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수요일 아침 7시 40분에 서아가 먼저 일어났다.흰 티셔츠에 남색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어젯밤에 걸어 둔 그대로였다.서지안이 머리를 빗겨 주는 동안 아이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엄마. 나 세 번째야.""알아.""세 번째면 금방 나와. 늦게 오면 못 봐.""엄마 안 늦어."아이가 거울 속으로 엄마를 봤다."새 아빠도 와?""응.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것도 진짜야?""진짜야."아이가 웃고 신발장으로 뛰어갔다.서지안은 아이 방 서랍을 열어 보았다. 리본 핀 두 개가 든 상자가 어제 넣어 둔 그대로 있었다.아이는 오늘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소이 머리가 길면 그때 같이 하겠다고 넣어 둔 것이었다.서지안은 서랍을 닫았다.9시 30분에 학교 정문 앞에 강도현이 서 있었다.서아가 손을 흔들며 뛰어갔고, 강도현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옷깃을 바로 잡아 주었다."예쁘네.""이거 학교에서 입고 오라고 한 거야.""그렇구나. 그래도 우리 서아가 제일 예쁜데."아이가 웃으며 교실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정문에는 선생님 두 명과 행정실 직원이 나와 있었다. 보호자들이 줄을 서서 신분증을 냈다.직원이 명단에 이름을 짚어 가며 확인했다. 원래 안 하던 일이라 줄이 조금 밀렸고, 뒤쪽에서 왜 이러느냐고 묻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학교 안전 점검이라고 답했다.서지안은 강도현과 나란히 강당으로 들어갔다."명단 대조 끝났대요. 세 사람 다 안 왔어요.""정문은 그래.""…네.""나는 마지막 순서 시작하면 먼저 나갈게. 후문에 차 대 놓고 있을게.""부탁드려요, 선배."학예회는 10시 30분에 시작했다.서아의 순서는 10시 45분이었다. 여덟 명이 나와서 손을 잡고 한 바퀴씩 도는 것이었다.서아는 왼쪽에서 세 번째였다. 돌 때마다 객석 쪽을 봤고, 두 번째 바퀴에서 엄마를 찾았다.찾고 나서는 더 찾지 않았다.아이는 엄마가 거기 앉아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됐다.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인
학예회 전날이었다.서아는 아침에 흰 티셔츠를 입어 보고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벗어서 다시 걸어 놓았다."내일 입을 거야. 오늘 입으면 구겨져."서지안은 그 설레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나왔다.화요일 아침에 명단이 왔다.3반은 학생이 스물네 명이었고, 참석하겠다고 낸 보호자는 서른한 명이었다. 한 실장이 그 명단을 세 번 대조했다."김순임, 윤세라, 윤세희. 세 이름 다 없습니다.""그러면 못 들어오네요.""정문에서 신분증을 받으니까 강당까지는 못 옵니다.""…교문 밖은요.""거기는 저희가 아무것도 못 합니다."알고 있는 답이었다.강당에는 못 들어온다. 그런데 학예회는 11시 30분에 끝나고 아이들은 정문으로 나온다. 그 앞에 서 있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다.사진 한 장을 찍는 데는 30초면 된다."실장님. 학교에 후문 있죠.""있습니다. 급식 차가 들어오는 쪽입니다.""거기로 나가면 정문 안 거치죠.""예. 그런데 서아 혼자 다른 문으로 나가면 아이가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서지안은 그 말을 잠깐 생각해 보았다.맞는 말이었다. 그날 하루를 넘기려고 아이를 몰래 빼돌리면, 그 아이는 자기가 왜 혼자 다른 데로 나갔는지를 오래 기억한다.그러면 이상하지 않게 만들면 됐다."실장님. 내일 후문에 차 대 주세요.""…예.""그리고 강 회장님께 부탁 하나만 전해 주세요. 학예회 끝나고 서아 데리고 밥 먹으러 가자고요. 후문에서 기다려 달라고요."한 실장이 잠깐 서지안을 봤다."…아이한테는 뭐라고 하실 겁니까.""오늘 저녁에 말해 둘게요. 학예회 잘하면 새 아빠가 후문에서 기다렸다가 맛있는 거 사 준다고요."여덟 살에게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상이었다.오후에 강민호가 전화를 했다."…어머니한테 말해 봤어. 내일 학교 가지 마시라고."서지안은 서류를 덮었다."뭐라고 하시던가요.""어머니가 화내셨어. 애비가 제 자식 보러 갈 생각은 안 하고, 동생이 언니 보러 간다는데 그걸 왜 막느냐고. 못났다고 하
