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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너, 눈물도 너
바람도 너, 눈물도 너
Auteur: 자몽

제1화

Auteur: 자몽
시력을 회복한 다음 날, 윤채아는 남편에게 가장 먼저 이 희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남편 성우현을 구하려다 시력을 잃었던 3년이란 시간은 그들의 결혼 생활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성우현은 그녀를 극진히 대하고 사랑하지만, 그와 동시에 늘 깊은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거실로 내려가려던 찰나, 아래층에서 성우현의 동생 성우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채아는 반가운 마음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곧이어 이어진 대화에 웃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형, 진짜 제정신이야? 지은수가 귀국했다고 이렇게까지 이성을 놓아버릴 일이냐고? 형수님이 그렇게 오랫동안 옆에 있어 주셨는데 아무리 눈이 멀었다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지은수한테 너무 마음이 기울었잖아.”

윤채아의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지은수 이름 석 자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성우현과 함께하기 전부터 그에게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의붓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고 성우현은 이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다고 했다.

심지어 한때 이들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성씨 가문에서 재빨리 여론을 종식하고 지은수를 치료 목적으로 해외에 보내버렸다.

동생 성우빈의 말을 들은 성우현은 안색이 확 가라앉고 냉랭한 어투로 쏘아붙였다.

“은수 심장이 약해서 자극받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내 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돼.”

“그렇다고 아예 집에 들어와 살게 하는 건 아니지! 형수님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거야?”

윤채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며칠 전부터 3층 방을 분주하게 청소하던 가정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 누구를 위한 거냐 물어도 다들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회피했었는데...

윤채아는 가슴이 조여왔다.

다음 순간, 그녀는 가장 듣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가장 진실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형수님을 대체품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형 때문에 눈까지 멀게 해놓고 이게 형이 할 짓이야? 아무리 지은수를 사랑한다 해도 이건 선을 넘었어.”

성우현이 미간을 구기며 대꾸하려던 찰나, 위층에서 촤르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채아의 손에서 점자 자료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그녀는 곧바로 몸을 숙여 자료들을 주우려 했다. 하지만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숙이려던 동작을 멈칫했다.

여전히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행동을 가장한 것이다.

성우현은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애끓는 걱정과 함께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줌마도 없이 왜 혼자 나왔어? 다치면 어쩌려고!”

윤채아는 묵묵히 눈을 내리깔았다.

“일단 방으로 데려다줄게.”

성우현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떠나려 할 때, 윤채아가 지극히 평온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방금 아래에서 한 말 다 들었어.”

성우현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녀가 여전히 앞이 안 보이는 줄 알고 안색이 차갑게 굳었으나 목소리는 억지로 다정하게 꾸며냈다.

“우빈이 그 자식 몰라? 헛소리 좀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착하지, 우리 채아.”

위로의 말을 남긴 뒤, 성우현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그와 함께하기 전부터 어렴풋이 느껴왔던 불편함이 방금 들은 그 말 덕분에 마침내 설명이 되었다.

대체품이라...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친구들은 처음 윤채아를 봤을 때,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의 아버지 성준석은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가 윤채아의 얼굴을 본 뒤에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었다.

이와 비슷한 수많은 예시가 있었는데 그녀는 여태껏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벌어진 그 사고에서 윤채아는 차에 치일 뻔한 성우현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자신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차에 부딪혔다.

결국,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고 심한 뇌진탕 후유증으로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캄캄한 세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성우현은 매일 그녀의 곁을 지켰고 또한 그녀를 안심시키려 결혼 날짜까지 앞당겼다. 평생 자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남자의 맹세를 믿고 그 후로 마음에 걸리는 모든 이상한 낌새들은 애써 외면하며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지만, 세상은 이미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이 자세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을까?

별안간 가정부 변미진이 조심스레 노크했다.

“사모님, 도련님께서 방금 외출하셨어요. 사 오라 하신 식재료 다 샀는데 요리 시작할까요?”

변미진은 늘 그녀와 함께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다녔고 그녀가 시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기도 했다.

실은 성우현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어 이 사실을 일부러 숨겨두었다가 결혼 3주년 기념일인 오늘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려고 계획했었다.

“아니요, 됐어요. 저 안 할래요.”

“네?”

변미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잠시 후 그녀가 알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긴, 사모님은 이제 막 시력을 회복해서 푹 쉬셔야죠.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날 밤, 변미진은 화려한 만찬을 차려놓고 성우현을 기다렸다. 오늘은 도련님과 사모님의 결혼 3주년 기념일이라 절대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윤채아는 식탁 끝에 앉아 성우현이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시력을 회복한 이후로 그녀는 색깔 있는 사물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식탁 위에는 온갖 다채로운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다. 그저 텅 빈 허공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성우빈이 했던 말들이 여전히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헤집고 있었다. 심장이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 피가 흐르고 차가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오늘 밤, 성우현이 돌아오면 반드시 진실을 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아무리 회피하려 해도 말이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음식이 다 식을 때까지 이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윤채아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휴대폰을 꺼내 어색한 손으로 통화 화면을 열었다. 막 성우현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인데 문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성우현이 한 여자를 데리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고급스러운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위엄 있는 기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옆에는 하얀 공주 드레스를 입고 누드 핑크색 구두를 신은 여자가 청순하고 달콤한 모습을 선사했다.

