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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의 도망

백 번의 도망

Por:  봄산Completo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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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주인혁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소꿉친구 소연아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심지어 나를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음흉한 여자라고 여겼다. 소연아가 내가 자신을 호수에 밀어 빠뜨렸다고 모함하자, 주인혁은 사람을 시켜 나를 호수에 처박고 고열이 날 때까지 차가운 물속에 내버려 두었다. 실망 끝에 마음을 접은 나는 화리서를 남기고 아들 주현우를 데리고 떠났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주인혁은 사람을 보내 주현우를 데려가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 소연아가 만족할 때까지 나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흔아홉 번이나 도망쳤음에도 끝내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주현우가 백 번째로 잡혀갔을 때, 나는 신분을 숨기고 시녀로 변장해 저택에 잠입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혁의 기억상실은 가짜였고, 우리가 매번 잡혔던 건 주현우가 그에게 몰래 소식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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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나는 우연히 주현우와 주인혁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어머니는 참 멍청합니다. 우리가 매번 붙잡히는 것이 제가 계속 소식을 흘리고 있어서라는 걸, 지금까지도 모르시잖아요.""어머니가 그때 술집에서 아버지를 데려가 사랑을 가로채지만 않았어도, 연아 이모님이 혼례를 피해 달아난 뒤 아버지를 팔 년이나 찾아 헤맬 일은 없었을 겁니다.""저와 아버지가 어머니를 백 번만 함께 골탕 먹이면, 연아 이모님이 앙금을 완전히 털어내고 어머니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주인혁은 대견하다는 듯 주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이번에 돌아오면 네가 나를 도와 어머니를 잘 설득해 보거라. 스스로 첩으로 내려앉겠다고 말이다.""애초에 네 어머니가 먼저 남의 사랑을 가로챘으니, 연아와 정실 자리를 다투어서는 안 된다."..."허나 네 어머니는 고집이 세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연아를 한 번 도와줬다고 화리서를 던져두고 너를 데리고 그렇게 여러 번 도망칠 리가 없지."주인혁이 한숨을 쉬자 주현우도 덩달아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차라리 아버지께서 기억을 되찾은 척하십시오. 어머니는 아버지를 아주 사랑하시니까 이해해 줄지도 모릅니다.""어쨌든 잘못을 저지른 건 어머니잖습니까."주현우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주인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현우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쓰다듬었다."나도 기억상실인 척하고 싶지 않다. 허나 네 어머니는 예전에 내가 자신을 배신하면 더 이상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었다.""기억을 잃은 척해야만 네 어머니가 이 모든 일이 내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그러니 아직 기억을 되찾은 척 해서는 안 된다.""연아의 화가 완전히 풀리면 그때 기억을 되찾은 척 어머니를 달래서 정실과 같은 지위의 부인으로 삼을 계획이다.""어쨌든 부부로 팔 년을 함께했으니, 나도 이대로 우리 가족이 흩어지는 건 원치 않는다.""게다가 네 어머니는 이제 너밖에 없지 않느냐.""그러니 현우야, 네 어머니를 붙잡아 두는 일은 네게 달렸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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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의 모습에 임 집사는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따라오지는 않았다.주씨 가문 저택에서 멀어지자 나는 골목 안으로 숨어들어 초라한 몰골을 어둠 속에 감추었다.조금 전 그 부자간의 대화를 떠올린 나는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고, 눈에는 서글픔이 가득 찼다....나는 본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명문가의 아가씨로, 팔 년 전 가문을 따라 아무도 모르는 섬으로 들어가 살았어야 했다.하지만 과거에서 삼등으로 급제한 주인혁에게 첫눈에 반해 이곳에 남았다.그에 대해 알고 싶어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그들의 혼례식 날 축복을 빌어주고, 곧바로 가문을 찾아 떠날 생각이었다.하지만 나는 그들의 혼례를 보지 못했고, 대신 소연아가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비굴하게 애원하는 그를 보았으나, 소연아는 혐오스럽다는 듯 그의 소매를 뿌리치고 망설임 없이 돌아서 떠났다.그녀가 시집가던 날, 주인혁은 술집에서 술에 잔뜩 취했다.사고라도 날까 걱정되어 다가가 말리려던 찰나, 그는 나를 덥석 품에 안았다.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가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아도 나를 버렸는데, 너마저 나를 버릴 셈이냐?"마음이 약해진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고, 술기운을 빌려 우리는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그리고 주인혁은 바로 다음 날 도성을 떠나 양주(揚州)로 발령받기를 자청했고, 그곳에서 나와 가정을 꾸렸다.그는 소연아를 잊고 진심으로 나를 대할 것이며, 수년 동안 변함없이 나를 지극정성으로 아끼겠다고 말했다.팔 년 동안 우리에게는 아들이 생겼고, 부부 사이의 정은 나날이 깊어졌다.나는 우리가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평생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보름 전, 소연아가 초라한 행색으로 우리를 찾아왔다.주인혁을 보자마자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달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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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심지어 주인혁과 주현우는 소연아를 위해 함께 나를 골탕 먹이기로 약속까지 했다.아흔아홉 번의 도주와 주현우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니 헛웃음이 나왔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이제 그들은 또다시, 백 번째로 나를 농락해 스스로 첩의 자리로 내려앉게 하고 자기들 뜻에 순순히 따르게 하려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그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생각을 정리한 나는 망설임 없이 골목을 빠져나와 길을 떠났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마차 한 대가 정면으로 달려와 부딪혔다.강한 충격에 나는 바닥에 세게 나동그라졌고, 쓸린 손바닥에 붉은 상처가 생겼다.