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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무너뜨린 마지막 선물

가족을 무너뜨린 마지막 선물

By:  낙화수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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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생일날에 죽었다. 하지만 부모님도, 남편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람들은 쌍둥이 여동생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동생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드레스를 고르고 있을 때 나는 묶인 채 지하실에 던져졌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꺾인 손가락으로 9395라는 숫자를 눌렀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내기로 남편 고다훈과 약속했던 구조 신호였다. 설마 그 약속이 정말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고다훈은 믿지 않았다. 고다훈은 차갑게 답장을 보냈다. [심세경, 새 옷 사러 데려가지 않았다고 이제는 연기까지 하냐?] [작년 드레스도 입을 만할 텐데 늦지 말고 파티장에서 보자. 그만 좀 해.] 하지만 고다훈은 내 드레스가 여동생에 의해 찢겼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지 몇 초 만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결국 그날 생일 파티에 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여동생의 생일 선물이 공개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미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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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나는 내 생일에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지만,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가족들은 내가 쌍둥이 여동생의 중요한 생일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나를 탓했지만, 사실 나는 줄곧 그 자리에 있었다.

영혼의 상태로 말이다.

...

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 손에는 선물 봉투를 여럿 들고 있었다.

여동생 심유진만 빼고.

심유진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행복하게 먹고 있었다.

온 가족이 심유진을 공주님처럼 받들었으니 조금이라도 힘들게 할 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집을 꾸미기 시작했고, 남편 고다훈이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심세경, 내려와서 꾸미는 거 좀 도와줘. 오늘 생일이라고 설마 손 하나 까딱 안 하려는 건 아니겠지?”

평소 같으면 내가 달려 내려가서 도와줬을 텐데, 지금 나는 그저 영혼상태로 고다훈을 차갑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다훈은 위층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다시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심유진이 다가와 고다훈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훈 오빠, 언니가 없으면 제가 도와줄게요.”

고다훈은 웃으며 심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가서 쉬어, 아이스크림 다 녹겠다.”

그렇게 말하고 미소가 사라진 고다훈은 불쾌한 표정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겼다.

[심세경, 빨리 안 와? 파티 시작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어.]

[오늘 손님도 많이 오니까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빨리 들어와.]

메시지를 남긴 뒤 고다훈은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고다훈이 난처한 표정으로 들어오자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세경이가 또 삐진 거야?”

고다훈은 풍선을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들어도 잠수를 타요. 다른 사람이 와서 달래주길 기다리죠.”

“다 버릇없이 자란 거야.”

심기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마 자기가 없으면 파티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어. 이 파티의 주인공은 애초에 유진이었어, 걔가 오든 말든 상관없다고.”

“내일 돌아오면 그 남은 케이크나 먹으라고 해.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심기상은 점점 흥분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심유진이 재빨리 다가가 심기상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아빠, 그렇게 말씀하시면 언니가 얼마나 슬퍼할지 몰라요.”

“오늘은 언니 생일이기도 한데 언니 없이 어떻게 파티를 해요? 제가 나가서 찾아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심유진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온 가족은 심유진의 착하고 얌전함에 감탄했지만, 심유진이 실제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나는 심유진이 지하실로 돌아가 철문을 발로 걷어차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피범벅이 되어 구석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 심유진은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을 터뜨렸다.

심유진은 다가와 내 몸을 세게 걷어찼다.

“야, 그만 죽은 척하고 일어나 봐.”

하지만 나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미 죽었으니까.

그러나 심유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웅크려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내가 꼭 눈을 감고 있자 심유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이 팔렸다.

“정원 문이 왜 열려 있지?”

심유진은 깜짝 놀라 손을 놓았고 떠나기 전에 내게 한 번 더 발길질을 했다.

“얌전히 여기 처박혀 있어. 감히 내 생일 파티에 나타나서 관심 끌 생각은 하지도 마.”

그렇게 말하고 심유진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위층으로 올라가 고다훈의 품에 안겼다.

“제가 문을 닫는 걸 깜빡했네요. 다훈 오빠, 밖에서 한참 찾았는데 언니가 없어요.”

고다훈은 바로 안쓰러워하며 괜찮다고 달랬다.

