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
어느 날,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가족처럼 믿었던 이모의 손에 어머니가 죽었다.
그 둘은 같은 편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지금 나는 떨어지고 있다.
발밑이 사라진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바람이 귀를 찢듯 스치고,
숨이 가슴에서 빠져나간다.
손을 뻗어도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절벽 끝.
그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이모.
아니—
‘불화의 여신’, 에리스.
나는 도망치려 했다.
끝까지,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결과는 이거다.
낙하.
죽음 직전.
웃기지 마.
이렇게 끝낼 생각은 없다.
죽는다고 해도,
저승까지 쫓아가서라도,
너희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난다면.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너희를 향해.
끝까지.
부서질 때까지.
파도 소리가 커진다.
어둠이 아래에서 입을 벌린다. 나는, 떨어졌다.
바다로.
시간은 거슬러, 애드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엘쉬온왕국 검은 숲속 오두막에는 외로이 살아가는 마녀, 로테가 살고 있었다. 숲은 늘 고요했다. 바람조차 그녀를 스쳐 지나갈 뿐, 머물지 않았다. 오랜 시간 홀로 살아온 로테는 끝내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2층 다락방에 올라가 먼지 쌓인 책장 깊숙한 곳에서 한 권의 마도서를 꺼내 들었다.
책의 표지는 낡아 있었지만, 그 위에 적힌 문장은 유난히 또렷했다. [소환 마법으로 친구를 만들어보세요.] “…그래, 소환.” 로테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소환마법으로 친구를 만들자. 혼자는… 너무 외로워.” 고요한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책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한 장의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이쁜 친구 소환방법] 1. 물을 구한다. 2. 살아있는 동물의 피…는 잔인하니 토마토로 대체한다. 3. 소환 마법진은 본인이 자신 있는 걸로 그려보자. 4. 소환 성공! “……….” 깊은 정적이 흐르고, 로테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오, 이거 좀 멋진데?” 로테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곧장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물 ! 물이 필요해!” 로테는 재빨리 접시에 물을 떠온 다음 집 앞 작은 텃밭에서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왔다. “미안하다 토마토야. 날 위해 희생 되 줘야겠다. ” 짧은 사과와 함께— 쭈욱-! 로테의 손에서 토마토는 순식간에 붉은 즙으로 변했다. 뚝. 뚝. 접시 위로 떨어지는 붉은 액체는, 어쩐지 진짜 피처럼 보였다. 로테는 그 안에 검지손가락을 적셨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 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동그란 원을 그리고…” 슥, 슥—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좀 있어 보이게… 그리폰.”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기대가 섞였다. “…피에 젖은 붉은 그리폰을 그리자.” 슥— 하지만 잠시 후, 바닥 위에 완성된 것은— 위엄 넘치는 전설의 생물이 아니라, 마치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동그란 비만 병아리였다. “…….” 로테는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잠깐의 침묵 뒤,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리폰이라고 하면, 그리폰인 거지.” 절망적인 미술 실력을 가진 마녀는, 꽤나 당당하게 현실을 재정의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마법진 위에 손을 얹었다. “자, 그럼—” 그녀의 눈이 아주 조금, 기대에 차서 빛났다. “이쁜 친구야… 나와라.” 로테의 엉성한 마법진에서, 이상하게도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그러나 곧, 눈을 뜨기 힘들 만큼 강렬하게 번쩍—!! 순간, 공간이 뒤틀리듯 흔들렸다. “어…?” 로테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마력,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이. 스르륵— “으, 으헉… 히, 힘이 빠져나간다…!” 그녀의 무릎이 휘청였다. “이런 말은 없었는데…!!” 다음 순간— 펑!!!!!! “꺄아아악—!!” 