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우성은 조선 시대 아줌마의 낯선 모습에 기가 눌렸다. 자신을 보는 시선이 날카로워, 그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 금선은 우성을 바라보며 그의 태도를 살폈다. 연서는 그런 둘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했다. 그녀는 버선발로 차가운 바닥만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곧 옷매무새를 정돈한 우성이 금선과 마주했다. 그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우성의 인사에 금선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아무렇지 않게 정중히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 기가 찬 금선은 고개를 들며 짧은 침묵을 끝냈다. “나리는 뉘십니까?” 연서가 조심스레 그 둘 사이를 막아서며 대답했다. “이분은 설서초라는 곳에서 오신 분으로, 어젯밤 뒷산 어귀에서 쓰러져 계셨던 분이에요. 시간이 늦어 하룻밤만 머물고 가신다 하셨어요.” 그녀는 민망한 마음에 말끝을 조금 흐렸다. 연서의 대답에도 금선은 우성에게서 시선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진이 나서서 말했다. “참말이에요. 혼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호랑이 밥이 될 뻔했어요.” “...” 두 사람의 변호에도 금선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연서와 어진도 눈치만 살필 뿐,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마당에 무거운 침묵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금선이 물었다. “직접 말씀하실 수는 없으십니까?” 우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제처럼 예의 없는 말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자신이 조선 시대에 왔을 가능성을 인정한 시점부터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람들의 어투나 화법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해 보려 노력했다. “...제 이름은 견우성이라고 합니다.” 금선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견우?” 우성의 질린 표정이 잠깐 스쳤다. “아니... 견, 우성이요.” 우성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서초 강변에서... 동물의 병을 치료하던 사람입니다. 남원에 볼 일이 있어 이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 이후의 일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말에 어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연서 역시 가만히 우성을 바라보았다. 우성은 자신이 한 ‘내려왔다’는 말의 파장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갈 때처럼 말했을 뿐이었지만, 지금 이 여자들에게 그 말은 하늘에서 왔다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금선이 우성에게 말했다. “이리 가까이 나오십시오. 그 말이 사실인지를 내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우성은 몸을 숙여 문지방을 넘었다. 큰 키가 처마에 닿을 듯해 마당까지 내려온 뒤, 옷을 정돈하고 세 사람 앞에 당당히 몸을 세웠다. 그 모습을 본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낮에 보니 그의 키는 더욱 크고 풍채는 당당해 보였다. 머리는 짧았고, 수염이 없어 얼굴은 매끈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역시 그의 옷차림이었다. 몸에 딱 붙어 체형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들에게는 실로 야한 차림이었다. 그럼에도 격식이 느껴지고 매우 고급스러운 직물로 짜인 것 같은, 그야말로 하늘의 비단 같은 옷이었다. 세 사람의 시선에 우성은 조금씩 낯이 뜨거워졌다. 도무지 거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선에, 우성이 주먹을 입에 대며 작게 헛기침했다. 금선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몸을 못 가누시던 것치고는 썩 잘 서 계십니다, 그려.” “아... 실제로 많이 다치기는 했어요.” 우성이 바지를 걷어 자신의 멍든 정강이를 보이려 했다. 세 여자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어진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유, 참! 아침 댓바람부터 이 무슨 해괴한 행동입니까?” “나리, 이곳에서는 속살을 여인들에게 그리 쉽사리 드러내면 아니 됩니다.” “...” 연서의 말에 우성이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다시 바지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괜히 오해만 더 생긴 것 같아 우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금선은 우성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 그가 명인이나 왜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흠흠... 괜찮습니다... 하늘의 예법과 규율은 지상과는 많이 다른가 봅니다. 생김도 행색도 그렇고, 하는 말씨도 다르니 말입니다.” “하늘...? 어... 뭔가 큰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짐승의 병을 돌본다 하셨지요?” 금선이 우성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예.” “내 마의나 우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뵙는 것은 처음이니 지금 드리는 우매한 질문을 이해해 주시지요. 하늘에서는 목동들이 치료도 할 줄 압니까?” 우성은 당연히 대꾸하지 못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연서가 금선에게 다가가 말을 올렸다. “제가 어젯밤에 여러 질문으로 나리를 괴롭혀 보았으나, 하늘과 관련된 언행을 삼가시는 것 같았어요.” “그러냐? ...내 그렇잖아도 이리 보다 보니 신통하여 자꾸 묻게 되는구나.” 연서와 금선이 속삭이는 걸 본 우성은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금선은 생각하더니 다시 그에게 물었다. “어떤 연유로 여기에 내려오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돌아가실 수는 없습니다.” “...네?”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우성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금선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오셨다 한들, 제 딸과 한 방에서 동침하셨으니 이 아이를 책임지셔야지요.” 우성과 연서 두 사람은 크게 놀라 허둥댔다. 우성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월매님(?)! 그건 정말 큰 오해예요...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진짜 절대 없었어요. 우린 진짜 잠만 잤어요.” “네, 맞아요, 어머니! 제발 믿어주세요. 그리고 제가 여태껏 이런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연서는 자신의 순결을 다급하게 변호했다. 하지만 금선은 쉽게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거야, 너 좋다던 남자가 없었으니 그랬던 거 아니냐? 유혹 자체가 없었는데 뭘 유혹에 강했던 것처럼 말을 하냐?” 잔인한 금선의 말에 연서는 다시금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자존심이 상한 연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이 진짜... 너무하시네, 진짜로...” 