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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엄이빈
“세형 재무제표 분석, 점심 퇴근 전까지 마무리해요.”

연지아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비서실에서 말단 직원 자리로 옮겨졌지만, 주이빈은 원래 연지아의 일이 아닌 업무까지 꽤 많이 떠넘겼다.

그런데도 연지아는 하나하나 다 받아들였다.

이렇게 묵묵히 회사에 남아 버티는 것도, 결국은 자기 혼자 착각하며 버티는 일일 뿐이었다. 성유원은 그녀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을 테니까.

연지아는 재무제표 분석을 마친 뒤 전자 파일과 출력본을 함께 주이빈에게 제출하고, 배달 음식을 하나 시켰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늘 도시락을 챙겨 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았고, 시선이 자기 몸을 훑는 것도 싫었고,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도 피곤했다.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

오늘 아침엔 점심을 준비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배달로 때우기로 했다.

배달을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먹고 들어온 동료들이 복도로 들어서며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성 대표님 여자친구 진짜 어리더라. 대학생 아니야?”

“그럴걸? 얼굴이 진짜 너무 예쁘던데. 인형 같았어.”

“대표님이 그 애 보는 눈빛이, 진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다정하더라. 맨날 엄격하던 사람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몰랐어. 현실판 재벌 대표랑 귀여운 아내잖아.”

“...”

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연지아를 보고 잠깐 멈췄다.

연지아는 비서실로 발령 난 뒤, 업무 말고는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 틀어박혀 지냈고,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마치 얼굴을 숨기기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대표 비서로 반짝이던 사람이었다는 게,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연지아는 배달 기사에게서 전화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음식을 받으려던 순간, 호텔 직원 두 명이 고급 음식을 들고 프런트에 서서 확인하는 걸 마주쳤다. 프런트 직원은 그들에게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 카드키를 찍어줬다.

연지아는 그중 한 직원 손에 들린 와인을 봤다. 한 병에 4억 원쯤 하는 것 같았다. 4억 원이라니, 성유원에게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연지아는 자기 배달 음식, 족발을 들고 다시 올라갔다.

오후 두 시.

주이빈이 그녀를 찾아와 말했다.

“연지아 씨, 대표님이 찾으세요.”

연지아는 흠칫했다. 마음 한쪽이 이유도 없이 불길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연지아가 대표이사실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싸늘한 기운이 얼굴을 때렸다. 그녀는 책상 앞까지 가서 불렀다.

“성 대표님.”

성유원이 그녀를 올려다보는 순간 얼굴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내던지듯 연지아 얼굴 쪽으로 던졌다.

“이게 네가 만든 분석 보고서야?”

날카로운 A4 종이가 연지아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따끔한 통증이 확 번졌고, 발치에는 서류가 흩어져 떨어졌다. 오늘 오전에 만든 보고서였다.

연지아는 한 손으로 배를 받치며 힘겹게 허리를 굽혀 바닥의 서류를 주웠다.

성유원은 그녀가 배를 붙잡고 천천히 웅크리는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연지아는 손에 든 보고서를 살폈다. 몇 군데 숫자가 바로 눈에 띄게 어긋나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보고서 아니야.”

“그만해. 변명 듣기 싫어.”

연지아는 서류를 꽉 쥐었다.

성유원이 그녀의 능력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변명을 듣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그녀가 뒤집어쓴 걸로 넘어가려는 거였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혐오를 보인다는 게, 연지아는 너무 비참하고 우스웠다.

연지아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용기를 끌어 올려 말했다.

“나 백업해 둔 거 있어. 지금 바로 보내줄게. 그거 확인하고 나서 혼내도 늦지 않아.”

성유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불쾌함이 검은 눈동자에 또렷했다.