교장은 두 가지를 해 주겠다고 했다."학예회 당일은 명부에 이름만 적는 걸로는 못 들어가게 하겠습니다. 신분증을 받겠습니다.""…감사합니다.""그리고 3반 보호자는 미리 받은 명단하고 맞춰 보겠습니다. 원래 안 하는 건데 이번만 하겠습니다.""제가 부탁드려서 하시는 걸로 남으면 안 됩니다.""…""학교 안전 점검으로 남겨 주세요. 저는 안 나오게요."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서아 어머니. 그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제 이름이 붙으면 다른 학부모님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요. 그러면 우리 아이 얘기가 또 나와요.""…알겠습니다. 안전 점검으로 하겠습니다."전화를 끊고 서지안은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화요일까지 명단 확인』내일이 화요일이었고, 모레가 학예회였다.아이는 어제부터 옷을 정해 놓고 있었다. 흰 티셔츠에 남색 치마. 학교에서 그렇게 입고 오라고 했다.어젯밤에 서아가 그 옷을 침대 옆에 걸어 놓고 잤다.서지안은 그것을 보고 방문을 닫았다.이 아이는 모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채로 그 옷을 걸어 놓고 잤다.오후 3시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교문에서 서아가 나오는데 손에 든 것이 있었다. 종이가 아니라 작은 상자였다."엄마. 이거 받았어.""…뭔데?""머리핀."아이가 상자를 열어 보였다. 분홍색 리본이 달린 핀이었다. 같은 것이 두 개였다."누가 줬어?""몰라. 교문에서 어떤 아줌마가 줬어.""…아줌마?""응. 아기 안고 있었어."서지안의 손이 멈췄다."…소이 엄마였어?""아니야."아이가 고개를 저었다."나 소이 엄마 얼굴 알아. 그 아줌마 아니야. 처음 보는 사람이야.""안고 있던 아기는 소이였어?""응. 소이 맞아. 나 봤어."서지안은 아이 손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아이가 알아채지 못하게 애썼다."뭐라고 하고 줬어?""이거 두 개니까 하나는 다음에 만나면 소이 해 주라고. 그리고—"아이가 잠깐 뜸을 들였다."수요일에 소이랑 똑같이 하고 사진 찍자고 했어."서지안
교문 앞에서 서아가 내리면서 물었다."엄마. 수요일에 할머니도 와?"서지안은 안전벨트를 풀어 주다가 손을 멈췄다."…갑자기 할머니는 왜 물어?""할머니가 지난주에 전화해서 물어봤어. 몇 시에 하냐고.""…뭐라고 했어?""10시 반이라고 했어. 통신문 보고 말해 줬어."아이는 잘못한 것을 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물어서 대답한 것이었고, 여덟 살에게 그건 예의였다."잘했어.""그럼 할머니 와?""…엄마가 알아볼게."아이가 가방을 메고 뛰어갔다.서지안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었다.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한 실장이 사진 한 장을 내려놓았다."학교 행정실 복도 cctv입니다. 목요일 오후 2시 10분입니다."서지안은 그 사진을 받았다.화면이 흐렸다. 얼굴은 옆으로 돌아가 있었고, 코 아래가 마스크에 가려 있었다.그런데 코트를 알아봤다.밝은 회색에 허리끈이 달린 코트였다. 십 년 동안 그 코트를 입은 사람을 봤다. 집에서는 절대 안 입고, 밖에서 사람 만날 때만 꺼내 입던 옷이었다."…김 여사님이네요.""확실하십니까.""저 옷은 확실해요."한 실장이 사진을 한 장 더 내려놓았다."행정실 방문자 명부입니다. 전학 문의로 오신 분 칸입니다."서지안은 그 줄을 봤다.이름 석 자와 휴대폰 번호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김순임』십 년 동안 명절 봉투에 그 이름을 썼다."…김 여사님이에요.""학교에서는 모릅니다. 그쪽 입장에서는 그냥 전학 문의 오신 분이라서요."맞는 말이었다.