성우현의 준수한 얼굴에는 더 이상 차가운 기색이 없었다. 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부드러움마저 감돌았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그 순간, 윤채아의 심장에 뚫린 구멍은 더 크게 벌어졌다.

‘역시 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나만 광대였네. 성우현이 명의상 여동생과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속이 뒤집히고 메스꺼움이 차올랐다.

한편 성우현과 지은수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오다가 식탁에 앉은 윤채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오빠, 저 여자가 바로 그 장님이라던 오빠 와이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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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30화

    저녁.아파트에 있던 윤채아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오늘 이나연에게서 얘기를 전해 들은 윤채아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성우현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윤채아는 한숨을 쉬며 달려가 문을 열었다.“왜 이제야 문을 여는 거야?”성우현의 목소리에서 불만이 느껴졌다. 의심이 더욱 깊어진 성우현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집 안을 쭉 둘러본 뒤 곧장 윤채아의 방으로 걸어갔다.“뭐 하는 거야?”윤채아는 성우현이 옷장을 열어 보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성우현은 마치 불륜 현장을 덮치러 온 사람처럼 굴었다.두 사람 중에 바람을 피운 사람은 윤채아가 아니라 성우현인데 말이다.“성우현!”윤채아는 성우현의 앞을 가로막으며 더는 멋대로 집안을 둘러보지 못하게 했다.“대체 뭐 하러 온 거야?”“뭐 하러 왔냐고?”성우현은 키가 커서 고개를 숙여 윤채아를 바라볼 때는 압박감이 상당했다.사실 처음에 성우현은 강해준이 윤채아의 집에 와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집을 살펴봤다.그런데 쭉 둘러보니 생활용품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마치 다시는 성씨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평생 이곳에서 살 것처럼 말이다.그 점이 성우현을 가장 화나게 했다.성우현은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윤채아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윤채아가 저항하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억지로 윤채아를 끌어안았다.“채아야.”윤채아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경계를 읽어낸 성우현은 윤채아의 손목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너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지금 당장 나랑 집에 가.”윤채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집으로 돌아가자고? 거기 돌아가서 너랑 네 애인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걸 지켜보라고? 성우현, 이제는 진짜 네가 미쳤는지, 내가 미쳤는지 모르겠어.”오늘 연구원에서 지은수를 마주쳤던 일을 떠올리자 두 사람에 대한 혐오가 더 커졌다.“너랑 네 애인이 싸운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29화

    윤채아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에 지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계속 그런 식으로 밀당을 하면서 오빠 마음을 붙잡았던 거네. 연기를 참 잘하네. 나조차도 그 연기에 속은 걸 보면 말이야!”윤채아는 입술을 깨물다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뒤에 있던 지은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독기 어린 눈빛으로 윤채아의 뒷모습을 노려봤다....출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성우현은 이나연의 회사 주소를 알아낸 뒤 직접 이나연의 회사로 가서 이나연을 만날 생각이었다.그런데 이나연을 만나기도 전에 성우현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등장했다.지하 주차장.강해준이 마이바흐 뒷좌석에서 내렸다.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강해준은 셔츠 윗단추 두 개를 풀어놓은 채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어 헤치고 있었다. 강해준은 온몸에서 차가우면서도 거만하고, 동시에 나른한 분위기를 내뿜었다.성우현은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를 비벼 끈 뒤 먼저 다가가서 강해준에게 인사를 건넸다.강해준은 성우현을 힐끗 바라봤다.성우현은 상대방이 안중에도 없는 듯이 구는 강해준의 오만한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세강 그룹과 대형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성우현은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성 대표님이시군요.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곧 이혼하신다면서요?”성우현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그럴 리가요. 오랜만에 뵙는데 여전히 농담을 즐겨 하시네요.”“네? 농담이라니요.”강해준은 느긋한 걸음으로 성우현에게 다가가 여유롭게 말했다.“어젯밤에 채아를 만났는데 채아가 곧 이혼한다고 하던데요? 본인이 직접 말한 건데 거짓말일 리가 있겠습니까?”윤채아의 이름이 언급되자 성우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성 대표님, 혹시 언짢으신 겁니까? 제 앞에서는 굳이 연기하지 않으셔도 돼요.”강해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성우현의 어깨를 토닥였다.“여동생을 아주 애틋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얼른 그분이랑 결혼하시죠. 죄 없는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시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니까요.”성우현은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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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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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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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도 너, 눈물도 너   제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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