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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달빛
권아가 다시 룸으로 들어왔을 때, 그 눈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

승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권아에게 다가갔다.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권아야, 하니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네가 울 정도로...”

권아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몸은 자연스럽게 승오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작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모님이... 난 이런 옷 입을 자격도 없다고 하셨어. 비서 주제에 고급 옷 입는 흉내만 낸 거라고...”

울음을 참듯 고개를 떨군 권아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 말을 들은 승오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찔하고 움켜쥐어졌다.

“하니... 원래 좀 고집 센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더니, 사람이 이렇게 된 건가 봐.”

그 말에 연하도 거들었다.

“승오야, 너 진짜로 하니랑 결혼할 생각이야? 내가 보기엔 하니 성격은 결혼 생활에 절대 안 맞아.”

“아니, 권아 씨처럼 착하고 순한 사람한테도 시비 거는 거 보면, 결혼 후엔 어떻겠어? 고생길이 훤히 다 보여.”

승오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결혼은 그냥 책임일 뿐이야. 내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권아한테 있었어.”

하니는 룸 바깥에 서 있었다.

손도, 발도, 심장도 다 얼어붙은 듯한 기분이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승오의 목소리.

그리고 연하의 말투.

‘진심이었네. 다들, 이게 진심이었구나.’

‘연하 언니는 내가 그렇게 아끼고 챙기던 사람인데...’

하니는 연하가 연애할 때마다 힘들다고 울면 밤새 전화 받아주고, 해외 명품 가방 사달라면 친구한테 부탁해 직구로 공수해다 줬다.

연하가 술 먹고 바에서 싸움이 나 경찰서에 끌려갈 뻔한 것도, 하니가 대신 가서 상황을 수습하고, 심지어 맞기까지 했다.

‘그땐 정말... 연하 언니가 내 가족 같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등 돌린 거야?’

‘내가 했던 모든 게... 결국 다 헛수고였구나.’

하니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가방 안 가져와도 돼.]

그건 연하가 반년 넘게 기다린 한정판 가방이었다.

연하가 직접 생일날 들려고 맞춤 원피스까지 준비해 뒀던 가방이었다.

하니는 그 가방을 연하에게 생일 선물로 주려 했다.

‘이젠 필요 없겠지. 그냥 짝퉁 가방 들고, 가짜처럼 잘 살길 바라.’

...

술집을 빠져나와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 하니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택배 하나를 받았다.

작은 초대장 봉투.

그 안엔 몇 달 전부터 하니가 준비해 온 개인전 전시 티켓이 담겨 있었다.

하니는 그걸 조용히 꺼내 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래, 내 그림... 내가 직접 가서 봐야지.’

...

다음 날, 하니는 차를 몰고 조용히 갤러리로 향했다.

하니의 그림은 온라인에서 꽤 유명했다.

‘감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 많은 부유층이 하니의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는 ‘사랑’의 추억을 기념한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하니에게 사랑은 이제 완전히 부서진 조각이었다.

예전까지는 아름다운 기억이라 여겼던 그림들이, 이제는 그저 조롱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하니는 익명으로 전시장에 방문했다.

HS라는 활동명을 버린 이후,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특히 은퇴 선언 당시 남긴 글은 온라인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라연의 말에 따르면, 댓글 창엔 ‘눈물 난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뭐? 누군가 울어준다 한들, 내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하니는 입꼬리를 비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이란 건... 세상에서 가장 값싼 감정이야.’

하니는 조용히 가장 큰 사이즈의 작품 앞으로 다가갔다.

그건 사실적인 스타일의 유화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분홍빛과 아이보리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높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휘날리며 서 있었다.

그 뒤, 나무 그늘 아래 한 남자가 벽에 기댄 채 조용히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캔버스 위에 스민 두 사람의 감정은 붓질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 뒷모습, 지금 봐도 너무 생생해.’

‘정말, 그땐 사랑했었지.’

하니는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렸다.

“사모님도 이 그림이 맘에 드세요?”

하니는 화들짝 놀라 돌아보며 눈앞에 선 권아를 마주했다.

‘오늘은 평일이고 분명 출근 시간인데, 백권아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하니는 그런 자잘한 의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했지만, 입꼬리엔 저절로 비웃음이 스쳤다.

‘비서가 평일 대낮에 전시회라니. 참 성실한 근무 태도다, 정말...’

권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자연스럽게 하니 옆으로 다가왔고, 그림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 그림... 저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리 부부방에 걸어두면, 우리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니는 순간 속이 간질간질한 웃음이 올라왔다.

‘만약 네가 이 그림의 진짜 사연을 알게 된다면... 토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반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무시하듯 걸음을 옮겼다.

‘굳이... 저런 애랑 말을 섞을 이유가 있나?’

