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수년간 적막한 검은 숲에 홀로 살던 로테는 이제 외롭지 않았다.
든든한 친구 에리스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루카. 그리고 그녀의 배 속에는, 곧 세상에 태어날 작은 생명까지 함께였으니까. 창문 너머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로테는 조용히 생각했다. '마도서로 친구를 소환했던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어.' '어머니, 저는 이제 외롭지 않아요.' 감성에 젖어 있던 그때, 멀리서 익숙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정신 나간 여자야! 아기 성별도 모르는데 드레스를 왜 벌써 사 ?!" "하! 내가 여신인데 그것도 모르겠냐? 내 조카는 여자애다." "조카는 무슨 조카야! 로테랑 내 아기거든?" 로테는 웃으며 문을 열었다. "루카, 에리스. 다녀왔어? 아기 옷 사 온 거야?" 로테가 나오려고 하자 에리스가 먼저 그녀한테 달려갔다. "야, 몸도 무거운데 왜 나와 멍청아! " "말 좀 예쁘게 해라. 임산부한테." 루카의 태클에 에리스가 헛기침을 했다. "흠... 이 아름다운 여성아. 몸이 무거우니 가만히 앉아 있지 왜 나온 거니?" 에리스의 이상한 말투에 루카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너 지금 개그하냐?" "그럼 뭐 어쩌라고!" 두사람의 티키타카에 로테는 결국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너희 둘은 정말 잘 어울려!" "아니야!!" "그 말 기분 나쁘거든?!" 둘이 동시에 외치자 로테는 더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에리스는 머쓱한 얼굴로 품 안의 옷을 펼쳤다. "자, 로테! 어때? 내 우아한 머리색과 같은 보라색 드레스야." "와, 예쁘다~ 근데 태어나기 전까진 성별 모르잖아?" 로테의 말에 에리스는 허리를 쫙펴고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딸이라니까. 내 신성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에리스의 말에 루카가 코웃음을 쳤다. "네 신성력은 몸에 구멍 나서 다 빠져나간 것 같은데." "닥쳐라." "푸흣... 고마워, 에리스. 아들이어도 입히면 되지." 로테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루카가 경악했다. "아들인데 왜 드레스를 입혀?!" 에리스는 피식 웃었다. "요즘 시대에 남녀 구분 없이 드레스 입는 거 몰라?" "어, 몰라! 너 내가 드레스 입으면 이쁘냐!?" " 혐오스러우니 상상하게 하지 말아줘." 하지만 로테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루카는 예뻐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 입어! 절대!" 에리스는 로테에게 다가가 배를 쓰다듬었다. "어디 보자.. 곧 터질 것 같네." "곧 태어날 것 같네, 라고 해야지. 터지긴 왜 터져." "이름은 정했어?" 루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들이면 애드리안. 딸이면 베로니카." 그의 대답에 로테는 낡은 일기장을 꺼냈다. "아니! 아들이면 데키스로 하자. 우리 어머니가 짓고 싶어 하던 이름이야." "애드리안." "데키스!" 두 사람이 팽팽히 맞서자, 에리스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냥 섞어. 데키스 애드리안." "...어?" 티격태격 하던 두사람은 신기한 표정으로 에리스를 바라봤다. "너 천재냐?" 루카는 작게 이름을 되뇌었다. "데키스 애드리안 히페리온..." 그 이름을 들은 에리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히페리온. 태양의 신의 후계자만이 쓸 수 있는 이름. 행복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에레보스의 명령이 다시 떠올랐다. "...하아." 에리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만 모른 척하면... 이 행복은 깨지지 않을 거야.' ... ..... 잠시 후, 로테가 배를 움켜쥐며 불안한 얼굴을 했다. "저기... 배가 살짝 아파." 그 말에 루카와 에리스의 얼굴이 동시에 하얗게 질렸다. "어?" "진통이야?" "몰라... 싸르르 아픈데..." 두 사람은 곧장 집 안을 우왕좌왕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야, 어떡해?! 너 여신이라며! 뭐 좀 해봐!" "내가 출산의 여신이냐?! 나도 애 안 낳아봐서 몰라!" "로테! 괜찮아?! 숨 쉬어! 숨!" "의사를 불러야 하나?!" "지금 이 숲에 의사가 어딨어, 미친 인간아!" 오히려 둘이 더 난리를 치자, 로테는 가장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둘 다 틀렸어." "왜?" "...똥 마려운 배야." "...뭐?" "요즘 배 부르면서 변비 왔거든." 로테의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루카가 허탈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싸고 와라." 에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먼저다." 두 사람은 로테를 조심스럽게 화장실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후. "꺄아아악!!" 화장실 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뭐야?! 왜 그래?!" 루카와 에리스가 동시에 문을 벌컥 열었다. 바닥에는 맑은 물이 흥건히 퍼져 있었다. "...소변?" "아니." 로테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양수야." "...어?" "나... 진짜 곧 낳을 것 같아." ............ 세 사람은 나란히 굳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쳤다. "어떡해?!?!" “아악!!!” 로테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에 에리스와 루카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일단 에리스! 바닥에 이불 깔아!” “어? 어, 알겠어!” “에리스! 뜨거운 물!” “어!! 어! 기다려 봐!” “에리스! 로테 땀 좀 닦아 줘!” “어!!! 수건 가져올게!” 이럴 때만큼은 둘의 호흡이 기막히게 맞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에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잠깐. 넌 왜 가만히 서서 명령만 하냐?” 루카는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아빠잖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이 미친 인간아!” “야! 니들 계속 장난칠 거면 둘 다 나가!!!” 진통에 날이 잔뜩 선 로테의 외침에 두 사람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넵.” 잠시 후, 에리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아기는 누가 받아?” 