따끔거리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마차 휘장 너머의 사람이 소연아임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입술을 깨물며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마차에서 내려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언니, 돌아오셨습니까?"소연아는 무척 기쁜 듯 눈을 반짝이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에 꽂은 비녀를 가리켰다."미안해요, 언니. 깜빡했습니다. 이 비녀는 원래 인혁이가 언니에게 맞춰준 것이지요?""어제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원래 뺏고 싶지 않았는데, 인혁이가 이건 자기 부인에게 주려고 맞춘 것이라고 하더군요.""게다가 언니가 제 사랑을 가로채지만 않았어도 원래 제가 인혁이의 부인이었을 테니까요.""인혁이가 이걸 제게 주면서, 제가 꽂으니 정말 예쁘다고 해줬는데, 언니가 보시기엔 어떠십니까?"그녀는 마치 나를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처럼 대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의적인 얼굴로 나를 짓밟고 모욕했던 사람이었다.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비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녀는 내가 속상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이토록 속상해하시니, 제가 이 비녀를 돌려드릴까요?"그녀의 눈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가득했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필요 없다."내 반응에 소연아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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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주인혁과 주현우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러자 세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주현우는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었지만, 나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그러다 갑자기 주현우의 비명과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왔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뒤를 돌아보니 주현우의 어깨가 단검에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고, 주현우는 아픈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내가 돌아보자 주인혁이 차갑게 비웃었다."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내가 현우를 죽여버려도 넌 모른 척하겠구나."그는 단검을 치켜들며 또 다시 칼로 찌르려 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단검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칼날에 베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나는 고개를 숙여 예전처럼 주현우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달래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두려움에 젖은 눈동자 깊숙이 숨겨진 주현우의 득의양양한 기색을 보고 말았다.나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손바닥의 통증이 심장까지 서늘하게 스며드는 듯했다.당황한 주인혁이 서둘러 단검을 내던지고 내 손을 잡아 지혈하려 했다.하지만 소연아의 붉어진 눈시울을 의식한 그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차갑게 손을 거두었다.나는 그 기색을 살필 겨를도 없이, 피가 흐르는 손을 꽉 쥐며 주현우에게 물었다."정말로 내가 소연아와 네 아버지를 위해 점괘를 받아오길 바라느냐?"내 질문에 주현우의 눈에 잠시 죄책감이 스쳤으나, 이내 흐느끼며 대답했다."아버지께서 어머니가 가지 않으시면 칼로 저를 찌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저 너무 무섭습니다…"그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그래."떠나기 전, 이 아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기로 했다.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고, 주인혁과 주현우는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는 주현우가 다치는 것만 봐도 가슴이 아파 소연아에게 애원했고, 주현우의 상처부터 싸매 준 뒤에 그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려고 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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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인혁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치며 따져 물었고, 꽉 움켜쥔 두 주먹은 떨리고 있었다.평정심을 잃은 그의 모습을 본 소연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인혁아, 왜 그러는 것이냐?""떠났으면 떠난 것이지, 어차피 현우가 여기 있으니 다시 돌아올 것이다."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주인혁과 주현우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도혜민이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부자는 도혜민이 세상과 연을 끊고 은거하는 도씨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또한 도씨 가문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태어날 때부터 가문을 떠나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으며, 가문으로 돌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하지만 일단 가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면, 다시는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없고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야 했다.그리고 도씨 가문의 전당포는 가문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련된 하나의 통로였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남겨두기 위해서였다.게다가 과거에 도혜민은 주인혁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주인혁이 자신을 배신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겠다고.지금 주인혁은 정말로 그녀를 배신했다.