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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산호서
“물고기는 7초밖에 기억하지 못한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영원히 너를 지켜줄 거야.”

어린 시절의 그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정말 네가 9살 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만약 9살의 하예슬이 18살의 여민준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면, 아마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수도 없이 겪어왔다.

그래서 여민준의 태도 변화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은 결국 성장한다.

그때 내가 여민준의 목숨을 구했고, 여한그룹은 그 일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집에 여러 도움을 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업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익을 양보해 온 것도 충분히 진심 어린 보상이었다.

결국 우리 사이는 이미 서로 빚진 것 없는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이지,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니며, 남에게 기대 살아갈 필요도 없는 존재라고.

그래서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마음 다 정했어요.”

나는 엄마와 함께 대학 지원 원서를 수정했다.

S시 대신 J시로 올렸다.

처음에는 오늘 밤 잠을 한숨도 못 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잠은 놀라울 정도로 잘 왔다.

나는 정오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채 무심결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카톡의 특별 알림에 음성 메시지 두 통이 와 있었다.

여민준이었다.

스피커 너머 여민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화 풀었으면 나 차단한 거 풀어. 너도 이제 어린애 아니면서 왜 계속 이런 식으로 굴어?]

[어제 소라가 네가 갑자기 자리를 떠난 것 때문에 너무 미안해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심지어 옥상에 올라가서 죽겠다고까지 했어. 다행히 내가 말렸고.]

[시간도 아직 남았으니까 내가 소라랑 친구 몇 명 데리고 스위스에 가서 스키 타면서 기분 전환 좀 하려고 해. 괜히 질투하지 마. 어쨌든 소라가 그렇게까지 한 것도 네 책임이 어느 정도 있으니까.]

나는 이 뻔뻔한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소라가 어떻게 죽을 생각을 하겠어?’

학교에서 이소라는 매일 자신을 ‘여성 중의 여성’, ‘남자 중의 전투기’라고 칭하며, 내숭 떨고 민낯인 척 화장하는 가식적인 애들과는 다르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이소라의 술수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아이보다 많았다.

예를 들면, 4개월 전 내 친구 임하연이 성인식을 준비했을 때였다.

임하연은 예쁜 드레스를 고르고 화장까지 하며 인생 사진을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소라만큼은 끝까지 협조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비웃었다.

“너 몸매 좋네? 혹시 남자랑 잔 적 있는 거 아니야?”

“부끄러워하지 마. 다들 친구인데 뭐 어때?”

임하연이 화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자, 이소라는 곧바로 두 손을 들며 발뺌했다.

그리고 오히려 피해자인 척하며 말했다.

“아니, 너희 여자들은 왜 이렇게 쉽게 울어? 농담도 못 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내가 여자들이랑 안 논다니까. 하루 종일 별것도 아닌 걸로 난리야.”

또 한 번은 모두가 대학 입시 준비로 매일 녹초가 되어 있던 시기였다.

이소라는 웃으며 여기저기서 못생기게 찍은 사진을 모아, 교내 익명 게시판에 한꺼번에 올렸다.

[고3 2반 여학생들, 마음에 들면 데려가세요.]

결국 학생들이 단체로 담임 선생님께 항의했고, 그제야 이소라는 멈췄다.

게다가 2년 전에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소라가 ‘동아리 어시스턴트’ 란 명목으로 농구부에 들어온 건, 여민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소라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는 오만함이 하늘을 찔러, 내 것이 누군가에게 쉽사리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정말로 이소라에게 빼앗긴 지금, 나도 인정한다.

사람 보는 눈이 없었고, 어릴 적에 구해준 게 고마움 모르는 배은망덕한 녀석이었다고.

[네가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모두에게 사과하러 와. 특히 소라에게...]

여민준의 메시지가 연이어 튀어나왔다.

나는 음성 메시지를 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여민준의 카톡마저 차단 목록에 올렸다.

그때 방문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같이 겨울옷 사러 가자. J시 겨울은 꽤 추우니까 두꺼운 옷 몇 벌 사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옷을 다 사고 2층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바로 여민준 일행이었다.

일곱, 여덟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이소라는 검은색 짧은 치마를 입고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소라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일부러 친한 척 내 팔을 끼며 말했다.

“정말 우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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