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번 교류회는 분야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권위 있는 행사였다.그런 무대에서 합주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송하나에게 더없는 인정이자 기회였다.심성빈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남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고 목소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하게 가라앉았다.“우리 하나는 원래 대단하잖아. 무대 위에 서면 분명 누구보다 눈부실 거고 모두를 놀라게 할 거야.”심성빈의 칭찬에 송하나의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나저나 국내 일은 언제쯤 마무리돼요? 교류회 때 맞춰서 돌아올 수 있어요?”심성빈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등 뒤의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고 딱지가 앉은 살점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금은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고역이라 장거리 비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조명 아래 진지하게 연주할 그녀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 찬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응, 문제없어. 어떻게든 맞춰서 갈게.”“그냥 물어본 거니까 무리하지 마세요. 일이 바쁘면 굳이 안 와도 돼요. 정 그렇게 연주가 듣고 싶다면 나중에 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단둘이서만 들려줄게요.”나긋나긋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와 귓가에 내려앉았다.심성빈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고 오직 자신에게만 향하는 그 따스함을 갈구하게 되었다.그의 눈동자에 짙은 애틋함이 서렸다.“그래.”나직이 읊조리는 남자의 목소리 끝에 깊은 다정함이 묻어났다.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심성빈은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나야, 정말 보고 싶어. 사진 한 장 보내줄 수 있어? 얼굴이라도 보게.”송하나가 웃으며 제안했다.“그렇게 보고 싶으면 영통 하면 되죠.”그게 훨씬 편하지 않겠냐는 말에 심성빈의 몸이 굳어버렸다.지금 그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누워 안색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영상 통화를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말 것이다. 자신이 왜 입원해 있는지 어떻게 설명해
“여보, 우리 같이 이솔이 데려다주자.”최로운네 세 식구는 차에 올라 차씨 저택으로 향했다.차가 중간쯤 달렸을 때, 차설아가 무심결에 물었다.“참, 성빈 씨는 어때? 많이 아파?”오늘 아침, 최로운은 심성빈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병문안을 다녀왔었다.이에 차설아는 내심 의아했다.분명 송하나와 함께 해외에 있어야 할 심성빈이 왜 입원까지 하게 된 건지 말이다.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하던 최로운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아파서 입원한 게 아니야. 집안 어르신들한테 매질을 당했어. 채찍으로 스무 대나 맞았다더라. 등 쪽 상처가 꽤 깊어.”“매질이라니?”차설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성빈 씨가 평소에 얼마나 신중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런 호된 매를 맞은 거야?”“심씨 가문에서 걔가 송하나 씨랑 만나는 걸 알게 됐거든.”최로운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기색을 내비쳤다.“심씨 가문 규율이 워낙 엄격하잖아. 진작 성빈이한테 집안끼리 통하는 여자랑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했거든. 근데 성빈이가 끝까지 고집을 안 꺾고 하나 씨랑 만나겠다고 버틴 모양이야. 하나 씨를 포기할지 아니면 집안의 매를 맞을지 선택하는 상황에서 성빈이가 후자를 택한 거지.”짧은 설명이었지만 차설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복잡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송하나는 원래 차설아의 사촌 오빠인 차정원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끔찍한 사고로 차정원은 총을 맞고 바다로 추락했다. 그 뒤로 마치 세상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듯 일말의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지난 몇 년간 차씨 가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맥과 재력을 동원해 바다 건너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루하루 애타게 찾아 헤맸지만 끝내 차정원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모두가 알고 있었다.차정원은 아마도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거란 사실을.그가 사고를 당한 후, 송하나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극심한 고통 속에서 거의 폐인이 될
그 완고한 편견을 깨고 남들 모두가 안 될 거라 고개 저었던 이 사랑을 끝내 허락받기 위해 심성빈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였다.이 혹독한 가법은 심성빈이 송하나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 스스로 온몸을 던져 쟁취해낸 유일한 출구였을 것이다.“너 진짜 구제 불능이다. 이번 생은 송하나 씨한테 완전히 코가 꿰였네. 그래도 뭐,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후회 없다면 된 거지. 언젠가 두 사람 결혼 날짜 잡히면 꼭 알려라.”두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최로운은 누구보다 잘 안다.심성빈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덕담 고마워. 꼭 알릴게.”최로운은 잠시 병실에 머물며 심성빈의 곁을 지키다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딸 최이솔이 짧은 다리를 종종거리며 달려와 그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아빠, 다녀오셨어요!”나긋나긋하고 달콤한 목소리에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최로운은 허리를 굽혀 딸을 품에 안고 말랑말랑한 볼에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우리 예쁜 이솔이, 아빠 보고 싶었어?”그는 텅 빈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차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무심결에 물었다.“이솔아, 엄마는?”“방에서 짐 싸고 있어요.”아이는 아빠 어깨에 착 달라붙어 안방을 가리켰다.이에 최로운은 아이를 안은 채 서둘러 침실로 향했다. 방 안에는 차설아가 허리를 숙이고 무언가 분주히 정리하고 있었다.최이솔의 분유와 간식, 속옷, 그리고 장난감들까지 차곡차곡 정리해 수납 파우치에 넣는 중이었다.그 광경을 본 최로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잡생각이 스쳤다.행여나 아내가 화가 나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려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는 곧장 아이를 내려놓고는 차설아의 뒤로 다가가 살며시 허리를 끌어안으며 빛의 속도로 사과를 건넸다.“여보, 내가 잘못했어! 오늘 밤엔 무릎이 까질 때까지 싹싹 빌게. 무슨 처벌이든 다 받을 테니까 제발
