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백진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똑같이 반보 저승을 썼다는 것으로 보아, 백부와 능왕부에 숨어 있는 자들이 서로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컸다.백부와 능왕부를 이을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순간 진의댁과 백비아가 떠올랐다.“백비아 모녀는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백우씨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마당에 얼굴도 못 내밀 정도로 아주 얌전히 지내고 있다. 송 공자라는 자는 생김새도 못났고, 무능하지. 게다가 기생집을 들락날락하며 이미 집안에 첩을 여럿이나 들여놨더구나. 하지만 폐하께서 직접 내린 혼사니, 아무리 억울해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백진아는 냉소를 지었다.“자업자득이지요.”그리고 그녀는 곧이어 백비아가 궁에서 겪은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백우씨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분노했다.“비열한 모녀 같으니! 어찌 아직도 살아있단 말이냐!”백진아는 싸늘하게 말했다.“언젠가는 스스로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백진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자에서 인삼과 영지를 꺼냈다.“제가 직접 캔 것이니, 경유 보약으로 쓰시지요.”“과일과 채소를 또 이리도 많이 가져온 것이냐?”백우씨는 상자 가득한 과일과 채소를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비록 이제 막 초여름이라 참외가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채소로도 충분했다. 백진아는 헛기침 하며 말했다.“별채에서 가져온 건데, 정말 맛있습니다.”그녀의 공간에 있을 때 늘 과일과 채소를 갈아 놓은 즙을 마시던 작은 원숭이마저 커다란 참외 하나를 끌어안고 바로 베어 물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이가 나지 않았고, 몸집도 참외보다 작았기에, 계속 참외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백경유가 다급히 참외를 잡아 주자, 원숭이는 곧 그에게 호감을 보였다. 경유는 둥글고 작은 원숭이의 귀를 살짝 만지더니, 눈웃음을 지었다.백진아는 연탑에 앉으며 말했다.“아직 혼자 씹지는 못할 것이다. 숟가락으로 살만 긁어서 주거라.”“예!”여덟 살인 백경유는 금세 원숭이와 친해졌고, 즐겁게
백우씨는 연고 용기에 적힌 설명을 읽다가, 백진아의 말을 듣는 순간 단번에 얼굴을 굳히더니,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월국에서 찾은 무의가 도착했단다.”백진아는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입니까? 너무 잘됐습니다!”하지만 백우씨는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허나 며칠 전… 무의가 죽었다. 그것도 백부에서...”그 말이 끝나자마자 백진아의 표정 또한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어떻게 죽었습니까?”심장 속에 있는 고충은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이제야 희망의 빛이 보이던 참이었는데, 단숨에 꺼지다니? 백진아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가라앉았다.백우씨 역시 분통이 터진 듯 말했다.“검시관 말로는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더구나… 반보 저승이라는 뱀으로, 월국 무족이 기르는 고충 뱀이더군.”“반보 저승이요?!”그 단어를 듣는 순간, 백진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백우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관아에서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무의가 스스로 키우던 뱀에게 물린 게 아니냐고 추측하더구나. 허나… 난 절대 이게 그렇게나 단순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백진아가 말했다.“예. 저도 그리 단순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한 달 전, 저도 반보 저승에게 물릴 뻔했으니깐요…!”그리고 그녀는 꽃분이와 독전갈을 만났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백경유는 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 저희가 잘되는 걸 원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대체 누가?”백우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이까지 악물었다.“무의만 오면 너희 몸속의 식심고를 꺼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백진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백우씨는 식심고를 꺼낸다고 했지, 천잠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잠고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는 듯했다.백진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 무의가 경유의 몸을 살펴보고, 고충을 없앨 방법을 말했습니까?”백우씨는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그런 것 같다… 도