“신경 쓰지 마.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가치 없는 사람 때문에 기분 망칠 필요 없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가치 없는 게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오직 심유진만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같은 날 태어났어도 내 생일은 늘 혼자였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특별했다.

생일인 동시에 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한 달 전 나는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이 사실을 숨기고 싶지는 않아서 검사 결과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 종이를 집어 들고 비웃던 모습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불쌍한 척, 관심 끌기, 그들의 시선을 끌려고 꾸민 짓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여동생과 사랑을 경쟁하려 한 적도 없고,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정성스럽게 준비한 생일 선물을 집에 두고, 친구들과 마지막 생일을 보내려고 나섰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정체불명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집 지하실에 있었다.

우두머리가 열쇠고리를 흔들고 있었는데, 거기엔 심유진이 가장 좋아하는 곰돌이 인형이 달려 있었다.

몇몇은 삼단봉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무릎을 꿇고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방망이를 내려쳤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맞은 후 그들은 내 옷을 찢고 수치스러운 모습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끝내고 열쇠를 흔들며 사라졌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려들었지만, 남자들이 남긴 곰돌이 인형 하나만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 아빠, 고다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손가락은 부러져 긴 글을 입력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9395라는 숫자를 입력했다.

고다훈과 내가 위급할 때 쓰기로 약속한 구조 신호였다.

“위험에 처하면 이 비밀 숫자를 보내. 내가 반드시 구하러 갈게.”

고다훈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약속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무슨 위험을 당하겠어?”

당시엔 농담이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써먹을 줄은 몰랐다.

나는 고다훈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방에서 뜬 메시지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심세경, 새 옷 사러 안 데려갔다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놀려?]

고다훈은 나를 믿지 않았다.

[게다가 작년 드레스도 아직 입을 만하잖아. 꼭 어린애처럼 새 옷을 사야 직성이 풀리겠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더는 뭐라고 안 할게. 늦기 전에 파티장으로 와.]

하지만 나는 그 파티에 갈 수 없었다.