로테는 아픈 와중에도 희미하게 웃었다. “에리스, 네가 받아주면 좋겠어.” “뭐? 내가?” “넌 내 여동생 같은 존재니까...” “뭐래. 내가 너보다 더 언니거든?!” 툴툴대면서도 에리스의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 “아무튼... 으악!! 또 진통이!!” 몽글한 분위기도 잠시, 다시 진통이 밀려왔다.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금방 태어날 줄 알았던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고, 로테의 온몸엔 땀이 맺혔다. 루카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조금만 더 힘내, 로테.” “응...!” 얼마 후, 에리스가 다급히 외쳤다. “머리 보여! 로테, 조금만 더 힘 줘!” “으으... 으아아아악!!!” 로테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힘을 짜냈다.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밤.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작은 생명이 세상에 태어났다. “응애애앵! 응애앵!” 에리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아이를 받아 안았다. “...축하한다. 아들이네.” 루카가 넋 나간 얼굴로 물었다. “진짜..? 와.. 나 아빠 된 거야?” “지금 농담하냐? 면 이불이나 가져와!” “아, 그래!” 잠시 후, 포근한 천에 싸인 아기가 에리스의 손가락을 꼭 움켜잡았다. “.....!” 생각보다 따뜻한 아기의 손끝에 에리스의 눈이 흔들렸다. 복잡한 감정을 감추려는 듯 그녀는 서둘러 아이를 로테에게 안겨주었다. “수고했어.” “고마워... 에리스...” 로테는 눈물 어린 미소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루카... 우리 엄마 아빠가 됐어.” 루카는 떨리는 손으로 로테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고마워, 기쁘다 로테.” 세 사람을 바라보던 에리스는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빛조차 들지 않던 차가운 성.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자신. 처음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싶다며 매달렸던 날, 닉스는 그녀를 밀어내며 차갑게 노려봤다. "........." 에리스는 시선을 내렸다. 엄마와 아빠 품에서 사랑받는 이 아이가, 조금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지.’ 그때 루카가 아기의 머리카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근데 이상하지 않냐?” “뭐가?” “나랑 로테는 금발인데... 왜 얘 머리는 보라색이야?” “.........” 그 말에 로테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러네? 진짜 에리스 머리색이랑 똑같다!” 루카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에리스를 바라봤다. “설마... 이 아이는...”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나 여자다?” “누가 뭐라 했냐. 찔려?” “우와... 신기하다.” 에리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돌연변이겠지.” 하지만 로테는 아이를 꼭 안은 채 웃었다. “아니야. 이 아이는 우리 세 사람을 이어주는 끈 아닐까?” “뭐...?” “몰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루카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들이니까 이름은 데키스 애드리안 히페리온으로 하지.” “좋아! 애칭은 애드로 하자.” “...잘 부탁해, 애드.” 로테와 루카는 아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에리스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간 순간. 책상 위에, 분명 없던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뭐야?” 에리스는 천천히 쪽지를 펼쳤다. [누님. 어머님의 봉인석을 찾았어. 내일 만나러 갈게.] “.....!” “아파테...?” 기만의 신. 자신의 동생이 남긴 글씨였다. “어떻게 내 위치를...” 에리스의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겨우 새로운 가족을 얻은 친구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인정 같은 것보다, 이제는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 어떻게든 지킬 수 있어.” 에리스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이 가장 먼저 무너질 사람도,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으흑... 에리스... 갑자기 왜 이런 일이...”“…울지 마”낡은 오두막 안에는 로테의 흐느낌과, 낮게 가라앉은 에리스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리고 있었다.아빠를 뜻하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애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아니겠지.잘못 들은 거겠지.애드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조금 밀었다.끼이익-문이 열리고, 멍한 얼굴의 애드가 안으로 들어섰다.로테는 황급히 눈물을 훔친 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애드, 왜 벌써 들어와? 놀만한게 없어?”애드는 잠시 로테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엄마.”“대체 누가 아빠를 죽인거야…?”로테는 어린아들에게 차마 대답하고싶지않은 질문을 들어버렸다.“이야기... 들었니...?”“들어버렸어.”일곱 살 아이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담담한 목소리.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아들의 모습에 로테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애드에게 달려가그를 힘껏 끌어안았다.“미안해, 애드...”“이제... 검은 숲으로는 돌아가지 못해...”로테의 말에 애드는 참고있던 울분을 터트렸다.“추억의 장소라며...”“아빠랑 엄마가 만난 곳이잖아!”애드는 목소리가 갈라질정도로 화를냈다.“그리고 아빠를 죽인 놈이 나쁜 거잖아!”“왜 우리가 숨어 살아야 하는 건데? 난 그놈 용서못해!! ”애드의 말에 로테는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애드... 엄마도 분하고 억울해.”“당장이라도 찾아내서 찢어 죽이고 싶어.”“하지만 복수를 시작하면... 그 불행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갉아먹고 말아...”애드는 로테의 말을 듣지않고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갉아먹혀도 괜찮아!”“이미 아빠는 돌아오지 못하고... 행복도 다 부서졌는데!”로테는 떨리는 손으로 애드의 뺨을 때렸다.찰싹-!“아야...”“애드.”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넌 아직 어려… 부서진 행복은... 다시 이어 갈 수 있어.”“엄마는 그 빌어먹을
