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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딸기팝콘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28 18:52:32

대한병원 외과.

그 중심에는 늘 이름이 함께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철중.

대한병원 재단 이사장.

그리고 유재원.

현 대한병원 원장.

두 사람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외과 의사들이었다.

수많은 수술을 집도했고,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얻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유봄.

이사장의 손녀이자, 원장의 딸.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길 위에 있는 사람.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병원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를 볼 때면 한 번쯤은 같은 생각을 했다.

“결국 저 자리에 올라가겠지.”

하지만, 유봄은 이름에 기대지 않았다.

아니, 기대지 않으려 했다.

같은 외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리 두려 했다.

그래서였을까.

유봄을 평가하는 말은 항상 비슷했다.

“실력은 인정.”

“근데…”,

그 뒤에 붙는 말은 조금씩 달랐다.

“집안 때문인지, 본인 실력인지 모르겠어.”

그 말은 직접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익숙한 시선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유봄은 더 많이 서 있었고, 더 오래 버텼다.

남들보다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고, 더 늦게 나왔다.

피곤하다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증명해야 했으니까.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그들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였다.

수술실 안에서만큼은, 누구도 그녀를 다르게 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이름도 배경도 의미 없었다.

오직, 손과 판단만 남으니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밝은 조명이 꺼진 자리에서 현실의 공기가 다시 밀려들어왔다.

마스크를 내리고, 장갑을 벗어냈다.

손끝이 약간 얼얼했다.

길었던 긴장이 이제야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사들.

유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복도로 걸어 나왔다.

잠깐,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짧은 울림.

한 번.

유봄은 자연스럽게 화면을 꺼냈다.

메시지 하나.

발신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진성 교수

[밥먹자]

유봄은 화면을 잠시 내려다봤다.

평소처럼 짧고 단정한 메시지였다. 마치 방금 수술을 함께 끝낸 동료에게 건네는 자연스러운 말처럼.

잠깐 고민하던 유봄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다가, 결국 답장을 보냈다.

[ 나… 지금 좀 자고 싶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유봄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유난히 피로가 깊게 쌓였다.

잠시 후, 다시 진동이 울렸다.

 [수고했다.]

한 줄.

밥 먹자는 말보다 더 담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유봄은 휴대폰을 잠시 쥔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수고했어요.”

그 말은 전송되지 않은 채, 조용히 복도 안에 남았다.

***

파티가 끝난 그날 밤, 강민재는 이상하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장면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쓰러진 사람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다가가던 한 여자.

주변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시선.

그리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 자리를 지키던 그 여자.

'우린 꼭 만날거야~ 내가 당신을 봐 버렸으니까.'

강민재는 태어날 때부터 ‘삼진건설’이라는 이름과 함께 자라왔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건설사, 삼진건설의 회장 의 유일한 후계자, 그리고 그 집안의 하나뿐인 손자.

그의 존재 자체가 곧 회사의 미래로 여겨지는 위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일반적인 환경과는 다른 교육을 받아왔고, 성장 과정 역시 자연스럽게 후계자 코스 위에 놓여 있었다. 해외 유학을 통해 시야를 넓혔고, 돌아온 이후에는 현장과 이론을 모두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외형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모델보다도, 배우보다도 뛰어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균형 잡힌 체격과 단정한 비율.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인상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존재감까지 더해져, 어디에 서 있든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소의 강민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말수는 적고,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으며, 상황을 차분하게 관찰하는 데 익숙했다.

겉으로는 차갑고 거리감 있는 인상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정확한 판단을 중시하는 이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업무에 들어가는 순간은 달랐다.

회의실 안의 강민재는 누구보다 빠르게 핵심을 짚고,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방향이 정해지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때의 그는 평소의 절제된 모습과는 달리, 한층 더 선명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일할 때 가장 압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이성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

감정보다 판단을 우선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타입.

그런 강민재에게, 파티에서 마주친 단 한 장면은 예외였다.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처음으로 그의 기준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처음으로, 업무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강민재가 그녀를 찾기 위한 계획을 세워가던 바로 그때, 현실은 그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해외 지사 사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현지 협력사와의 계약 이슈로 인해 프로젝트 전체의 진행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회의실 공기는 금세 무거워졌다.

자료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보고가 이어질수록 문제의 심각성은 더 분명해졌다.

“현재 상태로는 현지 대응이 늦어질 경우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외부 변수까지 겹치면 일정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회장이었다.

국내 최고 대형 건설사, 삼진건설의 수장인 강두수회장은 한참을 자료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강민재를 바라봤다.

“민재야.”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결정은 내려진 상태였다.

“이건 네가 직접 가서 정리해라.”

단순한 업무 지시가 아니었다.

현장을 직접 보고, 판단하고,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강민재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짧고 단정한 대답.

회의실 안의 누구도 그 선택에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회사의 중요한 해외 사업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

다른 하나는 그녀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동선이었다.

출국이 결정된 순간, 강민재의 머릿속은 더욱 명확해졌다.

일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마주하게 될 그녀를 향한 흐름.

그 두 가지를 모두 안은 채, 공항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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