굉음과 함께 마법진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나무 바닥이 검게 그을리고, 사방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작은 재앙이라도 터진 것처럼. “콜록… 콜록…” 로테는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눈앞은 아직도 연기로 흐릿했다. 그러나 서서히, 그 연기 너머로 한 형체가 드러났다. 길게 흘러내리는 보랏빛 머리카락. 양옆으로 우아하게 휘어진 뿔.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그 여인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로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숨이 멎을 듯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와!!!” 로테가 산산이 부숴버렸다. “성공이다!!! 소환에 성공했어!!!”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상대의 손을 덥석 잡고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대박이야!! 진짜 나오네!!!” “….” 소환된 여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이유로 나를 소환한 거지.”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그보다—” “어떻게, 나를 소환한 거지?” “안녕! 나는 로테야!” 로테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었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서 너를 소환했지!” “…뭐라고?” 여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고작… 그 이유로?” 그녀의 눈동자에 불쾌함이 스쳤다. “나를 부르는 조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고대 괴물의 피, 정제된 성수, 그리고—” 그때였다. 로테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끊었다. “아냐아냐, 그런 거 안 했어.” “…?” “토마토 하나랑 물 한 컵 준비했더니 그냥 되던데?” “…….” 공기가 멎었다. “토마토…?” “…응.” “…토마토?” “…응.” 짧은 침묵. 그리고— “……말도 안 돼.” 여인은 낮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세계의 법칙이, 어딘가 단단히 어긋난 것 같았다. 하지만 로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무튼 잘 부탁해, 친구야! 넌 이름이 뭐야?” 잠시 후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로테를 힐끔 내려다봤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에리스.” 짧고, 또렷한 이름. “에리스?” 에리스의 이름을 듣고 로테의 눈이 반짝였다. “좋은 이름이다! 잘 부탁해, 에리스!” 그녀는 아무 의심 없이 웃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세계를 뒤흔들 불화의 여신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처음으로 생긴 ‘친구’라고만 믿었다.잠시후.애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카시안이 가면 쓴 남자와 싸우던 장면을 떠올렸다.“음... 일단 스승님이 제일 먼저 썼던 기술이...”기억 속의 카시안은 가면 쓴 남자에게 달려들기 직전, 자신의 잔상을 여러 개 만들어냈다.그리고 수많은 분신이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애드는 잠시 고민하더니 메르디시안 앞에 섰다.그리고 전속력으로 좌우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타닷! 타닷! 타닷!메르디시안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정답!”“어?”“해변을 걸어가는 게.”“아닌데요.”“아니야?”“스승님 분신들이 막 이리저리 나타나서 가면 쓴 남자를 동시에 공격했던 게 기억나서 보여드린 건데요.”“…….”메르디시안은 살짝 혼란에 빠진듯 하더니 뭔가 떠올린듯 애드에게 말했다.“혹시 잔영분신을 말하는 거냐?”“기술명은 몰라요.”“대충 열 명 정도의 본체와 비슷한 분신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지.”메르디시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마계에서 카시안이 나랑 싸웠을 때도 쓰던 기술이다.”그 말을 들은 순간 애드의 눈이 반짝였다.“어?! 그럼 원리 아시겠네요?!”“쉽지~”그 말과 동시에 메르디시안의 모습이 순식간에 늘어났다.파앗!어느새 주변은 여러명의 메르디시안으로 가득했다.그리고 열 명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어때?”“이거 맞지?”“나 잘했지?”“연애하고 싶다.”“……?”애드는 잠시 마지막 말을 한 분신을 바라봤다.하지만 메르디시안이 너무 많아 누가 뭘 말했는지 찾을 수 없었다.애드는 그 분신들을 한참 둘러봤다.