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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Penulis: 일설연우
유소영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 사양 말고 받아주세요. 어차피…”

그녀는 일부러 숨을 고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는 우리 집안에서 푼돈에 불과하거든요.”

고 부인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참으로 고약한 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엄청난 재산이 고작 푼돈이라니!

“되었다. 이 일은 네가….”

“어머님! 부군의 출세와 관련된 일입니다. 제게도 뭔가를 할 기회를 주십시오!”

유소영은 격앙된 말투로 고집했다.

출세가 뜻하는 무거운 의미가 고 부인의 가슴이 와닿자, 고 부인은 순간 갑갑해졌다.

잠깐의 침묵 후, 고 부인은 임유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되었다. 유정이 네가 일단 먼저 받아 두거라.”

임유정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예, 어머님.”

난향원으로 돌아온 아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아씨, 왜 혼수를 임유정에게 주신 겁니까?”

유소영은 곱디고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영향원에서 내 혼수를 언제 내놓겠어?”

그 말을 들은 아민은 더욱 분개해했다.

고 부인은 검소한 가풍을 실천한다는 말도 안 되는 구실로 유소영의 혼수를 봉인해 두고 돌려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이는 강제로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아민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씨, 혼수품들이 임유정의 손에 들어가면 혹 그 여자가 다 써버리면 어떡하나요?”

유소영은 확신에 찬 어투로 답했다.

“감히 그러지는 못할 거야.”

이는 인간의 본성을 안다면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문제였다.

임유정이 오늘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고장훈이 반드시 작위를 하사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유소영과 공로를 나누는 것을 허용할 리 없었다.

아민이 또 물었다.

“그럼 언제 되찾아오실 건가요?”

유소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때를 기다려야지.”

아민은 부지런히 유소영의 머리 장신구를 풀었다.

“아씨, 오늘 저녁에도 세자께 침을 놓아드리러 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소인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세자는 지금 들을 수 있으신가요?”

그건 유소영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동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무예를 익힌 사람이라면 침술 한 번에서 세 번 정도면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세자처럼 병약하여 무공을 아예 모르는 분은 그 이상이 필요할 테지.”

아민은 약간 실망한 어투로 말했다.

“세자께서 빨리 청력을 회복하고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네요. 불륜 현장을 친히 보고 잡으셔야죠!”

그날 오후.

군영에서 돌아온 고장훈은 먼저 난향원을 찾았지만, 유소영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종에게 물었다.

“부인은 어디 계시느냐?”

그는 아녀자로서 처소에서 부군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고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종이 답했다.

“부인께서는 친정에 가셨습니다.”

고장훈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불만이 극에 달했다.

‘분명 내가 작위를 하사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돌아가서 친정아버지와 뭔가 일을 꾸미려는 것이야.’

유씨 집안의 속셈은 너무나 뻔했다.

그동안 물심양면 뒷공작을 한 것은 모두 황실 상단이 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유소영이 처신을 잘한다면 작위 문제가 결정된 후, 유씨 집안을 도와주는 것을 꺼리지 않을 것이다.

한편, 유씨 저택.

아민이 서재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 유 대감의 분노의 호통이 들려왔다.

“고장훈 그 망할 놈이 뭐가 어째? 감히 그런 식으로 내 딸을 모욕하다니!”

분노에 치를 떠는 유 대감에 비해 유소영의 표정은 담담하고 평온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말로 아버지를 달랬다.

“크다고 생각하면 큰일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에요. 사실 귀족가에 시집을 간 이상, 언젠가는 부군이 첩을 들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양반가 사람이 저 하나만 바라볼 리 없으니까요.”

유 대감은 안쓰러운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

그의 딸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아비가 경솔했구나. 애당초 집안 배경이 비슷한 혼처를 골랐더라면 네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유소영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귀족 가문이든 평범한 집안이든 사람 마음은 변하기 쉬운 법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초심을 지키며 평생 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어요?”

유 대감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딸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그 자식이 형수랑 합방하는 걸 개의치 않는다는 거니?”

유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첩실을 들이는 것은 용납할 수 있지만, 겉과 속이 다르고 어리석으며 오만한 것은 용납할 수 없죠. 하물며 그 사람은 그 형수를 위해 저를 내치려고 하는걸요.”

“감히!”

유 대감은 분노를 참지 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유소영은 여전히 냉정함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속세는 늘 분주하고 시끄러운 법이고 사람 마음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법입니다. 우리 집안이 재상부와 권세를 비할 바는 못되니, 임유정을 품고 저를 내치려는 것도 인지상정이지요.”

유 대감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해서 넌 어찌 할 생각이냐? 이혼을 원한다면….”

