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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유젠
온서연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오전이었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온 그때 마침 배도현이 들어왔다.

“깼어? 아직도 어지러워?”

배도현의 갑작스러운 반말에 온서연은 흠칫했다가 느릿느릿 침대로 돌아가며 대답했다.

“어지러워요. 토할 것 같아요.”

“가벼운 뇌진탕이야. 가드레일에 조금만 더 세게 박았어도 우린 비즈니스 같은 거 할 필요 없이 바로 네 장례식을 할 뻔했어. 아, 말 편하게 해도 괜찮지?”

“그러세요.”

온서연은 배도현이 그녀의 작은 테이블 위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눈을 내리깔자 검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대표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농담이 꽤 독설적이었다.

막 전복죽을 열려던 배도현이 그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온서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잠시 멍해진 온서연은 무슨 뜻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로 그때 배도현이 그녀의 뒷머리를 감싸 쥐고 입을 맞췄다.

“읍...”

온서연의 신음이 남자의 입술에 온전히 삼켜졌다.

배도현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자신에게 밀착시키고는 이 감각을 똑똑히 기억하라는 듯 거칠고 사납게 키스했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본래도 어지럽던 온서연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녀는 배도현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반항을 멈추었다.

고분고분 눈을 감고 그가 멋대로 그녀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참이 지난 후 문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온서연이 피하려 하자 배도현은 그녀를 놔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미친 듯이 파고들며 입을 맞췄다.

온서연의 입술 사이로 애원하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나서야 배도현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면서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해진 두 눈으로 당황해하며 문 쪽을 쳐다봤다.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서류를 든 채 공손하게 문가에 서 있었다.

온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또...’

배도현이 그녀의 턱을 쥐고 다시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 눈빛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억눌려 있었다.

“이제 정신 차렸어? 날 뭐라고 불러야 하지?”

“배도현 씨...”

배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고 온서연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게 물들었다.

그저 이름 한번 불렀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온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누가 왔어요.”

배도현이 비웃듯 말했다.

“어젯밤의 그 패기는 어디 갔어? 이젠 무서워?”

그가 손을 들어 상대방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기태윤이라고 내 수행비서야.”

기태윤이 다가와 온서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온서연 씨, 안녕하세요. 제 명함이에요. 앞으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지시하시면 됩니다.”

명함을 건네받던 온서연은 그 말에 흠칫했다가 배도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배도현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본론부터 얘기해.”

기태윤이 보고했다.

“육 본부장님이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변 대표님 프로젝트 건으로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는 것 같습니다.”

배도현이 곁에 앉아 온서연과 함께 죽을 먹으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데이터 몇 개 틀린 바람에 우리 회사에 8억이 넘는 손실을 안겼어. 변주환 같은 돈벌레가 한 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뱉어낼 리가 없는데 대체 뭐로 만회하겠대?”

“육 본부장님 말로는 변 대표님이 다시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요. 만약 실패한다면 본부장직을 내려놓고 말단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어요.”

배도현이 온서연을 쳐다봤다. 그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한번 해보라고 해. 날 찾아올 필요 없고 성사되면 그에 맞는 보상을 주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기태윤이 병실을 나간 후 배도현이 물었다.

“뭐 할 말 없어?”

온서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죽 맛이 되게 익숙한데 어느 가게에서 사신 거예요?”

배도현이 살짝 멈칫했다. 눈동자 깊은 곳에 가벼운 깃털이 수면을 스치듯 옅은 파문이 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 비서가 사 왔어. 설마 내가 직접 죽을 사 왔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랬군요. 맛있네요. 다음에 기 비서님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전 죽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배도현이 화제를 돌렸다.

“오후엔 일이 있어서 못 와.”

“알았어요.”

...

저녁.

온서연이 병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때 육경찬이 뛰어 들어왔다.

“여보!”

그가 온서연의 얼굴을 감싸 쥐더니 이마에 감긴 붕대를 보고는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너한테 서류를 가져다주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이렇게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의사는 뭐래? 심각하대? 후유증은 없고?”

육경찬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온서연은 순간 청춘의 패기로 가득하면서도 오직 그녀에게만 헌신적이었던 대학 시절의 육경찬을 다시 본 듯한 착각에 빠졌다.

“서연아, 말 좀 해봐. 많이 아파? 다 내 탓이야. 앞으로는 절대 네 곁에서 한 발짝도 안 떨어질게.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

아주 잠깐이지만 온서연은 자신이 무언가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여보.”