연지아는 온몸이 팽팽해졌다. 뼛속에 박힌 두려움이 있었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 특히 성유원이 냉정하게 굳은 얼굴을 할 때면, 그녀는 원래 한마디도 제대로 되받아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곧 이혼할 거였다. 그는 원하던 대로 될 테고, 그녀는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테고, 그에게 기대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뭐가 무서운가.

“억울해?”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 목소리는 얼음 조각처럼 차가웠다.

연지아는 그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정면으로 받았다. 손끝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유도 안 묻고 나를 몰아가는데, 내가 내 말로 증명하면 안 돼?”

성유원의 얼굴이 완전히 식었다.

“그것도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야.”

연지아는 심장이 크게 쑤시는 것 같았다. 얼굴빛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렸다.

분홍색 끈 민소매 실크 잠옷을 입은 소녀가 걸어 나왔다. 윤기 나는 검은 긴 머리, 빛이 날 만큼 하얀 피부,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이목구비.

“오빠!”

봄비처럼 부드럽게 스미는 목소리였다.

연지아는 그제야 소녀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정말로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연지아가 그 얼굴을 잠깐 바라본 것만으로도 남자의 차가운 호통이 터졌다.

“꺼져!”

연지아는 시선을 거두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을 막 나서는 순간, 소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고, 성유원은 금세 진정하는 듯했다.

“...”

연지아는 고개를 들어 눈가에 고인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사람 없는 계단 구석으로 가서 한 손으로 난간을 짚었다. 그제야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심장이 조여 오르자 속까지 울렁거렸다.

8년을 사랑한 남자를 마음에서 완전히 도려내는 일은 뼈를 깎고 살을 떼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 좋아질 것이다. 그녀는 그를 완전히 잊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연지아는 겨우 숨을 고르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계단을 올라가다 정면에서 그 소녀와 마주쳤다. 소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춤 명품으로 치장해 놓은 모습이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났다.

주민우가 소녀를 곁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주민우는 성유원의 비서실장이었다.

소녀는 연지아를 보더니 미소를 띠고 다가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오빠가 더는 당신 탓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고는 가방에서 진주 한 알을 꺼냈다. 소녀는 연지아 손을 잡아 그녀의 손바닥에 진주를 올려놓았다.

“이거 드릴게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얼굴에 난 상처도 꼭 손질해요. 여자 얼굴에 흉터 남으면 보기 안 좋잖아요.”

얼마나 예쁘고 착한 소녀인가.

햇살을 뿜는 이 소녀 앞에서, 연지아는 어둠 속에서 허둥대는 광대 같았다.

연지아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주민우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

“감사 인사도 안 하세요?”

이 사람은 안연청이었다.

안연청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 가요.”

두 사람은 그렇게 떠났다.

연지아는 그 자리에 서서 손바닥 위의 은빛에 푸른 기가 도는 진주를 바라봤다. 흠 하나 없이 매끈했고, 그 소녀처럼 깨끗해 보였다.

다만 안연청이 성유원이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연지아도 알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온 연지아는 자신이 만든 원본 파일을 다시 출력해 한 부 더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이빈의 앞으로 가져갔다.

주이빈은 종이를 받아 보며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은 만족스러웠다.

“똑똑히 봤죠? 대표 옆에 설 수 있는 여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연지아는 자료를 탁 소리 나게 주이빈 앞에 내려놓았다.

“그래요. 나는 자격 없고, 주이빈 씨도 자격 없어요. 이런 저급한 수법만 쓰는 사람은 앞으로도 뭐가 되기는 어려워요. 나이도 이미 서른이 훌쩍 넘었잖아요. 이제는 꿈 그만 꾸고 빨리 결혼할 사람이나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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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10화