“부군을 바꾸려고요.”

유소영은 아버지의 말을 끊으며 싸늘한 웃음을 눈에 담았다.

“누구로 바꾼다는 것이냐?”

유소영은 잠자코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고장훈이나 고 부인, 심지어 충용 후작보다도 더 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요.”

유 대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딸은 그 죽은 이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로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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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군의 형님   제429화

    고준형의 어조는 침착했다.“항렬로 따지면 저는 아랫사람이고, 신분으로 보면 뱃속의 아이의 큰아버지입니다. 어찌 처리할지는 제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그 냉담한 말에 고 부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왕씨는 그 즉시 안색이 변하며 조급해하기 시작했다.“동서, 뾰족한 수가 없다면 이 아이는 지우는 게 낫겠네!”그 말을 들은 고 부인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안 됩니다! 형님, 절대 그런 생각 마십시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안심하세요,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영 대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말은 쉽지,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냐? 네가 결정을 내릴 수나 있어?”고 부인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이렇게 하죠. 혼례를 미루고 선화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다른 어미를 찾아주는 겁니다. 어떻습니까?”왕씨는 고 부인의 의중을 눈치채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구를 찾는다는 게야?”“장훈이에게 통방이 하나 있는데, 억지로 들인 아이라 정을 주지 않습니다. 선화의 아이를 그 통방의 소생으로 꾸며 명분을 만들어 주는 거죠. 훗날 적당한 기회를 봐서 다시 선화 품으로 돌려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양쪽 다 문제없을 테니, 어떻습니까?”왕씨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선화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 아이를 지우는 게 최선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후작부의 두 아들에게 자식이 없으니, 선화의 뱃속 아이가 장손이 될 가능성이 컸다.아이를 지킬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했다.하지만 왕씨는 여전히 우려스러웠다.그녀는 고의로 물었다. “동서, 다시 묻겠는데, 정말 동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고 부인은 고개를 돌려 고준형을 바라보았다.“준형아, 네 생각은 어떠냐?”후작 나으리가 저택에 안 계시긴 하지만, 설령 계신다 해도 준형이가 된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으실 터였다.고준형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저희는 모두 어머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영 대인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 부군의 형님   제428화

    한 시진 전, 영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고 부인을 찾았다.고 부인은 그제야 선화가 회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즉시 고준형을 찾아가 유소영과 함께 자신을 따라 영씨 가문으로 가자고 했다. 아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고준형은 팔음아사로 가서 유소영을 데리러 갔고, 고 부인은 먼저 영씨 가문에 도착했다.내원.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국씨 어멈이 밖을 지키고 있었다.방 안에는 고 부인과 왕씨, 두 사람뿐이었다.고 부인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감돌았다.“선화가…… 정말 아이를 가졌단 말입니까?”왕씨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처음에는 입맛이 없다기에 우리한테 시위하느라 밥을 굶는 줄 알았네. 제 둘째 오라버니와 혼인하기 싫어서 말이야……. 헌데 알고 보니 이 아이가 달거리를 두 번이나 건너뛰지 않았겠나. 의원을 불러 진맥해 보니 정말 회임이라더군!”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동서, 말해 보게. 이 아이를…… 낳게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그녀는 마치 상대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고 부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딸이 회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후작부의 장손이라거나 작위를 다툴 밑천이 생겼다는 기쁨 따위는 없었다. 그저 걱정뿐이었다.혼인도 치르기 전에 아이부터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딸의 명예가 훼손될까 두려운 것이다.후작부 식구들이야 알겠지만, 남들이 이 아이가 누구 핏줄인지 어찌 알겠는가?그저 선화가 혼인 전에 정조를 잃었다고만 생각할 터였다…….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이를 이대로 지우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어쩔 수 없이 두 집안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인은 형님 왕씨의 손을 잡았다. 눈빛에 격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낳아야지요! 무조건 낳아야 합니다! 선화가 가진 아이는 제 친손자가 아닙니까!”왕씨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말이야 쉽지, 어떻게 낳겠다는 건가?

