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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쉬는 제물 (1)

Author: 뮤네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18:00:18

물건은 죽어 있다. 죽어 있는 것은 살아있는 감정을 끌어낼 수 없다.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집무실의 거대한 창밖으로 몰아치는 북부의 눈보라를 바라보며 서늘한 결론을 내렸다. 아일라가 남부에서 아끼던 장부와 편지, 나무 조각 따위가 벽난로의 불길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갈 때, 그녀는 텅 빈 미소만을 지었다.

그 완벽한 무반응 앞에서 카일락은 자신이 지워버린 그녀의 생기를 향한 기괴한 갈증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증오하며 노려보던 눈빛, 도망치기 위해 바닥을 기며 내지르던 악에 받친 비명. 그 뜨거운 숨결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자신이 만든 맹목의 요람 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완벽하게 부서졌다. 아니, 부서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카일락의 오만한 지배욕은 그 껍데기만 남은 순종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단 한 줌의 불씨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자신의 발밑에서 타오르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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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백작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서신에 적힌 내용은 명백했다. 재무부 관료가 대공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불어버리겠다는 협박. 며칠 전, 대공이 반역의 기미를 보이던 변방의 소영주들을 단신으로 찾아가 사지를 찢어발겼다는 끔찍한 소문이 북부를 휩쓴 참이었다. 만약 자신이 로젤 황실과 내통하여 대공성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카일락의 귀에 들어간다면?'그 미친 사냥개는 기사단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내 목을 뜯으러 올 것이다.'숨이 막히는 공포였다. 그렇다고 이 사태를 로젤 황실에 보고하여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로젤의 황제는 철저한 이득주의자였다. 쓸모가 있을 때나 뒷배가 되어주지, 꼬리가 밟혀 썩어 들어가는 장기말을 위해 황실의 기사단을 북부의 혹한 속으로 파병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암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황실에 기댈 수도 없고, 늙은 쥐새끼의 협박을 무시할 수도 없고, 대공에게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것은 곧 완벽한 자살 행위였다.바르토 백작은 집무실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누구에게 붙어야 살 수 있는가. 충성과 배신 사이, 턱밑까지 차오른 공포 속에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대체 어쩌다 그 무식한 대공 놈이 재무부의 장부를 의심하게 된 거지? 그저 눈이 먼 인형을 끼고 돌아 미쳐가는 줄로만 알았거늘……!"그는 자신을 이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의 존재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시기가 나빴다고, 늙은 재무부 관료의 탐욕이 대공의 변덕을 건드린 것이라고만 착각할 뿐이었다.결국 기나긴 밤의 고뇌 끝에, 바르토 백작은 가장 최악의 패를 집어 들고 말았다.양쪽을 모두 속이며 시간을 버는 것. 영지의 상단을 쥐어짜 절반의 은화만을 마련하여 재무부 관료의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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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혓바닥이 지나치게 길군.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쏟아지는 변명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 당장 네놈의 목을 썰어 금고 앞에 매달아두면, 은화가 새는 구멍 정도는 틀어막을 수 있겠지."당장이라도 칼날이 뽑혀 관료의 목덜미를 날려버릴 것 같은 끔찍한 순간. 사색이 된 관료가 숨조차 쉬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려던 찰나였다.아일라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제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던 카일락의 거칠고 커다란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그저 아주 가볍게 얽어 쥐었다."……."그 단 한 번의 가느다란 접촉.마치 마법처럼, 검자루를 쥐고 있던 카일락의 억센 팔에서 팽팽하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는 살기를 폭발시키려던 맹수에서, 단숨에 주인의 가벼운 쓰다듬 한 번에 온순해진 사냥개로 돌변했다. 장검을 밀어 올리던 손은 어느새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핏발이 서 있던 붉은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다 다급히 아일라의 시선을 찾아 얽어왔다.왜 멈추게 하느냐는 원망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내뿜은 살기가 아일라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애처로운 기색만이 가득했다.아일라는 여전히 초점을 잃은 인형의 연기를 유지한 채, 카일락의 손가락을 얽어 쥔 힘을 아주 천천히 풀어냈다.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을 쓰지 말고 내치라'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은밀하고도 절대적인 통제의 수화였다.카일락은 거친 숨을 삼키며 간신히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엎드린 관료를 향해 내리꽂히는 시선은 여전히 잔혹했지만, 방금 전의 통제 불능한 살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꺼져."카일락의 입에서 역겨움이 가득 찬 축객령이 떨어졌다."내일 아침까지 내 눈앞에 제대로 된 장부와, 그 쥐새끼들의 배후를 추적한 명단을 가져와라. 그때까지도 네놈의 혓바닥이 지금처럼 의미 없는 변명만 뱉어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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