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스승 카시안의 분신은 공격을 위한 기술이었을뿐 메르디시안 처럼 하나하나의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애드는 조심스럽게 메르디시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쉬워~”메르디시안은 정말 쉽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쓰는법 하나도 몰라요!”“…….”애드의 억울한 목소리가 협곡 전체를 울렸다.메르디시안은 갑자기 궁금해졌다.검성 카시안은 대체 제자 교육을 어떻게 했던 걸까.그리고 에레보스와 막강한 실력자일지도 모를 가면 쓴 남자와 맞붙은 검성이 교육자로서는 형편없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다.잠시 후.자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던 애드가 문득 손을 들었다.“저기… 어둠의 힘을 쓰는 거나 빛의 힘을 쓰는 거나 원리는 비슷하지 않나요?”“...어?”“그러니까 제가 스승님 기술을 설명하면 마왕님이 그 원리를 알아내서 알려주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애드의 기적적인 논리에 메르디시안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어둠을 근원으로 사용하는 마왕에게 빛의 힘의 원리를 설명만 듣고 분석해 달라니 이건 마치 생선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생선뼈 구조도를 그려 달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메르디시안은 애드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태양의 신은 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한 거지? 아니, 교육을 하긴 한 건가?'애드는 그런 속마음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메르디시안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내가 어둠의 힘을 보여 줄 테니, 네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빛의 힘으로 대응해 봐.”그러자 애드가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안 됩니다.”“왜?”“검 잡는 법이랑 빛의 힘을 폭발시키는 것밖에 모르거든요.”“…….”“그러니까 제가 기술 좀 익힌 다음에 다시 보여 주세요.”“…….”그 순간 메르디시안은 애드를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아주 조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잠시후.그는 문득 깊은 생각에 빠졌다.'잠깐만 어둠의 힘을 쓰는 내가 빛의 힘을 설명만 듣고 이끌어 낸다면...''그럼 나 완전 천재 아닌가?'생각이 깊어질수록 메르디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여자들은 똑똑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지? 그 소
애드를 어깨에 대롱대롱 매단 채, 어둠의 힘을 시연하기 딱 좋은 협곡까지 순식간에 날아온 메르디시안.그는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기절한 애드를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쿵!!!!“끄아아악!!!”애드의 얼굴이 지면과 정면으로 충돌했다.기절해 있던 정신이 밀려오는 고통과 함께 강제로 깨어났다.애드는 얼굴을 부여잡은 채 벌떡 일어났다.“마왕님!! 좀 다정하게 깨워 주세요!!”“난 제법 다정하게 깨웠다고 생각했는데?”메르디시안은 진심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애드는 그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이 몹시 얄미웠다.메르디시안은 검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물었다.“그래서.”“네?”“너 빛의 힘은 얼마나 쓸 수 있어?”메르디시안의 질문에 애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신도 잘 몰랐다.‘가만 보자… 내가 뭘 쓸 수 있더라.’예전에 시간의 동굴에서 헬리오스에게 수련받았을 때 배운 것들…빛의 힘을 한순간에 태양처럼 폭발시키는 방법, 그리고 카시안에게 배운 기본 검술.마지막으로 카시안이 죽기 직전까지 가면 쓴 남자와 싸우며 보여 주었던 수많은 기술들.애드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었다.‘분신술이 있었고…’‘태양 뭐시기 있었고…’‘그리고 카시안식 어쩌고 하면서 가면 쓴 남자 턱 걷어차는 것도 있었고…’“…….”잠시 생각하던 애드의 표정이 점점 더 미묘해져갔다.생각해 보니 이상했다.카시안은 분명 엄청난 기술들을 많이 사용했다.문제는 그걸 쓰는 방법을 알려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애드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두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명계 어딘가에서 편히 쉬고 있을 카시안의 얼굴을 떠올렸다.‘아니 잠깐만 생각해 보니까 스승님…’‘검 쥐는 법만 엄청 알려주지 않았나?’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애드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아니
