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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편해진 온도, 흐려지는 경계

ผู้เขียน: 윤미주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6-28 19:15:04

“그 남자 이름.”

강태준의 시선이 내 가방 쪽에 머물렀다.

“계속 보이니까 짜증 나.”

그 말이 밤공기 속에 낮게 가라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 건물 앞이었다.

퇴근길 사람들은 드문드문 지나갔고,

로비 안쪽 불빛은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주변 소리가 전부 멀어졌다.

정우진.

방금 전 화면에 떠 있던 이름 하나가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바꿔버릴 줄은 몰랐다.

나는 괜히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회사 사람이야.”

“안 물었어.”

“근데 보는 눈이 물어보던데.”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한 얼굴.

그런데 그게 더 위험했다.

나는 저 표정을 안다.

강태준은 화가 날수록 더 조용해진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괜찮은 척하지도 않고,

그냥 모든 감정을 안쪽으로 눌러 넣는다.

그래서 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왜 그렇게 신경 써.”

괜히 차갑게 말했다.

태준은 웃지도 않았다.

“신경 쓰이니까.”

“…….”

“네 옆에 다른 남자 있는 거.”

숨이 잠깐 막혔다.

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헤어진 사이면서.

다 끝난 관계면서.

그런데도 꼭,

아직 자기 사람인 것처럼.

나는 고개를 들었다.

“태준아.”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우리 지금 무슨 사이인데.”

순간 그의 눈빛이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을 보고 나서야,

내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웃기지.

왜 기다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데.

태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건물 입구의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며,

차가운 바람이 우리 사이로 지나갔다.

그리고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걸 꼭 말해야 알아?”

심장이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해야 알지.

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목 끝에서 말이 걸렸다.

태준은 그런 나를 보다가,

짧게 웃었다.

전혀 편한 웃음은 아니었다.

“됐다.”

그가 한 발 물러났다.

“괜히 또 몰아붙였네.”

그 말에 내가 더 이상해졌다.

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올라가.”

태준이 말했다.

“늦었어.”

나는 그를 보았다.

“너는?”

“나도 올라갈 거야.”

“왜.”

“확인할 게 있어서.”

“또 관리인 역할?”

태준의 입매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오늘은 아니야.”

“그럼 뭔데.”

그는 나를 바라봤다.

“너 들어가는 거.”

나는 말을 잃었다.

그 말이 다정해서가 아니었다.

다정하게 들릴까 봐 싫었다.

나는 대답 대신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태준도 따라왔다.

우리는 나란히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했다.

괜찮은 척하는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선 강태준.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이상하게 가까워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공간.

거울 벽.

낮은 기계음.

층수가 바뀌는 작은 숫자.

나는 일부러 숫자만 봤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태준이 내 옆에 서 있다는 걸.

검은 코트에서 나는 희미한 우디 향.

퇴근길 밤공기와 섞인 낮은 체온.

말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남는 사람.

나는 문득 짜증이 났다.

왜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지.

3년이나 지났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나는 먼저 복도로 나왔다.

집 앞에 도착해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릭.

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뒤돌아봤다.

태준은 문밖에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딱 문턱 밖에서.

“들어올 거야?”

내가 물었다.

묻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태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들어와도 돼?”

그렇게 물으면 안 되지.

예전 같으면 묻지도 않고 들어왔을 사람이,

이제는 꼭 허락을 기다린다.

그게 자꾸 나를 더 헷갈리게 한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말했다.

“문 앞까지만.”

태준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는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 안쪽까지만 들어왔다.

정말 문 앞까지만.

그 거리를 지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나는 가방을 식탁 의자에 걸어두고,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목이 마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뭔가 해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등 뒤의 태준이 너무 크게 느껴질 것 같아서.

냉장고 안에는 생수 몇 병이 있었다.

나는 물병 하나를 꺼냈다.

“안 잘 거야?”

등 뒤에서 태준이 물었다.

나는 뚜껑을 열며 대답했다.

“…자야지.”

“내일 출근?”

“응.”

태준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더 거슬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돌아섰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태준이 나를 봤다.

“뭐가.”

“질투하고,

화내고,

그러다가 또 갑자기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굴잖아.”

그의 눈이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그럼 어떡해.”

낮은 목소리.

“계속 티 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신발을 벗지 않은 채라,

현관과 거실 사이의 경계에서 멈췄다.

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까웠다.

이 집 안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한서윤.”

그가 내 이름을 낮게 불렀다.

나는 시선을 들지 못했다.

“나 요즘 진짜 많이 참고 있는 거 알아?”

손끝이 조금 굳었다.

태준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런데 그 안에 눌린 감정이 너무 선명했다.

나는 괜히 숨을 삼켰다.

“……왜 참는데.”

그 순간,

태준이 아주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이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참아야 하니까.”

“…….”

“또 도망갈까 봐.”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태준의 눈빛이 바로 앞에 있었다.

깊고,

위험하고,

익숙한 눈.

그 눈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강태준은 지금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끝낸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몰랐다.

나는 그 사실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걸 완전히 싫어하지 못하는 나였다.

“태준아.”

내 목소리가 작게 흔들렸다.

그 순간 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내 입술로 내려왔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너무 많이 봤던 시선이었다.

키스하기 전.

참다가 결국 무너질 때.

말보다 먼저 숨이 가까워질 때.

나는 물병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딱.

작은 소리였는데,

집 안에서는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태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선은 가까웠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이미 닿은 것처럼.

나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식탁 모서리가 허리에 닿았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태준이 낮게 물었다.

“싫어?”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싫다고 해야 했다.

싫어.

이러지 마.

우리는 끝났어.

그 말들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태준은 그 침묵을 보고 있었다.

내가 말하기 전,

몸이 먼저 대답하는 순간.

그걸 그는 놓치지 않는다.

“서윤아.”

그가 아주 낮게 불렀다.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대답해.”

“…….”

“싫으면 안 할게.”

그 말이 나를 더 흔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는 이만큼 묻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허락을 묻는 태준이,

왜 더 위험한지 모르겠다.

나는 입술을 열었다.

“난……”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

둘 다 동시에 멈췄다.

정적.

나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식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 화면에 이름이 떠 있었다.

정우진.

순간,

태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방금 전까지 흔들리던 눈빛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 차가운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더 숨이 막혔다.

태준은 말없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계속 연락 오네.”

그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조용해서,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워지는 순간보다

그 가까움을 멈추게 만드는 이름 하나가

더 크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미열주의》는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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