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93 화

Author: 진해랑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5 08:04:04
복도로 나온 연지원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품에 안은 서류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그제야 손에서 힘을 풀자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두 달 동안 자리를 비운 사람은 신채은이었다.

도영이 식사를 거르고, 텅 빈 집으로 돌아가고, 일에 매달리며 버티는 동안 곁을 지킨 사람은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채은이 비운 자리를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도영도 자신을 돌아볼 거라고 믿었다.

애초에 도영에게 접근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었다.

신채은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었다.

자신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7 화

    “무슨 뜻이에요?”도영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지금까지는 당신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그는 변명하지 않았다.삼 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 두고도 채은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담담하게 인정했다.“오늘에서야 그걸 알았습니다.”바보 같죠. 작게 덧붙인 말에 채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함께 지낸 삼 년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면서도, 이제부터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겠다는 고백처럼 들렸다.“그 말.”잠시 후 채은이 물었다.“칭찬으로 들어야 해요?”“아닙니다.”도영은 짧게 숨을 내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6 화

    채은이 본사 로비를 나선 것은 약속 시간을 불과 몇 분 앞두고서였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파리 프로젝트 실무진 회의가 있습니다. 열한 시에는 백화점 전략기획실 보고가 예정되어 있고요.”뒤따라오던 수진은 로비를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내일 일정을 보고하고 있었다.“오후 일정은 아직 조율 중인데, 차 전무님 쪽에서 다시 연락이…….”그때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채은은 코트 자락을 여미며 걸음을 옮기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시선이 향한 곳에는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그리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5 화

    도영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빠르게 그랑 팔레 본사에 도착했다.강남에서도 한강과 가장 가까운 땅에 자리 잡은 그랑 팔레는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지하 3층, 지상 25층.한강을 따라 길게 뻗은 호텔은 높이보다 그 너비로 사람을 압도했다. 옅은 아이보리색 석재와 짙은 청동색 창틀은 고전적인 궁전을 연상시켰지만, 중앙 로비를 중심으로 양쪽 날개가 완만하게 펼쳐진 외관은 분명 현대적이었다.플라타너스가 늘어선 진입로 끝에는 타원형 분수대와 넓은 회차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물줄기 너머로 호텔의 중앙 현관이 장중하게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4 화

    하지만 자신의 진심이 채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었다.도영은 입력창을 닫았다.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회의를 마친 뒤에도, 결재 서류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는 책상 한쪽에 놓여 있었다.채은이 먼저 연락해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꾸 시선이 향했다.시간은 느리게 흘렀다.창밖의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도영은 펜을 내려놓았다.더 기다리는 것이 배려인지, 겁을 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한 달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하든 채은의 허락이 먼저여야 했다.그것만은 분명했다.도영은 휴대전화를 들었다.이번에는 짧게 썼다.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3 화

    복도로 나온 연지원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품에 안은 서류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그제야 손에서 힘을 풀자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두 달 동안 자리를 비운 사람은 신채은이었다.도영이 식사를 거르고, 텅 빈 집으로 돌아가고, 일에 매달리며 버티는 동안 곁을 지킨 사람은 자신이었다.처음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신채은이 비운 자리를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도영도 자신을 돌아볼 거라고 믿었다.애초에 도영에게 접근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었다.신채은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었다.자신의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192 화

    도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을 입에 올리지 마세요.”“결국 신 대표님이 돌아오니까 저를 밀어내시는 거잖아요.”“그 사람은 이 일과 관계없습니다.”“관계가 없는데 왜 하필 지금이에요?”연지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늘 감정을 정돈하고 있던 얼굴이 처음으로 무너지고 있었다.“본부장님이 가장 힘드셨을 때 곁에 있던 사람은 저였어요.”“…….”“식사도 거르고 밤새 일하실 때마다 챙긴 것도 저였고요. 신 대표님은 본부장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도 없었잖아요. 두 달 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사람이 누군데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