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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왕이 죽었다.

Author: 정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7 11:38:25

다음 날 오후, 로제린이 기대하는 그날이 왔다. 황제의 주방은 언제나 다름없이 분주했다. 로제린은 아드리안의 별채에서 시녀 복을 걸친 채 나와 약속된 장소에서 독약을 전달했다. 햇살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와 바닥을 따뜻하게 비추는 너무나 좋은 날이었다. 그녀는 곧 들려올 황제의 죽음의 소식을 기대하며 손가락으로 창틀을 쓸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곧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드리안은 그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의지하고 있다. 그는 본인의 근무를 하러 나간 뒤였으나 은근히 오늘을 기대하는 듯했다. 로제린은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녀 복을 입고 별채를 나와 다른 시종과 시녀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섞여 다닐 수 있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덕분에 자유롭게 말이다. 그 덕에 누구보다 황궁 내의 소문을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약을 전달하고 반나절쯤 지났을 때였다. 엘레노어가 식사를 가지고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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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32) 나의 구원

    엘레노어는 창가에 앉아있었다. 상이 끝났으나 검은 상복을 채 갈아입지 못한 채, 양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는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손끝은 차가원진지 오래였다. 날씨는 따뜻했으나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차가웠다. 황궁의 정원은 평화로웠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기 위함인지 분주했고 평소와 다름 없이 깔끔하고 정돈된 모양이었다. 그 때, 어떤 예고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이렇게 방문이 열린 건 테오도르 이후로 처음이었다. 방에 유페된 후로 그녀의 식사는 문 앞에 놓고 노크를 하는 식으로 전달됐다. 엘레노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아드리안과 로제린이 서있었다. 아드리안은 이미 황제라도 된 듯 어깨를 펴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고, 로제린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었다. 로제린도 아직 상복차림 이었으나 그 자태는 이미 황후라도 된 듯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엘레노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려 했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손을 들어 그녀를 만류했다."앉아.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들떠있었다. 평온과 품위로 치장했으나 그 밑에 깔린 날것의 감정은 도무지 숨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엘레노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로제린은 아드리안의 팔짱을 낀 채 몸을 밀착하고는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따. 그 시선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조소. 비웃음. 그녀는 그런 감정을 숨기려고조차 하지 않은 채 서있었다.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이 지나가고, 드디어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그대의 처지는 그대가 더 잘 알것이야. 지금 그대를 둘러싼 주문 또한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백합니다."엘레노어의 어조는 담담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아드리안의 얼굴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나 측은함은 남아있지 않음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에게 그녀는 치워야만 하는 장애물, 귀찮은 것 그 자체였다.- 나는...뭘 기대한걸까.엘레노어의 고개가 작게 내려갔다. 아드리안은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31) 막장드라마

    “엘레노어 드 로슈포르와 재혼하겠습니다.”테오도르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차분하게 울려퍼졌다.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였으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무게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또한, 안건이 안건이니 만큼 모두의 이목이 집중 될 수 밖에 없었다.그의 말을 들은 아드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숙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테오도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그는 아드리안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폐하께서 감사하게도 부정한 제 아내 로제린과 제 결혼생활을 마무리 지어주신 덕분에... 저는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요. 그리고 엘레노어 드 로슈포르 역시, 폐하와의 혼인이 파기되어 더 이상 남편이 있는 몸이 아니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혼남 혼자 아이와 북부의 성을 돌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황태자비시절 엘레노어가 보여준 능력을 높이 사는 바. 이혼한 남성과 이혼한 여성이 재혼을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전 남편이자 황제가 되실 황태자 전하께 예의상 허락을 구하는 거지요."주변의 대신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테오도르이 어조는 정중했으나 그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봐도 부정을 저지른 로제린의 상대는 아드리안이었고 지금 그 아드리안의 전 부인이 된 엘레노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하..하하하하하하"아드리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웃던 그는 진정하고 테오도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 숙부. 그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염려되는 점은... 엘레노어는 황제를 시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몸입니다. 그런 사람을 대공비로 맞이하겠다니. 품위가 손상될까 염려되서 그렇습니다."그는 애써 테오도르를 비꼬고 엘레노어를 깎아내리며 말했다. 그러나 테오도르의 표정은 차분했다.“폐하. 말씀은 바로 하셔야지요. 혐의가 의심 된거지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테오도르는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30) 이혼 바로 재혼

    테오도르는 다음 날, 수사를 새롭게 진행했다. 자신의 측근, 믿을만한 사람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아드리안의 별채에 머무르는 로제린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 별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나오리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로제린은 이미 시녀 복을 처분한 뒤였고, 그녀가 황궁을 돌아다닌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별채에서만 지낸 탓에 드레스라던가 외출복 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테오도르는 서류 뭉치를 구기며 말했다. 생각보다 로제린이 치밀하게 준비한 탓에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다만, 엘레노어에게 음식이 담긴 쟁반을 건넨 시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조사 전 스스로 목을 맸다는 점이 새로운 소구점이었다. 시종들은 그녀가 범인이라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분분했으나, 그럼에도 엘레노어에 대한 의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시녀가…. 뭐 하러 황제 폐하를 그러겠어?""누가 시킨 거 아니야?""아니면 황태자비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야?"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던 중, 황제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은 제국의 격식에 맞춰 성대하게 치러졌다. 검은 휘장이 황궁 전체를 덮었고, 국내외 조문객이 끝없이 줄을 이었다. 황족과 귀족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그를 추모했다. 황제의 관이 천천히 인파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동안 궁인들은 고개를 숙였고, 대신들은 참담한 표정으로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 엄숙함 속에서도 로제린의 시선은 은밀하게 움직였다.황태자 이제 황위 계승자답게 아드리안은 상복을 입고 가장 앞장서있었다. 표정은 슬픔에 찬 모습이었으나, 눈빛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그의 아내이자 황태자비인 엘레노어가 아닌,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갖춰 쓴 핑크색 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바로 로제린이었다. 아드리안은 이제 로제린을 숨기려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조차 로제린을 엘레노어 대신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29) 지켜야 할 것.

