.”

“그게 싫다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태준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등이 식탁 모서리에 닿았다.

차가운 감각이 허리에 닿고 나서야 내가 물러났다는 걸 알았다.

태준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딱 그 거리에서.

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너 어디 갈 데 없잖아.”

그가 낮게 말했다.

“짐도 다 오고 있고,

예전 집은 오늘 비워야 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모를 것 같았어?”

내가 뭘 숨기고 있었는지,

그는 너무 쉽게 말했다.

“너 조사했어?”

“부동산 서류 보면 알 수 있어.”

“그래서?”

“그래서 그냥 뒀어.”

“뭘.”

“네가 여기라도 들어오게.”

그 말은 이상했다.

차라리 더 노골적으로 나빴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태준은 늘 그런 식이었다.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처럼 다가와서,

마지막에는 다정한 척 빠져나갈 수 있는 말을 남긴다.

나는 그게 더 싫었다.

“착한 척하지 마.”

태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내 입술 근처에 머물렀다.

짧았다.

하지만 나는 봤다.

“착한 적 없어.”

그가 낮게 말했다.

“너한테는 특히.”

몸 안쪽에서 오래 눌러둔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밀치듯 지나쳐 현관 쪽으로 걸었다.

“나가.”

태준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비밀번호 바꿀 거니까 나가라고.”

“바꾸는 거 보고 갈게.”

“내가 어린애야?”

“그랬으면 더 쉬웠겠지.”

나는 그대로 멈췄다.

“넌 늘 괜찮은 척하다가,

꼭 제일 안 괜찮을 때 혼자 버티니까.”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바로 화가 났다.

정확한 말은 가끔 틀린 말보다 더 잔인하다.

특히 그걸,

강태준이 할 때는.

“너한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있어.”

“없어.”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이번엔 정말 뒤돌아봤다.

태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3년 전 마지막 날처럼.

비가 오던 밤.

끝까지 나를 붙잡지 않던 남자.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넌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잖아.

그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그래서 나는 떠났다.

내가 틀렸다는 말도,

맞다는 말도 듣지 못한 채로.

“이제 와서 그런 말 하지 마.”

내 목소리가 내가 원한 것보다 낮게 나왔다.

태준의 입매가 조금 굳었다.

“…알았어.”

그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기 직전,

잠깐 멈춘 그가 낮게 말했다.

“한서윤.”

나는 싫은데도 고개를 들었다.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아직도 너무 익숙해서.

“여기서 사는 동안.”

“…….”

“나 피하려고 애쓰지 마.”

내가 웃었다.

웃음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태준이 나를 보았다.

낮고 조용한 눈빛.

“어차피 자주 보게 될 거니까.”

문이 닫혔다.

철컥.

도어락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새 집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빈집이어야 하는 공간 안에서,

자꾸만 그 남자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제야 알았다.

이 집은 내가 고른 곳이지만,

내가 완전히 피해서 들어온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났다고 믿었던 감정이

다시 열을 올리는 순간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미열주의》는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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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숨이 멎었다.“이제 그만 피해.”심장이 그대로 무너졌다.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태준 손끝이 아직도 내 뺨 위에 닿아 있었다.뜨거운 손.숨이 가까웠다.도망쳐야 하는데.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태준은 그런 나를 한참 바라봤다.흔들리는 눈빛.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나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해.”겨우 꺼낸 목소리.태준이 아주 천천히 웃었다.이번엔 비웃는 웃음도,여유 있는 웃음도 아니었다.그냥—지친 사람 같은 얼굴.“나도 모르겠어.”갈라진 낮은 목소리.“근데 네가 자꾸 멀어지려고 하면.”심장이 세게 흔들렸다.태준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을 훑었다.그리고 아주 늦게,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진짜 미칠 것 같아.”숨이 막혔다.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태준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천천히 손을 내렸다.닿아 있던 온기가 사라졌다.이상하게,그게 더 불안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손끝을 움켜쥐었다.태준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그리고 아주 조용히 물었다.“…아직도 나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아니.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강태준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걸.그리고 내가 그걸점점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정적이 길어졌다.현관 앞 공기마저숨 막힐 만큼 조용했다.태준이 아주 천천히 다시 가까워졌다.숨이 섞일 만큼 가까운 거리.나는 본능처럼 숨을 멈췄다.태준 시선이 천천히 내 입술 아래로 내려왔다.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한서윤.”심장이 세게 흔들렸다.“나 더 착한 척 못 하겠다.”숨이 멎었다.그 순간.태준 손이 아주 천천히 내 허리 가까이를 붙잡았다.깜짝 놀란 내가 숨을 삼켰다.하지만 밀어내지 못했다.태준 눈빛이 흔들렸다.참고 있던 감정이전부 무너지고 있는 얼굴이었다.그리고 바로 그때.띵.조용한 복도 안으로엘리베이터 도착 소리가 짧게 울렸다.

