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전서진의 위로에도 주현우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어 전서진을 보며 물었다."서진아, 나랑 아연이 아직 가능성 있을까?"허아연이 사라진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후회하면서 다시 시작하기만을 빌었는지 하늘은 알 것이다.주현우는 허아연과 함께한 3년의 결혼 생활을 자신이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다시 잘해보고 다시 아껴주고 싶었다.주현우의 물음에 전서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술잔을 손에 든 채 한참 주현우를 바라보던 전서진이 입을 열었다."현우야, 너무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놔둬 봐."가능성이라니?이미 죽는 척도 마다하지 않고 교진시를 떠났던 허아연인데 돌아와서도 끝끝내 주현우와 아는 척하지 않으려 했다.게다가 지금은 누가 봐도 권승준과 가까이 지내며 잘해보려는 게 분명했다.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가능성이 있다는 걸까?다만 주현우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기에 전서진도 너무 매정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자연스럽게 두라고만 얼버무렸다.자연스럽게 두라는 말에 주현우는 그저 전서진을 바라보기만 했다.그건 곧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었다.잠시 전서진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다시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마음이 무거워 보이는 주현우를 바라보던 전서진이 오른손을 뻗어 술잔을 가져가며 말했다."몸도 아직 다 안 나았는데 좀 주의해."시끌벅적한 술집 한가운데 있는데도 주현우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마치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았다.전서진이 술잔을 가져가자 주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들고 그대로 나가버렸다.전서진도 급하게 따라 일어나 뒤쫓아 나갔다.강가로 간 두 사람은 강바람을 맞으며 학창 시절 얘기와 예전 얘기를 아주 많이 나눴다.그런데 과거를 추억하며 전에 허아연이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했는지를 떠올릴수록 주현우는 점점 더 미련이 생겼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사람이란 원래 그런 법이었다.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일수록 더 매달리고 싶은 법이
분을 못 이겨 쏟아내던 허아연이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전에 교진시를 떠난 건 당신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이제 겨우 당신한테서 벗어나서 깨끗하게 정리했는데 내가 다시 되돌아갈 것 같아요?""돌아갈 수 없어요, 우리 사이는 진작에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나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주현우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알아서 잘 처신해요, 내 삶에 더 이상 영향 주지 말고요."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현우가 알아듣지 못하고 손을 놓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허아연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돌아서서 떠나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보던 주현우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리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몸을 돌려 앞쪽 화단을 바라봤다.순간 마음이 착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참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주현우를 피하려고 죽은 척까지 했던 허아연이었다.그 생각이 든 주현우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두 사람이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걸까? 어쩌다 이렇게 사이가 틀어진 걸까?……호텔 안.방으로 돌아온 허아연은 가방을 침대에 내려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옷을 챙겨 욕실로 갔다.샤워기 아래 서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채 따뜻한 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오늘 밤 한 말을 주현우가 새겨듣고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다.정말로 더 이상 어떠한 관계로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3년의 결혼 생활 동안 평생 겪을 억울함은 다 겪은 것 같았다.그런 일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같은 시각, 호텔 아래층.차를 몰고 호텔을 떠난 주현우는 곧바로 전서진에게 전화를 걸어 술 마시러 나오라고 불렀다.바에 도착한 전서진은 주현우가 이미 주문한 술을 보고 대뜸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현우야, 너 미쳤어? 몸도 안 나았는데 술을
"그러니까 주 대표님도 너무 고집부리지 마세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데 앞을 보고 나아가야죠.""다른 건 저도 더 드릴 말씀 없고 주 대표님과 따로 나눌 얘기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해 주셨으면 해요."방금 한 말은 에둘러 표현한 거였다면 지금 말은 상당히 직설적이었다.운전석에 앉은 주현우는 허아연의 말에 순식간에 눈빛이 어두워졌다.허아연은 여전히 주현우를 용서할 생각도,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생각도 없었다.말을 마친 허아연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덧붙였다."시간이 늦었네요, 이만 들어가서 쉬어야겠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주현우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직접 몸을 기울여 차량 잠금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바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허아연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서야 주현우도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운전석 문을 열고 뒤따라 내렸다.허아연 앞까지 달려간 주현우가 손을 뻗어 손목을 잡으며 불렀다."아연아."허아연이 화들짝 돌아서는 순간, 주현우가 다시 품에 끌어안으며 사과했다."아연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주현우의 포옹과 사과에 눈을 깜빡이던 허아연은 가슴 한 켠이 이유 없이 답답해졌다.두 손을 주현우의 허리 양옆에 어정쩡하게 걸친 허아연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마른침을 삼키며 한참을 생각하던 허아연이 결국 힘없이 입을 열었다."맞아요, 저 허아연이에요.""내가 허아연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걸 보면 DNA 검사를 해 본 거겠죠."허아연이 담담하게 모든 걸 인정하자 순간 주현우는 더 세게 꽉 끌어안더니 눈시울까지 붉어졌다.곧바로 밀어내지 않고 주현우의 감정이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리던 허아연은 두 손으로 가슴을 밀어내고 천천히 품에서 빠져나왔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올려다보며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에요. 우리도…… 이미 끝난 사이예요."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밝히고 주현우가 정신 차리고 이성적으로 받아