“헉... 헉...!”에리스는 의식을 잃은 로테를 업은 채, 숨이 찢어질 듯 숲을 달리고 있었다.등에 느껴지는 로테의 체온은 점점 식어 가고 있었다.달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애드의 행방으로 가득했다.“그 꼬맹이는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그때였다.맞은편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에리스는 즉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을 노려보았다.혹시 놈이 다시 쫓아온 건 아닐까.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와악-! 이모!”수풀을 헤치고 애드가 튀어나왔다.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하아....”에리스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놀랐지? 이모!”애드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풀어졌던 긴장도 잠시,에리스는 곧바로 표정을 다잡고 낮게 말했다.“애드. 장난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달려야 해.”애드에게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내 손 잡아.”“응...?”그제서야 애드는 에리스 등에 업힌 로테를 발견했다.“어!? 이모, 엄마는 왜 이래? 다쳤어? 아빠는?”“......”애드의 물음에 에리스의 머릿속에서 헬리오스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피를 토하던 얼굴.끝내 다 하지 못한 말.에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우린 지금 술래잡기 중이야.”“뭐?”“아빠가 술래고, 엄마는 도망가다 다쳤어.”애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른 셋이서 무슨 술래잡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해?”“질문은 나중에.”에리스는 애드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우선 달리자.”“...응!”세 사람은 한참 동안 숲속을 내달렸다.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릴때 쯤,숲 끝자락, 절벽 근처에 버려진 낡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에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문을 밀어 열었다.끼이익-“일단 여기서 쉬자.”그녀는 로테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리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아파테에게 속아 이 빌어먹을
"그리고, 내 어머니는 밤의 여신 '닉스'지. "에리스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헬리오스의 표정이 굳었다."네가... 에레보스와 닉스의 딸이라고?”"그래"헬리오스는 닉스라는 이름을 듣자 복잡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에리스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내 아버지 에레보스가 말했어. 어머니의 깊은 잠을 깨우기 위해선 너의 힘이 필요하다고.”"나는 너에게 확인하고 싶은것이 두개 있어."에리스는 괴로운 표정으로 낮게 중얼거렸다.“첫번째. 신들은 자식을 낳을 때 품은 감정대로 아이의 본질이 정해진다고해.”“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불화’를 품었지.”“......"“왜 그랬을까.”에리스의 질문에 헬리오스의 얼굴에는 깊은 죄책감이 드리웠다.“그래... 닉스가 그런 감정을 가질법 해.”그는 힘없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시절... 나는 닉스를 버렸으니까.”헬리오스의 말에 에리스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믿고싶지 않았던 아파테의 말이 진실이 된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때 에레보...”헬리오스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아아.”낯선 목소리가 헬리오스의 말을 끊어내고 숲을 가르며 끼어들었다.“찾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낯선 남자가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오랜만이에요. 헬리오스.""넌 누구지?"헬리오스가 낯선 남자를 경계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뒷걸음질 치는 헬리오스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그리고 천천히, 너무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왔다.“아아, 헬리오스... 이렇게까지 날 애타게 하다니.”에리스가 멍하니 낯선 남자를 바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뭐야 저녀석은."그순간.남자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력이 뱀처럼 허공을 가르며 쇄도하며 헬리오스의 가슴을 관통했다."커헉...!"붉은 피가 헬리오스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남자는 쓰러지려는 헬리오스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어 억지로 세웠다.“인간과의