  • 미열주의   26화. 멀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감정

    정말 위험한 건,강태준이 가까워지는 순간이 아니라—내가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차 안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나는 끝까지 창밖만 바라봤다.태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이상하게 더 숨 막혔다.차는 어느새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익숙한 거리.익숙한 불빛.그런데 이상하게,오늘은 전부 낯설게 느껴졌다.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나는 바로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철컥.손목이 붙잡혔다.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준이었다.낮게 가라앉은 눈빛.그런데 이상하게,붙잡고 있는 손끝엔 힘이 거의 없었다.그게 더 위험했다.“…또 도망가려고.”갈라진 낮은 목소리.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손목을 빼내려 했다.“…안 도망가.”“근데 왜 자꾸 피해.”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태준은 그런 나를 한참 바라봤다.마치 끝까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그리고 아주 늦게,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그 남자 때문이야?”숨이 멎었다.나는 본능처럼 시선을 피했다.그 순간.태준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낮고 거친 숨.그게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한서윤.”갈라진 목소리.“너 지금 흔들리고 있잖아.”심장이 세게 흔들렸다.나는 애써 차갑게 말했다.“…그만해.”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한동안 나만 바라봤다.조용한 눈.그런데 이상하게,그 시선이 더 숨 막혔다.나는 결국 먼저 시선을 피했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태준 손이 아주 천천히 내 손목을 놓았다.나는 순간 이상하게 더 불안해졌다.태준은 고개를 숙인 채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젖은 머리칼 아래로흐트러진 숨만 조용히 들렸다.그리고 아주 늦게,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나 진짜 끝난 줄 알았거든.”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태준은 여전히 나를 보지 않은 채낮게 웃었다.그 웃음이 이상하게 더 아팠다.“근데 너 다

  • 미열주의   25화. 들켜버린 질투, 무너지는 거리

    “…한서윤 씨.”정우진의 목소리가 조용히 내려앉았다.나는 그대로 굳은 채휴대폰만 세게 움켜쥐었다.창밖엔 아직도 강태준이 서 있었다.비를 그대로 맞은 채,천천히 이쪽만 바라보고 있었다.숨이 막혔다.우진은 그런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아주 조용히 다시 물었다.“…남자친구예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아니에요.”하지만 이상하게,변명처럼 들렸다.우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마치 다 알고 있으면서도끝까지 묻지 않는 사람 같아서.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가방을 움켜쥐었다.“…먼저 들어가볼게요.”우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조심히 들어가세요.”짧은 인사.그런데 이상하게그 말이 오래 남았다.나는 급하게 몸을 돌렸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정우진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1층 로비로 내려오자차가운 밤공기가 피부를 스쳤다.비 냄새.젖은 아스팔트.그리고—강태준.검은 셔츠 차림의 그가차에 기대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태준은 그런 나를 보더니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왜 그렇게 늦게 내려와.”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일하고 있었어.”태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대신 아주 천천히내 뒤쪽 회사 건물을 바라봤다.그 시선 끝이 이상하게 불안했다.그리고 잠시 후.태준이 낮게 물었다.“…아까 그 남자.”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회사 사람이야?”나는 천천히 입술을 눌렀다.“…응.”짧은 대답.하지만 태준은 바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마치 무언가를 계속 떠올리는 사람처럼.나는 괜히 불편해졌다.“…왜.”그제야 태준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가라앉은 눈빛.그런데 이상하게,아까처럼 날카롭지는 않았다.오히려 더 조용했다.“계속 너 보고 있길래.”숨이 막혔다.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태준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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