“그래요.”심성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간호사가 재빠르게 다가와 그의 등 뒤를 겹겹이 감싼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하룻밤을 지내며 붕대는 이미 짓무른 상처와 한 몸처럼 딱딱하게 달라붙어 버렸다.살짝 떼어냈음에도 살점이 함께 딸려 올라가며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심성빈의 몸이 크게 떨렸고 등 근육이 팽팽하게 굳어졌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는 턱을 꽉 다물었다.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져 목구멍 속으로 삼켜진 신음과 통증을 억지로 짓누르고 있었다. 단 한 점의 고통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곁에서 이 잔인하고도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던 고여진은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들이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차마 더는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채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약 바르는 과정은 길고도 괴로울 따름이었다.간호사는 낡은 붕대를 하나씩 풀어내고 상처에 남아있는 핏자국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소독하고 지혈을 하고 약을 바르는 손길은 조심스럽고도 세심했다.고요한 병실 안에는 기구들이 부딪히는 자잘한 소리와 심성빈이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아주 희미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바로 그때, 병실 문이 살며시 열렸다.모두의 시선이 심성빈의 상처에 쏠려 있어 누구도 문 쪽을 신경 쓰지 못했다.최로운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하게 둘러보던 그의 시선은 병상에 누워 있는 심성빈의 등 뒤 끔찍하고 흉측한 상처에 멈췄다.그는 눈앞의 광경이 믿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단지 집안 규율을 어겨 벌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흔한 체벌이라 생각했지 이토록 심각한 부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평소 고고하고 냉철하며 늘 여유가 넘치던 심성빈이 지금은 만신창이가 된 채 침대 위에 갇혀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그 엄청난 낙차에 최로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처치가 끝나고 간호사가 새 붕대를 꼼꼼히 감아주며 말했다.“
“감히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임원진 회의 때문에 휴대폰을 곁에 두지 못해 답장을 못 하신 거라고 둘러댔는데 얼마나 믿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심성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당부했다.“나 없는 동안 하나 잘 돌봐줘. 부상 소식은 절대 누설하지 말고. 해외 계열사 업무는 전적으로 공 비서한테 맡길게.”“네, 대표님.”비서실장 공수현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국내로 돌아가 대표님을 뵙고 싶었지만 맡겨진 중요한 업무들이 산적해 있었다.지금은 우선 심성빈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하며 그가 안심하고 요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야 했다.그 시각, 음대 연습실.송하나가 피아노 연습을 막 끝냈다.조금 전, 그녀는 잠시 넋을 놓는 바람에 건반을 여러 번 잘못 눌렀다.연습을 마치고 나오자 허지안이 다가와 물 한 병을 건넸다.“하나야,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여. 넋이 나간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아픈 거야?”송하나의 눈가에 근심이 드리워졌다.“성빈 씨가 귀국하고 나서 아무 소식이 없으니 내내 마음이 불안하네.”허지안이 그녀를 다독였다.“많이 바쁜가 보지. 너무 걱정하지 마. 정 불안하다면 다시 한번 전화해 보는 건 어때?”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을 나와 심성빈에게 전화를 걸었다.병실.심성빈은 몸을 겨우 일으켜 송하나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바로 그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화면 위에서 반짝이는 발신자 정보를 보며 심성빈은 잠시 망설였다.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 받지 않는다면 방금 답장을 보내고 연락이 끊긴 셈이 된다.그때 가서 송하나가 더 심하게 흔들리고 불안해할 게 뻔했다.심성빈은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등 뒤의 상처를 최대한 피하고 호흡을 조절한 뒤, 전화를 받았다.그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빼고 최대한 평소와 같은 톤을 유지하려 애썼다.“미안해, 하나야. 며칠 동안 회의가
심성빈이 돌아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태껏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는 건지 송하나는 내심 궁금해졌다.메시지를 작성해 보냈지만 좀처럼 응답이 없었다.아마도 시차 적응 중이거나 업무가 너무 바빠 휴대폰을 확인할 겨를이 없겠지.송하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베갯머리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화면을 켜 심성빈과의 대화창을 열었으나 어제 보낸 메시지 한 통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채 야속할 정도로 깨끗했다.순간 송하나의 마음 한구석에 묘한 의구심이 피어올랐다.여태껏 함께한 시간 동안 심성빈이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예전에 해외 출장이나 술자리 등으로 바쁘고 힘들 때조차 그는 틈틈이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행방을 알리곤 했었다. 이렇게 길게 연락이 끊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가슴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웠다.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복잡해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건 아닐까?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송하나는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정부가 그녀를 보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하나 씨, 아침 식사 준비해 두었습니다.”식탁 앞에 앉았지만 통 입맛이 없었다.몇 입 대충 먹고 별장을 나선 그녀는 마당에 세워진 익숙한 검은색 세단을 발견했다.공수현이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그곳에 서 있었다.“타세요, 하나 씨.”차에 올라탄 송하나는 걱정을 누를 수 없어 조용히 물었다.“공 비서님, 혹시 요즘 성빈 씨한테 연락 온 거 있어요? 메시지를 보내도 계속 답이 없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그 말을 듣는 순간, 공수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어젯밤 늦게 국내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심성빈이 가족들에게 채찍질을 당해 큰 부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