온서연이 육경찬을 불렀다.

“응, 나 여기 있어. 말해.”

그녀가 육경찬의 손을 살포시 쥐며 억울하고 가여운 눈빛을 지어 보였다.

“여보, 어젯밤에 어디 있었어?”

그 순간 남자가 움찔하여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육경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계속 병원에 있었지. 네가 아침 가져오길 기다렸는데 안 와서 간호사한테 물어봤더니 그때야 알게 됐어.”

“서연아, 이렇게 크게 다쳤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네가 사고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육경찬이 또다시 화제를 온서연에게로 돌렸지만 온서연이 다시 추궁했다.

“어젯밤에 진짜 병원에 있었어?”

“그럼. 내가 병원 말고 어딜 가?”

“너한테 전화하니까 전원이 꺼져 있던데? 그래서 병원에 전화해 봤더니 네가 없다고 했어.”

육경찬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데는 단 1초면 충분했다.

“실은 어젯밤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몰래 회사에 다녀왔어. 네가 서류를 잘못 가져가서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내가 회사에서 엄청난 징계를 받았거든. 네가 자책할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온서연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그럼 다 내 잘못이네.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네 발목이나 잡고.”

육경찬이 관대한 척했다.

“무슨 소리야? 난 널 탓하지 않아. 너만 무사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다만 그 프로젝트를 만회해 보려면 오늘 밤에 그 고객을 만나야 하거든. 오늘은 같이 못 있어 줄 것 같아.”

온서연 역시 너그럽게 대답했다.

“일이 중요하지. 다녀와. 난 괜찮으니까.”

육경찬이 위로의 말을 한바탕 늘어놓은 뒤 서둘러 떠났다.

그가 떠나자마자 문나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병실로 들어왔다.

“나영아, 여긴 어쩐 일이야?”

문나영이 툴툴거렸다.

“내 정보력이 얼마나 좋은데. 사고 났는데도 감히 나한테 숨겨?”

“숨기긴. 네가 와서 챙겨주기만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문나영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서연아, 부부 사이 일에 내가 끼어선 안 되지만 오랜 친구로서 꼭 한마디 해야겠어.”

“응, 해.”

“육경찬이 똑똑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건 좋은데 그 수작을 너한테까지 부리는 거 아니야? 우리 아빠 말로는 걔가 계약서를 잘못 썼다던데 아까 문밖에서 들어보니까 네가 서류를 잘못 가져다줬다고 하더라?”

“너 이거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해. 안 그러면 네가 다 독박 써. 도와주려고 심부름해 준 네가 무슨 죄야?”

책장을 넘기던 온서연의 손이 멈칫했다.

“나영아, 넌 육경찬이 좋은 사람 같아?”

문나영이 입을 삐죽거렸다.

“뭐, 나쁘진 않지. 우리 아빠조차도 걔 보고 젊고 유능하다고, 내 주변 재벌 2세들보다 훨씬 낫다며 앞날이 창창할 거라고 칭찬하시니까.”

“하지만 난 너도 전혀 안 꿀린다고 생각해. 부모님 이혼하시고 너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고 주관도 뚜렷했잖아. 판단력도 나보다 훨씬 좋고. 성적도 좋고 예쁘고 일도 잘해서 졸업하기도 전에 방송국에 스카우트됐었지.”

“그때 네가 육경찬이랑 무슨 생명의 은인 같은 인연이 있다고만 안 했어도 내가 진짜 괜찮은 재벌가 도련님 하나 골라서 너한테 소개시켜 줬을걸.”

온서연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낮게 속삭였다.

“그러게. 우리 부모님도 각자 새 가정을 꾸리셔서 명절 때면 갈 곳이 없었어.”

“내 인생에 원래 기댈 곳 하나 없었거든. 그런데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 누군가 널 구해줬다면 너도 그 사람 곁이 평생의 자기 집이라고 느낄 거야.”

문나영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서연아, 왜 그래? 육경찬이 너 괴롭혀?”

온서연이 문나영의 손을 꼭 잡았다.

“나영아, 난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믿어. 그래서 이 일을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이거, 육경찬이 바람피우는 상대의 전화번호야. 누군지 좀 알아봐 줘. 평범한 여자가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너희 그 바닥 사람들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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