두 명의 시위가 들어와 상자를 들어 올렸는데, 상당한 상자의 무게에 시위들은 안에 여전히 금은보화가 든 줄로 착각했다.연천능은 창가에 서 있다가 백진아가 지나갈 때 말렸다.“되도록 빨리 돌아오는 게 좋을 것이다. 왕부의 경비가 백부보다 훨씬 나으니.”백진아는 걸음을 멈췄다.“무슨 뜻입니까? 대체 누가 저를 해한다는 것입니까?”연천능은 냉담하게 말했다.“들을지 말지는 네 마음이다.”백진아는 고개를 숙여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알겠습니다.”‘남의 충고를 듣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유가는 무장 집안으로, 자수성가한 장군 백근당보다 훨씬 두터운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경성에 혜비와 유여매를 위해 남겨 둔 일손이 적지 않을 것이다.연천능은 백진아의 곧고 반듯한 뒷모습이 복도 끝에서 사라지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무진에게 말했다.“암위 두 명을 붙여라.”궁에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 혜비와 유여매가 그냥 순순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들의 출입이 금지된 상황에도, 유가 쪽에는 밖에서 움직일 사람들이 있었다.무진은 어두운 곳을 향해 명했다.“뢰십, 뢰십일, 따르거라!”“명 받들겠습니다!”곧이어 지붕 위로 바람이 스치더니,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예전 같았으면 능왕이 백진아에게 암위를 둘이나 붙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과거 능왕은 백진아가 죽길 바랐으니.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서 그를 지키는 뢰조 암위들조차도 그의 감정 변화가 분명하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백진아는 작은 원숭이를 안고 백부로 돌아와 곧장 백우씨의 오동원으로 향했다.마당을 거닐고 있던 백경유는 붉은빛이 도는 작은 원숭이를 보는 순간, 백진아와 꼭 닮은 큰 눈을 반짝였다.털이 복슬복슬하고 예쁜 동물을 아이도, 여인도 모두 거절하기는 힘들었다.백경유는 얼굴에 살이 조금 올라 더 잘생겨 보였다.그는 또박또박 예를 갖춰 인사했다.“누이께 예를 올립니다.”그러고는 시선을 작은 원숭이에게서 떼질 않았다.백진아는 그의 볼을
고지행이 잠시 넋을 잃자, 백진아는 순간 그가 여전히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백진아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연회에서 이미 홍보를 해놨으니. 귀한 집안 부인들과 아가씨들은 돈 걱정 없으니!”그 말에 고지행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다가 답했다.“좋습니다, 스승님 말씀을 따르지요!”그는 문밖에서 시종 두 명을 불러 물건을 옮기게 한 뒤, 소매 주머니에서 어음 몇 장을 꺼냈다.“물건값입니다.”백진아는 어음을 받아 살펴보더니 말했다.“너무 많구나.”고지행은 호기롭게 말했다.“남은 건 해열제, 지혈제, 고뿔약, 그리고 그… 소염제 입니다. 이건 약들의 계약금으로 하십시오.”백진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약을 시험해 보지도 않고 먼저 계약금을 준다고?”그러자 고지행은 보조개가 쏙 드러나 웃으며 아부를 했다.“저는 스승님의 의술이 천하무쌍이라고 믿습니다.”고지행은 이미 약을 써봤고, 그중 몇 가지는 이미 연천능에게도 썼었다. 그러니 굳이 시험할 필요는 없었다.사람은 칭찬에 약한 법, 백진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참 똑똑한 제자구나!”“칭찬 감사합니다, 스승님!”고지행은 진지하게 예를 올렸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가 일부러 진지한 척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이 스승만 믿고 따라오면,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이만 걸음을 서두르거라! 아, 병에 붙인 설명은, 목판을 하나 파서 인쇄를 해야겠다.”“알겠습니다!”고지행은 눈웃음을 지으며 부채를 꺼내더니, ‘착’ 소리와 함께 펼치며 떠났다.그야말로 풍류를 아는 바람둥이 공자 같은 모습이었다.손 마마가 금박이 찍힌 초대장을 들고 와 말했다.“왕비 마마, 녕 태비께서 보내신 첩지입니다.”백진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제야 녕 태비가 공왕의 생모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게다가 그녀가 예전에 궁에서 녕 태비를 구해 준 적도 있었기에, 이후로 귀한 장신구나 비단, 혹은 약재 같은 선물들도
