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어디 갔다 왔냐?"
늦은 밤, 두 사람만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문 앞에는 팔짱을 낀 에리스가 단단히 삐진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자는 줄 알았는데. 루카랑 시장 구경 좀 다녀왔지."
로테가 어깨를 툭 건드리자, 에리스는 손등을 찰싹 때려냈다.
"흥."
그 모습에 루카가 피식 웃었다.
"너 질투하냐? 먼저 잔다며."
"아니."
에리스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내가 화난 건, 둘이 시장 다녀와 놓고 내 거 하나도 안 사 왔다는 거야."
"…. 그거였어?"
"그래! 닭꼬치 하나라도 '아, 이건 에리스 줘야지~' 할 수 있잖아!"
씩씩거리던 에리스가 외쳤다.
"난 너희가 데이트를 하든, 결혼을 하든, 애를 낳든 관심 없어!
근데 난 몇 달째 버섯만 먹고 있다고! 고기 먹고 싶어!"
로테는 미안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에리스, 미안해. 다음엔 셋이 같이 가자. 이거라도 받아."
로테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알사탕 하나.
에리스는 알사탕을 재빨리 낚아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루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근데 로테. 그건 또 어디서 났어?"
"산 거 아니야. 바닥에 굴러다니길래 주웠어."
"...우웩!"
에리스는 즉시 뱉어냈고, 루카는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여신이 바닥 알사탕 주워 먹었네!"
"닥쳐!!!"
다음 날 아침.
에리스는 혀를 세 번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바닥 먼지 맛이 나…."
"…."
"그건 그렇고, 저 꼬맹이가 헬리오스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어."
'….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은 검증 후 빨리 없애는 게 맞다.
혹시라도 저 녀석이 헬리오스라면, 빨리 처리하고 아버님께 내 가치를 인정받는 거다….'
욕실에서 나온 에리스는 곧장 루카에게 다가갔다.
"야, 꼬맹이."
"뭐야."
"너 태양을 어떻게 생각하냐?"
"…. 갑자기?"
"빨리 말해."
"…. 뜨거워서 싫어."
"아."
예상 밖의 대답에 에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치밀하게 아닌 척하는 건가…?'
그녀는 식탁 위 화분을 집어 루카 앞에 들이밀었다.
"…. 뭐 하냐?"
"태양처럼 광합성시켜 봐."
"드디어 미쳤냐?"
"난 네가 수상해."
"대체 뭐가?"
"아무튼 수상해."
그 말을 들은 로테가 피식 웃었다.
"하긴 루카는 어린애치고 마법도 잘 쓰고, 좀 어른스럽긴 하지."
에리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치? 쟤 수상하다니까."
"아니, 뭘 증명하려는 건데?!"
"너 인간이냐?"
"인간이지. 네 눈엔 내가 오크로 보이냐?"
"오크보다 더 이상한 무언가."
"와, 아침부터 시비 거네."
"그만해 에리스~ 루카 삐지겠어."
"삐진 게 아니라 화난 거야, 로테..."
"흥. 오늘은 이만 봐주지."
에리스는 물러났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곧장 다락방으로 올라간 그녀는 종이와 펜을 꺼냈다.
[루카 = 헬리오스?]
[의도적인 회피 가능성 높음]
[오늘 저녁 최종 검증 시행]
에리스는 진지한 얼굴로 이상한 가설만 적어 내려갔다.
"기필코 잡아서 죽여버리고 말 테다…."
몇 시간 뒤, 해가 질 무렵.
집 앞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던 루카는 부담스러운 얼굴로 옆을 흘끗 바라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에리스가 두 팔을 낀 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 저기."
"나 신경 쓰지 마."
"아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따라다니면서 계속 쳐다보는 이유가 뭐냐고."
"안 쳐다봤어."
"방금도 보고 있었잖아!"
에리스는 루카의 말을 살포시 무시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 지금 이 시각이 핵심이야."
"대체 뭐가 핵심인데?!"
아침부터 하루 종일 루카를 감시해 온 에리스는 지금 누구보다 진지했다.
'태양은 저녁이면 진다.