  • 부군의 형님   제427화

    고준형은 그녀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살피더니 꽤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어젯밤은 부인을 배려해 잠시 평상에서 잤던 거요.”말인즉슨, 오늘 밤에도 거기서 잘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유소영은 망설이다가 입술을 떼었다.“그럼 차라리 제가 평상에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 안의 등불이 모두 꺼졌다.찰나의 순간 사방이 어둠에 잠겼고, 그 어둠이 유소영의 말을 끊어버렸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유소영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세자, 제가 자도……”고준형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부인을 홀대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나더러 계속 그 작은 평상에서 자라는 소리나 다름없소.”유소영은 입을 다물었다.굳이 그렇게 받아들이겠다면, 뭐 어쩔 수 없었다.곧이어 고준형이 화제를 돌렸다.“유경원을 재건하는 일 말이오, 혹시 생각해 둔 게 있소?”유소영은 그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세자, 사실은……”그녀는 말하려다 말았다.고준형이 혼잣말하듯 덧붙였다.“서두를 것 없소. 생각이 정리되면 그때 고치도록 하시오.”“예.”유소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밤새 별일 없이 평온하게 다음 날이 밝았다.유소영이 잠에서 깼을 때,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오늘은 휴무일이었지만, 고준형은 습관처럼 일찍 일어나 공문서를 처리하러 간 모양이었다.유소영도 채비를 마친 뒤 팔음아사로 향했다.그녀는 이미 스승님께 서신을 보내 이곳에서 겪은 난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해 둔 상태였다.하지만 답신을 받으려면 열흘에서 보름은 더 기다려야 했다.팔음아사.오늘 장공주는 부재중이었으나, 귀한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한 명은 복양 군주였다.그리고 다른 한 명은 궁에서 온 구공주였다.복양 군주는 유소영의 곁에 앉아 친근하게 구며 나직이 물었다.“세자 부인, 그간 별고 없으셨나요? 저희 오라버니 일로 곤란하신 건 없었고요?”유소영은 상석에 앉은 구공주를 바라보았다.구공주는 상서 부인 일행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

  • 부군의 형님   제426화

    유소영이 일부러 물었다.“만약 제가 태자비 자리를 원한다면요?”강지영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세자 부인께 그런 야심이 있었나요?”유소영은 할 말을 잃었다.당연히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저 강지영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던 것뿐이었다.그러나 강지영은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태자비라면 미래의 황후가 되는 자리잖아요. 지금 당장 답을 드리긴 어려우니, 승산이 얼마나 될지 제가 잘 생각해 볼게요.”유소영은 기가 막혔다.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승산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지!유소영은 세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곁에 호위를 붙여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호위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반드시 세자에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형부, 관서.고준형은 손에 든 전선구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태자비라니?정말 유소영의 생각일까?평소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유소영이 강지영의 터무니없는 소리를 비꼬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물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유씨 가문의 산업을 빼돌린 일을 겪고 나니, 유소영을 잘 안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되었다.대체 유소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강지영은 요 며칠 무슨 움직임을 보였느냐?” 고준형은 일단 유소영의 일은 접어두고 물었다.석심이 대답했다.“강 소저가 암암리에 강 회산의 옛 벗들을 접촉하고 있습니다. 육황자를 위해 그들을 포섭하려는 듯합니다.”고준형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강지영의 행동은 그의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임근은 거열형을 당해 시신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고장훈이 보낸 사람이 시신을 수습하고 꿰맞춰 매장했다.장공주 저택.“이자들은 부마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거열형에 처한다 한들 본궁의 원한이 풀리겠느냐!”장공주의 눈에는 원한만이 가득했다.그때 군량 수송만 지체되지 않았어도 부마가 포위되어 죽진 않았을 것이다.임근 같은 관원 놈들은 죽어 마땅했다.……그날 밤.

  • 부군의 형님   제425화

    마차에 오르자 그제야 아민이 불평을 늘어놓았다.“아씨, 고장훈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씨를 보는 눈빛이 정말 기분 나빠요. 게다가 유경원과 난향원은 방향도 다른데 이 시간에 세자께서 저택에 계신 것도 아니고...... 고장훈이 왜 유경원 밖에 있었을까요?”“제 생각엔 그자가 아씨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해요!”유소영은 고장훈의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세자 부인이었으니, 고장훈이 감히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게다가 고장훈 자신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였다.“이랴!”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유소영은 미처 방비하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다행히 아민이 그녀를 붙잡았다.“무슨 일입니까!”아민이 화가 나서 밖을 향해 소리쳤다.마부가 대답하려던 찰나, 여인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세자 부인, 접니다. 강지영이에요.”마차 안.유소영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주루의 별실 안.유소영과 강지영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예전의 초췌했던 모습과 달리 강지영의 안색은 홍조를 띠었고, 부귀를 누리는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마저 감돌았다.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임근의 형 집행 장소인 동시 어귀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마침 임근의 몸이 마차에 묶이고 있었다. 구경하던 백성들은 흥분하여 일찌감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유소영은 이어질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 탁자 위로 시선을 옮겼다.맞은편의 강지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거열형이 집행되는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기이한 침묵 속에서 형 집행 소리만 들려오더니, 이내 처참한 비명이 동시 어귀에 울려 퍼졌다.강지영은 임근이 죽은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유소영을 바라보았다.“왜 보지 않으세요? 저런 죄인들이 처형당하는 걸 보면 통쾌하지 않으십니까?”그녀가 물었다.유소영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이었다.“강 소저께서 절 찾으신 게, 이 형 집행을 같이 보자고 그런 겁니까?”강지영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세자 부