차 유리창에 비친 주현우의 시선을 허아연도 알아채고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차가 호텔 주차장에 멈추고 나서야 주현우는 몸을 돌려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결혼 전에도 주현우는 이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허아연을 바라보곤 했다.허아연의 일기장을 발견한 뒤로는 다시는 이런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고 기분 좋은 표정조차 지은 적이 없었다.지금 이 순간 허아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주현우는 허아연을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었고 그동안 못다 한 걸 다 보상해주고 싶었다.주현우가 아무리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봐도 허아연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냉정하기만 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며칠 전 받은 DNA 검사 결과가 떠오른 주현우는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허아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확인한 뒤로는 허아연을 볼 때마다 자꾸 저도 모르게 만지고 싶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허아연이 없던 지난 2년 동안 주현우는 사실 많이 지쳐 있었다.너무 많이 그리웠다.허아연은 얼굴에 닿은 주현우의 손을 바로 떼어내며 말했다."주 대표님, 이러시면 곤란해요.""별일 없으시면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허아연의 자연스럽게 선을 긋는 태도에 주현우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천천히 손을 거뒀다.잠시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입을 열었다."아연아, 꼭 이럴 거야? 끝까지 인정 안 할 거야?"권승준에게는 이미 정체를 밝힌 허아연이었다.주현우가 여전히 정체에 집착하자 허아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숨을 내쉬었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허아연이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주 대표님, 만약 마음의 짐을 덜고 싶으신 거라면 안심하셔도 돼요.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말을 하던 허아연이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저 권 비서실장님 댁에 식사하러 가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주 대표님이 이렇게 계속 저를 찾아와서 선 넘는 행동하시는 거 저랑 권 비서실장님 모두한테 실례예요."주현우에게 직접적으로
갑작스러운 부름에 허아연은 그저 주현우를 바라볼 뿐이었다.한참을 바라보던 허아연이 차분하게 일깨워주었다."주 대표님, 또 사람 잘못 보셨네요."주현우와 이 얘기를 나누거나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어차피 이미 지난 일이고 예전의 허아연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주현우는 끝까지 정체를 인정하지 않는 허아연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순식간에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허아연의 어깨에 턱을 괸 주현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지쳐 보이면서도 미안한 듯 말했다."아연아, 미안해."주현우의 사과에 허아연은 밀어내려던 두 손이 허공에 멈춘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주현우는 여전히 허아연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강제로 주현우의 어깨에 턱을 기댄 허아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두 손을 주현우의 가슴에 대고 살며시 밀어내며 차분하게 말했다."주 대표님, 이러시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가 오른손을 들어 허아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연아, 내가 잘못 봤는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다른 사람은 몰라도 허아연만은 잘못 볼 리가 없었다.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던 허아연이 주현우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는 순간, 안서준이 투자유치 부서 관계자들과 함께 호텔에서 나왔다.허아연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주현우를 본 안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눈빛부터 완전히 달라졌다."주 대표님, 안시연 씨.""주 대표님, 안시연 씨."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소리에 허아연은 다급하게 얼굴에서 주현우의 손을 떼어내고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주현우는 금세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를 되찾고 미소를 띤 채 인사했다."전 국장님, 유 국장님."인사를 마친 주현우는 이내 안서준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여유롭게 말했다."안 대표님 얘기가 아직 안 끝난 것 같으니 안 선생님은 제가 먼저 호텔로 모셔다드릴게요."주현우를 차갑게 바라보던 안서준은 방금 전 행동만 보고도 그가 이미 허아연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한편 안서준이 허아연을 데리고 한 번 병문안을 다녀간 뒤로 주현우도 퇴원 절차를 밟았다.의사가 며칠 더 입원해 경과를 지켜보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지만 주현우는 결국 퇴원 절차를 밟고 정식으로 업무에 복귀했다.이 무렵 안형욱도 강성시에서 교진시로 건너와 경주 그룹과의 협력에 사인하라고 안서준을 압박했다.여러 곳에서 압박이 쏟아지는 데다 안형욱까지 직접 교진시로 날아오자 결국 안서준도 버티지 못하고 주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을 잡고 협력에 관해 논의하기로 했다.주현우가 퇴원한 지 얼마 안 됐고 얼마 전 허아연을 구해준 일도 있었던 터라 안서준은 자리를 마련해 주현우를 초대했다.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안씨 가문이 마련한 자리인지라 주현우는 응하기로 했다.안서준이 권승준도 초대했지만 마침 출장 중이라 시간을 낼 수 없었다.룸 안 테이블 앞, 전서진과 심유환 그리고 주민경도 함께 자리했다.허아연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유난히 열정적으로 반갑게 맞이했다.그중에서도 주민경이 제일 반가워했다.다만 최근 들어 주민경은 예전보다 훨씬 차분해졌고 예전처럼 촐싹대지도 않았다.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사람처럼 보였다.식탁에서도 안서준과 주현우는 계속 협력 세부 사항을 논의했고 허아연은 옆에서 진지하게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허아연이 열심히 귀 기울이는 모습에 주민경도 덩달아 진지해졌다.다만 주민경은 턱을 괸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허아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9시가 넘어서야 식사 자리가 마무리되었다.다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중 투자유치 부서 고위 관계자들과 마주쳤다.안서준도 있는 걸 본 사람들을 붙잡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호텔 앞에서 전서진과 심유환이 먼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허아연은 안서준을 좀 더 기다리겠다며 거절했다.그렇게 전서진과 심유환이 주민경을 싣고 먼저 떠나고 허아연은 혼자 호텔 앞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안 선생님."한창 뉴스 기사를 읽고 있던 허아연의 등 뒤에서 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