저 녀석이 정말 헬리오스라면, 해가 지는 순간 어딘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밤새 고민 끝에 세운 그녀의 최종 검증 계획이었다.
'자, 정체를 드러내 봐라…. 헬리오스.'
혼자 비장한 눈빛을 빛내는 에리스를 보며 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 미친 거 아니냐, 저거."
루카는 발치에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휙.
딱콩.
"악!!"
돌에 맞은 에리스가 이마를 감싸 쥐고 펄쩍 뛰었다.
"무슨 짓이야!!"
"정신 차려."
"너 지금 신성모독 한 거 알아?!"
"네가 언제부터 신성했는데."
"아, 진짜 너 짜증 나!"
결국 에리스는 최종 검증이고 뭐고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루카는 한숨을 쉬며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 누가 할 소릴."
"뭐야? 또 무슨 일 있었어?"
그때 근처 숲에서 저녁거리를 캐오던 로테가 바구니를 안은 채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에리스가 오늘 하루 종일 나 쫓아다니면서 이상한 짓만 골라서 했어."
"푸핫. 에리스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난 저런 스타일 안 좋아해."
"응? 그럼 넌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
로테의 가벼운 질문에 루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노을빛이 그의 얼굴 위로 길게 내려앉았다.
"…. 미소가 예쁜 여자."
"미소만 예쁘면 되는 거야?"
"내가 좋아했던 여자가, 미소가 예뻤거든."
그 대답에 로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생각했다.
로테가 보기에 루카는 아무리 봐도 열세 살 남짓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우와. 루카는 어려 보여도 연애는 빨리해 봤나 보다?"
"미안한데, 나 이렇게 보여도 나이 많아."
"그래그래. 그 나이대 애들은 다 자기가 어른인 줄 알더라. 나도 그랬어~"
"…. 지금은 힘이 없어서 이 모습일 뿐이야."
로테는 루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너도 변신하는 괴물 같은 거니?"
"…. 괴물은 아니야."
루카는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내 원래 모습 보면 로테도 반할걸."
"그래 그래~ 믿을게."
"안 믿잖아."
"믿는다니까?"
로테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바구니를 흔들었다.
"자, 그보다 어서 들어가자. 배고프지?"
"오늘 저녁은 뭔데?"
"버섯."
"…."
"왜 그래?"
"…. 아 또 버섯?"
"불만 가지지 마."
로테가 웃음을 터뜨렸고, 루카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로테는 다락방 문 앞에 서서 에리스를 불렀다.
"에리스, 저녁 먹어~!"
문 너머에서 곧장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먹어! 보나 마나 또 버섯이잖아. 너랑 꼬맹이 둘이서 먹어. 나 바빠, 말 시키지 마!"
로테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카에게 말했다.
"에리스가….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
"야 쟤 나이면 사춘기가 아니라 갱년기겠지."
"루카, 에리스 그만 놀려."
로테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에리스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뭐?"
"쟤는 지금 사랑 때문에 심란한 거야."
"뭐? 갑자기?"
로테는 책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낡은 공책 한 권을 꺼내 왔다.
"뭐야, 그건?"
"우리 어머니 연애 일기."
"남의 일기는 읽는 거 아니야."
"아냐. 어머니가 맨날 아버지랑 이렇게 저렇게 사랑했다고 자랑하셨는걸."
로테는 공책 표지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외로운 날 이걸 읽으면 부모님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았어."
루카는 팔짱을 낀 채 턱짓하며 말했다.
"…. 그럼 한번 읽어봐."
로테는 흐뭇한 표정으로 일기장을 펼쳤다.
[xxx년 9월 22일, 날씨 맑음]
펠리와 사귄 지 1일째.
그는 왜 아직 프러포즈하지 않는 것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개자식. 여자를 놀리다니. 죽어버려.
루카는 첫 장부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음?"
로테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장을 넘겼다.
[xxx년 9월 23일, 날씨 흐림]
펠리가 나에게 살려달라고 외쳤다.
길을 잃어 숲에 들어왔고 엘쉬온 도시로 가는 길을 물었다.
뭐? 살려달라니?
어서 빨리 내 여자가 되어 내 마음을 살려달라는 뜻인가?