  • 부군의 형님   제424화

    난향원.임유정은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오늘 아버지가 거열형에 처한다는 소식에 그녀는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고장훈은 다리 부상이 호전되어, 이제 제법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그는 지난 며칠간 임유정이 보여 준 정성 어린 간호에 고마움을 느끼며 제안했다. “어쨌든 부인의 친부 아니오. 내가 부인과 함께 가서 시신이라도 거두어 드리겠소.”그 말에 임유정은 더욱더 서러움이 북받쳤다.아버지가 당해야 할 형벌은 거열형이었다.그리고 지금 그의 시신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딸인 자신뿐이었다.그러나 두 사람이 시신을 수습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 부인은 결사반대했다.고 부인은 일부러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유정아, 너는 이미 임씨 가문과 연을 끊었고 이제 후작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임근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데, 네가 가서 시신을 거두면 남들이 뭐라 수군대겠느냐?”고 부인은 이어서 고장훈을 나무랐다. “장훈이 너도 그렇다. 네가 어떻게 낙마해서 중상을 입었는지 잊었느냐? 그자들이 임근 때문에 사위인 너에게 보복한 게 아니더냐! 그런데 감히 시신을 거두러 가겠다고?”고장훈도 침묵했다.임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제 친아버지가 아닙니까!”고 부인의 얼굴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사람이 죽으면 등불 꺼지듯 끝나는 법이다. 남는 게 뭐가 있겠느냐? 임근이 너희에게 남긴 건 치욕과 죄업뿐이다. 연루된 걸로도 모자라 더 당하고 싶다면 어디 한번 가 보거라!”말리는 척했으나, 실상은 이해득실을 분명히 따져 스스로 결정하게끔 종용한 것이었다.고장훈은 한발 물러섰다.그는 몸을 돌려 임유정을 나직이 달랬다.“내가 사람을 시켜 장인어른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도 잘 치러 주겠소. 하지만 우리가 직접 형장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백성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또 무슨 사단을 낼지 모르니 말이오.”임유정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부군의 뜻을

  • 부군의 형님   제162화

    민심자의 대처는 아주 빨랐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고 찬사를 보냈다. “세자 부인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선녀가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실례를 범했군요.” 임유정은 가당치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유소영이든, 새로 들어온 외실이든 다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였다.충용 후작이 소개를 이어갔다. “저쪽은 차남 장훈이와 임씨 부인이다.” 다정다감한 형님과는 달리, 고장훈은 민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임유정은 겉치레뿐인 예의를 차렸다. “민씨 부인.” 민심자도 미소로 화답했다.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충용 후작

  • 부군의 형님   제156화

    반 시진 전. 유소영이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심씨 어멈이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세자가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었다.편지에는 씨를 빌리는 일은 결코 본인의 뜻이 아니며, 고장훈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원래는 고장훈을 꾸짖어 물러나게 해야 마땅하나, 그녀가 정말로 자신의 아이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의중을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편지의 끝에는 어떤 결정을 하든 상관없이 오늘 이 자리에서 와서 직접 고장훈에게 분명히 말해 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다.지금 이 순간, 유소영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몸

  • 부군의 형님   제145화

    “직접 전해라.” 고준형이 분부했다.서신은 진 점주가 쓴 것이었다. 평강방이 문을 닫은 뒤, 진 점주는 고준형의 추천을 받아 관장공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날짜를 따져보니 이제 막 부임했을 시기였다. 유소영은 의구심을 품고 서신을 열었다. 하지만 서신의 내용은 그녀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씨, 왜 그러세요?” 아민이 물었다. “진 점주가 황성을 떠난다는구나.” “네? 왜요! 관장공서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 그걸 포기한답니까?” 유소영도 그의 나약한 태도에 화가 났다. “나

  • 부군의 형님   제138화

    난향원.충용 후작과 고 부인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씨 어멈 돌아오는 것을 보자 고 부인이 즉시 물었다. “유소영은 어찌 되었느냐?”“세자 부인께서 병으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뭐라!” 충용 후작과 고 부인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유소영이 임유정의 시술을 맡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충용 후작은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내세우며 명령했다.“다시 가서 불러오너라! 이 몸의 뜻이라고 전해라. 설마 감히 시아버지인 내 명을 거역하겠느냐!” “예, 알겠습니다.”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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