    테오도르는 엘레노어의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그의 손등을 적시는 감각이 느껴지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로 그녀의 체온이 평소보다 낮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할 테니….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엘레노어가 눈물 젖은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테오도르의 은발이 달빛에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온화함 대신, 뭔가 결심한 듯한, 차갑고 단호한 느낌이 서려 있었다."제가 직접 조사하겠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처럼 주방에서 바로 침실로 왔는데 갑자기 독극물이라니요. 이건 뭔가 있습니다. 아드리안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벌인 일일지도 모릅니다."그는 황궁에서 쫓겨난 뒤 소식이 끊긴 로제린에 대한 언급을 애써 삼켰다. 증거부터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황제의 시해에 관여했다면 레온의 어미이더라도 엄중히 처분해야 할 일이었다."...조사는 신뢰할 수 있는 자들로 다시 구성해서 진행할 겁니다...그러니..."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엘레노어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반드시…. 당신이 이 일과 무관함을 증명하겠습니다. 만약, 그게 잘되지 않더라도….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엘레노어는 말없이 그의 단호한 의지가 서린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눈물을 내지 않았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도르는 그녀의 어깨를 한 번 감싸안은 뒤, 처소를 빠져 나갔다.복도는 적막했다. 상중이기도 했으나 죄인 취급을 받는 엘레노어의 처소 근처에 드나들 간 큰 사람은 없었다. 달빛만이 창을 넘어 그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드리안의 별채에 로제린이 있을 것 같았다.테오도르는 발걸음을 돌려 아드리안의 별채 방향으로 향했다. 별채로 가는 길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28) 결심

    엘레노어는 황제의 처소에서 가장 가까운 침소에 머물며 초상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상복을 갖춰 입고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시종들을 지휘하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후의 빈자리를 대신해 모든 황실의 행사를 담당하던 그녀답게 일에는 한 치의 실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 모여 수군거리던 시녀들이 엘레노어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자리를 뜬다거나, 작은 실수에도 매우 놀라고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곤 했다. 평소 시녀들에게 넓은 아량을 베풀던 그녀이기에 이런 반응은 이상한 일이었다.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엘레노어와의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이상함을 감지했다."...황제폐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그렇겠지…. 그럴 거야."그녀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황제의 측근과 대신들이 공식적으로 엘레노어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점심 수발을 들던 것은 궁 안의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황제가 숨을 거둔 그날에도 점심 수발을 든 것은 엘레노어였고, 수시로 황제의 처소를 드나들며 그의 수발을 든 것도 엘레노어였다. 평소라면 모두의 귀감이 될 이 행동이 지금은 다른 의도로 해석이 되고 있는 것이다.거기다 아드리안의 지시도 한몫했다."가장 황제 폐하를 가까이에서 모신 자들부터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지위의 사람이든 상관없다."어떤 지위도 관계없다는 건, 결국 엘레노어를 수사망에 올려두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드리안에 대한 큰 기대가 남아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다시 그에게 큰 실망을 했다. 그러나 실망과 슬픔에 머물러 있기엔 모든 사건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매일 점심은 엘레노어 마마가 챙기셨잖아?"복도를 지나던 중 조문차 방문한 귀부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은 그녀가 지나가는 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상태 좋아져서 집무까

  • 버려진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27) 왕이 죽었다.

    다음 날 오후, 로제린이 기대하는 그날이 왔다. 황제의 주방은 언제나 다름없이 분주했다. 로제린은 아드리안의 별채에서 시녀 복을 걸친 채 나와 약속된 장소에서 독약을 전달했다. 햇살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와 바닥을 따뜻하게 비추는 너무나 좋은 날이었다. 그녀는 곧 들려올 황제의 죽음의 소식을 기대하며 손가락으로 창틀을 쓸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곧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드리안은 그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의지하고 있다. 그는 본인의 근무를 하러 나간 뒤였으나 은근히 오늘을 기대하는 듯했다. 로제린은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녀 복을 입고 별채를 나와 다른 시종과 시녀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섞여 다닐 수 있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덕분에 자유롭게 말이다. 그 덕에 누구보다 황궁 내의 소문을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그녀가 약을 전달하고 반나절쯤 지났을 때였다. 엘레노어가 식사를 가지고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조금 지난 뒤였다. 황제의 침실에서는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곧 시종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경비들의 발걸음 소리가 요란해졌다. 로제린은 복도 한쪽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웃음을 참고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의사를 찾고 있었고,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의사!!! 의사를 부르게!""폐하! 정신 차리세요, 폐하!"엘레노어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들려올 때쯤, 로제린은 모든게 자기 뜻대로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별채로 돌아왔다. 황제의 공식적인 사망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소문은 빨랐다. 황제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는 것.처음에는 "잠시 기운이 떨어지셨다."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상황은 심각해졌고, 결국, 테오도르까지 입궁하게 됐다. 의사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가까운 친인척인 테오도르, 아드리안, 엘레노어는 황제의 침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황제의 침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며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하게 제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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