아니, 이번 생에 우리는 다시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전화가 끊긴 후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더기로 뒤덮인 내 시체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마지막 이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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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나는 내 생일에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지만,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족들은 내가 쌍둥이 여동생의 중요한 생일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나를 탓했지만, 사실 나는 줄곧 그 자리에 있었다.영혼의 상태로 말이다....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왔다.각자 손에는 선물 봉투를 여럿 들고 있었다.여동생 심유진만 빼고.심유진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행복하게 먹고 있었다.온 가족이 심유진을 공주님처럼 받들었으니 조금이라도 힘들게 할 리가 없었다.가족들은 집을 꾸미기 시작했고, 남편 고다훈이 2층을 향해 소리쳤다.“심세경, 내려와서 꾸미는 거 좀 도와줘. 오늘 생일이라고 설마 손 하나 까딱 안 하려는 건 아니겠지?”평소 같으면 내가 달려 내려가서 도와줬을 텐데, 지금 나는 그저 영혼상태로 고다훈을 차갑게 바라보고만 있었다.고다훈은 위층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다시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그때 심유진이 다가와 고다훈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훈 오빠, 언니가 없으면 제가 도와줄게요.”고다훈은 웃으며 심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넌 가서 쉬어, 아이스크림 다 녹겠다.”그렇게 말하고 미소가 사라진 고다훈은 불쾌한 표정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겼다.[심세경, 빨리 안 와? 파티 시작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어.][오늘 손님도 많이 오니까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빨리 들어와.]메시지를 남긴 뒤 고다훈은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부모님은 고다훈이 난처한 표정으로 들어오자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세경이가 또 삐진 거야?”고다훈은 풍선을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네,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들어도 잠수를 타요. 다른 사람이 와서 달래주길 기다리죠.”“다 버릇없이 자란 거야.” 심기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마 자기가 없으면 파티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어. 이 파티의 주인공은 애초에 유진이었어, 걔가 오든 말든 상관없다고.”“내일 돌아오면 그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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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일 파티 준비는 모두 끝났다.식탁에는 심유진이 좋아하는 연어 요리가 가득했고, 케이크에도 심유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심기상 말대로 이 파티는 애초에 심유진을 위해 열리는 것이었다.그러니 케이크 위에 내 이름은 없었다.“엄마, 케이크 하나 더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손님들이 오셔서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심유진이 박정연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그럴 필요 없어. 걔가 무슨 친구가 있겠니?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진심으로 사귀는 친구 하나 없다니까.”박정연은 심유진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평소에 걔가 너한테 어떻게 굴었는지 생각해 봐. 사람이 너무 착하면 손해만 보는 거야.”‘내가 어떻게 굴었는데?’어릴 때부터 심유진은 내 모든 것을 빼앗았고, 나는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양보했다.나는 여동생이 있어서 행복했기에 심유진을 계속 감싸안았다.하지만 심유진은 점점 더 심해졌다.졸업식 날, 내가 도와준 졸업 작품으로 심유진은 국제상을 받았다.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그 작품은 나에게 있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작업물 중 하나였으니까.그러나 그 맛을 본 심유진은 내 모든 작품을 빼앗기 시작했다.내가 거절하면 사람을 시켜 나를 때렸다.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사람들은 내가 여동생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다고 했다.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내가 잃은 것은 트로피 하나가 아니라 부모님과 고다훈의 모든 사랑이었다는 걸.그들은 심유진을 천재라 부르고 나는 그 천재의 그림자일 뿐이었다.그 장면이 떠오르자, 나는 몸을 돌려 이 가족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내 뒤에서 심유진은 여전히 끝내주게 연기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엄마, 목소리 좀 낮춰요. 언니가 들으면 어떡해요?”“흥, 들으면 어때. 내 앞에 있어도 똑같이 말할 거야.”박정연 눈에는 경멸만 가득할 뿐, 사랑 따위는 없었다.나는 그저 조용히 그들이 나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듣고 있었다.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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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부모님과 고다훈은 바로 달려갔고, 심유진이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보았다.손에는 갈가리 찢긴 종이 조각들이 쥐어져 있었다.“이, 이게 오늘 파티에서 발표하려던 신작 아니야?!”“누가 이걸 찢은 거야! 누가 그랬어!”박정연은 바로 심유진을 일으키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다.심유진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흐느꼈다.“오늘 발표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잘 보관해 뒀어요.”“나갈 때 심지어 캐비닛에 잠가두기까지 했어요. 바로 언니랑 같이 쓰는 캐비닛이요...”이 말을 듣고 나는 비웃음을 터뜨렸다.단 한 마디로 범인은 명백해졌다.심기상은 화가 나서 문을 쾅 치며 소리쳤다.“심세경이 정말 도를 넘는구나!”“그래서 집에도 안 들어온 거였어? 이런 큰일을 저질러 놓고! 돌아오기만 해 봐. 내가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테니까!”위층은 아수라장이었고, 고다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진정하세요. 지금은 당장 어떻게 작품을 복구할지가 중요해요.”“오늘 많은 명사들이 오셔서 유진의 신작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요.”“내가 지하실에 쓸 만한 도구가 있는지 한번 찾아볼게요.”고다훈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심유진은 재빨리 고다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오빠, 소용없어요. 