변호인 접견 기록은 이틀 만에 왔다.지난 한 달 동안 서영애를 만난 변호사는 넷이었다. 셋은 매주 화요일에 왔고, 네 번째 사람만 두 번 왔다."넷째가 누구예요.""작년에 개업했고 형사 사건 경력이 거의 없습니다. 온 날짜가 걸립니다. 기사 나오기 이틀 전, 그리고 어제입니다."기사 이틀 전이면 학교 이름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어제는 서지안이 접견을 다녀온 날이었다."어제는 제가 나가고 몇 시에 들어갔어요.""…40분 뒤입니다."서영애는 어제 학예회 몇 시냐고 물었다. 그러고 40분 뒤에 사람을 만났다."안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못 봅니다. 남는 건 누가 언제 몇 분 있었는지뿐입니다.""…그거면 돼요.""회장님. 그리고 이 사람 사무실 주소를 봤습니다."법무팀장이 마지막 장을 넘겼다."윤세라 씨가 서명하러 간 곳하고 같은 건물입니다. 층만 다릅니다."서지안은 그 주소를 두 번 읽었다.우연일 수도 있었다. 강남에 변호사 사무실이 몇 개나 들어 있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순서가 걸렸다.그 변호사가 서영애를 만나고, 그 뒤에 학교 이름이 넘어갔고, 그다음에 윤세라가 같은 건물에서 서명을 했다."이 사람이 진술서 초안을 잡은 사람일까요.""…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 정도 문서는 개업 일 년 차도 씁니다.""그런데요.""그런데 이 사람은 변론에 안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재판 기일에 이름이 한 번도 없습니다."서지안이 고개를 들었다."…변론을 안 해요?""예. 선임계만 내고 접견만 다닙니다."서지안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변호인 접견은 내용이 안 남는다. 그러니 변론을 안 하는 변호인이 접견만 다닌다는 것은, 그 자리가 재판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말을 옮겨 주는 자리였다."경력이 없는 사람을 고른 이유도 그거겠네요.""…예. 시키는 대로 하고, 왜냐고 안 묻고, 이름이 안 알려진 사람이 필요했을 겁니다."오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교장이었다."어제 저희가 보낸 가정통신문 말입니다.""…네.""
서영애 접견 신청은 그 밤에 넣었다.법무팀장은 반대했다."지금 가시면 저쪽이 회장이 구치소까지 찾아와서 압박했다는 카드로 쓸 수 있습니다.""기록에 남죠.""남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기록에 남는 게 나아요."서지안은 그렇게 말했다."윤세라 씨 진술서, 열람 신청 넣어 놓고 며칠째 못 받고 있잖아요.""…예.""고모한테 물으면 그 종이에 뭐가 들어갔는지 오늘 알 수 있어요. 부인을 하든 웃든, 어느 대목에서 그러는지를 보면요."법무팀장이 더 말하지 않았다.이튿날 오전 10시 40분에 서지안은 대기실에 앉아 번호를 받았다.십오 년 전에 서영애는 서지안의 학교 참관 수업에도 왔다. 어머니가 회의로 못 오는 날에 대신 와서, 맨 앞줄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을 보고 열두 살이 안심했다.어머니를 죽게만든 범인에게 조금 이라도 애정이 서려진 것 같은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오래 불편했다.번호가 불렸다.오전 11시, 서지안은 접견실에 앉았다.유리 너머로 서영애가 들어왔다.넉 달 만이었다.가르마 쪽부터 흰머리가 올라와 있었다. 염색을 못 하는 곳이었다.손톱이 짧게 깎여 있었다. 늘 손질하고 다니던 손이었다. 화장을 안 한 얼굴은 처음 봤다.그런데 눈은 그대로였다."…왔네.""네.""살이 빠졌구나. 애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데."서지안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열다섯 살 때까지도 서영애는 늘 그렇게 시작했다. 걱정하는 말투로 사람을 자기 아래에 놓았다."기사 보셨어요?""여기서도 신문은 본다. 다들 네 기사만 봤지."서영애가 웃었다."우리 여울이가 이제 그런 것까지 겪는구나.""그 이름 안 쓰셔도 돼요.""내가 부르는 게 싫으면, 그 이름은 왜 아직 서류에 그대로 두고 있니."서지안은 잠깐 말을 멈췄다.어머니 사망 서류가 아직 사고로 되어 있었다. 서여울이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 서류도 그대로였다.서영애는 그 두 장이 아직 그대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모. 아니, 서영애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