“에리 이모? 거기서 왜 벌러덩 누워 있어?”멀리서 애드가 에리스가 누워있는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에리스는 고개를 돌린 채 재빨리 눈가를 훔쳤다.“요즘은 누워서 일광욕하는 게 건강에 좋다더군. 그래서 누워 있었다.”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이모도 이제 건강 챙길 나이지...”“......”“근데 아무리 좋은 민간요법이라도 나이 앞에서는... 아니, 아니다. 역시 힘내, 이모!”애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에리스를 진심으로 응원했다.에리스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아기일 땐 귀엽더니, 저 얄미운 주둥이는 지 아비를 닮아 가는구나.”애드는 씩 웃었다.“그게 내 매력 아닐까?”“말이나 못하면 밉기라도 하지.”“아, 맞다! 이모, 이것 좀 봐.”“뭔데?”애드는 두 눈을 감고 잠시 집중했다.이내 그의 손끝에서 따뜻한 하얀빛이 송글송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파아앗-“....!”그걸 본 에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애드는 잔뜩 으스댄 얼굴로 말했다.“어때? 예쁘지? 빛의 마법이야!”“너... 언제부터 그런 걸 쓸 줄 알았지?”“아빠가 알려 줬어!”애드는 해맑게 웃으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흔들어 보였다.“그리고 이것도 선물 받았다?”에리스의 시선이 목걸이에 꽂혔다.‘저건... 빛의 힘이 담긴 목걸이잖아.’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에리스는 애드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애드.”“응?”“절대로.”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두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그녀의 말에 애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에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욕심쟁이라서. 나만 보고 싶거든.”“아! 그렇구나!”애드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아, 맞다! 이모! 엄마가 밥 먹으래!"“.....”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버섯이겠지.”“버섯이야!”“.........”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이모
“에리 이모, 삶이란 무엇일까?” “.....하?” 찬란하고 따뜻한 봄의 아침. 어느새 일곱 살이 된 애드는 에리스와 마주 앉아,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삶 말이야. 삶. 죽음과 삶에 대하여! 이모는 어떻게 생각해?”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애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삶은... 계란.” “.......” 에리스의 시답잖은 농담에 애드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 좀 풀어라. 농담이잖아.” “그럼 이번엔 진지하게 대답해 봐, 이모.” “삶이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 죽어 가는 과정이지.” 에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지금 일곱 살 상대로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아. 재미없다.” 애드는 단번에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깥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루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어어, 그래. 애드리안.” 루카는 도끼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에리스가 또 헛소리하더냐?” “아니. 이모 수준이 낮아서 못 놀아주겠어.” “뭐?!” “푸하하하! 역시 아이들은 본질을 정확히 보는군.” “진짜 몇 년을 같이 살아도 재수 없어, 너희 둘은.”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칠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레보스도, 아파테도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리스는 이제야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버섯을 한가득 캐 온 로테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에리스! 이것 좀 들어 줘!” “와... 저 버섯은 대체 어디서 저렇게 끝도 없이 자라는 거야...” 에리스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로테의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
다음 날 아침.“뿌애애애앵-!”애드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로테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에 기대 있었고, 루카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에리스는 창가에 앉아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또 운다. 이번엔 네가 좀 봐줘, 로테.”"....루카..""왜...?"“나 배도 고프고, 잠도못자서 기운도없고...""혹시 아기의 뜻이 엄마 아빠를 아사시키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라는 말이 아닐까...”“뿌애애애애앵!!!”“가요... 갑니다...”밤새 한숨도 못 잔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애드에게 다가갔다.루카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고 흔들었다.“자, 손님. 이번엔 무엇이 불만이십니까?”“으아아앙!!”“.........”“모유는 아까 드셨잖아요, 손님.”“으아아아앙!!!”그 순간, 기저귀 사이로 익숙하고도 불길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루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로테. 이번엔 똥이래.”“건조시켜 둔 기저귀 가져올게...”밤새도록 기저귀 갈기, 세탁, 건조, 다시 갈기, 다시 세탁을 반복한 두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에리스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와... 무슨 무한 가내수공업 지옥이냐.”그때였다.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스르륵.그 기운을 감지 하자마자 에리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결국 왔구나. 아파테.’육아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에리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집 앞 숲길.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긴 머리카락, 자신과 닮은 뿔을 가진 남자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누님. 오랜만입니다.”“아파테. 자리를 옮기자.”“아아, 이해합니다.”“지금 ‘가족’처럼 여기는 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요.”“.....!”정곡을 찔린 에리스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곧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하. 내가 인간 따위를 가족처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