언니가 찢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일부를 가져가기도 했어요. 이제는 복구할 수도 없어요...”“뭐라고?”박정연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고다훈은 바로 심유진을 달래며 지하실에 가겠다는 생각을 접었다.고다훈은 심유진 옆에 쭈그리고 앉아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괜찮아,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즐겁게 생일을 보내는 거야.”그 순간 고다훈은 마치 집안의 든든한 기둥처럼 보였고, 모두가 고다훈에게 의지했다.심유진이 고다훈과 눈을 마주쳤고, 다음 순간 참지 못하고 고다훈의 입술에 키스했다.고다훈은 잠시 멈칫했고 본능적으로 밀쳐내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심유진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점점 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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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한참 뒤 두 사람은 입술을 떼어 냈다.심유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고다훈은 어색하게 방을 나섰다.고다훈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고, 문득 시선이 소파 위에 놓인 드레스에 닿았다.고다훈은 다가가 와인을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쏟아 부었다.하얀 드레스 위에 마치 튀어 오른 피처럼 선홍빛이 번졌다.고다훈은 드레스를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다시 내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심세경, 내가 괜히 널 생각해서 드레스까지 사 왔네. 너 같은 사람은 이런 호의 받을 자격도 없어.][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부모님이 거의 심장 마비로 쓰러질 뻔하셨다는 걸 알아?][당장 돌아와서 모두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빌어! 안 그러면 돌아오는 대로 이혼 얘기나 하자!]고다훈의 악담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대신 바닥에 흩뿌려진 찢긴 종이 조각들을 내려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만약 심유진이 더 이상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심유진을 사랑할까?생각해 보면 심유진이 훔쳐 갔던 내 원고들은 이미 전부 소진됐을 터였다.이번에 심유진이 손수 찢은 건 마지막 카드였다.나는 이미 죽었고 심유진의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어쩌면 오늘의 생일 파티는 심유진 인생의 마지막 축제가 될지도 몰랐다.그러니 실컷 즐겨 두는 게 좋겠지.잠시 후 손님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손님들은 심유진의 볼에 입을 맞추며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전했다.모두 내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기로 약속한 듯했다.집의 전임 집사였던 할아버지 한 분만이 조용히 물었다.“세경 아가씨는 안 보이네요.”심기상이 코웃음을 쳤다.“죽었어!”김규철은 깜짝 놀랐고, 심유진이 황급히 끼어들었다.“아빠가 농담하시는 거예요. 언니는 오늘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거든요.”심유진은 다정하게 설명했지만, 김규철은 심유진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심유진이 나를 위층에서 밀어 떨어뜨렸을 때 김규철은 그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그 일로 김규철은 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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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고다훈의 다리가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심기상도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었다.“심... 세경! 이게 무슨 장난이야? 오늘 같은 날 이런 장난치면 재미있어?”심기상은 성큼성큼 다가와 내 몸을 세게 두어 번 걷어찼다.“얼른 일어나! 일어나라고!”하지만 내가 움직일 리가 없었다.심기상은 짜증스럽게 몸을 굽혀 내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비웃었다.“집에 있는 토마토 소스까지 들이붓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손을 들어 닦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피부에 닿는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손끝에 닿은 피부가 얼음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심기상의 손이 떨리며 내 시체를 가리켰다.“죽었어... 진짜 죽었어!”고다훈은 순간 숨이 막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시체를 바라보았다.박정연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할 뻔했다.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공포가 스쳤다.하지만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내 옷 사이에서 기어 나온 구더기들이 바닥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김규철이 달려와 내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아가씨, 어떻게 이렇게 처참하게 죽으셨어요! 제가 떠날 때 분명 몸조심하라고 약속하셨잖아요!”고다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김규철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 누가 세경이를 괴롭힌 겁니까?”“말해요! 누구예요!”고다훈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은 충혈되어 살기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김규철은 고다훈의 손을 뿌리치며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바로 당신들이에요!”“이 집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살인자예요!”“특히 심유진, 그 악독한 둘째 아가씨! 제가 전에 심유진이 세경 아가씨를 3층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걸 직접 목격했어요!”“제가 제때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으면 세경 아가씨는 그날로 죽었을 거예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구석에 있던 심유진을 향했다.심유진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비명을 질렀다.“거짓말이에요!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세요!”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규철이 문가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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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경찰은 곧 심유진을 데려갔다.부모님은 거실에서 울었고 고다훈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때 고다훈의 시선이 구석에 놓인 상자에 닿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업신여기던 그 상자가 이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유품이 되어 있었다.