하지만 아이가 있기에 도혜민이 떠나지 못할 거라 자만했고, 주현우 역시 어머니가 결코 자신을 버리지 못할 거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다.2년 전 도혜민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미 주현우를 그 신비로운 섬으로 데려갈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그때 주현우가 대륙의 모든 것과 헤어지기 싫다며 줄곧 울고 떼를 쓴 탓에 도혜민이 마음을 돌렸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아흔아홉 번이나 골탕을 먹이다가 붙잡혀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렇기에 주현우는 어머니가 자신을 지독히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는 도혜민이 정말로 떠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예전에는 그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겪으면 도혜민이 늘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제대로 지켜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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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말을 마친 나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데 평소에는 자제력이 강하고 선을 지키던 주인혁이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순간 아까 단검에 베인 상처가 꽉 움켜잡히면서 통증이 밀려왔고, 당황한 그는 급히 손을 놓았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고개를 숙인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예전에는 내가 작은 상처만 입어도 안절부절 못하던 그였는데, 지금 그때와 같은 표정이었다.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비웃음만 가득했다."이 상처는 네가 직접 낸 것인데, 이제 와서 뭘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것이냐?"나는 차갑게 웃었고, 눈빛에는 서늘한 냉기가 가득했다.그는 몸을 떨며 급히 옷자락을 찢어 내 상처를 감싸주려 했으나,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혜민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제발 가지 말거라. 너를 잃을까 봐 너무 무섭다… 네가 겪은 고통은 앞으로 내가 모두 보상하마."그는 입술을 달싹였고,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모습이 더없이 가련했다.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나를 첩으로 내려앉혀 소연아에게 차나 올리며 평생 괴롭힘 당하게 만드는 것이 네가 말하는 보상이냐?"그 말에 부자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실제로 그들은 조금 전까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소연아가 그렇게 안쓰럽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나와 화리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누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니까.""그런데 넌 욕심을 부려 둘 중 누구도 놓지 않으려 했지.""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며 내가 네 사랑을 빼앗았다고 계속 말했었지만, 술집에서 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던 건 바로 너였다.""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너한테 뭘 강요한 적이 있었느냐?"내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주인혁이 비틀거렸다.마음속으로 애써 감추고 있던 것이 들춰지자, 그는 순간 낯이 뜨거워졌다.하지만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친 탓에 그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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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옷자락이 주인혁의 손을 빠져나가며 완전히 사라졌다.주인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무릎을 꿇은 채, 그 순간 숨마저 멎은 듯했다.마차가 멀어지려는 것을 본 그는 황급히 일어나 뒤쫓으려 했지만, 도씨 가문의 전당포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았다.주현우 역시 붙잡혀 따라가지 못했다.그때 주인혁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희망이 서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이거 놓거라! 나와 혜민이는 아직 화리하지 않았다. 혜민이는 여전히 내 부인이니 마음대로 떠날 수 없다."그의 외침에 전당포 사람들이 비웃음을 흘렸다."대낮부터 무슨 헛꿈을 꾸고 계십니까?""그 화리서는 평민 여인에게나 통하는 것이지, 우리 도씨 가문에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우리 도씨 가문에는 진귀한 보물이 셀 수 없이 많고, 그 힘은 사방의 나라들에서도 두려워할 정도입니다.""우리 도씨 가문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대감님의 화리서는 오늘 밤에 대감님의 저택으로 보내드릴 것입니다."그 말에 주인혁은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화리할 수 없다. 난 절대로 화리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울부짖었으나, 도씨 가문 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온통 혐오감이 서려 있었다.그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이 모든 일은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마음속에서 무력감이 치밀어 올라 그를 짓눌렀다. 그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며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주저앉았다.그는 지난날을 떠올리다가 주현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나를 버려도 아들까지 버리지는 않겠지? 혜민이는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으니까..."그렇게 말한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손들을 뿌리치고 주현우를 데리고 마차를 쫓아갔다.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을 때, 그는 이미 마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그대로 마차에 치여 무자비하게 날아갔다.바닥에 나뒹굴며 피를 토했지만, 그의 눈에 깃든 집념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주현우 역시 머리를 부딪쳐 고통에 신음했다.주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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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마지막으로 주인혁은 힘겹게 씁쓸함을 삼키며 그대로 가라앉았다.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온몸이 차가운 물에 휩싸이는 순간, 누군가 그를 건져 올렸다.도씨 가문 사람들은 재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조롱도 잇따라 쏟아졌다."우리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고 싶더라도 아비로서의 도리는 다하고 죽으라고 말입니다."그 말에 주인혁은 입안의 물을 뱉어 내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결국 혜민이가 유일하게 마음에 두고 있는 건 현우뿐이구나..."그가 쓴웃음을 지었지만, 상대는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당연한 것 아닙니까?""어린애가 철없는 거야 그렇다 쳐도, 어른인 당신까지 철이 없다니.""일곱 살 아이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이를 부추겨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게 했잖습니까.""말해 보십시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아가씨의 마음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겁니까?"