권아는 오히려 다급해졌다.

“사모님, 이 그림 제가 먼저 봤어요. 제발 저랑 경쟁하지 마세요, 네?”

“사모님이 절 안 좋아하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 그림, 진심으로 사고 싶어서 온 거예요.”

권아의 다소 높은 목소리에 주변 관람객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커다란 배를 안고, 얼굴까지 상기된 채 호소하는 약한 여인의 모습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갤러리 직원 한 명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이 그림... 그냥 이분께 양보하시는 게 어떠세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임산부이시고... 좀 안 돼 보이네요.”

하니는 잠시 직원과 권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언제 ‘이 그림 내 거다’라고 했는데요?”

그리고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백 비서, 본인이 혼자 오해하고 혼자 흥분한 거 아닌가? 난 그림 하나 보려고 서 있는 걸...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내가 언제 백 비서를 불쾌하게 했지?”

권아는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왜 계속 이 앞에 서 계시는 건데요?”

하니는 피식 웃었다.

“갤러리 와서 그림 안 보고 뭐 보지? 백 비서 보러 온 거 아니잖아.”

말투는 가볍고 태연했지만, 그 속엔 분명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권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면서 입술이 떨렸다.

하니는 시선을 떨구지 않고 덧붙였다.

“백 비서... 설마 이 그림 살 돈이 없는 건 아니지?”

그 말에 권아는 움찔했다. 곧 작은 핸드백을 뒤적여 안에서 블랙카드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카드를 손에 들고, 하니 앞에서 몇 번 흔들듯 보여주었다.

“저... 살 수 있어요.”

‘그래. 그 카드... 익숙하지.’

하니는 그 카드를 수없이 봐왔다.

승오가 하니와 함께했던 지난 6년 동안, 그는 종종 이 카드를 꺼냈고, 결혼하면 이 카드도 하니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하니는 한 번도 받아 든 적 없었다.

승오가 힘들게 번 돈이라 생각했고, 하니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어릴 적부터 하니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이 있었다.

즉, 여자도 자기 밥값은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말.

그 교육을 그대로 지켜온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하니였다.

세상 사람들은 하니가 강승오한테 기생하며 산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하니는 누군가 없이도 꿋꿋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능력’도, ‘자존감’도 있었다.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림 하나에 1억이니까, 백 비서 정도면 당연히 살 수 있겠지.”

권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죄송한데요, 이 그림 지금은 10억이에요.”

그 순간, 갤러리 대표가 다가왔다.

대표는 하니와 눈을 마주쳤고, 하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억이던 그림이 단번에 열 배가 올랐다.

하니는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아까운 강승오 돈 쓸 바에야, 차라리 저 여자 돈을 받아내는 게 낫지.’

‘어차피 표정만 봐도 잘 뜯기게 생겼으니까.’

“보니까, 백 비서 능력도 그리 대단하진 않네. 10억짜린 못 사는 걸 보니.”

하니가 비꼬듯 말하자, 권아는 마치 불에 덴 듯 반응하며 말했다.

“결제할게요.”

곧이어 단말기에서 카드 결제 완료음이 들렸고, 권아는 턱을 치켜들고 승리자 같은 얼굴로 하니를 내려다봤다.

“사모님, 이 정도 돈은 저한텐 별거 아니에요.”

“우리 남편은 절 정말 사랑하거든요. 카드도 주고 블루스카이에 있는 집도 제 명의로 넘겨줬어요. 우리 둘만의 신혼집이죠.”

“제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예요.”

하니는 두 팔을 가볍게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스카이... 그 동네 집값 만만치 않던데. 백 비서 남편, 진짜 사랑꾼이긴 하네.”

‘봐라. 입꼬리 저렇게 들썩거리는 거 봐.’

‘지금 속으론 얼마나 우쭐해하고 있을까?’

권아는 그런 ‘우쭐한’ 느낌을 즐기는 듯했다.

하니를 앞에 두고 당당히 승리를 선언하는 기분.

‘이하니, 당신이 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분해서 울고불고 하는 꼴... 꼭 보고 싶네.’

권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니는 아무 배경도 없고, 그저 운이 좋아서 강승오 옆에 있었을 뿐.

끝엔 결국 자신이 이긴다는 걸.

그러나 그 순간, 하니의 말이 톡 던져졌다.

“기회가 된다면, 백 비서를 그렇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남편,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 얼굴은 얼마나 대단할까?”

권아의 표정이 굳었고, 눈빛이 흔들렸다.

하니는 그 반응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핸드폰이 울리자 일부러 권아 앞에서 창가 쪽으로 이동했다.

조용히 전화를 받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여보세요? 그 단독주택, 내 명의로 이전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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