고다훈은 다가가 조심스럽게 선물 포장을 풀었다.안에는 서명된 이혼 동의서가 있었고, 그 사이로 빛이 바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가 끼어 있었다.그 밑에는 가족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지만, 내 부분은 찢겨 나갔고 그 자리엔 세 명만 남아 있었다.마지막으로 작은 칩 하나가 들어 있었다.고다훈이 영상을 재생했다.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가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방금 울었던 것처럼 보였다.“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실 때쯤이면 저는 아마 죽었을 거예요.”“저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제가 기껏해야 7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셨어요.”“할 말을 많이 준비했었는데, 갑자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은 제 말을 끝까지 들어준 적이 없으니까요.”“여러분 눈에는 늘 유진이밖에 없었잖아요.”“그래서 저는 단 한 가지만 말하려고 해요.”“다음 생에 저는 다시는 고다훈의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아요.”“그리고 여러분의 딸로 태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겨우 30초 남짓한 영상이었지만, 내 30년 인생의 전부를 담고 있었다.고다훈은 가슴이 먹먹해져서 휴대폰을 그대로 떨어뜨렸다.부모님도 가슴을 움켜쥐고 오열하다 기절할 지경이었다.갑자기 고다훈은 폴더 안에 또 다른 파일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떨리는 손으로 클릭하자, 그것은 한 장 한 장의 도안들이었다.이 도안들은 모두 심유진이 발표했던 작품들이었지만, 완성본이 아닌 미완성 스케치들이었다.한 획 한 획, 모든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고다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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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동기 죄수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죄수들은 이미 심유진에게 수없이 많은 진실을 알려줬지만, 심유진은 전혀 믿지 않았다.수년간의 추앙은 심유진을 완전히 타락시켰다.심유진은 자신에게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고, 그들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그러던 중 고다훈이 찾아와 심유진의 마지막 환상을 산산이 조각냈다.고다훈은 심유진 앞에서 기소장을 한 통 한 통 읽어 내려갔다.고다훈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심유진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고, 마지막에는 비명을 질렀다.“거짓말이야! 날 자백시키려고 겁주는 거지?”심유진의 발악하는 모습에 고다훈은 서류를 심유진의 얼굴에 내던졌다.“정말 겁을 준다고 생각해?”“넌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대학 4년 내내 무단결석으로 퇴학 경고를 수없이 받았고 성적은 항상 바닥이었어.”고다훈은 말하다가 이내 스스로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이.“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 갑자기 전국 대상을 받았다고?!”“모든 사람이 그걸 믿었어.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네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지.”고다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빛이 순식간에 살기로 변했다.“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 넌 끝장이야.”고다훈은 몸을 돌려 떠났고, 뒤에서는 심유진이 철창을 격렬하게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심유진은 처음엔 포효하다가, 마지막엔 서서히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다훈 오빠, 나 감옥 가기 싫어... 나 죽기 싫단 말이야! 합의서 써 주면 안 돼? 한 번만 살려줘!”“예전에 오빠가 나 제일 예뻐해 주지 않았어? 이번에도 한 번만 더 도와줘!”고다훈이 발걸음을 멈추자, 심유진의 눈에 희망이 떠올랐다.“역시 오빠는 나를...”심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유진의 목에 붉은 상처가 생겼다.고다훈이 심유진의 목에 걸려 있던 루비 목걸이를 잡아당긴 것이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떠났다.“아! 너무 아파!”이번에는 고다훈이 다시 돌아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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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사실 심유진이 이렇게 빨리 사고를 당한 건 전혀 놀랍지 않았다.심유진은 거만하고 오만해서 누구도 참아내기 힘들었을 테니까.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심유진은 벽에 미친 듯이 낙서를 하며 정신 나간 듯 소리쳤다고 한다.“나는 천재야! 나는 위대한 예술가라고!”매일 그렇게 반복하다가 결국 동기 죄수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결국 사건이 터진 것이다.이 사실을 안 부모님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셨다.비록 심유진이 자신들의 인생을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심유진은 자신들의 딸이었다.그리고 지금 남은 유일한 딸이기도 했다.그래서 부모님은 심유진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 위해 교도소 병원을 찾았다.심유진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사람은 죽기 직전에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들을 떠올린다고 한다.하지만 심유진이 생각해 낸 것은 노을이 지는 저녁에 내가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던 모습이었다.내가 물감을 섞어주고, 함께 영감을 생각해 내다가 마지막에 심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던 그 순간.그 장면을 떠올리자, 심유진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결국 심유진은 자신의 질투심에 의해 스스로를 망쳤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했다.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심유진은 마지막까지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다훈은 심유진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마치 아무 상관 없는 낯선 사람이 죽은 것처럼.하지만 부모님은 완전히 무너지셨다. 원래 반 년은 더 살 수 있었던 심기상은 그 자리에서 급사하셨다.박정연도 버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셨다.한때 북적거리던 집에는 이제 고다훈 혼자만 남았다.한때 의기양양하던 그 남자는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다훈은 낮에는 우울증에 빠져 말이 없었고, 그저 멍하니 손에 쥔 결혼사진만 바라보았다.사진 속 나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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