    연지아는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쉬고 있었다. 손바닥을 아랫배 위에 얹고 아이가 톡톡 차는 움직임을 느끼다 보니 흔들리던 감정도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아까 서안성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성유원은 정말로 그녀 뱃속 아이까지 싫어하는 것 같았다.김미현이 지금은 이 아이를 챙긴다 해도, 언젠가 안연청이 성씨 가문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의 아이가 얼마나 대접받을까.그 생각은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만큼 두려웠다.연지아는 결심 했다.이 아이를 자신을 원하지 않는 집안에 남겨두고 혼자 버티게 할 수는 없었다.아이를 데리고 떠나야 했다.그때.똑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연지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온 뒤, 문으로 가서 열었다. 문 앞에는 유미연이 서 있었다. 얼굴에는 날이 서 있었다.“도련님이 부르세요.”연지아가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성유원이 보였다.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분위기는 숨이 막힐 만큼 냉정했다.연지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남자의 표정 하나만으로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걸음이 굳어졌고, 눈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그녀가 남자 앞에 멈춰 섰을 때, 예상하던 꾸중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더 차갑고 잔인한 말이 떨어졌다.“이 서류, 다 끝내고 자.”말을 마친 성유원은 길게 뻗었던 다리를 거두고 다이닝룸 쪽으로 걸어갔다.연지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자료 뭉치를 바라봤다. 이건 오늘 밤 잠은 포기하라는 뜻이었다.그에게 연지아는 임산부도 아니었다.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정말로 그녀를 이렇게까지 미워했다.연지아는 손끝을 꽉 쥐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려 남자의 등을 향해 말했다.“나 사직서 냈어. 이제 안 해.”성유원이 발걸음을 멈췄다.몸을 반쯤 돌린 채, 차가운 시선이 연지아 위로 떨어졌다.연지아는 온 힘을 모아 그 눈빛을 받아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성유원이 유미연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화

    성유원은 작게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안연청을 바라봤다.“연청이 너한테 친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면 큰일 나지. 네가 아직도 그렇게 그리워하는데 분명 질투할 거야.”송나겸이 말했다.“네가 연청이랑 만나는 걸 반대하지는 않아. 하지만 네 일 정리되기 전에는, 나는 연청이랑 네가 같이 사는 건 절대 못 봐.”성유원은 입꼬리를 옅게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송나겸이 웃었다.“별 얘기 아니야.”...“연지아 씨, 무슨 뜻이에요? 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알아요?!”주이빈이 자료 뭉치를 연지아 앞에 탁 소리 나게 내던졌다.조금 전에도 주이빈은 늘 그랬듯 연지아의 일이 아닌 업무를 연지아에게 처리하라고 넘겼고, 연지아는 대놓고 거절했다.연지아는 화가 난 주이빈을 보며 비웃듯 웃었다.“주이빈 비서님, 그 일도 못 하셔서 남한테 떠넘기실 거면... 그만두시는 게 낫겠어요.”“...”사무실 다른 직원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연지아의 말이 너무 직설이라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진짜로 더는 참을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주이빈은 분이 치밀어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연지아의 뺨을 때리려 했다.연지아는 책상 위 물컵을 집어 먼저 주이빈에게 확 끼얹었다.얼굴에 물을 뒤집어쓴 주이빈은 그대로 굳어 있다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연지아, 이 뻔뻔한... 이 더러운 뚱보!”“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요?”주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주이빈은 달려들려던 걸 멈췄고, 주민우는 기세 좋게 걸어와 주이빈의 젖은 몰골을 훑어봤다.“무슨 일이에요?”주이빈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제가 연지아 씨한테 일을 맡겼는데 안 하겠대요.”주민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에 불쾌함이 짙게 올라왔다. 그는 연지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여기서 왜 혼자 예외를 만들려고 하죠? 여기는 회사예요. 연지아 씨 집이 아니라고요.”연지아는 목에 걸린 사원증을 뗐다. 그리고 탁 하고 책상 위로 던졌다. 그녀는 주민우를 노려보며 차갑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8화