백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황제와 황후가 금양 공주를 감싸기 위해 궁녀를 희생양으로 내세운 것이 분명했다.공주라는 신분으로 그런 추잡한 일을 연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손 마마는 말을 이었다.“금양 공주가 지난 한 달 남짓 동안 여러 번이나 마마를 찾아왔습니다.”“왜 나를 찾는 다는가?”틀림없이 좋은 일은 아닐 터였다.손 마마가 답했다.“피부를 하얗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처방을 달라고 했습니다. 금양 공주뿐만 아니라, 몇몇 가문의 아가씨들께서도 하녀를 통해 물었습니다.”백진아는 작은 원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그건 좋은 일이네. 또 누군가 오면, 고지행에게 가서 사라고 전하시게.”손 마마는 공손히 대답했다.“예!”백진아는 손을 내저었다.“난 괜찮으니, 이젠 물러가게.”손 마마는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고 조용히 물러났다.백진아는 작은 원숭이를 공간으로 보내 혼자 놀게 한 뒤, 방 안의 약재 몇 가지를 챙겨 청초와 성이를 보러 갔다.한 달 만에 본 두 아이의 상태는 꽤 좋아져 있었다.성이는 근육 위축 탓에 다소 절뚝거리긴 했지만, 걷는 모습은 제법 안정적이었다. 청초는 뼈가 잘 붙어 있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녔고, 정신 상태도 좋아 보였다.백진아는 두 사람의 몸 상태를 살펴본 후, 성이에게 침을 놓은 뒤 약을 남겨두고 다시 연란거로 돌아왔다.그러고는 곧바로 공간으로 들어가 흉터를 없애는 연고와 피부를 하얗고 곱게 만드는 연고를 만들었고, 용기에 연고의 이름과 사용법이 적힌 종이를 붙였다.하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쓰자니 너무 힘들었기에, 그녀는 결국 설명서를 인쇄할 수 있는 틀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막 일을 끝냈을 때, 밖에서 고지행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스승님, 안에 계십니까?”백진아는 시큰한 손목을 주무르며 물건을 들고 공간에서 나왔다.“들어오거라.”고지행은 옥으로 뼈대를 만든 부채를 흔들며 들어오고는, 눈웃음을 지었다.“스승님, 회춘당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조 마마의 청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지, 연천능의 발음은 평소보다 유난히 또렷했다. 마치 상대가 그의 입 모양을 잘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정확하게 말하는 듯했다.조 마마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물건은…”조 마마의 목소리가 너무 낮아, 백진아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두 걸음쯤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고지행이 길을 막아서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스승님, 저도 아직 아침 식사 전이니, 함께 드시지요.”백진아는 스승님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했다.“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상태다. 알겠느냐? 의원의 덕이 달린 일이다!”고지행은 더 이상 에둘러 말하지 않고, 아예 그녀를 가로막았다.“스승님,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도 가끔 안 좋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지키기 위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백진아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말이냐?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고지행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스승님께선 똑똑한 분이십니다.”목숨이 중요하다는 말에 백진아는 미련 없이 호기심을 억눌렀다. 뒷마당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조 마마의 방문이 열렸고 연천능이 안에서 나왔다.그의 얼굴은 냉랭했지만, 눈빛 속에는 혼란과 고통,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무력함이 스쳐 지나갔다.아주 잠깐뿐이었지만, 백진아는 바로 알아차렸다. 연천능의 표정은 이미 예전처럼 차갑고 싸늘했다.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남자였다. 절벽으로 뛰어내릴 때조차 태연했던 그가 왜 지금은 이렇게 무기력한 표정을 지었던 걸까?그때, 방 안에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흘러나왔다.백진아는 이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 바로 독 카멜레온이 뿜어내던 시체를 녹이는 액체였다.‘설마, 조 마마를… 녹인 걸까?’백진아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힘들게 찾은 무지개 수정화로 치료까지 해놓고… 이렇게 없애버리다니…!”고지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