귀여운 녀석.
엘쉬온에 가려면 어찌 가야 하냐고?
다른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뜻이겠지.
푸흡...
이것이 바로 프러포즈구나.
"…. 어, 로테?"
루카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로테는 이미 다음 장을 펼치고 있었다.
[xxx년 1월 4일, 날씨 맑음]
한동안 일기를 못 쓴 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펠리와 나 사이에 아이가 생겼기 때문.
펠리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사실 전날 술을 왕창…. 이 아니라,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눈 끝에 사랑의 결실이 찾아온 것이다.
이름은 뭐로 지을까?
남자아이라면 데키스.
여자아이라면 샤를로테가 좋겠다.
…. 중략.
로테는 책을 덮으며 눈을 반짝였다.
"멋진 이야기지?"
"어…. 응. 진짜 멋지다."
루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 이상한 연애 일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두 사람이 행복했고 로테 또한 행복해 보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테는 감성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빨리 사랑을 하고 싶어. 나 닮은 아이도 보고 싶고."
루카는 버섯구이 하나를 집어 먹으며 대답했다.
"음…. 그러려면 친구도 좀 많이 만들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검은 숲에만 있지 말고."
"그렇지만 난 계속 여기서만 살았는걸.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요즘 자연스러운 만남이 유행인 거 몰라? 좋은 사람 만나려면 네가 발로 뛰어야 해."
로테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만난 루카랑 결혼할까?"
"왜 또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데."
"왜? 너 원래 모습 보면 내가 반할 거라며."
루카는 잠시 웃다가 시선을 내렸다.
"….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됐고, 난 힘을 회복하면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어…?"루카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매번 이렇게 신세만 질 순 없잖아."
"아니야, 루카. 난 이렇게 셋이서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로테. 사람은 언제까지나 한자리에만 머물 수는 없어."
"이별은…. 싫은걸."
잠시 조용해졌다.
루카는 괜히 무거워진 분위기를 털어내듯 손뼉을 쳤다.
"자, 무거운 이야긴 끝. 버섯이나 먹자."
로테는 버섯을 입에 넣었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 헤어질 루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루카는 그런 로테의 마음을 아는 듯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잠시 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테."
"응?"
"나중에 숲 밖에 나가서 또 놀자."
로테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응…!"
그녀는 갑자기 신이 난 얼굴로 버섯을 집어 먹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카는 접시를 치우는 로테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또 인연이 두려워 먼저 거리를 두는 건, 대체 누구일까.'
“으흑... 에리스... 갑자기 왜 이런 일이...”“…울지 마”낡은 오두막 안에는 로테의 흐느낌과, 낮게 가라앉은 에리스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리고 있었다.아빠를 뜻하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애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아니겠지.잘못 들은 거겠지.애드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조금 밀었다.끼이익-문이 열리고, 멍한 얼굴의 애드가 안으로 들어섰다.로테는 황급히 눈물을 훔친 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애드, 왜 벌써 들어와? 놀만한게 없어?”애드는 잠시 로테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엄마.”“대체 누가 아빠를 죽인거야…?”로테는 어린아들에게 차마 대답하고싶지않은 질문을 들어버렸다.“이야기... 들었니...?”“들어버렸어.”일곱 살 아이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담담한 목소리.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아들의 모습에 로테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애드에게 달려가그를 힘껏 끌어안았다.“미안해, 애드...”“이제... 검은 숲으로는 돌아가지 못해...”로테의 말에 애드는 참고있던 울분을 터트렸다.“추억의 장소라며...”“아빠랑 엄마가 만난 곳이잖아!”애드는 목소리가 갈라질정도로 화를냈다.“그리고 아빠를 죽인 놈이 나쁜 거잖아!”“왜 우리가 숨어 살아야 하는 건데? 난 그놈 용서못해!! ”애드의 말에 로테는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애드... 엄마도 분하고 억울해.”“당장이라도 찾아내서 찢어 죽이고 싶어.”“하지만 복수를 시작하면... 그 불행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갉아먹고 말아...”애드는 로테의 말을 듣지않고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갉아먹혀도 괜찮아!”“이미 아빠는 돌아오지 못하고... 행복도 다 부서졌는데!”로테는 떨리는 손으로 애드의 뺨을 때렸다.찰싹-!“아야...”“애드.”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넌 아직 어려… 부서진 행복은... 다시 이어 갈 수 있어.”“엄마는 그 빌어먹을