“애드가 좀 시끄럽네~”그렇게 두사람은 끝까지 집무실 밖으로 나가지않았다.그리고 센티드 왕성을 빠져나온 애드와 메르디시안.메르디시안은 애드를 아예 짐짝처럼 어깨에 둘러멘 채 성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으으음…”애드는 메르디시안의 어깨에 데롱데롱 매달린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살려주세요…”“안 죽인다니까?”메르디시안은 애드가 살짝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는 센티드 왕궁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분수대, 꽃밭, 연못, 기사단 훈련장 등모두 어둠의 힘을 시연하기에는 전부 부적절해 보였다.“하아…”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다 부숴질 것 같은데.”“그럼 보여주지 마세요…”“그건 안 되지.”애드는 메르디시안의 말에 진심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잠시 후.메르디시안은 결국 다른 장소를 찾기로 결정했다.그리고 허리 뒤에 접혀 있던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펼쳤다.촤아악ㅡ!순간 거센 바람이 날개 주변을 휩쓸었다.애드는 본능적으로 불안해졌다.“저기…”“응?”“설마 날아오르시게요?”메르디시안은 해맑게 웃었다.“어~ 꽉 잡아~”“잠깐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애드는 그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했다.그순간메르디시안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슈우우우우우우우욱!!!!!“으아아아아아아아악!!!!!”순식간에 땅이 멀어졌다.왕성에서 도시로 그리고 산맥 순서대로 순식간에 작아졌다.애드의 얼굴에 강풍이 정면으로 들이쳤다.퍼버버버벅!!!“아파아아아악!!!”그의 머리카락은 미친 듯이 휘날리고, 눈도 제대로 못떴다.반면 애드와 달리 메르디시안은 너무나 상쾌해 보였다.“야호~! 좋구나~!”“날씨 끝내주네~!”“저는 안 좋아요오오오오오!!!”하지만 애드의 절규는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메르디시안은 신나게 하늘을 날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어디 보자…”“적당히 부숴도 문제없는 곳이
잠시후.영상 속의 에레보스의 붉은 눈동자가 잠시 번뜩이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그리고 그의 양 손바닥에서 검은 마력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쿠구구구구구ㅡ순식간에 하늘이 태양 자체가 삼켜진것 처럼 새까맣게 물들었고 주변의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풀은 회색으로 변했고 꽃은 순식간에 시들어 버렸다.생명력이 강제로 빨려 나가는 것 같은 충격적인 모습."..."세 사람은 말없이 영상을 바라봤다.그리고 영상 속 메르디시안이 검은 기둥에 휩쓸렸다.그의 모습은 마치 용암 속에 던져진 사람처럼 피부가 녹아내리고 근육이 타들어 가더니 이내 뼈가 드러났다.그것은 공격이라기보다 자연재해에 가까웠다.그 모습을 끝으로 영상이 종료되었다.팟-!"봤지?"메르디시안의 담담한 목소리가 집무실 내부를 울렸다.하지만 세사람 중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메티스는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고 항상 여유를 부리던 아이테르도 처음으로 농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그리고 애드는 점점 표정이 참담해지고 있었다.'…아버지 저보고 저걸 막으라고요?'애드의 등골이 서늘해졌다.방금까지는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저건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한 순간 에레보스를 막아 달라고 부탁했던 헬리오스가 조금 원망스러워졌다.'아버지… 저건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잘못 끽하면 바로 사망인데요?’애드는 진심으로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는 살짝 희망회로를 돌리며 메르디시안에게 물었다."혹시 공략법은 있나요?""없어.""망했네."그렇게 세 사람은 어둠의 힘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거대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아니 그냥 벽이 아닌 절대 뚫리지 않는 철벽같았다.아이테르가 무거운 표정으로 애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힘내라, 애드.""...?"곧이어 메티스도 애드의 등을 토닥이며 엄지를