    송나겸은 서안성 쪽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줄로만 생각해서 굳이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송나겸이 큰 걸음으로 다가가 연지아를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서안성은 그를 막아섰다.“형, 신경 쓰지 마. 저 사람은 그럴 만해서 그런 거야.”송나겸은 결국 연지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괜찮아요?”연지아는 너무 아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앞에 선 남자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튕겨 나가 버린 도시락 쪽으로 걸어갔다.송나겸은 서안성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산부인 거 안 보여? 여긴 유원이 회사야. 여기서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그래?”서안성은 연지아의 둔중한 뒷모습을 보며 냉소했다.“멀쩡하잖아. 진짜로 문제 생기면... 애가 유산돼도 차라리 좋지.”그 말을 들은 연지아는 몸이 굳었다. 심장이 쿵 하고 조여 오듯 아팠다.서안성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성유원 역시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몰랐다.송나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오빠.”송나겸은 생각에서 돌아와 고개를 들었다. 안연청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질 좋은 울 니트를 입은 채 주름치마를 매치했으며, 가느다란 다리에는 흰 부츠를 신었다. 청춘의 빛이 튀는 듯 당당하고 예뻤다.그 뒤에는 잘생긴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는 팔에 안연청의 겉옷을 걸쳐 들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송나겸이 말했다.“그렇게 뛰어오면 어떡해. 넘어지면 어쩌려고.”안연청은 송나겸의 팔을 붙잡고 투정하듯 말했다.“나 애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넘어지지 않아.”서안성이 다가와 한마디 얹었다.“연청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리 성 대표님이 회사 통째로 부숴서 다시 지을지도 모르겠네.”안연청은 얼굴이 붉어져 흥 하고 말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그때 성유원이 다가왔다.“가자. 밥부터 먹자.”서안성과 송나겸은 원래 여기서 성유원과 안연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7화

    연지아는 그날 밤 연씨 가문에 머물렀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고 편안하게 잠든 밤이었다.아침에 일어나니, 배난화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지아를 위해 닭곰탕도 따로 끓였고, 회사에 가져갈 영양 도시락도 담아두었다.연지아는 어젯밤 사직서를 내고 강현수 곁에서 한 달 동안 교수로 일하겠다고 말했다.처음에는 다들 반대했다. 몸부터 챙기며 태교에 집중하라고 했다.하지만 연지아는 끝까지 고집했다. 몸이 좀 무거워진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한 데가 없었고, 간단한 일 정도는 무리 없었다. 무엇보다 환경을 바꿔서 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만 늘어날 것 같았다.결국 연무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연지아는 부엌에 가서 돕고 싶었지만 배난화가 못 하게 했다.연지아도 더 고집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임산부에게 맞는 필라테스 수업을 검색했다.마음에 드는 곳 하나를 골라두고 시간 잡아서 상담을 가볼 생각이었다.계속 화면을 넘기다가 연지아의 얼굴빛이 순간 굳었다.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보였다.누군가가 9장짜리 모임 사진을 올렸는데, 배경은 어느 고급 프라이빗 클럽이었다.글을 올린 사람은 서안성. 성유원 주변 사람 중 하나였다. 예전에 연지아가 성유원 비서로 있을 때 연락처를 추가했던 인물이었다.사진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모임의 밤. 또 염장 구경한 하루, 대체 언제 결혼식 올리냐.]사진 속에는 성유원과 안연청의 투 샷이 세 장이나 있었다.가운데 사진에서는 안연청이 볼을 가리고 부끄러운 듯 성유원 품에 기대 있었고, 잘생긴 남자는 큰 손으로 그녀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자를 다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달콤한 기운이 화면 밖으로 넘칠 것만 같았다.성유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 눈에는 연지아가 어울릴 자격이 없었을 뿐이다.서안성이 이 글을 올린 건 어쩌면 일부러 연지아에게 보이게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연지아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6화