“헉... 헉...!”에리스는 의식을 잃은 로테를 업은 채, 숨이 찢어질 듯 숲을 달리고 있었다.등에 느껴지는 로테의 체온은 점점 식어 가고 있었다.달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애드의 행방으로 가득했다.“그 꼬맹이는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그때였다.맞은편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에리스는 즉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을 노려보았다.혹시 놈이 다시 쫓아온 건 아닐까.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와악-! 이모!”수풀을 헤치고 애드가 튀어나왔다.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하아....”에리스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놀랐지? 이모!”애드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풀어졌던 긴장도 잠시,에리스는 곧바로 표정을 다잡고 낮게 말했다.“애드. 장난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달려야 해.”애드에게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내 손 잡아.”“응...?”그제서야 애드는 에리스 등에 업힌 로테를 발견했다.“어!? 이모, 엄마는 왜 이래? 다쳤어? 아빠는?”“......”애드의 물음에 에리스의 머릿속에서 헬리오스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피를 토하던 얼굴.끝내 다 하지 못한 말.에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우린 지금 술래잡기 중이야.”“뭐?”“아빠가 술래고, 엄마는 도망가다 다쳤어.”애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른 셋이서 무슨 술래잡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해?”“질문은 나중에.”에리스는 애드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우선 달리자.”“...응!”세 사람은 한참 동안 숲속을 내달렸다.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릴때 쯤,숲 끝자락, 절벽 근처에 버려진 낡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에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문을 밀어 열었다.끼이익-“일단 여기서 쉬자.”그녀는 로테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리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아파테에게 속아 이 빌어먹을
"그리고, 내 어머니는 밤의 여신 '닉스'지. "에리스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헬리오스의 표정이 굳었다."네가... 에레보스와 닉스의 딸이라고?”"그래"헬리오스는 닉스라는 이름을 듣자 복잡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에리스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내 아버지 에레보스가 말했어. 어머니의 깊은 잠을 깨우기 위해선 너의 힘이 필요하다고.”"나는 너에게 확인하고 싶은것이 두개 있어."에리스는 괴로운 표정으로 낮게 중얼거렸다.“첫번째. 신들은 자식을 낳을 때 품은 감정대로 아이의 본질이 정해진다고해.”“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불화’를 품었지.”“......"“왜 그랬을까.”에리스의 질문에 헬리오스의 얼굴에는 깊은 죄책감이 드리웠다.“그래... 닉스가 그런 감정을 가질법 해.”그는 힘없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시절... 나는 닉스를 버렸으니까.”헬리오스의 말에 에리스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믿고싶지 않았던 아파테의 말이 진실이 된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때 에레보...”헬리오스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아아.”낯선 목소리가 헬리오스의 말을 끊어내고 숲을 가르며 끼어들었다.“찾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낯선 남자가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오랜만이에요. 헬리오스.""넌 누구지?"헬리오스가 낯선 남자를 경계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뒷걸음질 치는 헬리오스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그리고 천천히, 너무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왔다.“아아, 헬리오스... 이렇게까지 날 애타게 하다니.”에리스가 멍하니 낯선 남자를 바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뭐야 저녀석은."그순간.남자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력이 뱀처럼 허공을 가르며 쇄도하며 헬리오스의 가슴을 관통했다."커헉...!"붉은 피가 헬리오스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남자는 쓰러지려는 헬리오스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어 억지로 세웠다.“인간과의
“에리 이모? 거기서 왜 벌러덩 누워 있어?”멀리서 애드가 에리스가 누워있는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에리스는 고개를 돌린 채 재빨리 눈가를 훔쳤다.“요즘은 누워서 일광욕하는 게 건강에 좋다더군. 그래서 누워 있었다.”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이모도 이제 건강 챙길 나이지...”“......”“근데 아무리 좋은 민간요법이라도 나이 앞에서는... 아니, 아니다. 역시 힘내, 이모!”애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에리스를 진심으로 응원했다.에리스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아기일 땐 귀엽더니, 저 얄미운 주둥이는 지 아비를 닮아 가는구나.”애드는 씩 웃었다.“그게 내 매력 아닐까?”“말이나 못하면 밉기라도 하지.”“아, 맞다! 이모, 이것 좀 봐.”“뭔데?”애드는 두 눈을 감고 잠시 집중했다.이내 그의 손끝에서 따뜻한 하얀빛이 송글송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파아앗-“....!”그걸 본 에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애드는 잔뜩 으스댄 얼굴로 말했다.“어때? 예쁘지? 빛의 마법이야!”“너... 언제부터 그런 걸 쓸 줄 알았지?”“아빠가 알려 줬어!”애드는 해맑게 웃으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흔들어 보였다.