메티스와 아이테르, 애드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경악했다.메르디시안이 설명해 준 '심연의 손'과 기본 공격만 해도 이미 최강의 기술처럼 느껴졌는데, 그것조차 준비운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메티스가 굳은 얼굴로 메르디시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마왕님?""음?""마왕님도 에레보스와 같은 어둠의 힘을 쓰고 계시잖아요.""그 공격들에 대한 공략법은 없나요?"메르디시안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심연의 손'이나 기본 공격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나도 쓰는 기술이니까.""하지만..."메르디시안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지금부터 설명할 건 에레보스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나도 약점을 몰라.""..."그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그때 애드가 메르디시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설명만 듣는 것보다 직접 겪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나중에 어둠의 힘을 직접 보여주실 수 있나요?""어?"메르디시안은 애드의 말이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정도야 어렵지 않은데."그는 검지손가락 끝에 검은 마력을 아주 작게 피워 올렸다.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맞은편에 있던 아이테르를 향해 손가락을 겨눴다.퓨슉-!"어?""어어?"아이테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검은 마력이 스쳐 지나간 바닥이 폭발하듯 갈라졌다.쾅!!!!!!!대리석 바닥은 새까맣게 변하며 부식되기 시작했다.치이이익ㅡ금세 표면이 녹아내렸고, 내부 구조까지 드러났다.푸쉬이이이...아이테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서진 바닥을 내려다봤다."..."잠시 세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메르디시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게...""기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인데도.."그는 썩어가는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위력이 저
수년간 적막한 검은 숲에 홀로 살던 로테는 이제 외롭지 않았다.든든한 친구 에리스와,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루카.그리고 그녀의 배 속에는,곧 세상에 태어날 작은 생명까지 함께였으니까.창문 너머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로테는 조용히 생각했다.'마도서로 친구를 소환했던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어.''어머니, 저는 이제 외롭지 않아요.'감성에 젖어 있던 그때,멀리서 익숙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야, 이 정신 나간 여자야! 아기 성별도 모르는데 드레스를 왜 벌써 사 ?!""하! 내가 여신인데 그것도 모르겠냐?
모두가 잠든 새벽녘, 다락방.에리스는 낮 동안 실패로 끝난 ‘루카 헬리오스 검증 계획’을 떠올리며 종이 위에 또 다른 작전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고 태양의 열기로 빵을 굽게 한다.“......”잠시 생각하던 에리스는 제 손으로 쓴 문장을 다시 읽고는 얼굴을 찌푸렸다.“이건 나도 좀 아니다.”구겨진 종이가 허공을 가르며 쓰레기통 안으로 날아갔다. 휙.“하아...”한숨과 함께 힘이 빠진 그녀는 등을 벽에 기대었다.“어머님은 왜 스스로를 봉인하신 거람.”문득 떠오른 어머니의 얼굴
"...어디 갔다 왔냐?"늦은 밤, 두 사람만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문 앞에는 팔짱을 낀 에리스가 단단히 삐진 얼굴로 서 있었다."어…? 자는 줄 알았는데. 루카랑 시장 구경 좀 다녀왔지."로테가 어깨를 툭 건드리자, 에리스는 손등을 찰싹 때려냈다."흥."그 모습에 루카가 피식 웃었다."너 질투하냐? 먼저 잔다며.""아니."에리스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내가 화난 건, 둘이 시장 다녀와 놓고 내 거 하나도 안 사 왔다는 거야.""…. 그거였어?""그래! 닭꼬치 하나라도 '아, 이건 에리스 줘야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나… 난 이제 채식할래…." 로테와 루카는 오크고기를 먹은 충격으로 저녁이 될 때까지 화장실을 번갈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에리스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키득 웃었다. "그거 차별 아니냐? 돼지나 소는 잘만 먹으면서, 오크는 왜 그렇게 질색이야?" 창백한 얼굴의 루카가 벽을 짚은 채 말했다. "차별이라면서 너는 왜 안 먹었는데?" "무슨 소리야." 에리스가 당당하게 턱을 들었다. "난 차별하는데?" "와… 진짜 뻔뻔하다." 에리스는 피식 웃다가 문득 루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