    똑똑똑.“지아야, 다들 돌아왔어.”배난화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연지아는 별생각 없이 앨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자, 그녀는 환하게 불렀다.“아빠, 오빠.”배우진과 연무현이 연지아를 바라봤다.“지아야, 선물 가져왔어. 와서 보고 마음에 드는지 봐.”배우진이 손짓했다.연지아가 들뜬 얼굴로 다가갔다.“무슨 선물이에요?”배우진은 한가득 들고 온 봉투들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브랜드 로고가 찍힌 장신구 상자를 하나 꺼내 연지아에게 건넸다.“열어봐.”연지아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 열었다. 정교하게 만든 금팔찌였다.“고마워요, 오빠. 진짜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면 됐어.”배우진은 손을 뻗어 연지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배우진은 배난화에게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금팔찌를 따로 사 왔고, 두 사람에게 각각 스킨케어 세트도 챙겨왔다. 연무현에게는 차와 술을 준비했고, 현지 특산품까지 잔뜩 들고 돌아왔다.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연지아는 집에 돌아와서야 숨이 놓였다.“지아야, 예정일이 언제야?”배우진이 걱정스레 물었다.그녀의 배는 누가 봐도 임신 말기처럼 커 보이긴 했다.연지아가 답했다.“예정일까지는 두 달 남았어요.”배난화가 웃으며 말했다.“지아 너, 이거 딸이다.”연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딸이에요.”“성별 확인했어?”연무현이 물었다.배난화도 뭔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괜히 굳었다.“응. 그런데 할머니가 이 아이를 많이 챙기세요.”연무현은 그제야 한숨을 놓았다.“그럼 됐다. 아이만 있으면 나중에 너랑 유원이는 천천히라도 좋아질 거야.”연지아는 시선을 떨궜다.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순간 망설였다. 성유원은 이미 이혼 얘기를 꺼냈는데.그래도 이건 숨길 수 없는 일이고, 그녀는 오션 빌리지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와 살기로 결정했다.‘일단은 저녁 먹고 나서 말하자.’배난화는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렸다.배우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5화

    주이빈의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책상을 세게 치고 벌떡 일어섰다.“연지아 씨!”연지아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자리로 돌아온 연지아는 작은 거울을 꺼냈다. 뺨 한쪽에 아주 가느다란 핏자국이 보였다. 자국은 깊지 않았다. 젖은 티슈로 한 번 슥 닦고 나니 더 손볼 것도 없었다. 어차피 이런 얼굴에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그러다 문득 그 소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어쩐지 낯익었다.퇴근이 가까워질 즈음.연지아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우진이 돌아왔으니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으라는 말이었다.연지아는 반가움에 목소리가 높아졌다.“우진 오빠가 돌아왔어요? 15일에 온다더니.”아버지가 말했다.“일 정리하고 일찍 들어왔어.”“알겠어요. 퇴근하자마자 갈게요.”연지아는 차를 몰아 연씨 가문으로 돌아갔다.연씨 가문은 서정구의 중간급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올해 새로 산 넓은 평수의 주택이었다.아버지는 중형 부동산 회사를 운영했다. 대단한 재벌은 아니어도 살림은 넉넉해서 연지아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풍족하게 자랐다.하지만 요즘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반년쯤 전 회사가 투자에 실패해 재정 문제가 심각해졌다.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녀가 성유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도 억지로 성씨 가문에 찾아가 따지고 요구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다.연지아는 하루가 다르게 늙고 초췌해지는 아버지 얼굴을 보며 결국 집안 재산까지 정리해 빚을 갚아야 할 지경이 된 걸 보고 결심했다. 그래서 성씨 가문으로 갔다. 그때 그녀는 사실 속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그녀는 원하는 걸 얻었다. 성씨 가문이 건넨 큰 예물 덕에 연씨 가문의 빚은 정리됐다. 하지만 그만큼 값을 치렀다.그러니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도 결국은 자업자득이었다. 남 탓할 일이 아니었다.집에 들어서자 배난화가 부엌에서 나왔다.“지아야, 왔네.”연지아가 아홉 살이던 해, 어머니는 아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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