연서의 기세를 눌러버린 금선이 우성에게 계속 말했다. “아무튼, 그런 줄로 아십시오. 밤중에 아녀자 방에 들고, 동이 트기 전에 함께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진이 너.” “네, 네?” 한참을 구경하던 어진이 놀라 대답했다. “아침에 네 눈으로 본 것을 똑똑히 고해라.” “그게...” 어진이 연서와 우성을 쳐다보았다. 금선은 오가는 시선을 보며 확신에 찬 말투로 재촉했다. “어서 말해라! 네 언니 감싸 줄 생각 말고.” “...방문을 열었더니... 두 분이 끌어안고 이불 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계셨습니다.” 연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하... 맞긴 한데... 와...” 우성도 처음 듣는지 충격받은 얼굴로 어진에게 말했다. “제, 제가요? 아니... 예?” 두 사람의 당황함을 증거 삼아 금선이 판결을 내렸다. “나리는 제 딸아이를 책임지십시오.” “...!” 우성과 연서의 시선이 서로에게 얽혀들었다. --- 아침 햇빛이 동헌 마당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밀자, 바깥의 공기가 따스해지고 있었다. 밤사이 맺힌 냉기가 조금씩 풀리고, 처마 밑에 맺힌 물방울이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예방 아전은 이른 아침부터 자리에 나와 장부와 문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조심스레 인기척이 들렸다. “나리, 교방의 기생 홍란이 와 있사옵니다.” 아전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홍란이...? 들라 해라.”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문을 열고 홍란이 들어왔다. 소복 차림에 맨얼굴이었지만, 그녀는 남원 제일의 미녀답게 그 수수한 차림으로도 아름다웠다.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아 쥔 채 아전에게 예를 갖추어 몸을 숙였다. 아전은 그녀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며 물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냐.” 홍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가, 차분하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아뢰어야 할 것이 있어 이리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홍란은 한 걸음 더 다가와 말없이 소매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어 내밀었다. 아전은 그 종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豔蕊嗤蠶貌不姝 春殘百卉色先枯 誰知素繭藏長縷 遂作華裳覆汝軀 “화려한 꽃이 누에의 생김새를 비웃는다니... 춘향이 쓴 글이냐?” “역시, 뛰어난 직감이십니다, 나리.” 홍란이 미소 지으며 아부했다. 아전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보니 참으로 뛰어난 시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홍란이 슬픈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송구하지만, 사기는 줄곧 저의 외모를 시기해 왔습니다. 또한 근래 들어 부사 나리의 총애까지 받으며 유리한 위치에 오르자, 더욱 강성한 모습을 드러내며 제게 이런 시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겉만 화려하다가 먼저 시드는 꽃에 빗대고, 자신을 끝내 그 꽃의 몸을 덮을 비단을 만드는 누에에 빗대어 저를 능욕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에 어떻다는 것이냐? 네 기분이 상했으니 혼내주랴?” 아전이 조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홍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저의 기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나리.” “...허면?” “다만, 그녀가 이 시를 제게 줄 때 기생년 하나를 시켜 이 시를 교방에서 낭독하게 했사옵니다.” 아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전하께서 승하하신 이 슬픈 시기에 이런 시 짓기를 즐기며 교방의 분위기를 흐트리는 것은 이 관아의, 이 나라의 법도를 흔드는 것이 아닙니까? 당연히 부사 나리께 아뢰어야 하는 줄로 압니다.” 그 말은 결국 이 일을 동헌으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뻔히 보이는 수였다. 그러나 쉽게 피할 수 있는 수는 아니었다. 그녀가 나라의 법도까지 끌고 와서 따졌기 때문이었다. “...네가 일을 크게 벌이려고 작정을 하고 왔구나. 정녕 이렇게까지 춘향을 괴롭혀야 하느냐?” 아전이 화가 난 듯 홍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홍란은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괴롭히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나리. 저는 그저 교방의 질서와 예법을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 그녀의 능청스러운 말에 아전이 혀를 끌끌 찼다. “에잉, 쯧쯧...” “이리 춘향을 편애하시니, 소녀들은 서운할 따름입니다.” “...시끄럽다. 이 일은 부사 어르신과 상의할 테니 이만 나가라.” 홍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전이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 한편, 연서는 옷차림을 단정히 하며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머리도 다시 빗어 올린 그녀는 방 안을 가볍게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섰다. 기다리고 서 있던 우성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 했어요?” 여전히 바짝 붙는 우성 때문에 살짝 당황한 연서는 조금 뒷걸음쳤다. “네, 이제 저는 출근해야 합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떡하죠?” 진지하게 묻는 그의 얼굴을 연서는 이리저리 살폈다. “제가 올 때까지 어진이와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계시지요. 제가 최대한 일찍 와서 다시 어머니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우성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으나 이러다가 자기도 늦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녀가 몸을 숙여 인사하자, 우성도 꾸벅 인사를 받았다. 안방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금선은 늦은 아침을 먹으며 어진에게 말했다. “어째 네 언니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 자존심이 상하는구나. 저 사내를 설득해야지 왜 나를 설득하려 드는지 원.” 어진이 대답했다. “그렇죠? 저도 그래 보여요. 어제도 자꾸 굳이 자기 방에서 재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 금선이 말없이 어진을 노려보았다. 어진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애써 웃으며 말을 돌렸다. “아하하... 그나저나 저분을 어떻게 여기에서 살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여자만 셋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오면 온 동네가 들썩일 텐데...” “그렇지 않아도 계속 생각 중이다.” 두 사람의 수저가 식기와 부딪히며 달그락거렸다. 복스럽게 먹는 어진을 보며 아주 작은 미소를 한 번 지은 금선은 다시 고심에 빠졌다. 그녀에게 우성의 등장은 자신의 노처녀 딸을 시집보낼 둘도 없는 천운의 기회였다. 결국 금선은 먹는 것도 멈춘 채 팔짱을 끼며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예? ...고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