차가운 말이 마치 비수처럼 주인혁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그는 주먹을 꽉 쥐었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나 같은 쓰레기는 누구의 기억 속에 남을 자격조차 없어.’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넋이 나간 채 저택으로 돌아왔다.문 앞에서 주현우는 그가 돌아온 것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진 채 다그쳐 물었다."아버지, 어머니는 데려오셨습니까?"주현우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고,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아들의 붉어진 눈시울을 본 주인혁은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다.분명 예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행복했었는데,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망쳐버렸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현우는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주현우는 손을 들어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며 목이 쉰 채 울부짖었다."아버지 말을 듣고 어머니를 속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연아 이모님을 좋아하면서 어머니를 괴롭히면 안되는 것이었는데.""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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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주현우는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고, 눈은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아버지, 분명 다 알아봤다고 하셨잖습니까?""저는 도성 밖에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어린 거지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아 이모님이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그런데 연아 이모님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니요? 아버지는 앞뒤 가리지도 않고 누나의 말만 믿고, 저를 꼬드겨 누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어머니를 골탕 먹이게 하신 겁니까?"주현우는 목이 메어 갈라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아버지가 밉습니다, 정말 싫습니다!"주현우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통곡했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올해 생일에는 강남에 가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제 생일인데, 아직 가지도 못했는데..."그는 중얼거리며 울었고, 자신이 했던 거짓말들이 떠오르자 숨이 막힐 듯한 자책감에 빠졌다.결국 견디다 못한 주현우는 주인혁을 힘껏 들이받았다."아버지가 정말 싫습니다! 너무 미워요!""앞으로 아버지는 더 이상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말을 마친 주현우는 도혜민을 찾아가 그녀와 함께 떠나겠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려 했다.하지만 문 앞에 이르자 눈빛이 막막해졌다.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설령 찾는다 해도 그녀가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할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결국 그는 고열로 대문 앞에서 쓰러졌고,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하인들이 그를 안아 데려갔다.주현우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주인혁이 눈을 감았다. 그때 곁에서 소연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인혁아, 가슴의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이냐?"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물었다.하지만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주인혁은 무언가에 자극받은 사람처럼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왜 나를 속인 것이냐? 어찌하여 그리도 독하게 굴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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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소연아를 끌고 가 죗값을 치르게 하라고 명한 뒤, 주인혁은 관아에서 보낸 화리서를 받았다.원래 도혜민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이 소연아에 의해 엉망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지만, 시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대감님, 이 물건들을 치우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허나 마님의 물건들은 다시 찾을 길이 없습니다.""보름 전 연아 아가씨가 나타난 뒤로 대감님께서 저희에게 연아 아가씨의 말을 따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아가씨의 명령으로 마님의 모든 물건들을 다 내다 버렸습니다."그 말에 주인혁은 저도 모르게 휘청였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어디에 버렸느냐?"그는 물건들을 남쪽의 쓰레기 소각장에 버렸는 말을 듣자마자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다행히 그는 쓰레기 소각장이 보름에 한 번씩 물건을 태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그가 지금 달려간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하지만 필사적으로 달려갔음에도 결국 한발 늦고 말았다.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절망에 휩싸인 그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두 손이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까지 불에 타버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관리인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사람을 불러 그를 끌어냈다.결국 그는 모든 것이 잿더미로 타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불길이 완전히 꺼진 뒤, 주인혁은 텅 빈 눈으로 넋을 잃은 채 잿더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채 저택으로 돌아와, 예전에 도혜민에게 선물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들어 달라고 했다.이어 그는 멍한 얼굴로 지하 감옥을 찾아갔다.그곳에 도착한 주인혁은 주현우가 이미 명부를 손에 들고, 소연아가 저질렀던 일들을 하나씩 되갚아 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주현우의 앳된 목소리가 한마디 한마디 울려퍼져 그의 귓가에 박힐 때마다 그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그 말을 듣고 있던 소연아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난 이런 거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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