“그리고 이것도 선물 받았다?”에리스의 시선이 목걸이에 꽂혔다.‘저건... 빛의 힘이 담긴 목걸이잖아.’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에리스는 애드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애드.”“응?”“절대로.”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두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그녀의 말에 애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에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욕심쟁이라서. 나만 보고 싶거든.”“아! 그렇구나!”애드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아, 맞다! 이모! 엄마가 밥 먹으래!"“.....”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버섯이겠지.”“버섯이야!”“.........”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이모
“에리 이모, 삶이란 무엇일까?” “.....하?” 찬란하고 따뜻한 봄의 아침. 어느새 일곱 살이 된 애드는 에리스와 마주 앉아,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삶 말이야. 삶. 죽음과 삶에 대하여! 이모는 어떻게 생각해?”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애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삶은... 계란.” “.......” 에리스의 시답잖은 농담에 애드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 좀 풀어라. 농담이잖아.” “그럼 이번엔 진지하게 대답해 봐, 이모.” “삶이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 죽어 가는 과정이지.” 에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지금 일곱 살 상대로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아. 재미없다.” 애드는 단번에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깥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루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어어, 그래. 애드리안.” 루카는 도끼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에리스가 또 헛소리하더냐?” “아니. 이모 수준이 낮아서 못 놀아주겠어.” “뭐?!” “푸하하하! 역시 아이들은 본질을 정확히 보는군.” “진짜 몇 년을 같이 살아도 재수 없어, 너희 둘은.”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칠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레보스도, 아파테도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리스는 이제야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버섯을 한가득 캐 온 로테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에리스! 이것 좀 들어 줘!” “와... 저 버섯은 대체 어디서 저렇게 끝도 없이 자라는 거야...” 에리스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로테의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
다음 날 아침.“뿌애애애앵-!”애드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로테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에 기대 있었고, 루카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에리스는 창가에 앉아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또 운다. 이번엔 네가 좀 봐줘, 로테.”"....루카..""왜...?"“나 배도 고프고, 잠도못자서 기운도없고...""혹시 아기의 뜻이 엄마 아빠를 아사시키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라는 말이 아닐까...”“뿌애애애애앵!!!”“가요... 갑니다...”밤새 한숨도 못 잔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애드에게 다가갔다.루카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고 흔들었다.“자, 손님. 이번엔 무엇이 불만이십니까?”“으아아앙!!”“.........”“모유는 아까 드셨잖아요, 손님.”“으아아아앙!!!”그 순간, 기저귀 사이로 익숙하고도 불길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루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로테. 이번엔 똥이래.”“건조시켜 둔 기저귀 가져올게...”밤새도록 기저귀 갈기, 세탁, 건조, 다시 갈기, 다시 세탁을 반복한 두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에리스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와... 무슨 무한 가내수공업 지옥이냐.”그때였다.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스르륵.그 기운을 감지 하자마자 에리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결국 왔구나. 아파테.’육아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에리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집 앞 숲길.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긴 머리카락, 자신과 닮은 뿔을 가진 남자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누님. 오랜만입니다.”“아파테. 자리를 옮기자.”“아아, 이해합니다.”“지금 ‘가족’처럼 여기는 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요.”“.....!”정곡을 찔린 에리스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곧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하. 내가 인간 따위를 가족처럼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